<이슈&인물> ‘4대 의사 집안’ 역풍 맞은 하영

자랑질 가문에 발목 잡혔다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자랑이 예상치 못한 역풍으로 돌아왔다. 배우 하영이 방송에서 꺼낸 가족사를 계기로 증조부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행적이 재조명되면서 친일 논란이 불거졌다. 소속사의 해명 번복과 하영의 자필 사과에도 광고·방송계의 거리두기가 이어지는 등 후폭풍은 계속되고 있다.

논란의 시작은 지난 7일 방송된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이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이런 엿같은 사랑> 홍보를 위해 배우 정해인과 함께 출연한 하영은 이날 자신의 가족사를 소개하던 중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쏟아지는
과거 기록

이날 하영은 증조부부터 조부, 부친, 친언니까지 의료계에 몸담았다고 말했다. 특히 증조부에 대해서는 “양의학을 일본에 가서 배워오시고 한양에 개원하신 첫 의사셨다”고 소개했다. 고종을 진료했다는 이야기도 함께 꺼냈다. 방송 직후 온라인에서는 하영이 언급한 증조부가 누구인지를 두고 관심이 이어졌다.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 서울에서 진료 활동을 했고 왕실 진료에도 참여했다는 이력을 토대로 한 인물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하영의 본명이 안하영이라는 점과 그가 방송에서 언급한 이력이 맞아떨어지면서 안상호가 증조부라는 추측이 퍼졌다.

온라인에서는 그의 의료인으로서의 이력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당시 남겨진 기록들이 함께 공유되기 시작했다. 친일 성격의 단체에 이름을 올렸다는 자료부터 조선총독부 기관지에 실린 과거 인터뷰까지 하나둘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하영이 자랑스럽게 소개한 ‘일본에서 양의학을 배워온 의사’의 삶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방송에서 언급한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는 1872년 태어나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의사로 활동한 인물이다.

당시 서양의학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전 일본으로 건너가 의학을 공부했고, 1902년 동경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안상호는 이후 일본에서 의사 자격을 취득한 뒤 귀국했다. 당시만 해도 서양의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조선인 의사가 많지 않았던 시기였다.

귀국 후에는 서울 종로 일대에 개인 진료소를 마련해 의료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왕실과의 인연도 있었다. 안상호는 왕실 의료에 참여하면서 고종과 순종 등의 진료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기록에서는 의친왕이 일본에 머물 당시 곁에서 진료를 맡았던 인물로도 소개됐다.

주목할 점은 1918년 12월10일 자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실린 기사다. ‘완전히 내지화한 의사 안상호씨의 가정’이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안상호와 일본인 아내, 자녀들의 생활상이 비교적 자세히 담겨있었다.

당시 일제가 조선인에게 일본식 생활과 동화를 강조하던 상황에서 안상호 가족을 하나의 사례로 소개한 기사였다. 내용도 구체적이었다. 기사에서 안상호는 자신을 두고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고 말했다. 조선 옷은 한 벌도 가지고 있지 않고 음식 역시 매운 것은 먹지 않는다며 일본인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종 진료한 첫 양의사” 증조부 친일 행적 파묘
이토 히로부미 추모 준비위·내선융화까지 재조명

조선인들과의 교류를 묻는 질문에는 “조선 사람과 그리 상종하는 일이 없으므로 불편한 것은 없다”는 취지의 더 노골적인 답변을 내놨다. 일본인인 부인 역시 오랫동안 조선에서 생활했지만 조선말을 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가정에서도 일본어를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녀들 역시 자연스럽게 조선말보다 일본어에 익숙한 생활을 했다.

안상호의 이름은 친일 성격의 단체에서도 확인됐다. 1916년 결성된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대정친목회는 조선인 유력 인사들이 참여해 조선총독부의 통치를 인정하고 조선인과 일본인의 융화를 내세웠던 단체로 평가된다.

‘을사오적’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 인사들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정’이라는 이름부터 당시 일본의 다이쇼 천황 연호에서 따온 것이었다. 관련 연구에서는 이 단체가 조선총독부의 통치를 인정하고 조선인과 일본인의 융화를 뜻하는 이른바 ‘내선융화’를 내세웠던 것으로 설명한다.

이후 안상호의 다른 행적을 보여주는 기록도 잇따라 거론됐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은 안상호가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뒤 경성에서 열린 이토 히로부미 추모대회 준비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고 밝혔다.

조선총독부의 자문기구 성격을 띤 경성부협의회와 내선융화를 내세운 동민회에서 활동했다는 설명도 나왔다. 대정친목회 한 곳에 이름을 올린 것이 전부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여러 기록에서 안상호의 이름이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안상호와 이완용 사이의 또 다른 인연도 재조명됐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수록된 고 박영석 전 건국대 교수의 논문 <이완용 연구>에 따르면 이재명 의사는 1909년 12월 서울 명동성당에서 행사를 마치고 나오던 이완용을 흉기로 공격했다.

중상을 입은 이완용은 병원으로 옮겨졌고, 논문에는 당시 의료진과 박종환·안상호 등의 치료로 목숨을 건졌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완용은 이듬해 한일병합조약 체결에 앞장섰고, 이재명 의사는 같은 해 사형을 선고받아 22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고종과 관련된 기록도 논란 과정에서 다시 소환됐다.

안상호는 고종이 쓰러졌을 당시 일본인 의사들과 함께 진료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과거 고종 독살설과 연결하는 주장까지 등장했지만, 역사학계에서는 고종 독살설 자체가 사실로 확인된 것은 아니라는 반론이 제기됐다.

이 같은 기록이 밝혀지면서 안상호의 친일 여부를 둘러싼 논쟁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안상호는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도, 정부가 공식적으로 확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도 이름이 없었다.

안상호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곧바로 또 다른 논쟁으로 이어졌다. 친일 성격의 단체에서 활동한 기록과 조선총독부 기관지에 실린 발언이 남아 있는데도, 왜 공식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대대로 의사
금수저 가문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친일인명사전> 미등재가 곧 친일 행적이 없다는 뜻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친일인명사전> 집필에 참여한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은 안상호에 대해 “친일 행적은 팩트”라며 “친일파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방 사무처장에 따르면 <친일인명사전>은 단순히 친일 성격의 단체에 이름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인물을 수록하지 않는다. 객관적인 1차 사료를 토대로 친일 행위가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 같은 행위를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했는지 등을 종합해 판단한다.

안상호의 경우 친일 행적으로 볼 수 있는 기록은 존재하지만, 당시 다른 친일반민족행위자들과 비교하면 적극성과 반복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수록 기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게 방 사무처장의 설명이다.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관련 행적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취지다.

정부가 과거 확정한 공식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도 안상호의 이름은 없다.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일제강점기 친일 행위를 조사해 확정한 명단에서 안상호는 제외됐다.  안상호를 ‘친일파’라고 단정하는 것이 적절하느냐는 반론도 제기됐다.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하영을 둘러싼 비판을 ‘친일 강박증’이라고 표현했다. 안상호가 근대 서양의학을 익혀 의료계에서 활동했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하며, 일제강점기 당시 사회 지도층의 행적을 현재의 기준으로 모두 같은 무게의 친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하영의 소속사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는 지난 10일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다. 안상호가 하영의 증조부라는 사실은 맞지만, 온라인에서 제기되고 있는 친일 행적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해명 직후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됐다.

이미 공개된 자료 가운데 안상호가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기록이 확인됐고, 이를 뒷받침하는 학술자료와 당시 신문 기사들도 잇따라 공유됐다. 소속사가 어떤 근거로 의혹 전체를 사실무근이라고 판단했는지를 두고 의문이 제기됐다.

결국 소속사는 하루 만에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지난 11일 공식 입장을 통해 “추가 확인 결과 증조부 안상호 선생이 1916년 대정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는 기록이 실제로 존재함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충분한 검증 없이 ‘사실무근’이라 성급히 답변해 혼란을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초동 대응 과정에서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뒤늦은 사과
더 커진 불씨

소속사는 하영이 방송에서 가족사를 언급하게 된 과정도 설명했다.

최근 방송 프로그램에서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집안의 ‘4대 의료 가업’ 이력을 이야기한 것이며, 이로 인해 의도치 않게 논란이 빚어진 데 대해 하영 역시 무거운 마음을 갖고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면서 “역사적 사실과 한 인물의 이력을 대중에 전하는 일에 얼마나 신중한 검증이 필요한지 이번 일을 통해 깊이 깨달았다”며 앞으로 더욱 신중하고 겸허한 자세로 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차례 강하게 부인했던 입장을 불과 하루 만에 번복하면서 비판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관련 기록이 공개적으로 확인 가능한 상황에서 충분한 검증도 없이 ‘사실무근’부터 내세웠다는 점이 도마 위에 올랐다. 공식 입장문에서 안상호를 ‘선생’이라고 표현한 부분도 문제됐다.

하영의 부친도 가족을 대표해 입장을 내놨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가족들이 안상호를 의친왕을 가까이에서 진료하고 보필했던 인물로 알고 있었다며, 증조부의 과거 행적이 이 같은 논란으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가족 전체가 이번 일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앞으로 역사를 다시 공부하고, 후손으로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고민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다만 이 과정에서도 또 다른 논란이 불거졌다. 부친이 일제의 대한제국 강제 병합을 설명하며 ‘한일합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해당 표현은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사용돼 온 용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역사 인식에 대한 비판이 다시 이어졌다. 소속사의 입장 번복과 부친의 해명까지 이어졌지만 정작 하영 자신의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까지 하영 본인이 직접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는 점도 비판 대상이 됐다.

가족사를 직접 언급한 당사자인 만큼 소속사 뒤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본인이 설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대정친목회·매일신보 나오자 입장 번복
“가족 자랑처럼 꺼냈다” 결국 고개 숙여

하영은 결국 지난 12일 자신의 SNS에 자필 편지를 올리고 직접 사과에 나섰다.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행적 논란이 불거진 지 사흘 만이었다. 하영은 먼저 “저의 증조부와 관련된 일들로 큰 실망과 상처를 안겨드린 점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며 입을 열었다.

이어 최근 증조부의 과거 행적을 접한 뒤 가족의 역사를 다시 들여다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증조부의 모습도 털어놨다. 가족을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만으로 증조부의 삶을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고, 그런 상태에서 여러 자리에서 증조부 이야기를 가족의 자랑처럼 꺼내왔다고 인정했다.

논란이 불거진 뒤에는 직접 관련 자료를 찾아봤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증조부의 친일적 행적을 알게 됐고,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가족사를 가볍게 언급한 점을 반성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 가족의 역사와 당시 시대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역사를 대하는 태도 역시 더욱 신중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영은 “우리 역사를 깊이 있게 공부하고 광복과 나라의 안녕을 위해 힘쓴 이들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겠다”며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사과문이 공개되자 비판은 다시 꼬리를 물었다. 특히 증조부 안상호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면서 최근 함께 논란이 된 조부 안부호의 소록도병원 근무 이력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었다는 점이 문제로 거론됐다. 하영의 조부 안부호는 과거 국립소록도병원에서 근무했다.

당시 소록도에서는 한센인을 대상으로 강제 격리와 단종, 가족 분리 등 각종 인권침해가 이어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대로 하영을 향한 비판이 선을 넘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조상의 행적을 이유로 후손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은 연좌제에 가깝다는 지적이었다.

하영이 가족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소개한 태도는 비판할 수 있어도, 확인되지 않은 의혹까지 가족 전체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함께 나왔다.

이런 가운데 하영과 작품을 함께한 일부 제작진은 간접적으로 응원의 뜻을 보였다.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 이도윤 감독과 <참교육> 홍종찬 감독은 하영이 올린 자필 사과문에 ‘좋아요’를 눌렀다.

사과 이후에도 후폭풍은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와 있던 하영 출연 ‘삼성 아트 TV’ 광고 영상 6편을 비공개로 전환했고, 의류 브랜드 아티드 역시 하영이 모델로 나선 광고 영상을 내렸다.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응급의료센터도 하영이 참여한 공익광고를 비공개 처리했다.

다만 보건복지부는 오는 9월 계약 종료를 앞두고 실질적인 홍보대사 활동도 끝난 만큼 별도의 해촉 절차는 밟지 않기로 했다. 논란은 집안의 재산 문제로도 번졌다.

하영의 모친 이미숙 코어메드 대표가 과거 인터뷰에서 현금 1억원에 이어 2억원을 금고에 보관한 적이 있다고 밝힌 내용과 그의 1970년대 해외 유학 이력이 다시 주목받았다. 일부는 이를 근거로 집안의 재산 형성 과정을 확인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냈다.

광고계·예능
줄줄이 손절

집안의 재산 형성 과정에 관심이 쏠리면서 친일재산 환수 가능성까지 거론되기 시작했다. 오는 12월 친일 재산귀속법 시행을 앞두고 안상호가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다만 현재까지 하영 일가의 재산이 안상호의 친일 행위와 관련해 형성됐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안상호 역시 정부가 공식적으로 확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아 실제 재산 환수 여부를 거론하기에는 이른 상황이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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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설계사 발목 잡는 ‘포괄양수도’ 함정

[단독] 설계사 발목 잡는 ‘포괄양수도’ 함정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보험설계사가 회사를 떠나더라도 자신이 모집·관리해 온 고객의 보험계약을 함께 옮길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이른바 ‘포괄양수도’. 한 대형 보험대리점 산하 조직이 설계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퇴사 시 기존 관리계약을 양수도 방식으로 이관해 주겠다는 내용의 약정서를 작성했다. “나가도 기존 계약을 가져갈 수 있다”는 약속은 실제로 지켜질 수 있었을까. 보험설계사가 회사를 옮길 때 자신이 기존 회사에서 모집·관리하던 보험계약을 새 소속에서도 계속 담당할 수 있도록 넘겨받는 것을 업계에서는 흔히 ‘포괄양수도’라고 부른다. 설계사 입장에서는 이직 이후에도 기존 고객을 계속 관리할 수 있고, 계약 유지에 따라 발생하는 수수료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어 소속을 옮길 때 중요한 조건으로 꼽힌다. 양수도 약속 실행 미지수 다만 보험계약 자체가 설계사의 소유물인 것은 아니다. 보험계약의 당사자는 보험회사와 보험계약자이고, 보험설계사는 고객에게 상품을 설명하고 계약 체결을 중개한 대가로 보험사나 법조인보험대리점(GA)으로부터 약정된 수수료를 받는 구조다. 따라서 설계사가 자신이 모집한 계약에 대해 법적인 ‘소유권’을 갖고 있어 회사를 옮길 때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한 설계사가 한 법인보험대리점에서 근무하면서 고객 100명의 보험계약을 모집했다고 가정해 보자. 설계사가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보험대리점으로 옮긴다고 해서 고객 100명의 보험계약이 자동으로 설계사를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보험계약 자체는 기존 보험사와 고객 사이에 그대로 유지되고, 설계사가 퇴사하면 기존 회사가 해당 계약을 관리하거나 다른 설계사를 담당자로 지정할 수 있다. 반대로 기존 회사와 설계사 사이에 계약 이관에 대한 합의가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설계사가 새 보험대리점으로 이동한 뒤에도 자신이 모집했던 계약을 계속 담당할 수 있도록 기존 회사에서 새 회사로 관리관계를 옮기는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기존·신규 보험대리점 간 협의와 수수료 정산, 보험사 전산상 담당자 변경 등 실무적인 절차가 뒤따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 같은 계약 이관을 보험업법 등이 일률적으로 보장하거나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보험설계사의 이직에 따른 계약 이관을 직접 규율하는 법령이 없어, 실제로 계약을 넘겨줄지 여부는 기본적으로 보험대리점과 설계사 사이의 계약이나 합의에 따라 결정되는 영역으로 해석된다. 설계사 영입 ‘계약 이관’ 약정 본사는 양수도 불허…엇갈린 방침 이 때문에 보험대리점이 설계사를 영입할 당시 “향후 다른 회사로 옮기더라도 기존 계약을 이관해 주겠다”고 약속했다면 해당 약정이 중요해진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인카금융서비스 내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은 설계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향후 퇴사할 경우 기존 관리계약을 양수도 방식으로 이관해 주겠다는 내용을 약정서에 담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인카금융서비스(주) 사업단 부속 약정서’에는 인카다이렉트 사업단과 설계사 김모씨 사이의 구체적인 계약 조건이 적혀 있다. 눈에 띄는 것은 퇴사 이후의 계약 처리 방식이다. 약정서에는 “조직의 이동(퇴사) 시, 전체 관리계약의 양수도 조건으로 원활한 계약 이관 조치한다”고 명시돼있다. 설계사가 향후 조직을 떠나더라도 기존에 관리하던 계약을 이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계약 이관뿐 아니라 퇴사 이후 남아 있는 수수료에 대한 내용도 포함됐다. 약정서에는 조직 이동 또는 퇴사 시 “미정산 잔여 유지수수료는 월지급 또는 퇴사 시점부터 1년이 되는 시점에 정산해 지급한다”고 적혀 있다. 영입 당시 지급 수수료율과 일부 시책 등 구체적인 보상 조건도 함께 약정됐다. 앞서 작성된 또 다른 부속 약정서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확인된다. 해당 문서 역시 조직 이동 또는 퇴사 시 전체 관리계약을 양수도 조건으로 이관하고, 남은 유지 수수료를 별도로 정산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 약정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설계사에게 계약 이관을 약속한 주체는 인카금융서비스 본사가 아니라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이다. 인카다이렉트는 인카금융서비스 내에 편입된 영업 조직이다. 기존 다이렉트119가 인카금융서비스에 합병되면서 인카다이렉트라는 조직으로 편입됐고, 그 아래 다시 사업단과 본부 등 영업 조직이 구성돼있다. 계약 옮겨도 정산은 별개 앞서 김씨와 부속 약정을 체결한 사업단 역시 이 같은 인카다이렉트 산하 조직 중 하나다. 문제는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이 체결한 이 같은 약정이 인카금융서비스 본사의 방침과 맞아떨어졌느냐다. 인카금융서비스 본사는 지난 2024년 소속 조직에 포괄양수도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방침을 전달했다. 김씨는 이후 본사의 방침과 자신이 체결한 약정 내용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본사에서는 안 된다고 하는 포괄양수도를 사업단이 어떻게 약정할 수 있는 것이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본사가 포괄양수도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갖고 있었다면, 사업단이 설계사에게 향후 퇴사 시 전체 관리계약을 이관해 주겠다고 약정할 수 있었는지가 쟁점인 셈이다. 사업단 자체 판단만으로 계약 이관을 약속할 수 있었는지, 아니면 인카다이렉트나 인카금융서비스 차원의 권한이나 승인이 전제돼있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약정서에 ‘계약을 이관한다’고 적었다고 해서 실제 포괄양수도가 쉽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계약을 넘기는 과정에서는 기존 소속 회사와 새로 옮길 회사, 보험사 등 여러 주체의 협의가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한 설계사가 A법인보험대리점(GA)에서 B 대리점으로 옮기면서 기존에 관리하던 계약을 함께 가져가려 한다면, 우선 기존 GA가 해당 계약을 내보내는 데 협조해야 하고, 새 GA 역시 이를 받아 관리할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 이후 실제 보험계약을 보유한 보험사 전산에서도 담당 조직이나 설계사 변경 등 필요한 절차가 이뤄져야 한다. 근저당 걸고 3년 만 이관 계약을 넘기는 과정에서는 돈 문제도 함께 정리해야 한다. 설계사에게 지급되는 수수료는 계약 체결 시점에 모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지 기간에 따라 나눠 지급되는 경우가 많다. 회사가 자체 재원으로 일부 수수료를 먼저 지급했거나 정착 지원금·시상금 등을 지급했다면, 퇴사 시 이를 어떻게 정산할지를 두고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실제 보험업계에서는 설계사가 다른 GA로 옮기는 과정에서 기존 소속 회사가 계약 이관에 협조하지 않아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반복돼 왔다. 계약 이관 여부를 일률적으로 정한 법적 기준이 없는 만큼, 기존 GA가 계약을 내보내지 않겠다고 판단할 경우 설계사가 이를 일방적으로 요구하기는 쉽지 않은 구조다. 기존 GA 입장에서도 계약이 빠져나가면 향후 해당 계약에서 발생하는 수수료 등 수익이 줄어들 수 있다. 설계사의 이직과 함께 기존 고객 계약까지 다른 회사로 넘어갈 경우, 회사가 관리하던 계약과 수익 기반을 함께 내주는 셈이어서 계약 이관에 소극적일 유인이 있다는 설명이다. ‘포괄양수도’가 가능하다고 해도 실제 진행은 쉽지만은 않다. 계약의 관리만 넘겨주는지, 남은 수수료까지 함께 정산하는지, 기존에 지급된 지원금이나 시상금에 환수 조건이 붙는지 등에 따라 설계사가 체감하는 조건은 크게 달라진다. 인카다이렉트 측 관리자들은 이와 관련해 포괄양수도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지난 8월 김씨와의 카카오톡 대화에서 한 관리자는 “인카다이렉트 양수도 100% 된다”며 “W금융이 대표적이고, 개인이든 지점이든 자신들이 계속분을 받기 위해 안 한 거지 원하는 분들 다 해드렸다”고 말했다. 이들의 설명대로라면 포괄양수도가 이뤄지지 않은 사례는 회사가 이를 거부해서가 아니라, 설계사나 조직이 기존 계약에서 계속 발생하는 수수료를 받기 위해 스스로 계약 이관을 선택하지 않은 경우라는 취지다. ‘100% 가능’ 철석같은 약속 실제 이관까지 절차 수두룩 하지만 <일요시사>가 확인한 W금융 측 설명은 달랐다. W금융 대표는 DM(다이렉트 메시지)에서 “포괄양수도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전했다. “내가 과거 인카 측에서 해촉된 뒤 곧바로 포괄양수도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인카다이렉트 측 설명처럼 퇴사와 동시에 기존 계약과 관련 권리가 한꺼번에 넘어온 것이 아니라, 해촉 이후 약 3년이 지나서야 기존에 관리하던 계약을 이관받았다는 것이다. 대표는 계약을 넘겨받는 과정에서도 별도의 조건이 뒤따랐다고 주장했다. 계약 이관 과정에서 근저당 설정 등의 부담이 있었고, 기존 계약에서 발생하는 유지 수수료 역시 충분히 정산받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계약 이관을 어디까지 ‘포괄양수도’로 볼 것인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퇴사 이후 기존 계약 일부 또는 전부가 다른 회사로 이관됐다고 하더라도, 영입 당시 약속한 조건에 따라 즉시 계약과 잔여 수수료 등이 함께 이전된 것인지,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별도의 협의와 조건을 거쳐 이관된 것인지는 성격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포괄양수도 사례로 W금융을 언급한 경위에 대해 당시 김씨와 대화를 나눴던 사업단 관리자에게도 확인을 요청했다. 해당 관리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회사에서 전해 들은 내용을 그대로 전달했을 뿐”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자신이 포괄양수도 가능 여부나 과거 사례를 직접 확인해 안내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후 A씨는 인카다이렉트를 떠나 같은 인카금융서비스 내 다른 조직으로 소속을 옮겨달라고 요청하는 한편, 포괄양수도 약정과 실제 운영 방식에 대한 문제를 SNS에 제기했다. 해당 내용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자 인카다이렉트 측은 A씨의 게시물 등을 문제 삼았고, 결국 A씨는 ‘허위 사실 유포 및 회사 평판 리스크’ 등을 이유로 해촉 통보를 받은 상태다. 결국 문제는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이 설계사들에게 약정한 포괄양수도가 실제 100% 가능한 조건이었는지다. 또 본사의 방침과는 달리 ‘포괄양수도’에 대해 사업단이 자체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도 쟁점이다. 방침 따로 약정 따로 인카다이렉트 측은 현재 회사 내부 규정상 설계사 퇴사에 따른 타사 계약 이관과 잔여 수수료 등을 일괄 이전하는 포괄양수도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소비자가 직접 요청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개별 계약 이관을 허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산하 사업단에서 포괄양수도가 가능하다고 안내하거나 별도 약정을 체결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만약 그렇게 했다면 사업단에서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하며, 잘못된 안내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내부 조사와 필요시 제재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