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재벌후계자 체크 ⑧ 일진그룹 허정석

2010.11.02 09:37:21 호수 0호

덩어리 뚝 잘라 ‘큰놈 한입 작은놈 한입’

한 나라의 경제에서 대기업을 빼곤 얘기가 안 된다. 기업의 미래는 후계자에 달렸다. 결국 각 그룹의 후계자들에게 멀지 않은 대한민국 경제가 걸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 할 수 있을까. 우리 경제를 맡겨도 될까. 불안하다. <일요시사>는 연속 기획으로 경영수업 중인 ‘황태자’들을 체크해봤다. 여덟 번째 주인공은 일진그룹 허정석씨다.

장남 전기·차남 IT…자회사들 이분화 정리
경영권 거리 먼 두딸도 자투리 한몫씩 챙겨

재계 순위 50위권인 일진그룹은 연매출 1조5000억원이 넘는 중견그룹이다. 하지만 1967년 창립 이후 40여년간 부품·소재 부문 한 우물만 파온 탓에 일반인에겐 다소 생소하다. 후계구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룹을 잘 모르니 그 일가를 알 리 없다.

나와바리 확실히 구분



일진그룹 후계구도에서 관전 포인트는 두 아들의 치열한 각축전이다. 계열사들의 등기직, 지분 등을 놓고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고 서로 부딪칠 우려는 없다. 그룹 창업주인 허진규 회장이 일찌감치 그룹을 둘로 뚝 쪼개 한 입씩 먹여줬기 때문이다. 보기에 따라선 향후 발생할지 모르는 경영 분쟁의 싹을 아예 자른 의도로도 풀이된다.

허 회장은 2남2녀(정석·재명·세경·승은)를 두고 있다. 이중 장·차남의 ‘대권 레이스’가 뜨겁다.
올해 41세인 장남 정석씨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친 후 1995년 일진다이아몬드 대리로 입사해 이사와 상무, 일진전기 전무와 일진중공업 부사장을 거쳐 2007년 사장에 올랐다.

올해 38세인 차남 재명씨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MBA를 마쳤다. 1997년 일진다이아몬드 사원으로 입사해 일진소재산업 상무·전무·부사장을 역임한 뒤 올초 사장으로 승진했다.
두 형제의 나이 터울이 적고 학력과 경영수업 코스·기간도 별반 차이가 없어 얼핏 경영권을 놓고 충돌할 여지가 많아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둘의 이른바 ‘나와바리(구역)’가 확실히 구분돼 있는 탓이다.

정석씨는 그룹 지주회사인 일진홀딩스를 통해 그 밑으로 딸린 일진전기(일진홀딩스 지분 54.0%), 일진다이아몬드(61.8%), 전주방송(30.0%), 일진디앤코(100.0%), 이니투스(55.5%), 바이메드시스템(85.0%) 등 계열사들을 지배하고 있다. 현재 허 회장(15.1%)보다 많은 일진홀딩스 지분 28.8%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그룹 핵심인 일진홀딩스·일진전기·일진다이아몬드 등 상장사 3사의 대표이사로 있다.

일진홀딩스는 2008년 7월 일진전기와 일진다이아몬드를 투자사업부문과 제조사업부문으로 분할하고, 각각의 투자사업부문을 합병해 설립된 순수 지주회사다. 일진다이아몬드의 최대주주였던 정석씨는 이 과정을 통해 일진홀딩스 지분을 급격하게 늘릴 수 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정석씨의 일진홀딩스 지분은 8.1%에 불과했었다. 그룹이 지주회사 구조로 전환될 당시 업계에선 정석씨 체제로 2세 경영승계 작업이 마무리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지주회사 우산 아래로 전 계열사가 들어간 것은 아니다. 일진디스플레이, 일진소재산업, 일진유니스코, 일진경금속 등 일부 계열사들은 지주사 체제에 편입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들 회사는 개별회사로 남아 독립적으로 운영되게 됐다. 때문에 업계에선 정석씨를 두고 ‘부분 승계’ ‘반쪽 오너’란 얘기가 나왔지만, 허 회장의 머릿속엔 그럴만한 구상이 있었다. 차남 몫으로 떼놓은 것이다.

재명씨는 일진홀딩스 지분을 단 1주도 갖고 있지 않다. 대신 상장사인 일진디스플레이를 비롯해 일진소재산업, 일진유니스코, 일진경금속 등 알짜 자회사들을 실질적으로 쥐고 있다. 재명씨는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는 일진소재산업(84.5%)과 일진유니스코(20.6%), 일진경금속(13.8%)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세 회사는 일진디스플레이의 지분을 각각 1.2%, 4.2%, 12.5%씩 갖고 있는 주요주주다.

다만 재명씨는 허 회장이 아직까지 일진소재산업을 제외한 이들 회사의 최대주주로 있어 완전한 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처지다. 허 회장은 일진디스플레이 27.6%, 일진유니스코 61.9%, 일진경금속 52.5%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그나마 재명씨에게 위안이 될 만한 대목은 일진소재산업(일진머티리얼즈)이 코스피시장 상장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일진소재산업은 지난달 25일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에 주권상장예비심사 청구서를 접수했다.

일진소재산업은 반도체 등의 전자부품을 연결하는 인쇄회로기판의 회로를 구성하는 동박을 주로 생산하는 업체다. 지난해 매출액은 2033억원, 순이익은 133억원을 기록했으며 주당 발행가액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대표 주간사는 미래에셋증권이 맡았다. 내년 상반기 상장이 목표로, 통상 상장심사에서 공모까지 지체 없이 일정을 진행할 경우 3개월 안에도 가능한 것을 감안하면 내년 1월에라도 증시에 등장할 수 있다.

증권가에선 일진소재산업이 상장한다면 재명씨가 일진홀딩스처럼 별도의 지주회사를 설립해 일진소재산업, 일진디스플레이, 일진경금속, 일진유니스코 등을 지배하는 구조를 만들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허 회장이 보유 중인 이들 회사의 지분 이동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애널리스트는 “일진그룹의 후계작업은 장남이 전기분야 계열사들을, 차남이 IT분야 자회사들을 맡는 이분화 양상으로 정리되고 있다”며 “그동안 장남 위주로 후계작업이 전개됐는데 이번에 일진소재산업 상장 추진을 계기로 차남의 역할도 부각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영분쟁 사전 차단

허 회장의 두 딸은 경영권과 거리가 멀지만, 핵심 계열사들의 일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장녀 세경씨와 차녀 승은씨는 똑같이 일진홀딩스와 일진다이아몬드 지분을 각각 0.3%, 1.5%씩 갖고 있다. 이외에 세경씨는 일진유니스코(3.7%), 승은씨는 일진디스플레이(1.4%) 지분도 있다.

자매는 그룹 자회사도 한곳씩 꿰차고 있다. 세경씨는 일진반도체, 승은씨는 일진자동차를 거머쥔 모양새다. 두 회사는 이들의 남편인 김하철, 김윤동씨가 각각 대표이사로 경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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