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게이들의 '놀이터' 이태원을 가다

2012.01.27 10:51:40 호수 0호

"게이가 어때서요?" '이태원 프리덤'

[일요시사=한종해기자] “자기~ 남친 있어?” “어 나 파트너 있어.” 이태원에 위치한 게이클럽 안에서 나눠지는 대화 중 일부다. 게이(남성 동성애자)들이 즐겨 찾는 주점이 밀집한 이태원은 게이들을 위한 해방구다. 이태원역을 가로지르는 길에 위치한 소방서를 지나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게이 업소가 모여 있는 ‘게이힐’이 나온다. 종로와 신당동을 이어 이태원이 게이들을 위한 새로운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게이뿐만 아니라 이성애자와 여성들도 자주 찾는다는 이태원의 게이힐을 <일요시사>가 직접 찾아 취재했다. 

이태원 '게이힐', 편견 벗어난 '소수민족' 해방구
18년 된 게이클럽 역사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지난 14일 오후 11시께. 게이들의 모임이 열린다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 소방서 근처 한 클럽. 클럽을 주변으로 펼쳐진 미로 같은 골목길에는 곳곳에 게이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날리고 있었다. 기자가 도착했을 때 인근 도로까지 길게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짧은 머리에 가죽바지를 입은 20대 초반의 남성, 면바지에 흰 티셔츠를 입은 호리호리한 체격의 30대 중반 남성 등 대부분이 남자였다.

여성 입장료,
남성의 두 배

입장료는 남성 1만원, 여성은 2만원이었다. 보통 클럽의 경우 여자는 돈을 덜 받거나 공짜인 것과는 정반대의 경우. 게이들이 주가 되는 클럽이기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종이티켓을 받아 손목에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휘황찬란한 조명과 음악에 맞춰 수백 명의 남자들이 서로 뒤엉켜 춤을 추고 있었다. 외국 남성들과 한국 남성들이 대부분이었고 일부 여성들의 모습도 보였다. 남성들이 많아 우중충할 것 같았던 생각과는 다르게 생기가 넘치고 즐거운 분위기였다.

40여 평의 무대를 가득 메운 수백 명의 남성들은 음악에 온몸을 맡긴 채 자신의 끼를 내뿜고 있었다. 윗옷을 벗어던지고 춤을 추는 이도 있었고, 서로를 끌어안거나 상대의 몸을 쓰다듬으며 춤을 즐기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한편에 마련된 바에는 춤을 추지 않는 사람들이 맥주와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상대가 있는지 살피거나 작업을 거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음에 드는 동성이 있으면 둘만의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칸막이가 쳐져있는 공간도 있었다. 클럽 내부가 수많은 무지개 빛깔의 깃발들로 치장되어 있고 남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90% 이상이라는 것 말고는 여타의 클럽과 같아 보인다. 이곳이 바로 이태원 '소수민족'의 놀이터다.

바에서 홀로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는 외국 남성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이 남성은 이태원과 인접해 있는 용산미군기지의 군인이란다.

이 남성은 "가끔 미국의 자유분방함을 느끼고 싶을 때 이곳을 찾는다. 여기서는 대부분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별다른 거리낌이나 차별 없이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클럽을 찾은 외국 남성 중 상당수가 주한미군이었다. 머리를 짧게 자른 건장한 체격의 외국 남성들이 간혹 보이는 여성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며 '작업'에 여념이 없다.

이 남성은 또 "솔직히 누가 게이인지 알고 싶지도 않다. 여기서 마음껏 즐기다 미국으로 돌아가면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누가 알겠는가"라며 자리를 피했다.

기자가 미군과 대화를 나두던 도중 입구를 통해 8명의 여성들이 클럽으로 입장했다. 전체적인 성비로 봤을 때 극히 일부분이었지만 여성들의 입장도 꾸준했다. 두 배 이상 차이나는 입장료도 이들의 발걸음을 막을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게이클럽을 즐겨 찾는다는 이수연(24)씨는 "집적대는 남자들이 없어 편하게 수다를 떨 수 있다"며 "여자들에겐 어떤 유흥가보다 안전 한데다 귀찮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함께 온 신국화(24)씨도 "게이들 중에는 젊고 잘생긴 '훈남'들이 많아 '눈요기' 하기에도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게이클럽도 역시 클럽인 걸까? 이런 여성들을 노리는 남성들도 있었다. 호기심에 게이클럽을 찾았다는 조영일(29·남)씨가 기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씨에게 다가왔다. "옆에 남성분과 일행이냐?"라고 물었고 기자가 아니라고 하자 이씨에게 '작업'을 걸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성들이 모여 있는 곳엔 반드시 남자들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들과 게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게이클럽을 찾는 게이들은 이들을 반가워하지 않았다.

한 게이커플의 얘기를 들어봤다. 이 커플은 "게이들을 위한 공간에서 게이들이 호기심의 대상으로 전락하는데 불쾌하다"며 "안 그래도 많은 사람들 때문에 공간도 부족한데 인구밀도를 쓸데없이 높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여자가 있는 곳엔
반드시 남자도 있어

이어 "이 클럽을 찾는 이유가 동성애자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여 주기 때문인데 우리를 신기하게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 때문에 게이들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특성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와 대화를 마치고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클럽을 나간 이 게이커플을 보다가 문득 게이커플의 남녀역할이 궁금해졌다. 클럽의 종업원을 만나 게이에 대한 '모든 것'을 들어봤다.

이 종업원의 말에 따르면 게이커플 사이에도 분명히 남녀가 존재한다. 게이커플의 성관계에서 남성 역할을 하는 사람을 '때짜', 여성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마짜'라고 한다. 성관계에서 마짜는 때자보다 비교적 편하고 쾌감이 크기 때문에 게이 중 상당수는 마짜다. 한마디로 여성의 역할을 하는 게이들이 많다는 것.

그렇다면 이들은 어디서 성관계를 할까? 이 종업원은 "모텔을 이용한다. 하지만 게이들은 대부분은 재력가가 많다"며 "결혼 생각이 없기 때문에 돈을 모으기보다는 팍팍 쓰는 경향이 있어 호텔을 이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편하게 놀려는 ‘여자’, 그를 노리는 ‘남자’
보디빌더 고용한 게이전용 남성마사지

이어 그는 "게이들 사이에서도 외모에 따른 부익부 빈익빈이 존재한다"며 "잘생기고 젊은 게이들은 우대받고 못생기고 뚱뚱한 게이들은 상대적으로 천대 받는다"고 덧붙였다.

취재를 마치고 클럽을 빠져나온 시간은 새벽 1시.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반짝이는 네온사인 덕에 대낮을 방불케 했다. 거리에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났으며 술에 취해 길바닥에 앉아 있는 남성을 꾀려는 게이들도 있었다. 지나가는 남자들을 붙잡고 휴대폰 번호를 교환하는 게이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이 업소가 위치한 골목은 통상 '게이힐'로 불리고 있다. 이태원역 3번 출구를 통해 나와 소방서가 있는 곳으로 걷다가 소방서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아스팔트 바닥에 '진입금지'라고 적혀있는 곳부터 '게이힐'이 시작된다.

이곳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P클럽, Q클럽 등 게이클럽이 있고 게이들만 출입 할 수 있는 게이바가 있다. 바로 옆 골목에는 트렌스젠더들을 위한 바가 있으며 아랫골목에는 예전 미군들을 대상으로 영업했던 집창촌 후커힐이 있다.


남성역할은 ‘때짜’
여성역할은 ‘마짜’

골목을 따라 위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게이들을 위한 남성전용마사지 업소도 있다. 이 업소는 보디빌더들을 마사지사로 고용해 인기가 높다 특히 모 업소의 남성 '고고쇼'는 게이들 사이에서 인기폭발이다.

이태원의 게이골목은 금·토·일에만 화려하게 빛나며 새벽 2~4시 사이가 성황이다. 불이 켜지는 3일 동안 이태원 게이골목을 찾는 게이들은 업계 추산 주당 약 1000명에 이른다.

클럽에 출입하기 위해 정해진 입장료를 내고 티켓을 구매해야 하며 티켓이 찢어지거나 분실하지 않는 이상 하루 동안은 계속 출입이 가능하다. 일반 클럽과 마찬가지로 티켓을 이용해 술이나 음료 한 잔을 구매할 수 있으며 더 원할 시 추가비용을 내고 사야한다.

게이클럽의 사장과 종업원들은 모두 게이다. 남성 이성애자들도 있는데 이들은 클럽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 고용된 사설경비업체 요원들뿐이다. 이곳에서는 '소수민족'이 이성애자인 것이다.

이태원의 또 다른 게이문화는 게이바다. 게이바는 클럽과는 다르게 조용함으로 승부한다. 이곳을 찾는 게이들은 상대와 대화를 나눌 뿐이며 이성애자나 여성들은 출입하지 않는다.

이태원에 있는 일반 바도 술집으로 영업하다가 새벽시간이 되면 게이클럽 분위기로 바뀌는 곳도 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태원 뒷골목이 게이들의 '놀이터'가 됐을까? 이태원 게이클럽의 역사는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2월경 이태원에 첫 게이클럽 '파슈'가 오픈했다. 이때까지 모든 게이업소는 종로와 신당동에 모여 있었으며 대개 단란주점형식이었던 것에 반해 파슈는 춤을 추며 보다 분방한 섹슈얼리티를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파슈는 같은 해 가을 경 '사장이 돈을 갖고 튀었다'는 풍문만을 남긴 채 문을 닫았다.

이듬해 '트랜스'라는 이름의 게이바가 입성했으며 6월 '스파르타쿠스'라는 이름으로 클럽이 오픈했다. 스파르타쿠스는 근대 클럽의 형태로 20대 초반의 게이들이 급증하면서 이태원은 삽시간에 새로운 게이의 메카로 떠올랐다. 2012년 현재 이태원에는 30여 곳의 게이업소들이 성업 중이다.

18년 전부터 시작된
이태원 게이클럽

이태원은 용산미군기지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외국인이 많이 모이는 지역이었다. 그들은 한국 사람들에 비해 성소수자들에게 관대하다 보니 게이들이 자연스럽게 이태원을 찾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태원에서 오랜 기간 장사를 해왔다는 한 노점상 주인은 "트렌스젠더든 게이든 누가 지나가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며 "그럴 수도 있지,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은 것 아니겠느냐"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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