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독박 비상’막전막후

2010.12.07 09:05:00 호수 0호

흔들고 쓰리고 불렀는데 어째 쥔 패가…

‘대어’ 외환은행 인수…대금업서 ‘빅3’ 금융사로
당초 우리금융 군침서 급선회 “특혜 시비 부담”



4조7000억원짜리 ‘대어’ 외환은행을 단숨에 낚아챈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여기저기서 그를 치켜세우기 바쁘다. ‘M&A 9단’ ‘승부사’ 등 그럴싸한 닉네임은 덤이다. 대금업의 일종인 단자회사에서 시작해 지금은 국내 ‘빅3’ 금융지주사로 뛰어올랐으니 당연히 그럴 만하다. 그런데 정작 김 회장의 표정은 어둡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첩첩산중인 이유에서다.

우리금융지주와 외환은행을 놓고 저울질하던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용단을 내렸다. 당초 우리금융지주 쪽으로 마음을 굳히는 듯 했으나 과감히 포기하고 외환은행을 택했다. 그리고 인수 작업을 속전속결로 끝냈다. 외환은행 인수 추진을 발표한지 10여일 만에 뚝딱 집어 삼켰다.

하나금융지주 측은 타깃을 갑자기 바꾼 배경에 대해 “어느 쪽과 합병하는 것이 더 시너지 효과가 큰 지 여부를 검토한 결과 은행뿐 아니라 증권과 카드사까지 통합해야 하는 우리금융지주보다는 은행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외환은행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신경 쓴 부분은 특혜 시비였다. 우리금융지주 최대주주는 정부 산하기관인 예금보험공사로, 56.7%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 회장의 각별한 관계를 감안할 때 아무리 투명한 절차를 밟는다 해도 결국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10여일 만에 뚝딱
시너지·특혜 감안


이 대통령과 김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동창이다. 두 사람은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정외과) 등과 함께 고대 61학번 모임인 ‘61회’의 주요 구성원이기도 하다. 또 월급쟁이로 시작해 최고경영자(CEO) 자리까지 오른 공통점도 있다.

김 회장은 이 대통령과의 이런 인연 때문에 그동안 오해도 많이 받았다. 지난 3월 개교한 서울 유일의 자율형 사립고인 하나고등학교 특혜 의혹이 대표적이다. 김 회장이 이 대통령 자산을 출연해 설립한 청계재단의 이사를 맡을 때도 말들이 많았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일까. 그렇게 신경 썼던 특혜 꼬리를 떼었는데도 주변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하나금융지주가 축배를 들기엔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다. 특혜 의혹 때문이 아니다.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한 이유에서다.

우선 인수 능력을 의심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과연 통 큰 ‘베팅’을 감당할 수 있을지가 물음표다. 하나금융지주는 지난달 25일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갖고 있는 외환은행 지분 51.02%(3억2904만2672주)를 주당 1만4250원, 총 4조6888억원에 인수했다. 하나금융지주는 내년 3월말까지 론스타에 인수대금을 납입하기로 계약했다.

그렇다면 하나금융지주는 4조6888억원이란 천문학적인 돈을 어떻게 마련할까. 하나금융지주가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은 2조원 정도다. 몽땅 털어 넣는다고 해도 2조6888원이 남는다. 나머지는 국내외 전략적·재무적 투자자 유치, 회사채 발행,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등을 통해 충당한다는 게 하나금융지주의 복안이다. 김 회장은 외환은행 인수 자금 조달을 위한 전략적 투자자(SI) 유치를 위해 해외 출장길에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선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하나금융지주가 구체적인 자금 마련 계획을 내놓지 않아서다. 하나금융지주는 “본계약까지 세부적인 자금 조달안을 밝힐 수 없으나 자금조달엔 전혀 문제가 없다”며 자신하고 있으나, 시장은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하나금융지주가 펑크 난 지갑을 채우기 위해 외환은행의 알짜 자산을 매각하지 않겠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하나금융지주는 “터무니없다”고 일축했지만,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배(보유 자금)보다 배꼽(차입금)이 크다보니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M&A시장 관계자는 “최근 몇년간 무턱대고 대형 인수전에 나섰다가 큰 코 다친 대기업이 한둘이 아니다”라며 “하나금융지주가 무리하게 판을 키우다 수렁에 빠진 이들 기업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우건설을 인수한 대가로 유동성 위기에 몰린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그 사례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을 무려 6조4000억원에 인수하면서 부족한 자금 마련을 위해 산업은행 등 18개 금융기관에서 3조원가량을 빌렸다. 이 과정에서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2009년 11월까지 3년간 연이율 9%를 보장하는 ‘풋백옵션’을 약속했는데, 이게 화근이 돼 어렵게 삼킨 대우건설을 다시 내뱉는 동시에 사실상 그룹이 해체되는 결정타가 됐다. 무리한 조건으로 외부 투자자들을 끌어들인 것이 발목을 잡은 셈이다. 뿐만 아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인수는 오너 형제간 불화로 이어져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불운도 겪었다.

한화그룹도 아찔했던 기억이 있다. 한화그룹은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도전해 포스코, GS그룹 등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을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한화그룹은 대한생명, 갤러리아백화점, 한화리조트 등 전 계열사의 자금을 총동원해 인수 대금을 마련할 계획이었지만, 자칫 무리한 인수에 나섰다가 그룹 전체가 위험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결국 인수를 포기했다. 한화그룹은 당시 3000억원의 계약금을 날렸으나 인수를 밀어붙였다면 더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이밖에 2006년 홈에버를 인수한 이랜드, 2007년 남광토건을 인수한 대한전선, 2008년 하이마트를 인수한 유진그룹 등도 모두 비슷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돈만 해결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하나금융지주로선 당장 노조 반발이 넘어야 할 산이다.

외환은행 노조는 청와대와 금융위원회, 국회, 하나금융지주 본사 등에서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다. 노조는 “하나금융지주는 외환은행을 인수할 자금 여건이 되지 않고 인수 자금 내역도 불투명하다”며 인수를 반대하고 있다.


노조는 최근 일부 신문에 ‘하나금융 김승유 회장은 론스타 ‘먹튀’의 하수인입니까’란 제목의 광고를 실기도 했다. 노조는 이 광고에서 “하나금융에는 지금 2조원 밖에 없다. 3조원의 빚을 내서 론스타에게 5조원을 안겨주고, 나중에 그 빚은 외환은행 직원과 고객들이 갚도록 한다는 것이 김승유 회장의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국부를 긁어가고 있는 론스타만 배를 불리게 됐다”고 주장했다.

세부 자금 조달안
‘있을까, 없을까’

또 외환은행 부점장과 팀장은 물론, 부행장 등 임원급 인사들도 성명서를 통해 하나금융지주의 인수 추진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들은 ‘국익을 위해서도 금융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시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합니다’란 제목의 광고를 냈다.

외환은행 임직원으로선 하나금융지주에 인수되는 것이 자존심이 상할 만하다. 하나금융지주에 비해 외환은행 몸집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순이익을 보면 하나금융지주가 총 3063억원인 반면 외환은행은 8917억원으로 3배 가까이 많다. 올해 3분기까지 하나금융지주는 7398억원, 외환은행은 8191억원을 기록했다.

하나금융지주는 외환은행 노조를 끌어안아도 모자랄 판에, 이들을 상대로 법원에 ‘광고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노조가 더욱 흥분하는 까닭이다. 하나금융지주 관계자는 “외환은행 노조가 전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허위 주장들을 하고 있다”며 “노조의 광고행위가 지속될 경우 기업 이미지 및 영업활동에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 예상돼 법적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밝혔다.

집안 단속도 급선무다. 하나금융지주는 1998년 충청은행, 1999년 보람은행, 2002년 서울은행, 2005년 대한투자증권 등을 인수했다. 성골(하나은행) 출신들을 중심으로 여러 이질적인 집단이 모이다보니 내부 잡음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일각에선 제2의 ‘신한 사태’가 우려되는 곳으로 하나금융지주를 지목한다. 그만큼 내부에서 ‘파워 게임’ ‘파벌 싸움’ ‘권력 암투’ ‘줄대기’가 심하다는 얘기다.

특히 김 회장은 그동안 주요 직책에 외부 인사를 영입해 왔다. ‘외인’들이 주요 포스트에 속속 포진하자 불안감과 박탈감이 커진 내부 임원들은 “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고, 임원 회의에서도 세력간 충돌이 잦아 고성이 오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이 와중에 여론도 심상치 않다. 하나금융지주가 론스타의 ‘먹튀’를 도왔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것. 론스타가 외환은행에 투자한 원금은 2조1548억원. 이 가운데 4년간 8500억원의 배당금, 2007년 외환은행 지분 13.6%를 매각한 대금 1조1900억원 등 이미 98.7%를 회수한 상태다. 이번에 외환은행 지분을 하나금융지주에 넘기면서 받는 4조7000억원을 고스란히 챙기는 셈이다.

민주노동당은 “헐값에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가 본전을 뽑고도 하나금융지주에 무려 4조7000억원에 팔았다”며 “투기자본 론스타의 먹튀 행각이 하나금융지주에 의해 마침표를 찍게 됐다”고 지적했다.


론스타와 관련된 악재는 또 있다. 바로 현대건설 인수전 불똥이다. 먼저 현대건설 매각 이익에 따른 론스타의 배당 문제가 걸려 있다. 외환은행은 현대건설 지분 8.72%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금액은 5조5100억원. 이 가격대로라면 채권단은 4조7000억원 안팎의 차익을 거두게 된다. 이중 외환은행이 얻는 지분 매각 이익은 1조1000억∼1조4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김 회장은 “론스타가 챙길 수 있는 배당은 올해 말 실적까지로, 현대건설 매각은 내년에나 반영되기 때문에 현대건설 매각 이익은 하나금융지주의 몫”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시장에선 현대건설 지분 매각 이익을 배당 등의 형태로 론스타가 가져갈 수 있다는 분석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 회장 3연속 연임
“해도, 안해도 문제”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신 현대·기아차그룹의 외환은행 이탈도 골칫거리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주거래은행인 외환은행이 현대그룹과 체결한 현대건설 매각 양해각서(MOU)가 위법이라고 판단해 ‘보복성 행동’에 나섰다. 외환은행에 있던 계열사 예금 중 1조5000억원 이상을 인출했고, 상당수 임직원이 급여이체 계좌를 외환은행에서 다른 은행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급기야 거래 단절 가능성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은 물론 현대중공업그룹, KCC그룹 등 범현대가까지 ‘거래 끊기’에 가세한다면 외환은행은 적지 않은 타격을 받게 된다. 외환은행을 거머쥔 하나금융지주는 당혹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하나금융지주는 사태 추이를 지켜본다는 입장이지만, 자칫 ‘큰 손님’들을 놓칠라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김 회장은 개인적으로도 고민이 있다. 연임 여부다. 하나금융지주가 출범한 2005년 12월부터 연임을 거쳐 지금까지 회장직을 맡고 있는 김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에 끝난다. 금융권에선 외환은행 인수의 후속작업 등을 이유로 한 차례 더 연임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김 회장이 연임을 하면 2014년 3월까지 임기가 보장된다. 하지만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 김 회장은 CEO만 14년째다. 회사 안팎에서 장기집권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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