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급 건설사 ‘상생 로비’ 전말

2010.11.23 09:25:00 호수 0호

피라미 뜯어먹으려 대어들 ‘득실득실’

원·하청업체 기막힌 ‘리베이트 고리’ 적발
‘검은돈’ 윗선으로 흘러갔나…대기업 비자금?



대기업 건설사들이 하청업체로부터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씩 리베이트를 챙긴 ‘상생 로비’실태가 드러났다. 건설업계의 고질병이 또 한 번 확인된 셈이다. ‘다윗’은 쉽게 ‘골리앗’을 녹였다. 무기는 돈이다. 작은 회사가 크고 작은 여러 사업장에 꽂은 ‘검은 고리’엔 소위 A급으로 분류되는 메이저 건설사들의 코가 꿰어 있었다.

국내 내로라하는 건설사들이 하도급업체로부터 거액의 리베이트를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에 적발된 회사는 롯데건설과 대우건설, 현대산업개발, 한신공영, 화승산업 등 도급순위 50위권 내 5개 대형 건설사다. 이들 건설사에 리베이트를 제공한 업체는 구산건설로, “잘 봐 달라”는 청탁의 대가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씩 갖다 바쳤다.

부산·경남지역 관급공사 금품로비 의혹은 지난달 부산지역 전문건설업체인 구산건설 박모 사장이 회삿돈 1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면서 그 실체를 드러냈다. 앞서 구산건설의 재하청 업체들은 박 사장이 회사 자금을 원청업체들을 상대로 한 전방위 로비에 사용했다고 주장했었다. 재하청 업체들은 박 사장이 로비를 했다면 고의부도를 낸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1997년 10월 자본금 15억원으로 설립된 구산건설은 지난해 12월 부도 처리됐다.

수천만원서 수억원씩

검찰은 이들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수사에 들어갔고, 관련자 소환조사와 현장사무실 압수수색 등을 통해 박 사장이 빼돌린 돈이 관급공사 원청업체로 흘러들어간 정황을 포착했다. 부산지검 동부지청 형사3부는 박 사장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 등)로 북항대교, 지하철 4호선 등 6개 공사현장의 전·현직 현장소장과 책임자 11명, 돈을 건넨 혐의(배임증재)로 박 사장을 구속기소했다고 지난 15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원청업체 임원 11명은 하도급 시공 편의 제공 대가로 박 사장으로부터 적게는 3000만원에서 많게는 6억원씩 받아 챙겼다. 박 사장은 이들 업체들의 하청을 맡기 위해 12억원 상당의 비자금을 만들어 이들에게 전달했다.

롯데건설 현장소장 조모씨와 공무팀장 김모씨는 모두 4억9000만원을 수수했다. 롯데건설은 부산교통공사의 도시철도 4호선 326공구 건설 공사(사업비 576억800만원)와 부산 해운대구 반송로 확장 1공구 건설 공사(79억5760만원)를 수주해 건설 중이다.

대우건설 현장소장 홍모씨와 공무과장 구모씨는 공모해 1억9000만원을 뜯어냈다. 대우건설은 김해시에서 발주한 김해 후포∼수가간 도로 공사(463억8000만원)를 수주했다.

현대산업개발 현장소장 고모씨는 1억원을 받았다. 현대산업개발은 영도구 청학동과 남구 감만동을 잇는 부산시건설본부의 북항대교 건설 공사(5384억원)를 따냈다.

화승산업 현장소장 이모씨는 3000만원을 챙겼다. 화승산업은 부산시건설본부로부터 부산 기장군 정관산업단지 진입도로 건설 공사(589억2300만원)를 맡았다.

박 사장의 돈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은 한신공영이다. 돈을 받은 사람도 한두 명이 아니다. 박 사장은 ▲현장소장 이모씨(2억원) ▲전 현장소장 손모씨(1억9000만원) ▲전 현장소장 장모씨(1억3000만원) ▲관리부장 류모씨(3억8000만원) ▲전 공무팀장 백모씨(3억5000만원) ▲전 관리부장 김모씨(2억5000만원) 등에게 ‘검은돈’을 뿌렸다.

이외에 현장소장 조모씨와 공무차장 공모씨는 총 3억7000만원을 착복했다. 한신공영은 부산시건설본부의 북구 화명∼양산시간 도로건설 2공구 공사(473억5900만원)를, LH공사의 양산신도시 3-2공구 공사(394억원)를 진행 중이다.

대형건설사들은 수주한 대규모 관급공사를 원도급 공사금액의 50∼70% 수준으로 하도급 공사를 발주한 뒤 현장사무소에 하도급업체 감독권 등 공사 관련 업무 전권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공사를 진행했다. 하도급 시공사는 설계변경으로 공사대금을 올려 수익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건설사 현장소장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돈이 오갈 수밖에 없는 구조란 게 검찰의 설명이다.

돈 받고 하청 맡겨

검찰은 “공사현장 업무에 전권을 갖고 있는 원도급 건설사 현장소장은 시공내용 관리감독, 하도급 기성금 결정 등으로 하도급업체를 통제하고 있어 하도급 시공업자는 현장소장 등과의 유착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건설업계의 구조적 비리를 가지고 있다”며 “일부 현장소장은 건설사가 지급하지 않아도 될 하도급 공사대금을 하도급업체에게 지급하게 한 뒤 받아 챙겼다”고 밝혔다.


부산지역 뿐만 아니라 국내 건설업계는 검찰 수사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검찰은 박 사장의 돈이 공사를 발주·감독하는 부산시 등의 공무원들에게 흘러갔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어 이번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또 박 사장의 전방위 로비와 비슷한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상납비리 의혹이 있는 다른 공사현장과 하청업체에 대해서도 내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검찰은 현장소장 등이 제공받은 금품의 사용처를 파악하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대형 건설업체의 현장 임직원들이 돈을 개인적으로 착복했는지, 아니면 윗선에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했는지 용처와 흐름을 캐고 있다. 만약 ‘검은돈’이 윗선으로 흘러갔다면 회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조성한 비자금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검찰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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