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재벌후계자 체크 ⑩ 대한전선 설윤석

2010.11.16 10:09:29 호수 0호

‘진수성찬’ 급히 먹다 체할라


한 나라의 경제에서 대기업을 빼곤 얘기가 안 된다. 기업의 미래는 후계자에 달렸다. 결국 각 그룹의 후계자들에게 멀지 않은 대한민국 경제가 걸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 할 수 있을까. 우리 경제를 맡겨도 될까. 불안하다. <일요시사>는 연속 기획으로 경영수업 중인 ‘황태자’들을 체크해봤다. 열 번째 주인공은 대한전선그룹 설윤석씨다.

‘초고속’ 입사 6년 만에 부사장…양대 지주사 장악
 경험 부족·부당이익 논란·구조조정 ‘3대 숙제’


재계 순위(공기업 제외·10월 기준) 31위인 대한전선그룹의 오너는 양귀애 명예회장이다. 세상을 떠난 남편 대신 그룹 지휘봉을 잡고 있다. 명예회장 직함을 달고 있지만, 경영 전반을 쥔 실질적인 오너나 다름없다. 그 밑으로 경영수업이 막바지에 접어든 외아들 설윤석씨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29세에 벌써…”

그룹의 후계 상황과 관련해 ‘설윤석’하면 딱 떠오르는 연관어는 ‘초고속 승진’이다. 다른 재벌가 자녀들도 대부분 승진이 빠르나 그들보다 훨씬 빠른 편이다. 올해 29세인 설씨는 지난 2월 전무에 오른 지 3개월 만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입사로 따지면 6년 만이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설씨는 2005년 대한전선 스테인리스 사업부 마케팅팀 과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2006년 경영전략실 차장과 2007년 부장을 거쳐 2008년 상무, 지난해 10월 경영기획담당 전무로 승진했다.

설씨의 초고속 승진을 두고 회사 안팎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게 사실이다. 어린 나이와 경험 부족 등 아직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지금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자질 논란까지 불거진다.

하지만 설씨에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설씨는 당초 대학 졸업 후 미국 유학을 떠나 학업을 계속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부친 고 설원량 회장이 2004년 3월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유학일정을 접고 곧바로 대한전선에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평범한 주부로 지냈던 양 명예회장으로선 다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설씨의 초고속 승진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설씨가 그룹의 ‘황태자’로 주목받은 것도 이때부터다. 설씨는 설 회장의 주식을 물려받아 단숨에 대한전선 개인 최대주주가 됐다. 당시 상속세로 1355억원을 납부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설씨는 지난 6월 말 기준 대한전선 지분 11.44%를 보유하고 있다. 이어 그의 동생 윤성(3.84%)씨, 양 명예회장(2.16%) 등의 순이다.

다만 대한전선은 그룹의 지주사가 아니다. 그 역할을 하는 회사는 따로 있다. 대한전선보다 상위 포지션에 있는 티이씨(TEC)리딩스(구 삼양금속)다. 대한전선 지분 13.42%를 갖고 있는 티이씨리딩스는 대한전선 등을 ‘징검다리’삼아 20여 개의 계열사들을 거느리고 있어 그룹 지배구조와 후계구도의 핵으로 꼽힌다.

설씨는 이미 티이씨리딩스도 장악한 상태다. 그는 현재 티이씨리딩스 지분 53.77%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티이씨리딩스는 설씨 가족(윤성씨 36.97%·양 명예회장 9.26%)이 100% 지분을 쥔 사실상 오너일가 회사다.

1971년 설립된 뒤 1987년 대한전선그룹에 인수된 티이씨리딩스가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 역시 설 회장이 세상을 뜬 전후다. 설 회장의 대한전선 지분 일부가 티이씨리딩스에 넘어갔는데, 이는 티이씨리딩스가 지주회사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동시에 설 회장의 티이씨리딩스 지분도 자녀들에게 상속, 티이씨리딩스를 염두에 둔 후계체제를 구축했다.

문제는 티이씨리딩스의 자생력이다. 대한전선이 자사에 필요한 물량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티이씨리딩스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 이는 곧 오너일가의 배를 채우는 지원성 거래란 지적이다. 상황에 따라선 나중에 설씨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다.

티이씨리딩스의 지난해 매출은 348억2100만원. 이중 무려 347억7600만원이 대한전선과의 거래에서 발생한 매출이다. 비율로 따지면 99%가 넘는다. 티이씨리딩스의 관계사 매출 비중은 ▲2004년 99%(총매출 658억5500만원~관계사거래 653억400만원) ▲2005년 99%(805억1500만원~795억100만원) ▲2006년 98%(620억100만원~608억5600만원) ▲2007년 97%(460억5400만원~446억2900만원) ▲2008년 96%(479억3200만원~460억3900만원) 등으로 나타났다.

이보다 먼저 설씨에겐 풀어야 할 큰 숙제가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구조조정이다. 대한전선그룹은 경영악화로 유동성 마련에 분주하다. 2000년대 들어 무리하게 몸집을 불린 게 원인이다.

대한전선은 “이제 한 우물만 파던 시대는 끝났다”며 기존 전선업 중심에서 해외투자, 건설, 홈네트워크, 레저 등으로 사세를 키우기 위해 2002년 무주리조트, 2003년 트라이브랜즈(구 쌍방울·2009년 재매각), 2005년 대한테크렌 등을 잇달아 인수했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심화된 2007∼2008년에도 캐나다 밴쿠버 힐튼호텔(2010년 재매각), TEC건설(구 명지건설), 남광토건, 대경기계기술, 한국렌탈(2009년 재매각), 선운레이크밸리 골프장 등을 사들였다.

이 과정에서 ‘곳간’이 비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여기저기 ‘빚잔치’를 벌이는 처지가 됐다. 대한전선의 부채는 2005년 7713억원, 2006년 8383억원, 2007년 1조9095억원, 2008년 2조5161억원, 지난해 2조6414억원으로 매년 늘어났다. 부채비율은 2005년 말 80%대에서 지난해 말 340%대까지 높아졌다. 부채비율이 200% 이상이면 자기자본에 비해 타인자본이 2배 이상 많다는 것으로 재무적 불안정 수준으로 평가된다.

‘아버지가 그립다’

이 와중에 50년 넘게 계속된 ‘흑자 행진’도 멈췄다. 1955년 설립 이후 2008년까지 단 한 해도 적자를 내지 않았던 대한전선은 지난해 처음으로 순손실(2799억원)을 기록하는 굴욕을 당했다. 결국 그룹은 지난해 5월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했고, 꽉 막힌 ‘돈맥경화’를 풀기 위해 현금이 될 만한 자산과 지분, 계열사들을 과감하게 정리하는가 하면 본사 사옥까지 ‘급매물’로 팔아치우는 등 유동성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어려운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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