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로 망한 정치인 흑역사 추적

배꼽 아래 세치에는 인격이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배꼽 아래 세치에는 인격이 없다.’ 일본의 속담이다.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전해지는 설에 의하면 군대문화에서 기인했다고 한다. 뜻 또한 현재의 부정적 의미 대신 ‘영웅호색’과 맞닿아 있다. 마초는 응당 여자를 밝힌다는 논리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수백년이 흘렀고 공간적으론 현해탄을 건넌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속담을 몸소 실천하다 ‘오욕의 역사’를 남긴 정치인의 이름이 쌓여가고 있다.

지난 한주, 복수의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강용석 도도맘’이 실검 1위에 올랐다. 소송이 제기된 시기는 지난 1월경이었지만, 불륜설의 당사자인 ‘도도맘’ 김미나씨가 <여성중앙>과 인터뷰를 가지면서 회자되는 모습이다.

영웅호색?
“다 옛말”

김씨는 해당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죄의 뜻을 전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자신이 생각하는 불륜의 기준은 ‘자는 것’이라며 강용석 전 의원과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불륜의 아이콘’이 되어 대한민국 주부들로부터 공분을 사고 있다고 말하며, 무엇보다 자녀에게 상처를 줘서 미안하다고 전했다.

강 전 의원은 일찍이 김씨와 스캔들이 터졌지만, 각종 시사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인지도를 쌓아왔다. 그러나 지난 8월18일 <디스패치>를 통해 두 사람이 홍콩 여행을 갔다 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프로그램 하차 압박을 받게 됐다.

두 사람이 나눈 문자 메시지가 공개되면서 여론은 악화됐다. 강 전 의원은 ‘좀 고난도 없느냐. 더 야한 거’와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김씨에게 보내 오해의 소지를 남겼다. 지난달 28일 MBN <생방송 뉴스&이슈>에 출연한 김씨는 김 전 의원과 주고받은 내용에 대해 “명백하게 짜깁기 된 것”이라며 “악의적인 편집으로 왜곡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결국 강 전 의원은 맡고 있던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했고 지금은 변호사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 전 의원은 지난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소속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으나,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여대생에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며 “OO여대 이상은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못 하더라”고 말해 제명된 전적이 있다.

최근 심학봉 전 의원도 성추문으로 홍역을 치렀다. 심 전 의원은 지난달 12일 자진사퇴 의사를 밝히고 금배지를 반납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심 전 의원이 보험설계사 A씨를 알게 된 건 지난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북 지역의 한 인터넷언론사 간부를 통해 알게 된 두 사람은 데면데면 지내다가 지난 6월경 대구의 한 횟집에서 재회했고, 이후 관계는 급진전됐다.

그로부터 약 한 달여가 지난 7월24일, 대구지방경찰청에 심 전 의원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A씨의 신고가 접수된다. 내막인 즉, 지난 7월12일 대구의 한 호텔에 머물던 심 전 의원은 A씨를 불러 성관계를 맺고 A씨의 가방에 30만원이 든 돈봉투를 넣는다. 봉투를 본 A씨는 수치심을 느꼈고, 관계 이후 심 전 의원과 연락이 잘 닿지 않는 것에 기분이 상해 신고했다.

강용석-제명·고소
심학봉-의원직 상실

경찰과 검찰 모두 심 전 의원의 성폭행 혐의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지난 8월3일 경찰은 심 전 의원을 소환해 조사한 뒤 불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대구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서영민)는 지난달 20일 혐의 없음으로 결론냈다. 피해자 A씨가 “강제성이 없었다”고 진술을 번복한 점과 폭행·협박 등 강압이 없었던 점이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A씨가 신고한 지 이틀이 지난 7월26일 심 의원으로부터 2000만원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실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 측은 A씨가 받은 금액에 대가성이 없다고 봤다.

돈으로 입막음하려는 행위는 이전에도 있었다. 서장원 전 포천시장은 여성을 성추행한 후 돈을 주고 무마하려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기소됐으며, 지난 6월9일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서 전 시장은 지난 2014년 9월경 자신의 사무실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50대 여성을 강제 추행했다. 이 같은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자 서 전 시장은 중개인을 통해 1억8000만원(9000만원 차용증 포함)을 건네며 거짓진술을 요구했다. 서 전 시장에게 실형을 내린 재판부는 또한 피해여성에 대해서도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돈을 받고 거짓진술을 했기 때문이다.


돌발행동으로 실추된 사람도 있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강원도 원주에 있는 모 골프장에서 일하는 캐디를 성추행한 사실이 알려졌는데, 당시 박 전 의장의 해명이 더욱 논란을 키운 바 있다.

지난 2014년 9월경 강원 원주경찰서에는 하나의 신고가 접수됐다. 피해여성은 라운드 도중 박 전 의장이 손바닥과 손가락으로 자신의 손목을 잡고 엉덩이를 치거나 가슴을 찔렀다고 진술했다.

‘강용석 도도맘’ 실검 1위, 흑역사 추가
권력 이면에 항상 존재했던 그것 ‘여자’

박 전 의장은 즉각 반박했다. 언론에 알려지자 그는 “손녀 같아서 손가락 끝으로 가슴 한 번 툭 찔렀다”며 “그것을 ‘만졌다’라고 표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진정성 없는 사과라며 반발했고 사태는 확산됐다.

이후 박 전 의장은 지난 2월경 재판부를 향해 “대단히 죄송하고 깊이 반성한다. 관용을 바란다”고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박 전 의장에게 벌금 300만원을 구형했고, 법원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해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013년 5월경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기간 중 인턴 여대생을 성추행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당시 정가에서는 윤 전 대변인으로 인해 대통령의 방미 성과가 퇴색됐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의 첫 정상외교 일정이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컸다.

워싱턴DC 경찰국의 기록에 따르면, 사건 당일 경찰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를 건 20대 초반의 여성은 “56세의 남성이 허락 없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고 신고했다. 워싱턴DC 내 한 호텔에서 묵고 있던 윤 전 대변인은 신고를 한 여성을 포함해 지인들과 호텔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윤 전 대변인은 다음날 새벽 추행한 여성을 자신의 방으로 불렀고, 알몸 상태로 맞이했다는 것이다. 결국 윤 전 대변인은 책임을 지고 경질됐다.

김형태 전 의원은 제수(친동생의 부인)를 성폭행하려고 해 파문을 불러왔다. 지난 2012년 4월경 김 전 의원의 남동생 부인은 기자회견을 열어 “1995년 남편이 암으로 사망한 후 두 아들과 부산에서 살았는데, 2002년 5월경 아들의 장학금 문제를 의논하자고 불렀다”며 “오피스텔에서 만났는데 (시아주버니가) 성폭행을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서장원-돈으로 무마
윤창중-알몸으로 대기

해당 기자회견 후 김 전 의원은 “10년 전 일을 언급하고 있다”며 강경대응을 예고했으나, 제수의 폭로 열흘 뒤 “(박근혜 전 대표에게) 누가 되고 싶지 않다”며 새누리당을 자진해서 탈당했다.

여기자를 성추행했다는 신고로 곤욕을 치른 사람도 있다. 지난 2006년 2월경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이었던 최연희 전 의원은 언론사 기자들과 함께 노래방엘 갔는데, 이때 모 일간지 여기자를 뒤에서 껴안아 성추행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2008년 4월경에는 정몽준 전 의원이 모 방송국 여기자의 볼을 만져 문제가 됐다. 지난 2013년 8월경에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연찬회 자리에서 한 일간지 여기자의 허벅지를 만지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김 대표는 <미디어오늘>을 통해 “술에 취해 일어나는 도중에 무릎을 짚었다”며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밝혔다.

발언이 도마 위에 오른 경우도 있다. 지난 2003년 12월경 이경재 전 의원은 한 동료 여성의원에게 “남의 집 여자가 느닷없이 우리 집 안방에 와서 드러누워 있으면 주물러 달라는 얘기”라고 말해 국회의장으로부터 시정권고를 받았다. 송영근 전 의원은 군내 성폭행 피해여성을 ‘하사 아가씨’라고 지칭하는가 하면, 성폭행의 원인을 ‘외박을 못나가서’라고 진단해 문제가 됐다.
 

단순히 개인의 일탈을 넘어서 대한민국을 뒤흔든 사건도 있었다. 지난 1996년 당시 백두사업 응찰업체의 로비스트로 활동한 린다김과 이양호 전 국방장관의 관계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대한민국 뒤흔든 ‘섹스게이트’, 지금은?
역대 VIP도 예외 아냐, ‘혼외자·아방궁’

린다김은 지난 1995~1997년까지 군 내부인사로부터 군사기밀을 빼내는가 하면 백두사업 총괄 책임자에게 1000만원을 제공하는 등의 혐의를 받았다. 더군다나 이 전 장관 등 다수의 정·관계 인사들과 서로 연애편지를 교환하는 등 부적절한 로비를 한 의혹에 휩싸였다. 결국 린다김은 지난 2004년 불구속기소됐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소위 ‘린다김 사건’이다.

‘신정아 스캔들’도 있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학력위조로 불거진 해당 사건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등 고위급 인사들이 연루되면서 판이 커졌다. 스캔들은 ‘권력형 게이트’로 변질됐다. 핵심 쟁점은 ▲변 전 실장과의 관계 ▲정 전 총장의 교수직 추천 여부 ▲누드사진 진위 여부 ▲예일대 학위였다.


결국 신씨는 학력 위조를 통해 동국대 교수로 활동하고 미술관 공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지난 2007년 10월경 구속기소된 후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다. 이후 신씨는 지난 2011년 자서전 <4001>을 출간, 당사자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그 동안의 설들에 대한 본인의 입장을 전했다.

역대 대통령도 성추문에 자유롭지 못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혼외자 사건이 터지면서 논란이 됐다. 김모씨는 자신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친자라는 것을 확인해달라’며 낸 인지청구소송에서 2011년 2월경 원고 승소판결을 받았다. 서울가정법원은 “김씨를 김 전 대통령의 친생자로 인지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 또한 혼외자가 있었단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SBS와 <오마이뉴스>는 지난 2005년 4월경 김 전 대통령이 제 7대 국회의원이던 시절, 여비서였던 김모씨와의 사이에 딸이 있었다고 전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소식은 지난 2005년 12월경 <신동아>를 통해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변론을 맡았던 안동일 변호사는 해당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궁정동 안가를 찾아오는 빈도가 높았고,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며 “상대하는 여자로는 영화배우와 탤런트, 연극배우, 모델 등 연예계 종사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그 숫자가 200명을 넘었다고 김 전 부장이 말하더라”고 전했다. 호사가들은 언급된 궁정동을 과거 진시황이 세운 ‘아방궁’에 비유했다.

린다김·신정아
권력형 게이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중은 위정자에게 도덕성을 강조해왔다. 특히 성에 대한 기준은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기본적인 덕목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는 잇따른 추문이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실정이다. 바야흐로 가장 기본적인 잣대가 가장 높은 수준의 잣대로 변모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해소하는 첫걸음은 이를 바로 잡는 시정에서 출발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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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