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로 망한 정치인 흑역사 추적

배꼽 아래 세치에는 인격이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배꼽 아래 세치에는 인격이 없다.’ 일본의 속담이다.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전해지는 설에 의하면 군대문화에서 기인했다고 한다. 뜻 또한 현재의 부정적 의미 대신 ‘영웅호색’과 맞닿아 있다. 마초는 응당 여자를 밝힌다는 논리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수백년이 흘렀고 공간적으론 현해탄을 건넌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속담을 몸소 실천하다 ‘오욕의 역사’를 남긴 정치인의 이름이 쌓여가고 있다.

지난 한주, 복수의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강용석 도도맘’이 실검 1위에 올랐다. 소송이 제기된 시기는 지난 1월경이었지만, 불륜설의 당사자인 ‘도도맘’ 김미나씨가 <여성중앙>과 인터뷰를 가지면서 회자되는 모습이다.

영웅호색?
“다 옛말”

김씨는 해당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죄의 뜻을 전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자신이 생각하는 불륜의 기준은 ‘자는 것’이라며 강용석 전 의원과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불륜의 아이콘’이 되어 대한민국 주부들로부터 공분을 사고 있다고 말하며, 무엇보다 자녀에게 상처를 줘서 미안하다고 전했다.

강 전 의원은 일찍이 김씨와 스캔들이 터졌지만, 각종 시사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인지도를 쌓아왔다. 그러나 지난 8월18일 <디스패치>를 통해 두 사람이 홍콩 여행을 갔다 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프로그램 하차 압박을 받게 됐다.

두 사람이 나눈 문자 메시지가 공개되면서 여론은 악화됐다. 강 전 의원은 ‘좀 고난도 없느냐. 더 야한 거’와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김씨에게 보내 오해의 소지를 남겼다. 지난달 28일 MBN <생방송 뉴스&이슈>에 출연한 김씨는 김 전 의원과 주고받은 내용에 대해 “명백하게 짜깁기 된 것”이라며 “악의적인 편집으로 왜곡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결국 강 전 의원은 맡고 있던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했고 지금은 변호사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 전 의원은 지난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소속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으나,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여대생에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며 “OO여대 이상은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못 하더라”고 말해 제명된 전적이 있다.

최근 심학봉 전 의원도 성추문으로 홍역을 치렀다. 심 전 의원은 지난달 12일 자진사퇴 의사를 밝히고 금배지를 반납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심 전 의원이 보험설계사 A씨를 알게 된 건 지난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북 지역의 한 인터넷언론사 간부를 통해 알게 된 두 사람은 데면데면 지내다가 지난 6월경 대구의 한 횟집에서 재회했고, 이후 관계는 급진전됐다.

그로부터 약 한 달여가 지난 7월24일, 대구지방경찰청에 심 전 의원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A씨의 신고가 접수된다. 내막인 즉, 지난 7월12일 대구의 한 호텔에 머물던 심 전 의원은 A씨를 불러 성관계를 맺고 A씨의 가방에 30만원이 든 돈봉투를 넣는다. 봉투를 본 A씨는 수치심을 느꼈고, 관계 이후 심 전 의원과 연락이 잘 닿지 않는 것에 기분이 상해 신고했다.

강용석-제명·고소
심학봉-의원직 상실

경찰과 검찰 모두 심 전 의원의 성폭행 혐의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지난 8월3일 경찰은 심 전 의원을 소환해 조사한 뒤 불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대구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서영민)는 지난달 20일 혐의 없음으로 결론냈다. 피해자 A씨가 “강제성이 없었다”고 진술을 번복한 점과 폭행·협박 등 강압이 없었던 점이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A씨가 신고한 지 이틀이 지난 7월26일 심 의원으로부터 2000만원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실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 측은 A씨가 받은 금액에 대가성이 없다고 봤다.

돈으로 입막음하려는 행위는 이전에도 있었다. 서장원 전 포천시장은 여성을 성추행한 후 돈을 주고 무마하려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기소됐으며, 지난 6월9일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서 전 시장은 지난 2014년 9월경 자신의 사무실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50대 여성을 강제 추행했다. 이 같은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자 서 전 시장은 중개인을 통해 1억8000만원(9000만원 차용증 포함)을 건네며 거짓진술을 요구했다. 서 전 시장에게 실형을 내린 재판부는 또한 피해여성에 대해서도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돈을 받고 거짓진술을 했기 때문이다.


돌발행동으로 실추된 사람도 있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강원도 원주에 있는 모 골프장에서 일하는 캐디를 성추행한 사실이 알려졌는데, 당시 박 전 의장의 해명이 더욱 논란을 키운 바 있다.

지난 2014년 9월경 강원 원주경찰서에는 하나의 신고가 접수됐다. 피해여성은 라운드 도중 박 전 의장이 손바닥과 손가락으로 자신의 손목을 잡고 엉덩이를 치거나 가슴을 찔렀다고 진술했다.

‘강용석 도도맘’ 실검 1위, 흑역사 추가
권력 이면에 항상 존재했던 그것 ‘여자’

박 전 의장은 즉각 반박했다. 언론에 알려지자 그는 “손녀 같아서 손가락 끝으로 가슴 한 번 툭 찔렀다”며 “그것을 ‘만졌다’라고 표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진정성 없는 사과라며 반발했고 사태는 확산됐다.

이후 박 전 의장은 지난 2월경 재판부를 향해 “대단히 죄송하고 깊이 반성한다. 관용을 바란다”고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박 전 의장에게 벌금 300만원을 구형했고, 법원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해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013년 5월경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기간 중 인턴 여대생을 성추행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당시 정가에서는 윤 전 대변인으로 인해 대통령의 방미 성과가 퇴색됐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의 첫 정상외교 일정이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컸다.

워싱턴DC 경찰국의 기록에 따르면, 사건 당일 경찰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를 건 20대 초반의 여성은 “56세의 남성이 허락 없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고 신고했다. 워싱턴DC 내 한 호텔에서 묵고 있던 윤 전 대변인은 신고를 한 여성을 포함해 지인들과 호텔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윤 전 대변인은 다음날 새벽 추행한 여성을 자신의 방으로 불렀고, 알몸 상태로 맞이했다는 것이다. 결국 윤 전 대변인은 책임을 지고 경질됐다.

김형태 전 의원은 제수(친동생의 부인)를 성폭행하려고 해 파문을 불러왔다. 지난 2012년 4월경 김 전 의원의 남동생 부인은 기자회견을 열어 “1995년 남편이 암으로 사망한 후 두 아들과 부산에서 살았는데, 2002년 5월경 아들의 장학금 문제를 의논하자고 불렀다”며 “오피스텔에서 만났는데 (시아주버니가) 성폭행을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서장원-돈으로 무마
윤창중-알몸으로 대기

해당 기자회견 후 김 전 의원은 “10년 전 일을 언급하고 있다”며 강경대응을 예고했으나, 제수의 폭로 열흘 뒤 “(박근혜 전 대표에게) 누가 되고 싶지 않다”며 새누리당을 자진해서 탈당했다.

여기자를 성추행했다는 신고로 곤욕을 치른 사람도 있다. 지난 2006년 2월경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이었던 최연희 전 의원은 언론사 기자들과 함께 노래방엘 갔는데, 이때 모 일간지 여기자를 뒤에서 껴안아 성추행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2008년 4월경에는 정몽준 전 의원이 모 방송국 여기자의 볼을 만져 문제가 됐다. 지난 2013년 8월경에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연찬회 자리에서 한 일간지 여기자의 허벅지를 만지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김 대표는 <미디어오늘>을 통해 “술에 취해 일어나는 도중에 무릎을 짚었다”며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밝혔다.

발언이 도마 위에 오른 경우도 있다. 지난 2003년 12월경 이경재 전 의원은 한 동료 여성의원에게 “남의 집 여자가 느닷없이 우리 집 안방에 와서 드러누워 있으면 주물러 달라는 얘기”라고 말해 국회의장으로부터 시정권고를 받았다. 송영근 전 의원은 군내 성폭행 피해여성을 ‘하사 아가씨’라고 지칭하는가 하면, 성폭행의 원인을 ‘외박을 못나가서’라고 진단해 문제가 됐다.
 

단순히 개인의 일탈을 넘어서 대한민국을 뒤흔든 사건도 있었다. 지난 1996년 당시 백두사업 응찰업체의 로비스트로 활동한 린다김과 이양호 전 국방장관의 관계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대한민국 뒤흔든 ‘섹스게이트’, 지금은?
역대 VIP도 예외 아냐, ‘혼외자·아방궁’

린다김은 지난 1995~1997년까지 군 내부인사로부터 군사기밀을 빼내는가 하면 백두사업 총괄 책임자에게 1000만원을 제공하는 등의 혐의를 받았다. 더군다나 이 전 장관 등 다수의 정·관계 인사들과 서로 연애편지를 교환하는 등 부적절한 로비를 한 의혹에 휩싸였다. 결국 린다김은 지난 2004년 불구속기소됐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소위 ‘린다김 사건’이다.

‘신정아 스캔들’도 있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학력위조로 불거진 해당 사건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등 고위급 인사들이 연루되면서 판이 커졌다. 스캔들은 ‘권력형 게이트’로 변질됐다. 핵심 쟁점은 ▲변 전 실장과의 관계 ▲정 전 총장의 교수직 추천 여부 ▲누드사진 진위 여부 ▲예일대 학위였다.


결국 신씨는 학력 위조를 통해 동국대 교수로 활동하고 미술관 공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지난 2007년 10월경 구속기소된 후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다. 이후 신씨는 지난 2011년 자서전 <4001>을 출간, 당사자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그 동안의 설들에 대한 본인의 입장을 전했다.

역대 대통령도 성추문에 자유롭지 못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혼외자 사건이 터지면서 논란이 됐다. 김모씨는 자신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친자라는 것을 확인해달라’며 낸 인지청구소송에서 2011년 2월경 원고 승소판결을 받았다. 서울가정법원은 “김씨를 김 전 대통령의 친생자로 인지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 또한 혼외자가 있었단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SBS와 <오마이뉴스>는 지난 2005년 4월경 김 전 대통령이 제 7대 국회의원이던 시절, 여비서였던 김모씨와의 사이에 딸이 있었다고 전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소식은 지난 2005년 12월경 <신동아>를 통해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변론을 맡았던 안동일 변호사는 해당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궁정동 안가를 찾아오는 빈도가 높았고,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며 “상대하는 여자로는 영화배우와 탤런트, 연극배우, 모델 등 연예계 종사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그 숫자가 200명을 넘었다고 김 전 부장이 말하더라”고 전했다. 호사가들은 언급된 궁정동을 과거 진시황이 세운 ‘아방궁’에 비유했다.

린다김·신정아
권력형 게이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중은 위정자에게 도덕성을 강조해왔다. 특히 성에 대한 기준은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기본적인 덕목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는 잇따른 추문이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실정이다. 바야흐로 가장 기본적인 잣대가 가장 높은 수준의 잣대로 변모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해소하는 첫걸음은 이를 바로 잡는 시정에서 출발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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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