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억 ‘이북5도지사’를 아십니까?

남한 대통령이 북한 도지사 임명?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청와대 뒤쪽 구기동 언덕 이북5도청에 이북도지사 5명이 상주하고 있다. 이들은 차관급 대우를 받으며 도지사 타이틀을 갖고 있다. 엄밀히 말해 우리나라에는 9명의 도지사에 이북5도지사를 더해 총 14명의 도지사가 존재한다. 조금은 생소한 이북5도청과 이북5도지사의 실체를 알아봤다.

 
우리나라에는 총 9명의 도지사가 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최문순 강원도지사,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시종 충북도지사, 이낙연 전남도지사, 송하진 전북도지사, 홍준표 경남도지사, 김관용 경북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이다. 모두 선출직 공직자다. 그런데 이 9명 외에도 5명의 도지사가 더 있다. 박연용 황해도지사, 백남진 평안남도지사, 백구섭 평안북도지사, 황덕호 함경남도지사, 박기정 함경북도지사 등이다. 이북5도지사는 행정자치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들은 청와대 뒤쪽 구기동 이북5도청 청사에서 차관급 대우를 받고 있다.

도민회서 출발
행자부서 관리
 
박연용 황해도지사는 2011년 12월6일 임명됐다. 박 도지사는 해군사관학교 18기 출신으로 대구함(구축함) 함장, 해군 군수사령관, 국방과학연구소(ADD) 부소장, 황해도 중앙도민회 부회장, 황해도 성우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출생지는 황해도 벽성군이다.
 
백남진 평안남도지사(현 이북5도위원장)는 2013년 9월17일 임명됐다. 백 도지사는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출신으로 한국법제연구원 원장, 평남도민회 상임고문, 이북5도위원회 행정자문위원,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출생지는 평안남도 강동군이다.
 

백구섭 평안북도지사는 2013년 9월17일 임명됐다. 백 도지사는 원주 영서고 출신으로 일천만이산가족재회 추진위원회 부위원장, 대한민국 건국회 자문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경기협의회 위원, 평안북도 행정자문위원 부위원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이북5도지역회의 부의장 등을 역임했다. 출생지는 평안북도 태천군이다.
 
황덕호 함경남도지사는 2011년 12월6일 임명됐다. 황 도지사는 숭의여자대학교 학장, 송호대학교 학장, (사)한국상록회 중앙회장, 한양대학교 ROTC 총동문회장, 대한민국 ROTC 예비역 기독장로연합회 회장, 서울중앙 YMCA이사, (사)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출생지는 함경남도 흥남시다. 영화 <국제시장>에 나온 흥남철수 배경지다.

9명 도지사 외에도 5명 지사 존재
이북출신 정·재계 인사들로 구성
 
박기정 함경북도지사는 2013년9월17일 임명됐다. 박 도지사는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으로 동아일보 정치부장, 편집국장, 동아문화센터 사장, 고려대 언론대학원 초청교수, 한국언론재단 이사장, 전남일보 사장, 한국디지털뉴스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출생지는 함경북도 청진시다.
 
이북5도지사들의 이력은 제각각이지만 이들 모두 이북에서 태어났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에게 정해진 임기는 없다. 이북5도위원장의 경우에만 윤번제로 도지사 가운데 1명이 1년간 위원장직을 맡는다. 현재 이북5도위원장은 백남진 평안남도지사다. 이북5도지사는 차관급 별정직 공직자로 2013년 기준으로 1년에 1억660만5000만원을 받았다. 여기에 각 도지사는 비서, 운전기사, 관용차 등을 두고 있다.
 

도지사뿐만 아니라 평양시장 등 각 동장도 존재한다. 2013년 기준으로 명예 시장·군수는 92명, 명예 시장·군수와 명예 읍·면·동장은 911명이다. 시장과 군수는 월 27만원, 읍·면·동장은 월 12만원의 수당을 받는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63세다. 임기는 3년이지만 두 차례 연임이 가능하다. 이북5도청의 행정 조직은 관할 지역을 실효 지배하는 북한의 행정 구역이 아니라 1945년 광복 당시의 행정 구역을 사용하고 있다. 서울 외에도 15개소에 시·도사무소를 두고 있다.
 
주요 업무는
이북도민 지원
 

이북5도청이 공개한 업무계획서에 따르면 2015년도 예산은 85억4600만원이다. 이중 인건비와 운영비가 64억원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사업 예산은 북한이탈주민 지원이나 이북도민 행사지원 사업에 집중돼 있다. 이북도민 체육대회와 도민단체 지원 등에 10억여원, 북한이탈주민지원 사업에 6억여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북5도지사들은 수천만원의 업무추진비를 쓸 수 있다. 올해 1∼2월 도지사별로 ▲위원장 608만원 ▲평남도지사 1009만원 ▲평북도지사 1752만원 ▲함경남도지사 128만원 ▲함경북도지사 82만원 ▲황해도지사 545만원을 사용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에 따르면 2012년 이북5개도지사와 위원장이 집행한 업무추진비는 1억2800여만원이다. 2013년에는 1억4000여만원이다. 5명의 도지사가 각각 2000만원에서 3000만원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다.
 
세부 항목을 들여다보면 업무추진비의 대부분이 식사비로 지출되고 있었다. 그 밖에는 기념품 구입과 화환 구입 등이 뒤를 이었다. 2012년에는 업무추진비를 현금으로 사용하고 영수증을 누락시켜 지적을 받기도 했다.
 
지난 11일 <일요시사>는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위치한 이북5도청을 찾았다. 청사 입구에는 ‘함께하는 이북도민 다가서는 평화통일’이라는 문구가 걸려있다. 청사는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다. 지하 1층에는 식당, 주차장 등이 있다. 1층에는 이북5도청사무국, 정보화교육장, 이산가족정보종합센터, 북한이탈주민지원팀, 북한관전시실, 새마을이북5도지부, 체력단련실, 유격군전우회 등이 있다. 2층에는 이북5도지사실과 각 지역 국장실, 회의실 등이 있다. 3층과 4층에는 지역별 도민회와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등이 자리하고 있다. 5층에는 각종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대강당, 중강당, 소강당이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일반적인 청사와 달리 건조하다.
 
 
이북5도청은 격월간지 <이북5도소식>을 발행하고 있다. 4면의 신문을 통해 이북5도위원회 주요현안, 전국 시·도사무소 소식, 해외이북도민회 소식 등을 전하고 있다. 이북5도청의 업무는 이북도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북도민을 위해 존재하는 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북5도청 공보실 관계자는 “도청의 주요업무는 이북도민 관련 행사 지원”이라며 “큰 행사가 1년에 5개 정도 잡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외에 별다른 업무가 없어 일종의 친목회로 바라보는 시각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세대가 교체되면서 결속력이 예전과 같지 않다고 전해진다. 정권의 성격에 따라 입지가 달라지는 것도 고민이다.

평양시장 등
군수도 존재
 
이북5도청을 만든 이북5도위원회의 뿌리는 민간단체인 이북5도민회다.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이 이북5도지사를 임명하고 5월23일 이북5도청이 문을 열면서 공공기관으로 거듭났다. 이북5도청 설립근거는 ‘이북5도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있다. 수복되지 않은 이북5도의 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를 규정한 법률이다.
 
1962년 제정된 이후 64년 5월 도지사의 임명·지위에 관한 규정이 개정됐다. 이북5도 도청의 임시 위치, 도지사, 관장 사무, 행정기구, 이북5도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북5도란 1945년 8월15일 현재 행정구역상의 도로서, 아직 수복되지 않은 황해도, 평안남도, 평안북도, 함경남도, 함경북도를 말한다. 이북5도에 별정직인 도지사를 두는데, 도지사는 안전행정부장관의 제청으로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북5도청이 관장하는 업무는 ▲이북 5도의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 각 분야에 걸친 정보의 수집·분석과 이북5도를 수복할 경우에 실시할 제반정책의 연구 ▲반공사상의 고취, 이북에 대한 국시선전과 선무공작의 계획실시, 남하피난민에 대한 사상선도 ▲남하피난민의 실태조사 및 직업보도와 정착사업조성 ▲가호적을 취적하는 경우의 원적지 재적확인 ▲남하피난민단체의 지도 등이다.
 
구기동 청사 상주…차관급 대우

고액 연봉에 비서, 관용차 지원
 
이밖에도 이북5도 사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공동처리하기 위하여 필요할 때에는 각령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북5도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문 7조와 부칙으로 구성돼 있다.
 
 
이북5도위원회가 상주하는 구기동 청사는 1993년에 완공됐다. 이북5도청사에는 사연이 있다. 이북5도민중앙연합회가 13대 대선 당시 노태우 후보를 조직적으로 지원해줬고 노 후보는 대통령이 된 뒤 이북5도청사 건립에 힘썼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노 전 대통령 재임 5년 동안 이북출신 국무총리는 강연훈(평북 창성), 정원식(황해 재령), 현승종(평남 강서) 등 3명이나 됐다.
 
이후 이북5도민중앙연합회는 1997년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지만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면서 조직이 존폐 기로에 놓였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김 전 대통령은 유화책을 펼쳐 이북5도민중앙연합회에 정기적인 지원금을 지급했다.
 
이후 이북5도민중앙연합회 등 관련 단체는 청사에 지내면서 임대료를 내지 않아 특혜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행정자치부는 2005년 법을 개정해 “이북5도민 관련 단체에 대하여 이북5도위원회에서 관리하는 재산을 무상으로 사용하게 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사실상 면죄부를 준 셈이다. 이북5도청을 지원하는 관행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정권의 성격에 따라 입지가 달라진다지만 정권과 무관하게 장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과거 북한 관영방송인 <조선중앙방송>은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박완순, 김만수, 안휘정 당 중앙위원을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충남도지사에 각각 임명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김 제1비서한테서 직접 임명장을 받은 이들은 1945년 8월15일 기준으로 아직 수복하지 못한 공화국 남반부 이남9도를 담당, 통일과 동시에 현지 행정을 담당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북한도 마찬가지
이남도지사 운영
 
방송은 ‘이남9도에 대한 국토관념을 명확히 하고 언젠가는 기필코 달성고야 말 실지회복에 대한 통일 의지를 표명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허구’라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앞서의 이북5도청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에도 남한도청과 도지사 등이 존재한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미니인터뷰] 백남진 평안남도지사 이북5도위원장
“이북5도청 몰랐다고? 거 참 이상하네∼”
 
평안남도 강동군 출신인 백남진 평안남도지사는 오랜 공직생활을 마치고 이북5도청에 입성했다. 그는 이북도민 관련 행사에 빠지는 일이 없다. 지난 12일에는 서울 종로구 나인트리컨벤션에서 열린 국외 이북도민 고국방문단 환영만찬에서 인사말을 전하며 언론에 얼굴을 비추기도 했다. 다음은 백 도지사와의 일문일답.
 
-이북5도청을 생소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6·25전쟁 전부터 이북에서 월남해 온 사람들이 500만 명 정도다. 고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이북5도청이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몰랐다는 게 이상한 거다. 우리 헌법 4조에 영토조항이 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다만 지금은 도적이 산을 점령하고 있어 우리가 통치를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한반도 전체는 우리 땅이다. 
 
-이북5도청의 주요업무는 무엇인가.
▲이북5도민들을 관리한다. 이북도민 인증도 우리가 해준다. 그리고 대통령배 이북도민 체육대회 등 도민 관련 행사 및 단체를 지원하고 감독한다. 이북5도청은 도민들에게 고향이나 다름없다. 도민들에게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500만 이북 사람들 위한 안식처”
 
-반공안보교육 등도 진행하나.
▲강명도 교수(탈북·경민대 북한학) 등 탈북민 교수들을 불러 강의를 하기도 한다.
 
-이북도민회가 도청 위에 있다는 말도 나온다.
▲어디가 세다고 할 문제가 아니다. 도민회는 어디까지나 민간단체다.
 
-이북5도청을 두고 예산 낭비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에 대해 무심한 사람들이다. 건국초기부터 있던 조직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 때 현재 청사로 옮겼다. 그 전에는 다른 청사 한 층을 빌리는 식으로 셋방살이를 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린다.
▲경제는 세계를 향해 달리고 있는데 정치는 엉망이다. 안보 현실도 참으로 안타깝다. 신념이 좌 쪽으로도 우 쪽으로도 너무 치우치면 안 된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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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칫상 오를 그 밥에 그 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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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압도적인 기세를 앞세워 쟁점 법안들을 한순간에 처리하려고 한다. 수많은 위험과 과제를 풀어야 하는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엔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주요 후보 4명이 출마할 예정이다. 약점도 4인 4색이다.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다음 달 19일 충북 청주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국민의힘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임기 만료로 물러난 이후 주목받았던 유력 당권주자는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한동훈 전 대표 ▲안철수 의원 ▲나경원 의원 등 4명이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 좌장으로 알려진 6선 조경태 의원과 장성민 경기 안산갑 당협위원장도 출마를 선언했다. 돌고 돌아 4파전 예고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에겐 매우 어려운 숙제들이 수북하게 쌓여 기다리고 있다. 이재명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새 정부 출범 직후의 기세와 압도적인 의석수를 토대로 ▲노란봉투법 ▲방송 3법 ▲농업 4법 ▲상법 추가 개정안 등 쟁점 법안을 이달 임시국회에서 서둘러 처리할 예정이다. 아울러 지난달 11일엔 검찰을 완전히 폐지한 후 기존 권한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옮기는 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의 의석수는 107석에 불과해서 실질적으로 해당 법안을 막을 힘이 없다. 또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민주당 당 대표 유력 후보 중 1명인 박찬대 전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국민의힘을 겨냥해 “내란범을 배출한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끊는다”는 내용이 담긴 법안을 발의했다. 이를 놓고, 박 전 원내대표는 “아직도 반성 없이 내란을 옹호하는 정당에 국민 혈세가 투입돼 내란을 옹호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내란 종식에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정당해산심판 청구 및 인용 가능성을 피부로 느끼도록 위협하면서 자금줄을 끊는 조치라고 해석할 수 있다. 김건희 특검팀은 같은 날 지난 2022년 재보궐선거 공천 개입 의혹을 받는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의 자택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특검팀은 지난 7일엔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을 받는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의 출국을 금지했다. 특검의 수사 상황에 따라 ‘줄초상’이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이 승부수로 제시했다가 좌초된 5대 개혁안에 담긴 국민의힘의 체질 개선 문제도 새 당 대표의 골머리를 썩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 친윤(친 윤석열)계는 5대 개혁안을 좌초시키면서 친윤계 일원인 송언석 의원을 원내대표로 당선시키는 등 여전한 힘을 드러냈다. 5대 개혁안 중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 무효화 추진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에 대한 당무감사는 국민의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안건이었다. 신임 당 대표가 이를 완전히 무시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숙제는 내년 6월 진행될 지방선거다. 국민의힘이 승리할 가능성은 벌써 낮게 진단되고 있다. 실제로 패배하면, 다음 달 선출되는 당 대표는 이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쓰고 사퇴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많은 숙제와 뻔한 죽음이 예상되는 ‘독이 든 성배’라고 할 수 있다.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4명은 대권주자급 위상을 가진 정치인들로 이들 모두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다. 앞으로 국민의힘은 어려운 숙제를 잔뜩 안고,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새 정부와 거대 여당을 상대해야 한다. 그래서 대권주자급 위상을 가진 대표가 절실히 필요하다. 전대 다가오는데 또 같은 얼굴들 대표 유력 주자 약점 들춰보니… 하지만 후보 4명은 각자 결함과 한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새 지도부가 구성됐다고 해서 저 많은 과제가 술술 풀릴 가능성은 매우 작다. 국민의힘 대선후보였던 김 전 장관은 지난 4일 서울희망포럼 강연에서 “이재명 대통령에 맞서 내가 싸우겠다”며 “국민이나 당이 위축될 때 침묵하지 않고 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사실상의 당 대표 출마 선언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매개로 김 전 비대위원장을 지명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이 시도했던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에 대한 당무감사는 김 전 장관의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이를 회의적으로 생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전 장관의 측근인 국민의힘 김재원 전 대선후보 비서실장은 지난달 13일 YTN <뉴스파이팅>에 출연해 “국민의힘은 이재명정부의 국정 전횡을 전혀 제어하지 못하는 등 야당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며 “당무감사가 지금 당장 시급한 일인지 회의적”이란 견해를 밝혔다. 김 전 장관이 몰두하는 것은 ‘빅텐트’다. 김 전 장관이 사실상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면서 제시한 비전은 ▲권력의 잘못에 맞설 수 있도록 107명이 제대로 뭉친 국민의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낙연 전 총리·바른미래당 손학규 전 대표 등과의 빅텐트 및 연대였다. 하지만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당 체질 개선이란 측면에서 김 전 장관의 ‘빅텐트’에 대한 집착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선이 나오고 있다.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 시절에도 빅텐트를 거론했다. 김 전 장관은 이 전 총리의 지지 선언은 이끌었지만,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는 끝내 성사시키지 못했다. 한덕수 전 총리와의 단일화도 스스로 제안했다가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후 태도를 바꿔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의 불씨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후보와 친윤계의 갈등이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대선에서 41%를 득표하는 등 비교적 선전했지만, 이 ‘비교적 선전’은 국민의힘의 처참한 상황에 비해 선전했다는 것일 뿐, 진짜로 선전했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여전히 빅텐트에 집착하고 있다. 빅텐트 정당은 다양한 세력을 묶고 그 이해관계를 조율할 수 있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 시절 당내 화합조차 제대로 끌어내지 못했다. 국민의힘의 전신 새누리당을 탈당해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자유통일당을 창당했단 치명적인 약점도 있다. 다시 빅텐트 김문수 집착 심지어 김 전 장관이 대선후보 시절 구상했던 빅 텐트엔 전 목사 등 광장 세력도 포함됐다. 이처럼 상황 판단을 정확히 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관악산에서 열심히 턱걸이를 해도 고령에 따른 판단력 문제가 따라다닐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김 전 장관이 윤석열정부 당시 경제사회노동위원장과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연이어 발탁됐던 이유로는 “고령의 보수 정치인에 대한 예우”란 평가가 계속 나왔다. 이 평가엔 “정치적 영향력과 지도력이 사실상 사라졌기 때문에 부담 없이 발탁했다”는 의미가 있다. 대선후보 교체 시도 당시 당사 후보실을 점거하는 등 젊은 시절 노동운동을 연상시키는 과감한 선택은 일부 돋보였다. 하지만 과감한 정치적 선택도 정확한 판단력과 맞물려야 그 빛을 발한다. 대권·당권주자가 없단 약점이 있는 친윤계가 그나마 지향점이 비슷한 김 전 장관을 당 대표로 옹립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중도를 공략해 다시 정권을 되찾으려면 당 체질은 필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따라서 김 전 장관이 빅텐트에 집착하는 옛 관성을 버리지 못하면, 여당과 제대로 맞설 제1야당 대표가 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남는다.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해선 “어려운 상황에서 정면 승부하는 결기가 부족하다”는 일부의 평가가 있다. 한 전 대표는 중요한 정치적 고비마다 편한 길을 가려는 경향을 보였다. 지난해 22대 총선에서 민주당 이재명 당시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당시 대표를 심판 대상으로 규정한 ‘이조 심판론’이란 구호를 내걸었다가 ‘108석 당선’이란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여당 대표가 야당 대표들에 대한 심판을 총선에서 승리해야 할 이유로 제시한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전 대표가 정치 인생에서 제일 빛났던 순간은 지난해 12월3일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였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반대하면서 “국민과 함께 이를 막겠다”고 천명했다. 이어 친한계 의원들을 국회로 소집한 후 민주당과 협조해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등 원로 인사들은 한 전 대표를 극찬했다. 조 대표는 지난 2월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여당 대표가 계엄을 좌절시키긴 어렵다”며 “보통 이런 걸 ‘별의 순간’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친윤계와 합의해 지난해 12월7일 진행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1차 표결 불참을 결정했다. 이어 다음날엔 한 전 총리와 함께 “총리와 여당 대표의 당정 협의를 강화해 국정 공백을 메운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헌법재판소가 한 전 총리 탄핵 심판 결정에서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각계각층에선 한 전 대표를 일컬어 “권력 찬탈을 시도한 것 아니냐”는 취지로 격렬하게 비판했다. 한동훈 급부상 당시 한 전 대표는 ▲조속한 직무 정지 ▲탄핵소추 표결 불참 ▲탄핵 찬성 등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의견을 계속 바꿨다. 그러다가 탄핵소추가 가결된 직후 친윤계의 반발과 최고위원 전원 사퇴 등이 이어지면서 당 대표직에서 쫓겨나듯 물러났다. 이후 한 전 대표는 대선후보 경선 패배 후 대선 유세에 참여했고, 친한계를 움직여 대선후보 강제 교체 반대에 참여하는 등 일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친윤계와의 뿌리 깊은 갈등은 여전하고, 당 대표 출마에 대한 의견을 뚜렷하게 밝히지 않는 등 ‘결기 부족’이란 일각의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3일까지 김민석 총리 지명 철회 등을 요구하면서 국회 로텐더홀에서 농성을 진행했다. 하지만 안 하느니만 못한 농성이 되고 말았다. 나 의원은 냉방이 잘 되는 국회 로텐더홀에서 비교적 가격이 비싼 김밥과 유명 메이커 커피를 곁들이고 탁상용 선풍기까지 갖췄다. 이런 상황을 알린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촬영해 스스로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나 의원 자신이었다. 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지난달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캠핑이나 바캉스 같다”고 비웃었다. 지난 2018년 5월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면서 단식 농성을 했던 자유한국당 김성태 전 원내대표도 지난 1일 MBC <뉴스외전>에서 “로텐더홀에서 출판기념회 하듯이 농성한다”고 비판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도 “피서 농성”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나 의원은 “주말엔 로텐더홀에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달 30일 YTN <신율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해 “나 의원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는 것”이라며 “국민의힘 지지자들에게 자신의 인상을 남기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지층에게 인상을 남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 남는다. 정작 농성의 대상인 김 총리는 같은 날 나 의원을 방문해 “식사는 했느냐”면서 “단식은 하지 말라”고 비웃었다. 김 총리의 기세는 하나도 꺾이지 않았고, 민주당은 지난 3일 김 총리 임명동의안을 가결했다. 대선 경선 그대로 옮겨지나 수많은 난제…독이 든 성배? 그러자 나 의원은 다음날 농성을 해제했다. 나 의원이 6일 동안 진행한 농성은 나 의원이 당 대표에 당선된 후 진행될 대정부 투쟁의 회의적 가능성을 드러냈을 뿐이다. 당 대표 당선 가능성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지 의문이 커진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7일 오전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 임명된 후 겨우 8분 만에 사퇴했다. 안 의원은 지난 2일 혁신위원장 내정 당시엔 “국민의힘은 악성 종양이 뼈와 골수까지 전이된 말기 환자”라면서 “메스를 들어 보수 정치를 오염시킨 고름과 종기를 적출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안 의원은 송 비대위원장에게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와 관련해 권영세 전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전 원내대표에 대한 인적 청산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건의를 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중도·수도권·청년 중심으로 혁신위를 구성하려던 안 의원의 구상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 의원은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국민의힘 혁신 당 대표가 되기 위해 도전할 것”이라며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안 의원은 혁신위원장 내정 이전부터 당 대표 출마 가능성이 크게 점쳐졌다. 따라서 혁신위원장 내정 당시엔 “친윤계와 손을 잡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어 일찌감치 “친윤계가 이전처럼 혁신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텐데, 왜 혁신위원장 자리를 받아들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함께 돌아다녔다. 안 의원은 “‘쌍권(권영세·권성동)’ 숙청을 혁신안으로 제시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직접 공개했다. 따라서 “혁신하는 당 대표가 될 수 있다”는 명분은 챙겼다. 하지만 여전히 안 의원은 국민의힘에서 나 홀로 버티고 있다. 친윤계와의 연대설이 돌아다녔던 이유도 안 의원에게 세가 없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안 의원도 김 전 장관처럼 친윤계와 치명적으로 갈등한 이력이 생겼다. 김 전 장관과 달리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명분은 얻었을지 몰라도, 실리는 스스로 걷어찬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당 대표로 당선되더라도, 메스를 들어 고름과 종기를 적출할 수 있을지 큰 의문이 남는다. 현역 의원 20명 안팎 계보를 거느린 한 전 대표도 친윤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당 대표직에서 사퇴했기 때문이다. 조 의원과 장 당협위원장의 출마 선언은 주요 후보 4명에 비하면 비중 있게 취급되진 않는다. 다만 조 의원에 대해선 “한 전 대표가 불출마하고, 좌장인 조 의원이 대신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수장과 좌장이 동시에 출마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많은 숙제 뻔한 결말? 여러 폭탄을 끌어안고 죽을 가능성이 더 큰 당 대표가 될 것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출혈은 피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정부와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제대로 혁신하지 못하는 틈을 타 압도적인 기세를 타고 쟁점 법안들을 연이어 처리하려고 한다. 그런 가운데 독이 든 성배 취급을 받는 국민의힘 대표 자리에 앉게 될 사람은 누구일까? 자중지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 내부의 먹구름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