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건너온 ‘다국적 조폭’ 대해부

겁 없는 동남아 칼잡이 대한민국 밤거리 설친다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한국에도 외국인 폭력조직이 스며들었다. 익히 알려진 중국 삼합회, 일본 야쿠자, 러시아 마피아 등 전통 조직들 외에도 이제는 중국 흑사파, 베트남, 필리핀, 태국, 방글라데시 등의 신흥 조직들이 곳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 이들의 세력 확장으로 수사당국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21세기 판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해야 할 판이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해외 폭력조직으로는 국제적 조직을 갖춘 중국 삼합회, 러시아 마피아, 일본 야쿠자를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요즘엔 신흥 폭력조직이 점차 비대해지면서 다양한 외국 폭력조직이 활개를 치는 형국이다. 이들은 세력 확장을 위해 국내 조직과 손을 잡기도 한다. 이처럼 외국인 폭력조직이 국내로 대거 잠입하면서 각종 사회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최강 외국조폭
‘연변 흑사파’
 
2009년 8월, 서울힐튼호텔의 ‘세븐럭’ 카지노 앞에서 조선족 조폭들이 화교출신 조폭 두목 회칼로 납치하려고 했으나 마씨가 호텔로비로 도망가는 바람에 힐튼호텔 로비는 아수라장이 됐다. 조선족 조폭들은 마씨를 따라가면서 회칼을 휘둘렀다. 조선족 조폭이 노린 것은 마씨가 가지고 있는 카지노 기프트 카드 유통권이었다. 카지노에서 VIP회원들에게 사은품으로 주는 것으로 알짜배기 사업권이었다.
 
이 사건은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서 활동해온 조선족 조폭이 서울 도심 진출과 함께 카지노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외국인 조폭 중에서 가장 세력이 크고 잔인하기로 소문난 게 연변 흑사파다. 중국 북동부의 지린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등 3성의 조선족계 흑사파 조직원들은 한국에 들어와 현재는 16개 조직에 2300명의 조선족 흑사파 조직원들이 조직력을 뻗치며 활개를 치고 있다.
 

국내 활동 외국인 조폭 중 절반이 조선족이다. 여기서 가장 강력한 조직은 연변흑사파, 흑룡강파, 뱀파, 호박파 등이다. 이 가운데 현재 가장 잘나가는 조직인 ‘연변흑사파’는 2001년 흑사회 행동대장 출신의 조선족 양씨가 부산항을 통해 밀입국하면서부터 시작됐다. 2005년 양씨는 조선족 31명을 모아 흑사회를 모방한 ‘연변흑사파’를 결성하고 조선족 밀집지역인 서울 가리봉동 장악에 나섰다. 이들이 가리봉동을 장악하는 과정을 전설처럼 ‘가리봉 잔혹사’라고 한다.
 
이들의 활동방식은 중국 본토 흑사회처럼 등에는 칼, 다리에는 도끼를 차고 다니면서 가리봉동 일대를 휩쓸었다. 이들은 업주와 여성 종업원들의 약점을 이용해 공짜 술을 얻어 먹으며 돈을 뜯어냈다. 중국에서 게임기를 들여와 마작방을 운영하며 돈을 딴 사람들을 협박해 다시 돈을 가로채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보복이 두려워 신고조차 하지 못했다. 가리봉동의 업주들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설사 추방된다 해도 중국에서 이름을 바꾸는 등 호적을 세탁한 뒤 다시 돌아올 게 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전을 위해 방검복을 입고 영업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알려졌다. 
 
폭력조직도 이제 글로벌·다문화 시대
신흥파 대거 상륙…통제불능 상태 우려
 
이들은 손도끼를 크게 휘두르며 ‘피를 뒤집어쓸 때까지’ 싸우는 잔인함을 보여 타 외국인 폭력 조직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연변흑사파’는 무서운 확장으로 일대의 군소 조직들을 하나 둘씩 무릎 꿇게 만들었다. 그리고 2006년, 가리봉동의 맹주였던 ‘흑룡강파’ 사무실에 흑사파 조직원들이 손도끼와 회칼을 들고 나타나서 한순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다.
 
전쟁 선포나 다름없었다. 곧바로 복수에 나선 ‘흑룡강파’ 조직원은 호프집에서 ‘연변흑사파’ 두목의 배를 칼로 찔렀다. 이후 8일 만에 반격에 나선 ‘연변흑사파’는 흑룡강파 행동대장 조선족 A씨를 납치해 흉기로 찌르고 발목을 부러뜨려 5급 장애인으로 만들어버린 뒤 돈을 받고 풀어줬다.
 
이때부터 가리봉동은 ‘연변흑사파’가 접수하게 되며 서울 영등포, 구로동, 건대 일대, 가양동, 창원, 일산, 용인, 인천, 울산, 부산, 김해 등지의 전국 조선족 밀집지역들이 흑사파 수중에 들어갔다. ‘연변흑사파’는 국내 외국인 조직에서 최강의 자리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이들은 외국인 조폭계의 최강자로 군림하면서 최근에는 서울 강남 룸살롱이나, 카지노, 오락실 등에 조직원들 진출시키는 등 강남 유흥가 장악까지 시도하고 있어 국내 조폭의 아성까지 무너뜨릴 기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이들은 돈을 받고 폭력을 일삼고 있다. 팔 절단 250만원, 다리 절단 500만원, 청부살인 1000만원 등이다. 
  
또한 국내 조폭들과 연대도 모색하고 있다. 한국어에 능숙한 조선족 출신들로 구성된 연변 흑사파는 오래전부터 서울 등지에서 활동 무대가 겹치는 국내 조폭과 연합전선을 펴고 있다. 조선족 종업원이 많은 오락실, 유흥업소에서 사고가 터지면 눈개 조폭과 연변흑사파가 긴밀히 협조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고 친 조직원들을 서로 숨겨주는 식의 공생관계도 맺고 있다고 전해진다.

흑사파 라이벌
‘베트남 하노이파’
 
최근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의 한 유흥가에서 접대부 일을 마치고 나온 베트남 여성이 낯선 남자 3명에게 납치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괴한들은 여성을 부천의 한 은신처에 사흘 간 감금했고 베트남에 있는 그녀의 가족에게 협박 전화를 걸었다. “당장 650만원을 보내지 않으면 성매매 업소에 팔아버리겠다”. 깜짝 놀란 가족들은 급하게 돈을 마련해주고 붙잡혔던 여성은 풀려났다.
 
‘하노이파’는 외국인 조폭 중에서 최강이라 불리는 ‘연변흑사파’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떠올랐다. 미국에서는 이미 베트남 조폭들이 미국의 암흑가를 평정했을 정도로 악명이 높다. 하노이파는 베트남 북부 하노이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밀입국한 현지 조직원이 불법체류자와 근로자들을 규합해 세력을 불리고 있는데, 서울 구로동과 경기도 포천, 안양, 안산, 경남 창원시 공단 밀집지역에서 주로 활동한다.
 
‘하노이파’는 2000년 이후 소규모로 활동해오다 점차 전국화되어 전국 산업단지 주변을 중심으로 점조직화 됐다. 순수 조직원 및 협력자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1000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고리사채, 납치폭행, 인질강도, 성매매, 마약밀매 등 다양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연 500%가 넘는 살인적인 이자로 도박자금을 빌려준 뒤 갚지 않으면 본국의 가족을 협박해 돈을 받아내기도 한다. ‘하노이파’는 총책(두목), 중간간부, 행동대원, 유인책(베트남 여성) 등으로 역할을 분담한다. 보통 여성 조직원이 남성들을 유혹한 뒤 범죄를 저지른다.
 
한국형 조폭
‘방글라데시 군다파’
 
일부 베트남인들은 외국인 사회에서 일부러 ‘하노이파’를 사칭하고 다니기도 한다. 폭행사건으로 경찰에 입건된 베트남인들은 자신을 ‘하노이파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해진다. 물론 ‘하노이파’가 아닌, ‘뒷골목 양아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하노이파’의 위세가 대단한 것이다. 또한 베트남 계열 조폭 중에는 ‘호치민파’와 ‘허이세이파’ 등도 최근 급격히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외국계 한국형 조폭으로 알려진 방글라데시의 ‘군다파’는 방글라데시어로 ‘폭력배’ ‘깡패’를 의미한다. 이들은 다 같이 합숙생활을 하며 90도 인사 등 국내 조폭의 행동 및 생활방식, 예의, 지휘체계 등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조폭으로 알려진다. ‘군다파’는 보통 20명의 조직원이 합숙생활을 하기 때문에 위계질서 등 명령계통이 타 외국인 폭력조직에 비해서 상당히 체계적인 편이다.
 
이러한 ‘군다파’는 방글라데시인들 거주지마다 있다. ‘안산 군다’ ‘서울 군다’ ‘수원 군다’ 등 지명을 딴 조직과 ‘앨런 군다’ 등 두목 이름을 딴 조직들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불법 체류자를 상대로 돈을 뜯어내고 도박장을 운영하고 있다. 다른 외국인 조폭보다 세력은 미약한 편이지만 국내 적응력이 매우 뛰어나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 중 대다수는 한국에서 추방당한 뒤, 여권을 위조해 다시 국내로 들어온다.


국내 조직과 손잡고 연대·공생
세력 확장으로 수사당국 골머리

‘가디언스파’는 필리핀 노동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조직으로 최근 떠오르고 있는 신흥 필리핀 조폭이다. 신체부위의 문신이 크면 클수록 고위 간부라고 한다. 문신은 주로 머리, 손목, 어깨에 있으며 문신모양은 해적이다. ‘가디언스파’는 군소조직인 ‘일롱고파’를 흡수해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가디언스파’는 당초 한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불법체류자 포함)의 임금을 착취할 목적으로 들어왔다. 이후 조직원이 수백 명 이상으로 불어났고, 조직 운영을 위해 불법 도박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안산을 거점으로 불법 게임장, 지하 카지노를 운영하며 활동영역을 넓혔다.
 
‘가디언스파’ 조직원들은 필리핀에서 권총살인을 저지르고 국내에 취업비자로 도망쳐온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권총사용에 능하다. 이들은 평소에 식칼과 송곳, 드라이버 등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총기 무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알려진다.

마약 담당
'태국 깽야이파'
 

‘깽야이파’는 태국 조폭으로 최근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시키고 있는 조직 중 하나다. 1m가 넘는 길이의 정글도와 야구방망이로 무장하고 다니면서 태국산 마약인 ‘야바’를 국내로 밀반입 하고 있다. ‘야바’는 태국, 미얀마, 라오스에서 생산되는 마약으로서 국내에 거주하는 태국인들 중 대부분이 마약인 야바를 신경안정용으로 복용하고 있다. 이 ‘야바’의 약효는 36시간 지속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깽야이파’ 외에도 위장결혼 수법으로 국내 업소에 태국 여성을 공급하고 있는 태국 폭력조직 ‘싸만코차호타이파’와 태국인 업소를 상대로 금품을 갈취하는 ‘딸라타이파’도 최근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반면, 일본 ‘야쿠자’와 러시아 ‘마피아’는 이들과 달리 호텔 사업이나 벤처기업 인수,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많다. 세계에서 메이저급으로 통하는 이들은 한국을 상대로 합법적인 사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즈베키스탄, 자카흐스탄 등 구소련 연방국가들과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등 제3세계 국가들의 폭력조직도 활개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산간지방과 변두리 지역에 뿌리를 내렸다. 아직 규모는 크지 않지만 자국민과 한국 기업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다. 외국 신흥 조폭들의 세는 아직은 ‘패거리’ 정도에 그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점차 조직 형태를 발전시키는 모양새다.
 
이처럼 외국인 조폭들이 국내에 들어와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지만, 이들을 퇴치하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중국, 베트남, 필리핀, 방글라데시 등의 국가들은 주민등록시스템이 취약해 신분 위장이 간단하다. 입국 단계에서 조폭인지 노동자인지 분류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지문날인을 하지 않은 외국인들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여차하면 본국으로 돌아가 수사 자체가 불가능한 것도 문제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범죄자를 가려내 추방을 해도 이름을 바꾸거나 위조여권을 이용해 재입국하는 외국인이 연간 2000명이 넘는다. 다문화 조폭에 대한 장기간 기획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대로 가다간 ‘외국산 주먹’에 벌벌 떠는 시대가 도래 할 수도 있다.
 
‘2013경찰백서’에 따르면 경찰은 2012년 한해 동안 강력한 단속활동을 전개한 결과 신흥폭력조직 53개파 1296명 등 총 3688명을 검거해 649명을 구속시켰다. ‘2012년 경찰범죄통계’에 따르면 외국인범죄자의 연령대는 주로 2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이며, 주로 일용직 노동자였다. 외국인범죄자의 공범관계를 살펴보면 직장동료인 경우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고향친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범죄자의 국적은 중국이 57.4%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베트남, 필리핀, 몽골, 태국 등이 뒤를 이었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내 체류 외국인은?
 
법무부 출입국과 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으로 등록 외국인은 101만2010명으로 집계됐다. 2003년 43만7954명, 2006년 63만1219명, 2009년 87만636명, 2012년 93만2983명, 2013년 98만5923명으로 꾸준히 늘어 마침내 올해 사상 처음으로 100만명을 돌파했다.
 
우리나라 전체 주민등록인구의 2%에 달하는 수준이다. 우리 사회가 매우 빠른 속도로 다인종·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취업자 수는 지난해 5월 기준으로 76만여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3%에 달할 만큼 높은 수치를 보이지만,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는 여전하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다문화 포용성은 조사 대상 50여개국 중 몇 년째 꼴지로 나타나고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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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