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은밀한 성 이야기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1.04 14: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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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할배·꽃할매 “늙어도 하고 싶다”

[일요시사=사회팀] 전체 인구 중 노인의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 2019년 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사회적 소수집단이었던 노인들이 다수집단으로 옮겨가며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나이를 잊은 ‘젊은 노인’들의 아름다운 성을 들여다봤다.




지금 노인은 예전의 노인과 다르다. 요즘 노인들은 노년의 삶을 단순한 수명 연장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삶의 질’과 ‘행복’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 특히 사랑과 성생활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신체적인 한계를 극복하고자 비아그라 등 약물에 의지하는 경우는 이제 흔한 모습이다.

노인의 성
‘봉인해제’

노인들의 세상이 업그레이드 됐다. 세파에 주름을 속일 수는 없을지언정 마음만은 청춘인 꽃할배, 꽃할매들이 점점 늘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죽어도 좋아>가 상영된 뒤 많은 사람들이 노인의 성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됐다. 영화가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처럼 청춘 못지않은 할배, 할매들의 <섹스앤더시티>가 현실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노인들의 규칙적 성생활은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노인 남성은 고환과 음경의 위축이 방지돼 전립선 질환이 예방된다고 한다. 노인 여성은 골다공증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노화도 방지되고 자신감도 높아지며 심폐기능까지 좋아지고 면역기능도 상승한다고 한다. 그야말로 만병통치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다.

보건복지부가 전국의 65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현재 성생활을 한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의 66%. 노인 3명 중 2명 이상이 지속적인 성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꽃할배, 할매들의 섹스라이프는 대략 10여 년전 까지만 해도 당사자나 주변에서 숨기고 싶었던 부분이다. 당시 노인의 성문제를 단적으로 설명하는 단어가 탑골공원이나 호수공원(일산) 등을 근거지로 활동한 일명 ‘박카스 아줌마’였다. 이는 노인의 성을 비로소 사회 문제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 노인의 성 관련 범죄와 성병 증가와 같은 문제, 그리고 건강한 노인의 성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커지게 됐다.

노인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유혹하는 박카스 아줌마 부대는 여전히 활약하고 있다. 그리고 노인들의 로맨스는 훨씬 더 다각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사랑이 꽃피는 장소는 ‘사회복지관’이다. 갈 곳이 없어 노인정, 복덕방 혹은 기원 그도 아니면 공원 같은 장소를 배회해야 했던 노인들은 이제는 갈 곳이 너무 많아 고민이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노인 아닌 노인들이 증가했다. 할배·할매라고 불리기엔 아직 이르다는 것. 꽃노년들의 문화 활동은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동시에 연애사업도 진행된다. 그 시작은 지역 사회복지관이다.

한 사회복지관 의무실에 근무하는 간호사에 따르면, 어느 정도 여유롭고 팔팔한 노인들의 일상은 대부분 복지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특히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이 복지관으로 모이면서 노인 집단도 자연스럽게 서열화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전해진다. 노인들도 서로 외모와 능력을 따지며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부에는 늘 실세가 있어 실세 눈 밖에 나면 복지관에서 팽 당하기 일쑤다.

사회복지관 클래스의 선택권은 거의 꽃할매들의 전권이다. 잘 생기고 유머러스한 할배들은 환영을 받지만 조건이 부실한 할배들은 집단 중심에서 소외된다. 즉 꽃할매들의 눈 밖에 나도 복지관에서 제대로 기를 펼 수 없다. 진정한 실세는 이 꽃할매들인 것이다.

노인들이 사회복지관에 모이는 이유는 우리 사회 어느 곳보다 동년배가 많고, 노년층 맞춤형 프로그램과 의료시설과 문화시설, 건강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지역사회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거동할 힘만 있으면 무리해서라도 사회복지관을 찾는 이유다.

그리고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주어지는 사회복지 혜택인 대중교통 무임승차는 노인들에게 또 다른 축복이다. 아침시간 지하철 1호선은 노인들 천지다. 천안, 춘천 등 노인들은 어디든 가고 본다. 이제는 미리 지역정보를 알아내 축제마당 나들이를 즐기는 게 요즘 노인들의 추세다.


이러한 장거리 축제 나들이는 대부분 짝을 지어 간다. 그리고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한 사회복지관 의무실에 근무하는 간호사에 따르면 복지관 내 의무실에 유별난 처방전을 받으러 오는 노인들이 있다고 한다. 바로 발기부전촉진제다. 본래 심장질환 혈관 치료제로 개발된 약의 용도에 맞게 병명을 그럴듯하게 대고는 “비아그라를 처방해 달라”고 당당하게 말한다는 것.

65세 이상 3명 중 2명 성생활
10명 중 3명 이성친구와 성관계
파트너 없으면 성매매로 욕구 해소

할배들은 처방받은 비아그라를 얻은 뒤, 전철을 타고 멀리 떠나 현지에 조달한다고 한다. 일명 ‘비아그라 셔틀’이다. 이렇게 비아그라를 얻은 할배들은 사회복지관에 출석해 비아그라를 자랑삼아 과시한다. 놀라운 건 90대 노인도 비아그라를 애타게 찾는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90대 노인들도 은밀하게 성생활을 즐긴다. 마음에 드는 노인끼리 여관에 들어가 원나잇을 즐기는 경우도 있다.

한 노인주거복지시설(실버타운) 관계자를 통해 들은 말이다. 봄볕이 따뜻한 어느 날, 50대 여성인 원장은 데이트를 하기 위해 외출하는 81세 남자 어르신께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와 함께 몇 마디를 덧붙였다. “좋은 데서 맛있는 것 잡수시고 오세요. 여자분이 싫다는데 억지로 여관 같은 데 가진 마시고요.”

노인은 말없이 웃는 얼굴로 외출했다. 그런데 한 달쯤 후 그 노인은 원장에게 찾아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때 그렇게 말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나를 남자로 인정해 준 것만으로도 한동안 밤에 잠이 안 올 정도로 행복했다”고.

2년 전 아내와 사별한 후 둘째 아들 내외와 함께 사는 여든 살 A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A씨는 교회에서 알게 된 78세의 할머니와 가끔 만나는 사이인데 하루는 둘째 아들이 정색을 하곤 그에게 말했다. “아버지, 비아그라가 필요하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요즘 가짜 비아그라가 많아서 잘못 쓰면 큰일 난대요. 그리고 할머니와 관계를 할 때는 꼭 할머니의 의사를 먼저 물어보셔야 해요.”

A씨는 둘째 아들이 그런 말을 할 때 눈물이 핑 돈다고 했다. 큰아들 부부가 매사에 자신을 가르치려 드는 건 너무 가소로웠는데 둘째 아들이 해주는 성교육은 고맙기도 하고 비아그라처럼 힘이 나게 한다고도 말했다.

90대 노인도
비아그라 찾는다

노인의 성생활 실태에 관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62.8%의 남성노인과 24.8%의 여성노인이 현재 성생활을 하고 있었다. 또한 성욕구 대처행동은 통제적 유형이 표현적 유형보다 우세했으며, 성행동 예측 요인으로 연령과 배우자 유무, 성지식과 성태도, 교육수준, 스트레스 수준 등이 확인됐다. 30.8%의 노인은 성생활에 불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건강문제와 배우자의 부재가 노인의 성생활을 저해하는 요인이었다.

서울대병원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66∼71세 노인 가운데 성욕이 없다고 대답한 사람은 20% 미만이었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60세 이상 여성의 과반수가 성생활을 계속한다고 대답했다. 경기도의 어느 도시에서는 노인 10명 가운데 3명이 이성친구와 성관계를 가진다고 했다. 파트너가 없는 남성 노인 가운데 상당수는 매춘을 통해 성적 욕구를 해소한다는 조사 보고도 있다.

그런데 짝퉁 발기부전 치료제가 노인들의 성생활을 위협하고 있다. 짝퉁 발기부전 치료제를 먹고 부작용을 호소하는 노인이 늘어난 것이다. 종로3가역 근처 한 비뇨기과 원장은 “성병은 치료가 가능한 경우가 많지만, 종묘광장공원 일대 좌판에서나 박카스 아줌마들이 파는 가짜 발기부전 치료제를 잘못 먹으면 돌이킬 수 없는 신체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원에서 공공연히 일어나는 노인들의 불법 성매매를 근절하기 위해 경찰과 종로구는 2000년대 초 대대적인 박카스 아줌마 단속에 나섰지만, 노인들의 불법 성매매 행태는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종묘광장관리사무소의 불법 성매매 적발 건수도 2009년 34건, 2010년 54건, 2011년 132건으로 줄어들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경제적으로 어렵고 나이도 많은 박카스 아줌마들은 다른 직업을 찾기 힘들어 단속에 쫓기면서도 끊임없이 공원에 나온다”며 “단속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도시 뿐만이 아니다. 요즘에는 가짜 비아그라가 농촌 재래시장에까지 밀고 들어와 아무것도 모르는 농민들을 유혹하고 있다.

약물에 의지해서라도…제2의 인생 즐겨
복지관 돌며 발기부전 치료제 처방 받아

비아그라는 제품 자체가 진품이라 해도 의사의 처방 없이 살 수도 먹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제품의 진의조차 알 수 없는 것들을 들고 다니며 농촌 재래시장에서 가짜 비아그라를 판매하는 자들이 있다. 농촌은 할배·할매들이 가장 많이 사는 ‘블루오션’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할배들은 호기심에 이런 약을 사서 무작정 먹었다가 부작용을 경험하기도 한다.

비아그라는 진품이라고 해도 사람에 따라서 두통이나 소화불량 같은 부작용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물며 물건의 진품 여부도 알지 못함은 물론이고, 그 속에 어떤 나쁜 화학적 성분이 들어있는지도 모르는 것을 속아서 구입해 먹었다가 어떤 피해를 볼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비아그라가 마냥 나쁘다는 건 아니다. 20세기 말에 태어난 비아그라는 성기능 질환 치료에 일대 혁명을 일으킨 약으로 평가된다. 부끄러운 일로만 여겨지던 성기능 장애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심장 질환 예방에도 기여했다.

짝퉁 제품에
숨넘어갈 수도

노년이 외로운 까닭은 삶을 서서히 떠나보내고 죽음을 친구로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배우자가 떠나고 친구가 떠날 때마다 느끼는 외로움. 몸은 아직도 건강해 일도 하고 이성 친구도 사귀고 싶은데 노망이라 여겨질까 두려워 마음을 닫아건다.

그러나 언젠가 서울의 번화가는 노인들로 북적거릴 것이다. 지금 그곳을 메우는 젊은이들이 노년기에 들어서기 때문이다. 과감하게 진한 애정 표현을 나누던 한창 때처럼 길거리에서 사랑을 나누는 노인 커플을 어렵지 않게 만날 날도 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성적 욕구와 탈선의 주체에서 노인은 빠져 있다. 어쩌면 잘못된 사회적 통념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노인들이 자주 모이는 공원이나 산 주변에는 성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병원 관계자는 전했다. 공원 등을 찾는 노인들에게 한 달에 1번 무료 건강 검진을 실시한 결과 주 치료 질병은 만성 퇴행성 질환과 소모성 질환 그리고 배뇨통 등 요도염 증상을 호소하는 노인들이 많았던 것.

그 결과 주로 성적 접촉에 의해 전염되는 임균성 및 비임균성 요도염으로 의심되는 환자가 검사자의 10% 이상 발견되었으며 일부는 매독으로 의심되는 결과를 보였다.

일본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80대 후반의 남성 노인의 34%가 불규칙하지만 아직도 성생활을 시도하고 있으며 70대 후반 중 55%, 60대 전반 65%, 60대 후반 남성 노인의 79%가 지속적인 성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여성은 70대 이상의 36%가, 60대 후반은 44%, 60대 전반은 61%가 성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밖에도 여러 연구가 있지만 결론은 비슷하다.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 성생활 빈도는 감소하지만 성생활은 여전히 삶의 한 부분이며 30∼70% 정도의 노인이 규칙적인 성생활을 하고 있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노년기 성생활의 필요성을 “노인도 성적 욕구가 있고 신체적으로도 성생활이 가능하므로 사회가 그에 대한 지원체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노인의 ‘성적 기능’을 보다 강조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노화’라는 생체변화에 의해 억압되고 무시당하는 ‘권리’를 소홀히 하게 될 위험이 크다. 쉽게 말해 생물학적인 성과 성 능력만을 강조하게 되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성적 권리와 인격으로서의 성은 관심을 벗어날 소지가 있다는 말이다.

성생활 통해
존재감 확인

이런 의미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경제력이다. 노인의 성 역시 경제력과 깊은 관계가 있다. 건강하고 경제력 있는 노인은 그래도 배우자나 이성 친구를 사귈 수 있지만 가난한 노인들은 성의 사각지대에 있다. 이런 현상은 성별에 관계없이 나타나지만 남성 노인의 경제력이 여성의 그것보다 더 매력적이고 가치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금욕을 강요할 수 없는 것처럼 가난하다고 해서 성을 가까이 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 성을 권리와 인격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노인들은 성생활을 통해 존재를 확인하고 삶의 즐거움을 느낀다. 성은 신체를 통한 자기 표현방법이며 사람이 살아있음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표식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은 단순한 성 관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다양한 교류, 교감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노년기의 성생활은 삶의 질에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광호 기자<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비아그라 순기능
잘만 쓰면 축복의 약

비아그라는 산악인이나 나이든 골퍼나 등산가에게는 필수약품이다. 히말라야 같은 고산 등반 시에 생기는 고산병(산소결핍 폐울혈)을 예방하고 완화시켜 주는 명약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보통 사람도 5000m 급의 히말라야에 부부동반으로 많이들 별 탈 없이 다녀온다. 한국처럼 겨울이 있고 높은 산이 많으며 나이든 등산가나 골퍼가 많은 나라에는 겨울나들이, 등산, 골프 시에 소량의 비아그라는 심장이나 뇌혈관 사고방지에 도움이 된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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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목줄 잡은 트럼프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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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국이 ‘트럼프 태풍’의 영향권에 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모든 국가와 각을 세우고 있다. 한국도 그 대열에 줄 서는 모양새다. 문제는 한국의 경우 마땅한 대응 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 1월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을 대신해 민주당 후보로 나선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을 큰 표 차로 이기고 8년 만에 백악관에 재입성했다. 전 세계 흔들다 민주당의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DEI(Diversity·Equity·Inclusion, 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에 반대하는 유권자를 잡은 게 승리의 요인으로 분석됐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미국에 성별은 남성과 여성, 두 개뿐”이라면서 트랜스젠더 문제에 쐐기를 박고 DEI 정책 폐기를 선언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대선서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미국이 지금까지 맡아온 ‘세계의 경찰’ 역할 대신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겠다는 뜻도 피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는 관세를 내세운 ‘통상 전쟁’으로 번졌다. 미국을 상대로 무역 흑자를 기록한 국가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캐나다와 멕시코, 중국이 첫 번째 표적이 됐다. 취임 당일에 멕시코와 캐나다에 관세 25%를 붙이고 중국에는 10%의 추가 관세를 예고했다. 마약 유입과 불법 이민 문제 대응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본질은 무역 적자라는 게 중론이다. 영토 전쟁에도 시동을 걸었다. 특히 전쟁 지역 원조를 빌미로 영토를 확장하려는 야욕을 보이면서 ‘제국주의’ 시대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관련해 ‘가자지구’를 미국이 장악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가자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주민을 주변국으로 이주시키고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덴마크령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를 미국에 편입시키겠다는 의지도 고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워싱턴DC 상·하원 합동 의회 연설서 “파나마 운하는 미국인을 위해 미국인이 건설한 것”이라며 “중국이 아닌 파나마에 운하를 넘겼지만 협정은 매우 심각하게 위반됐다. 미국은 파나마 운하를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하자마자 관세 폭탄 겁주는 줄 알았는데 진짜 또 그린란드 주민을 향해 “여러분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강력히 지지한다”며 “만약 여러분이 원하신다면 우리는 미국으로 들어오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린란드 주민은 2009년 덴마크와 합의해 제정한 자치정부법에 따라 주민투표를 통해 독립을 추진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부분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됐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 과정서 미국이 자유 진영서 원조해 온 우크라이나가 아닌 러시아 쪽으로 미묘하게 기울어진 움직임을 보이면서 유럽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최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이 미국의 외교 방향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원조의 대가로 광물 개발권을 요구했다. 3년여 동안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서 미국은 군사 장비를 지원했다. 독일 킬 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2022년부터 약 3년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금액은 1197억달러(174조5000억원)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광물협정에 협조하지 않자 모든 군사 원조를 끊겠다는 강수를 놨다. 미국이 원조를 중단하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공세에 3개월도 못 버틸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결국 젤렌스키 대통령이 백기를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하원 합동 의회 연설서 “젤렌스키로부터 중요한 서한을 받았다”고 말했다. 광물협정에 응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국가가 ‘트럼프 태풍’에 휘말려 대응책을 논의하는 와중에 한국은 상대적으로 언급이 적었다. 한국도 미국을 상대로 무역 흑자를 기록한 국가인 만큼 어떤 식으로든 보복이 있으리라는 관측은 있었지만 그게 가시화되진 않았다는 뜻이다. 전쟁 국가도 원조 끊어 한국은 중국과 멕시코, 베트남, 아일랜드, 독일, 대만, 일본 등에 이어 대미 무역 흑자 8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액은 557억달러(약 81조원)가량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정부의 첫 연설서 한국을 ‘콕’ 짚었다. 99분에 걸친 연설서 한국을 공개 지목하다시피 한 것이다. 각국의 대미 관세를 언급하는 과정서 “한국의 평균 관세는 (미국보다)4배 높다”고 말했다. 그 근거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군사적으로, 또 많은 다른 방법으로 한국을 엄청나게 돕는데 무슨 일이 일어났나. 이게 우리 동지와 적에 의해 벌어지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우리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는 자료를 내고 대미 평균 관세율이 0.79% 수준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국가로 사실상 상호 수출입 품목 대부분이 무관세다. 미국서 들어오는 공산품에 부과되는 관세율은 0%다. 다만 한국이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에 부과하는 평균 최혜국 대우(MFN) 관세율은 13.4%로 미국(3.3%)의 4배 수준으로 높다. 최혜국 대우는 통상·항해 조약 등에서 한 국가가 외국에 부여하는 가장 유리한 대우를 상대국에도 부여하는 일을 뜻한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와 FTA를 체결한 상태여서 이 관세율이 적용되는 국가는 많지 않다. 산자부 관계자는 “현지 대사관과 최근 구축한 다양한 실무협의체 채널, 방미 예정인 통상교섭본부장 등 고위급 접촉을 통해 한국이 미국에 부과하는 관세가 거의 없다는 것을 설명하고 오해를 불식시키겠다”고 말했다. 마구잡이 주장 대응 못 하고 하지만 다음달 2일로 예정된 상호 관세와 관련해 한국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이 어떤 관세를 매기건 우리도 그들에게 관세를 매길 것”이라고 말했다. 비관세 장벽도 거론했다. 규제와 쿼터제, 환율 등 직접적인 관세가 아니라 각국의 제도를 빌미로 조치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꼭 관세가 아니더라도 무역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를 건들겠다는 것이다. 여기엔 한국이 도입하고 있는 부가가치세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관세보다 훨씬 더 가혹한 부가가치세 제도를 사용하는 국가를 관세 국가와 유사하게 간주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날 연설서 군사 지원을 언급한 점도 한국으로선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정부 시절부터 주한미군 주둔과 방위비 분담에 불만을 토로했다.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을 넘어 주한미군과 관련한 논의가 진행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현재 전쟁 중인 국가(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를 단칼에 끊어버리는 트럼프식 외교가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정부 때부터 한국에 일방적으로 군사 지원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보여줬다. 한국이 막대한 방위비를 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혜택을 베푼다는 식으로 굴고 있는 셈이다. 올해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은 약 1조4900억원에 이른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재협상을 통해 방위비 분담금 추가 인상 가능성이 제기돼왔다. 첫 의회 연설에서 콕 집어 모든 논리가 돈으로 통해 여기에 ‘칩스법’ 폐지를 언급하면서 한국 기업까지 뒤흔들 기세다. 칩스법의 공식 명칭은 ‘반도체 과학법’으로 미국에 반도체 제조와 연구·개발시설을 짓는 기업에 보조금과 세제 혜택 등을 제공하는 법이다. 바이든정부서 시행된 정책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그 영향권 아래 있다. 총 지원 규모가 2800억달러(약 408조원)에 달하고 대만 TSMC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에 직접 지급하는 보조금만 527억달러(약 77조원)에 이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법은 끔찍하고 끔찍한 일이며 우리는 수천억달러를 갖고 있지만 (반도체법은)의미가 없다. 그들은 우리 돈을 가져가고 지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대선 때에도 칩스법을 ‘나쁜 법’으로 규정하고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기업을 겨냥해 “그들은 자신들을 보호해 주길 원하면서 제대로 돈을 내지 않는다”고 했다.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보조금이 축소되거나 법 자체가 폐지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커진 셈이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과도한 요구에 한국이 내세울 마땅한 카드가 딱히 없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협상에 나서야 할 수뇌부가 불완전한 상태라 대응이 어렵다는 게 더 큰 문제로 꼽힌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는 탄핵심판대 위에 서 있고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을 맡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아직 통화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 간 관행이나 국제질서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른 국가의 영토에 노골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전쟁 원조를 돈으로 환산하는 등 그동안 미국을 통치했던 지도자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다시 말해 한국을 상대로 어떤 ‘깜짝쇼’도 벌일 수 있다는 뜻이다. 정상 외교는 사실상 막혀 지난 5일 신원식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트럼프정부 고위 당국자들과의 회동을 위해 방미했다. 신 실장은 “한반도 및 동북아, 글로벌 안보 이슈를 논의하고 경제 안보와 관련해 특히 조선 협력을 비롯해 다양한 논의를 하려 한다”고 배경을 밝혔다. 신 실장은 2기 트럼프정부 출범 이후 미국 측 카운터파트와 만나는 세 번째 장관급 인사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뮌헨안보회의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회담했고 안덕근 산자부 장관은 최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만났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