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가슴이 벌렁거렸던 게이전용 업소 탐방기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03.19 09:4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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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게 왜 이상한가요?"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최근 남성전용 사우나가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잘못 찾아 들어갔다간 평생 경험하기 어려운 일을 볼 수도, 당할 수도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바로 '게이사우나'다. 간판에 게이라고 적혀있는 것도 아니어서 들어가 보기 전에는 알 수도 없다. 일반 남성들의 출입이 제한된 곳도 아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봉변을 당하기 십상인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게이전용 휴게텔도 성업 중이다. 기자가 찾은 게이사우나와 게이휴게텔에서 벌어진 일들은 취재 후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뇌리에 선연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어두운 수면실, 한데 뒤엉켜 신음 흘리는 남성들
슬그머니 다가온 중년남성, 기자 허벅지 더듬어

지난 5일 서울 강남에서 동성 간의 성관계가 가능한 남성전용 사우나를 운영하던 업주가 경찰에 적발됐다. 업주는 성관계 알선 대가는 받지 않았다. 업주도 게이였기 때문이다.

업주는 경찰조사에서 "나도 게이라서 '성적소수자'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어 업소를 운영했다"고 진술했다.

그렇다면 게이들의 최대 메카인 서울 종로구는 어떨까? 여자가 좋은(?) 기자는 넘치는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게이들이 자주 출몰한다는 종로의 한 남성전용 사우나를 찾아보기로 했다.

지난 6일 오후 5시께 종로 ○○빌딩 뒷골목에는 게이바, 휴게텔 등 게이들을 위한 업소가 곳곳에 들어서 있었다. 이른 시간 때문인지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지나다니는 게이커플들이 종종 기자를 스쳐지나갔다. 골목 이곳저곳을 누비며 마침내 문제의 업소를 찾아내는 동안 40대로 보이는 남성 몇몇이 기자의 온몸을 아래위로 훑어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는 게이가 아니에요!'라고 설명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내 '취재차 이곳을 왔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기자 훑어보는
중년의 남성들

남성전용 사우나 ○○은 허름한 건물의 지하 1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주간 5000원의 입욕권을 구입하는데 점원은 기자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나이 좀 있으신 분들 좋아하나봐? 취향 독특하네."

탈의실로 들어가는 기자의 등 뒤로 들려온 점원의 이 말은 뭔가 '찜찜'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돈은 냈고 신발도 벗었고 사물함 열쇠까지 받았는데…. 

예상과는 달리 탈의실 내부시설은 여느 목욕탕과 다르지 않았다. 굳이 찾아보자면 상당히 낡았다는 정도? 옷을 벗어두는 사물함 옆에는 손톱을 자르거나 신문을 보는 중년남성들이 앉아있는 평상이 있었고 20인치 정도 돼 보이는 브라운관 TV에서는 모 방송의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래됐지만 헤어드라이기와 면봉도 있었고 싸구려 스킨·로션도 '아저씨'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탕 내부로 통하는 유리문 옆에는 어두운 공간이 얼핏 보였고 위에는 '수면실'이라는 푯말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게이사우나가 아닌 조금 낡았을 뿐인 남성전용 사우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이나마 '안심'이 됐다.

기자도 옷을 벗고 탕 안으로 들어섰다. '미세요'라고 적혀있는 유리문을 무의식적으로 당겨서 열고 수증기가 가득한 탕 내부로 들어서는 찰나, 수면실에서 들려온 '헉' 소리를 단순 잠꼬대로 알았던 게 기자의 그날 하루 동안 최대 실수였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목욕탕을 빠져나온 뒤였다.

탕으로 들어서는 기자에게 몸을 씻고 있던 40~50대 남성들의 시선이 꽂혔다. 고작 20대 후반일 뿐인 기자가 신기해서 그러는 것 같았다. 간단한 목례를 하고 샤워기 꼭지를 돌렸다. 시설은 낡았지만 물은 깨끗했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온도 40도의 온탕에 들어가 앉았다. 원형의 온탕 맞은편에서 기자를 한동안 바라보던 머리가 살짝 벗어진 중년남성이 벽을 따라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했다. 기자 옆으로 다가온 그는 일언반구의 말 한마디도 없이 기자의 허벅지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수면실에서 들려온
정체불명 신음소리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이것이 첫 번째 실수였다. 기자가 반응이 없자 그의 손길은 점점 과감해 지기 시작했고 결국 남자의 가장 소중한 부위로 손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고 "저 이런 사람 아닙니다"고 말하며 그의 손을 밀어냈다. 일순 이 건물에서 한시라도 빨리 멀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확인을 못한 곳이 있었다. 바로 수면실.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샤워기 꼭지를 파란부분으로 돌렸다.

비치된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대충 제거하고 두 번째 실수를 하기 위해(?)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수면실로 옮겼다. 불 꺼진 수면실 바닥은 따뜻했고 기자의 눈이 어둠에 적응하자마자 두 눈을 비빌 수밖에 없었다.

나체의 남성들이 둘씩 짝지어 여기저기서 뒤엉켜 있었고 굵직한 신음소리를 내지르며 성행위를 하고 있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광경이라 가슴이 터져버릴 지경이었지만 목적달성이 우선이라 역겨워도 참을 수밖에…. 일부는 껴안고 잠을 자고 있었으며 파트너를 찾지 못한 남자들은 휴대폰 불빛이나 라이터 불빛에 의지해 서로의 짝을 찾는데 여념이 없었다.

남성들의 땀 냄새와 알 듯 모를 듯한 냄새가 수면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때, 탕 안에서 기자에게 작업(?)을 걸었던 남성이 기자의 손목을 잡았다. '흠칫' 놀란 기자는 남성을 밀쳐내고 수면실을 빠져나왔다. 옷을 입기 위해 사물함 문을 여는데 한참이 걸렸다. 열쇠구멍에 열쇠를 넣을 수 없을 정도로 손이 떨렸고 당황했기 때문이다. 기자는 넥타이를 손에 든 채 허겁지겁 지상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랐다. 뒤에서 점원의 비웃음이 들리는 듯 했다. 기분이 그렇게 나쁠 수 없었다.

“아니라면 아니라고 의사표현 확실히 할 것”
서울시내, 이니셜만 대도 아는 업소 성업 중

어느덧 밖은 어둠이 짙게 깔린 밤 8시. 발길을 강 건너 송파구로 돌렸다. 게이휴게텔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40분여를 달려 도착한 송파구 ○휴게텔 앞.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한 끼니를 사 들고 휴게텔이 있는 4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종로에서 겪은 충격이 컸던 탓일까?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시간당 1만원, 추가 10분당 2000원이라는 요금을 계산하고 방문 앞으로 다가갔다. 문을 옆으로 밀었다. 1인용 침대와 TV, 선풍기, 얇은 이불이 보였다.

침대에 걸터앉아 늦은 저녁을 먹다가 아무 생각 없이 TV를 틀었다. 들고 있던 샌드위치를 놓칠 뻔 했다. 게이사우나에서 봤던 게이커플의 애정행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두운 수면실과는 달리 밝은 불빛 아래에서 뒤엉켜 있는 남성 둘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TV를 껐다.

10여 분이 지났을까? 누군가 기자의 방문을 두드렸다. 문을 여니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맥주 두 병을 기자의 눈앞에 흔들었다. '멍' 했다.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남자에게선 술 냄새가 희미하게 났지만 취하지는 않은 듯 했다. 남자가 말을 건넸다.

"언제까지 세워둘 거야. 한 잔 할래 안 할래? 난 마음에 드는데."

'올 것이 왔나' 싶었다. 일단 남자를 안으로 들였다. 기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은 심히 부담스러웠다. 당황한 기자는 실수를 했다. 신분증을 들이밀며 취재 중임을 밝혔다. 남자는 욕설을 퍼부었다.

"X발. 미쳤냐? 재수 X같네. 아…, 아…, 너 여기서 기다려. 꼼짝 말고 기다려라."

잠시 후 남자 대신 주인이 왔다. 1만원을 돌려주며 나가라고 했다. 괜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고 게이전용 휴게텔은 많았기 때문에 순순히 밖으로 빠져나왔다.

게이전용 사우나
게이전용 휴게텔

스마트폰으로 게이커뮤니티사이트에 접속해 업소정보란을 클릭하고 가장 가까운 휴게텔을 검색했다. 불과 20여 분 거리에 위치한 모 휴게텔을 찾았고 택시를 탔다.   

도착한 휴게텔 역시 송파구에 위치해 있었다. 이번에는 3층. 휴게텔 카운터와 내부 인테리어는 6일 방문했던 게이전용 업소 중 가장 뛰어났다. 1만2000원을 지불하고 복도 끝 방으로 향했다. 가면서 들려오는 역시 굵직한 남성의 신음소리는 3번째 방문임에도 불구하고 기자의 가슴을 벌렁거리게 했다.

이곳에서 기자는 취재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은 역시 험난했다. 처음 기자가 있던 방을 노크한 남성은 외국인이었다. 웃옷을 벗어버린 외국 남성은 다짜고짜 기자를 밀치고 들어왔다. 기자는 "피곤하다. 쉬고 싶다"는 말로 남성을 돌려보내려 했지만 허리띠를 풀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강하게 나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당장 나가지 않으면 주인을 부르겠다"고 말했다.

한참을 쳐다보던 남성은 주섬주섬 바지를 입더니 "조금 있다가 다시 오겠다"며 문을 열고 사라졌다.

이후에도 5분 간격으로 여러 남성들이 기자가 있는 방을 찾았고 그럴 때마다 힘겹게 그들을 돌려보내야 했다. 4~5명을 거절했을까? 술 냄새도 나지 않고 옷도 제대로 입고 있는 20대 후반의 남성이 방으로 들어왔다. 당시 시간은 밤 10시30분께 기자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취재 중임을 밝혔다. 남성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놀라웠다.

"잘됐네요. 오늘 '노땅'들 밖에 없어서 심심했는데…. 여긴 좀 그렇고 나가서 맥주나 한잔 할래요? 물론 기자님이 사시는 걸로 하고…."

남성과 함께 근처 호프집으로 들어섰다. 간단한 안주와 맥주가 나오고 남성과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남성은 자신을 29살의 전문 마사지사라고 소개했다.

남성은 기자가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업소는 45세 이상 남성들은 출입이 불가하다고 했다. 라이터나 휴대폰으로 상대를 확인하는 것도 금지돼 있으며 상대방이 불쾌감을 표시할 경우 즉각 퇴실조치 된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기자는 "여러 명이 한데 뒤엉켜 사랑(?)을 나누는 것이 불쾌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남성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생각해보세요. 남자 둘이 손잡고 일반 모텔 들어가면 어떤 시선으로 보겠어요?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는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거나 여자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우리한테는 아니에요. 이성을 좋아해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요. 종교적으로 따지고 들어온다면 할 말은 없지만 제가 그 종교를 믿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반나절 동안 세 곳의 게이전용 업소를 찾은 만큼 물어볼 필요도 없었지만 "이런 곳이 많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우리들 사이에서는 이니셜만 대도 아는 곳이 많아요. 종로 쪽은 '노땅'들이 많고 이태원은 외국인이 많아요. 이 근처에도 신천에 물 좋은 곳이 하나 있고…."

남성의 얘기를 듣다 보니 어느덧 자정이 넘어 3월7일로 접어들고 있었다. 남성과 기자는 동성을 좋아하고 이성을 좋아한다는 차이가 있었을 뿐 대화는 썩 잘 통했다. 남성은 기자를, 기자는 남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테이블에는 맥주병이 어지간히 널려져 있었다. 남성은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 기자에게 휴대폰 번호를 건넸다.

동성애자
설 공간 없다

"기자님 번호 알려달라면 불쾌할 것 같아서 제 번호 먼저 드려요. 글 쓰시다가 궁금한 게 있거나 필요하면 연락주세요. 그리고 이 말은 꼭 기사에 넣어주세요. 이성애자가 혹시라도 게이들을 위한 업소에 잘못 들어가 불편한 상황에 놓이면 반드시 확실하게 의사를 표현하라고요. 게이들 사이에도 소심한 게이가 있고 또 반대로 적극적인 게이가 있어요. 게이들은 일단 자기들만의 공간에 들어오는 남자들은 게이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하지 않으면 불쾌한 일을 당할지도 몰라요."

남성은 '물갈이'가 됐을지도 모른다며 다시 휴게텔로 들어갔다. 기자도 발걸음을 재촉해 간신히 막차를 탈 수 있었다. 취재 초반에는 상당히 불쾌했지만 취재를 마쳤을 때는 게이들이 안타깝기도 했다. 아직까지 동성애자들에게 배타적인 우리나라에서 그들이 당당하게 설 수 있는 공간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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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