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사법부 개혁, 어디로?

사공이 많으니 배가 산으로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법은 정의의 최후 보루로 여겨졌지만 최근 불거진 ‘사법 농단’ 사태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렸다.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는 정도를 넘어섰고, 국회의 사법개혁 의지는 요원하다. 사법개혁이 공전을 거듭하면서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법 농단 사태는 지난해 2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지면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 이탄희 판사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지시를 받고 법원행정처 근무를 거부했다. 이 판사는 그 해 같은 달 법원행정처 기획2심의관으로 발령받았다. 발령 후 이 판사는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부터 “행정처 기획조정실 컴퓨터에 비밀번호가 걸린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다. 좋은 취지로 한 것이니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판사는 근무 거부 후 겸직해제됐다.

하자고만 하고
요란한 빈수레

이 판사에 대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졌다. 이후 법관의 동향과 성향을 파악한 문건의 존재가 조사를 통해 밝혀지면서 사법 농단 사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판사 블랙리스트 이후 사법 농단과 관련된 의혹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민사소송 개입 ▲전교조 법외노조 소송 개입 ▲통합진보당 전원합의체 회부 검토 ▲‘정운호 게이트’ 및 법원 집행관 수사 기밀 유출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 및 관리 ▲각급 법원 공보관실 예산 동원, 행정처 비자금 조성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진료 특허소송 관여 ▲상고법원 추진 위한 정치권·언론 로비 ▲부산 법조비리 사건 재판 개입 ▲헌법재판소 평의 내용 등 공무상 비밀 유출 ▲일선 법원의 위헌법률제청심판 결정 관여 등 의혹만 10여개에 이른다.

검찰은 사법 농단의 핵심 축으로 대법원과 행정처를 꼽았다.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를 당시 행정처가 이행했다는 게 골자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을 사법 농단의 정점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는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에 번번이 부딪혔다. 법원은 사법 농단 의혹 사건에 연루된 전·현직 판사들을 대상으로 한 영장을 줄줄이 기각했다. 법원의 판단이 ‘줄기각’이란 비판을 받게 된 까닭은 기각률이 일반 사건에 비해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로 촉발된 불씨, 사법 농단 
청구·기각 반복…법원-검찰 ‘영장 대결’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지난 10일, 사법 농단 수사를 위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이 온전히 발부된 건수는 0건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이 발간한 <사법연감>을 박 의원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지난 7월20일부터 10월4일까지 검찰이 사법 농단 수사를 위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의 27.3%가 기각됐다. 일부 기각률은 72.7%를 기록했다.

사법 농단 사건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대부분 기각된 것과 달리 일반사건은 청구된 압수수색 영장 대부분이 발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3∼2017년 5년간 일반사건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발부율은 평균 90.2%를 기록했다. 

영장이 완전히 기각된 비율은 0.8∼1.0% 사이였고, 일부 기각률은 7.4∼10.4%로 나타났다. 일반사건에 대한 영장기각률이 약 1%인 점을 감안했을 때 사법 농단 수사서 유독 영장 발부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법원은 제 식구 감싸기를 넘어 전직 수장을 ‘비호’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영장 기각 횟수와 사유 때문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을 사법 농단의 주요 피의자로 지목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30일 그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이 퇴임 이후 사용 중인 차량에 한해 영장을 발부했다.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부장판사는 ‘주거 안정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갈피 못 잡고
우왕좌왕∼

이후 검찰은 지난 8일, 양 전 대법원장의 자택이 아닌 주거지에 영장을 청구했다. 검찰 수사 결과 양 전 대법원장이 경기도 소재의 한 주거지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은 이마저도 기각했다. 

심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이언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주거, 사생활의 비밀 등에 대한 기본권 보장의 취지에 따라 압수수색은 신중해야 한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영장 기각은 벌써 4번째였다.

사법 농단 사태가 불거진 이후 검찰과 법원은 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검찰은 수사망을 좁혀 양 전 대법원장을 겨냥하고 있지만 법원은 줄기각을 통해 수사에 제동을 걸었다. 사법 농단 수사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면서 여론의 비판은 거세졌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서 여야 의원 관계없이 사법부를 향해 거침없이 날을 세운 이유다.
 

지난 10일,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서 열린 법사위 국감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불거진 사법 농단 사태를 지적했다. 법사위 소속 의원들은 사법 농단 의혹(법관 사찰·재판 거래)과 검찰 수사에 대한 법원의 영장 줄기각, 사법부 개혁 등을 따져 물었다. 

대법원장의 용퇴 요구가 나오기도 했다. 국감 질의에선 검찰 출신 의원들의 발언이 주목을 받았다. 검찰과 법원이 영장을 놓고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 묘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2000년부터 2011년까지 검사로 일했던 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제가 법조 생활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지만 여태까지 주거의 평온과 안정을 이유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사례는 듣도 보도 못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30일, 양 전 대법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것을 정조준한 말이었다.

백 의원은 안철성 행정처장에게 “법관으로 생활하면서 주거의 평온과 안정을 이유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사례를 알고 있느냐”고 질문했고, 안 처장은 “그런 사례를 경험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날 같은 자리에 있었던 행정처 김창보 차장과 이승련 기획조정실장도 마찬가지였다. 백 의원은 “이런 기각에 대해 어떤 국민이 이해할 수 있겠느냐”며 쐐기를 박았다.

검사 출신인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주광덕 의원도 송곳 질의를 이어갔다.

주 의원은 “법원이 전·현직 법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에 있어서 일반 국민에 대한 사건과는 천지차이의 태도를 보이지 않느냐”며 “법원이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결국 치부가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조직 보호,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것 아니냐는 게 국민들의 보편적인 시각”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사법 농단을 밝히자는 거냐, 덮자는 거냐”라고 비판했다. 

민주평화당(이하 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김 대법원장이 진심으로 사법부를 사랑하고 존경한다면 선택과 집중을 해서 개혁하고 용퇴해야 한다. 사법부를 위해 순장하라”며 발언 수위를 높였다.

사법부 개혁에 대한 요구도 있었다. 

평화당 박 의원은 “국민 73%가 특검 도입을, 77.5%가 특별재판부 설치를 지지한다”며 “국민 열 명 가운데 일곱 명 이상이 현재 사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한국당 주 의원 역시 “지금 수사로 법원에 기소하면 국민 여론과 같이 특별재판부를 구성해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법관들로 특별재판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역시 긍정적이었다. 

민주당 법사위 위원들은 지난달 11일, 국회 정론관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정한 재판을 위해 필요하다면 특별재판부 설치도 추진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검 vs 법
힘겨루기

국회 법사위원들의 특별재판부 주장은 사법부 개혁을 위한 조치 중 하나다. 실현 여부를 떠나 의원들의 사법개혁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사법부 개혁을 위한 정당 간 협의는 매끄럽지 못했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이하 사개특위)는 원 구성 합의를 쉽게 이뤄내지 못했다. 올해 연말까지 운영될 사개특위는 지난 7월26일 국회 본회의서 구성 결의안이 통과됐다. 국회법상 본회의서 특위구성결의안이 통과되면 5일 이내에 원 구성을 해야 한다. 

지난 7월 결의안이 통과됐지만 국회는 스스로 규정을 어겼다.

사개특위원 구성이 이번 달 안에 마무리된다 하더라도 시간이 부족하다. 연말까지 이번 달을 포함해 약 두 달 정도 남았다. 사개특위가 다룰 현안 역시 만만치 않다. 

사개특위는 사법 농단 규명을 비롯한 검경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사개특위가 시간을 허비하면서 국회 스스로 사법 개혁의 의지가 없다는 것을 표명하고 있는 셈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 8일 SNS, 페이스북을 통해 “행정처 폐지 등 사법 개혁은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며 입법 조치를 국회에 요청했다. 조 수석은 “(사법개혁은)사법부가 주도하되, 입법사항인 만큼 국회가 매듭지어야 한다”며 “국회 사개특위의 활동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조속한 사개특위 구성을 당부한 것이다.

사개특위 위원장인 민주당 박영선 의원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근 국민에게 좌절감을 안긴 양 전 대법원장 시절 행정처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법리 검토 문건 작성 사실 등을 봤다”며 “법원 개혁도 피할 수 없는 사법개혁의 중요한 과제임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10월 국감이 종료된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해도 연말까지 사법 개혁을 마무리 짓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국회뿐 아니라 대법원서도 사법 개혁의 일환으로 대법원장의 자문기구를 구성했다. 대법원은 지난 2월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대법원은 위원회를 발족하면서 ‘재판 중심 사법행정’ 등 개혁과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사법 농단 사태가 불거졌던 당시 대법원이 사건의 중심축으로 작용했던 만큼 상응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위원회의 활동기간은 올해 말까지다. 필요 시 6개월 이내로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국회-대법원 개혁 투트랙…가능성은?
상황 진척 없어, 국민적 비판 임계점 

위원회는 ▲적정하고 충실한 심리를 위한 재판 제도 개선 ▲재판 중심의 사법행정 구현을 위한 제도 개선 ▲좋은 재판을 위한 법관인사제도 개편 ▲전관예우 우려 근절 및 법관 윤리와 책임성 강화를 통한 사법신뢰 회복방안 마련 등 4대 개혁과제 관련 안건을 심의한다. 위원회는 심의 결과를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건의하게 된다.

위원회는 지난 3월16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지난 2일까지 총 9차례의 회의를 진행했다. 위원회는 최근까지 행정처의 사무처 변경 권고안과 법관 인사 이원화 완성, 영상재판 등 스마트법원 4.0 사업, 검찰개혁, 판결문 공개 확대 사안 그리고 민·형사 판결서 통합 검색·열람 시스템 도입 등을 도출해냈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10일 대법원서 열린 법사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향후 개혁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위원회서 건의된 사항들을)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사법발전위원회 건의 실현을 위한 후속추진단’이 곧 활동을 개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대법원서 법사위 국감이 열린 다음날 사회원로와 시민사회, 민중단체, 정당 등 각계 단체 인사 300여명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모여 사법 적폐 청산을 주장했다.

이날 최병모 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은 “사법 농단 피해를 입은 피해자를 구제하기엔 기존의 재심제도 조건이 너무나 까다롭다”며 “특별법 제정을 검토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다 결국
흐지부지?

하태훈 참여연대 공동대표는 “전관예우 사태가 계속되면 특별 재판부와 특별영장담당 법관을 지명할 수 있는 특별법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번 정기 국회서 반드시 해결돼야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리더십으로 실현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정치권에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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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