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5개월, 그 후…

초대형 이슈에 쥐 죽은 듯 고요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올 상반기는 여느 때보다 굵직한 이슈가 많았다. 동계올림픽, 북한 비핵화 이슈를 둘러싼 남·북·미 정상회담, 6·13지방선거 등 대형 이벤트가 6개월 새 치러졌다. 여기에 하나의 사회 현상이 각계각층을 휩쓸었다. ‘미투’ 운동이다. 미국발 허리케인은 올해 1월 한국에 상륙해 대형 태풍으로 발전했다. 이후 5개월, 바람은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지난해 한국 사회는 유례없는 풍파에 휘말렸다. 2016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해를 넘겨서까지 사회를 뒤흔들었다. 누적 인원 1300만명이 넘는 시민이 촛불을 들고 겨울 거리를 누볐다. 그 결과 지난해 3월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됐다. 헌법재판소는 만장일치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더 이상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파란만장 6개월
대형이벤트 몰려

대통령 탄핵으로 같은 해 5월 장미대선이 치러졌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재수 끝에 1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보궐선거 개념으로 진행된 선거였기에 문 대통령은 인수위 기간 없이 바로 업무에 돌입했다. 정치권, 검찰, 경찰, 재계 등 각계각층서 적폐 청산의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어졌다.

‘다이나믹 코리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숨 가쁘게 지나간 지난해에 이어 2018년 역시 연초부터 다양한 사건사고가 일어났다. 지난해에는 사회를 달군 이슈가 대부분 국내서 비롯됐다면, 올해는 그 범위가 국내외를 넘나들었다.

먼저 2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동계올림픽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팽배했지만 남북 단일팀 구성, 북한 고위급 관계자 방남 등 개최 직전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뜻밖의 성공을 거뒀다. 


그 여세를 몰아 북한 비핵화 이슈를 둘러싼 남북·한미·북미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렸다.

이후 6·13지방선거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압승을 거뒀다. 동계올림픽, 정상회담 등 전 세계인의 눈이 쏠리는 대형 이벤트와 전국 단위 선거가 6개월 새 이어지면서 그 어떤 이슈도 국민들의 관심을 길게 잡아두지 못했다. 

동계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남북 관계 개선 모드에 가라앉고, 지방선거가 드루킹 특검, 북미 정상회담 등에 가려진 형국이다.

그 많던 미투는 어떻게 됐을까
가해자 지목 인사들 ‘우수수∼’

그런 와중에 지난 1월부터 꾸준히 관심의 대상이 된 이슈가 있다. 바로 ‘미투(#Me Too)’ 운동이다. 지난해 10월 미국서 처음 시작된 이 운동은 올해 1월 한국 사회를 강타했다. 미투 운동은 대형 이슈 사이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지속적인 관심을 받았다. 성역 없이 각계각층에서 불거진 미투 운동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앞서 미국에선 미투 운동이 일어나기 전 유명 영화제작자의 성추문 사건이 불거졌다. 주인공은 할리우드의 실력자로 알려진 하비 와인스타인. <뉴욕타임즈>는 그가 무려 30여년에 걸쳐 영화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성추행 해왔다고 보도했다.

보도 당일 와인스타인은 “동료들에게 많은 고통을 준 것을 인정하며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에게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하나 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그가 대표로 있던 와인스타인 컴퍼니 직원들뿐만 아니라 기네스 펠트로, 우마 서먼 등 세계적인 여배우들의 폭로도 이어졌다. 결국 그는 할리우드서 추방됐다.

미국발 허리케인
한국엔 태풍으로

미투 운동의 시초는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미국의 흑인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저소득층 지역 젊은 여성 성폭력 생존자들의 치유를 돕기 위해 SNS에 “Me too(미투)”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시작됐다는 게 학계의 시각이다. 

당시 타라나 버크는 성추행 피해를 고백한 10대 소녀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어 답답해하던 중 ‘미투’라고 말했다고 한다.
 

미투 운동이 공개 운동 성격을 띠기 시작한 것은 와인스타인의 성추문 사건 이후다. 지난해 10월 영화배우 알리사 밀라노는 SNS를 통해 미투 운동을 제안했다. 그는 SNS에 ‘Me Too’라는 해시태그를 달고(#MeToo)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백하는 방법으로 심각성을 알리자고 주장했다.

알리사 밀라노의 제안 이후 24시간 만에 약 50만명이 넘는 사람이 리트윗 방식으로 지지를 표했고 10만명에 육박하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놨다. 미투 운동은 성폭력 피해자의 용기와 주변 사람들의 공감, 연대가 합쳐져 파괴력을 갖기 시작했다.

한국의 미투 운동은 서지현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검사의 폭로로 시작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서 검사는 지난 1월29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2010년 겪은 검찰 내 성추행 사건에 대해 언급했다. 

서 검사는 이날 인터뷰서 “서울북부지검에서 근무했던 2010년 문제의 사건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서 검사는 2010년 한 장례식장서 안태근 전 법무부 감찰국장이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고 엉덩이를 쓰다듬는 행위를 하는 등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는 법무부장관도 같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뿐만 아니라 안 전 감찰국장으로부터 부당한 인사발령도 당했다고 강조했다.

현직 검사의 공개 고발은 법조계는 물론 각계각층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불씨는 문화예술계로 번졌다. 연극계, 문단 등 해당 분야서 거장으로 불리던 인사들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다. 문화예술계는 피해 사실을 고백한 사람의 수가 많고 그 수위 또한 상당했다. 그중 가장 충격을 준 인사는 연극계 거장 이윤택 연출가다.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는 지난 2월 SNS를 통해 이 연출가와 있던 일을 폭로했다. 김 대표는 10여년 전 지방공연 당시 이 연출가에게 안마를 하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 과정서 이 연출가가 바지를 내리고 신체 일부를 주무르라는 등 성적 행위를 강요했다고 덧붙였다. 또 이 같은 행위가 여자 단원들을 대상으로 상습적으로 이뤄졌다고 고발했다.

연극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이 연출가는 김 대표의 폭로 전 연희단거리패, 가마골소극장, 밀양연극촌 예술 감독으로 활발한 활동 중이었다. 연극계 관계자는 물론 대중들이 나서서 이 연출가의 해명과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김 대표의 고발 이후 5일 만에 기자회견을 갖고 공개 사과했다.

하지만 진정성 없는 ‘반쪽 사과’ 논란이 불거지면서 오히려 연극계 미투 운동에 기름을 부었다. 이 연출가는 이날 기자회견서 성추행 의혹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합의에 의한 성관계는 있었지만 폭력적이거나 물리적인 강압을 통한 성폭행은 없었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법적 절차가 진행된다면 성실히 수사에 임하겠다”고 공을 법정으로 넘겼다.
 

그러나 기자회견 이후 이 연출가의 성폭행으로 임신과 낙태를 했다는 김지현 전 연희단거리패 단원의 고발이 나왔다. 또 이 연출가가 기자회견 전 리허설을 했다는 내부 고발까지 터지면서 그는 사면초가 상태에 처했다. 결국 극단원에 대한 상습적인 강제 추행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 연출가는 오는 20일 첫 재판을 앞두고 있다.

가해자 민낯에
대중 분노 폭발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인 고은 시인의 성폭력 의혹도 불거졌다. 안 그래도 ‘문단 내 성추행’ 문제로 전 국민적 비난의 대상이 됐던 문학계는 원로시인의 민낯에 만신창이가 됐다. 고은 시인의 경우는 미투 운동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해 12월 계간지 <황해문화> 겨울호에 최영미 시인이 게재한 시 ‘괴물’이 알려지면서 활활 타올랐다.

최 시인의 괴물에는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등의 구절이 담겨 있다. 여기서 En에 해당하는 인물이 고은 시인이라는 것. 


류근 시인은 최 시인의 폭로 이후 “고은 시인의 성추행 문제가 드디어 수면 위로 드러난 모양”이라는 내용의 글을 SNS에 올렸다. 고은 시인의 행위가 상습적이었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연예계서도 미투 운동이 크게 불거졌다. 배우 고 조민기, 조재현, 오달수 등 대중 인지도가 높은 배우들이 성폭력 가해 의혹을 받고 구설에 휘말렸다. 이들 역시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피해자를 대상으로 성폭력을 가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특히 대학 강단서 교수로 강의를 하던 조민기는 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추행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 대중을 경악케 했다. 줄지어 불거진 의혹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조민기는 카카오톡 대화 메시지가 공개되고, 학과 남학생들의 증언이 이어지자 결국 지난 3월 경찰 소환을 앞두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조재현은 김기덕 감독과 함께 시사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전락하는 신세에 처했다. MBC 시사프로그램 <PD수첩>은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 편을 통해 김 감독과 조재현 그리고 조씨의 매니저가 여배우를 상대로 상습적인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의혹에 대해 보도했다.

지난 3개월 간 그 어떤 대응도 하지 않던 김 감독은 3일 <PD수첩> 제작진과 방송서 인터뷰한 여배우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며 법정 공방을 예고했다. 김 감독은 방송 이후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지난 1월 상륙…지금은 조용∼
2차 가해 때문? 여성운동 확산?

정치권에 떨어진 미투 폭탄은 그 파괴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현직 도지사였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는 김지은 전 정무비서의 고발로 정치 생명이 끊겼다. 김 전 비서는 방송에 나와 8개월 동안 4번에 걸쳐 안 전 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비서의 폭로로 안 전 지사는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서 경찰 조사를 받는 신세로 추락했다.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려던 정봉주 전 의원 역시 미투 문제로 낙마했다. 한 언론의 단독 보도로 시작된 정 전 의원의 미투 의혹은 진실 공방이 벌어지면서 대립각을 세웠다. 정 전 의원은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이 말하는 시간, 장소에 있지 않았다고 강조했지만 카드 사용 기록이 나오면서 결국 3월 말 출마 의사를 접었다.

서 검사의 폭로 이후 약 3개월 간 미투 고발은 하루에 한 건 꼴로 터져 나왔다. 특정 인물이 검색어 순위에 올라 있으면 십중팔구 미투 관련일 정도였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인사들은 각 분야의 거장이든 유력 대선후보든 할 것 없이 추풍낙엽처럼 쓸려갔다. 

하지만 최근 태풍은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미투 관련 폭로가 여전히 나오고는 있지만 불과 몇 개월 사이 성량은 줄어들었다.

일각에서는 대형 이슈가 미투 운동을 잠식했다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올림픽 등 대형 이슈가 있던 때에도 미투 운동은 국민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단발성 이슈가 아닌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인식됐기에 관심이 쉽사리 식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최근 미투 운동이 잠잠해진 것을 두고 대형 이슈에 따른 관심 분산보다는 2차 가해가 두려워 다시금 피해자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미투 관련 언론보도를 보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근황, 해명 등을 많이 볼 수 있다. 검찰 고발이 이뤄진 사건은 법정 공방의 진행 상황을, 성폭력 가해 의혹을 받고 있는 인사의 반박 자료 등이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할 점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폭로 이후 2차 가해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 조민기의 자살 이후 그를 고발했던 피해자들은 ‘죽이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받는 등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안 전 지사의 성폭력 의혹을 고발한 김 전 비서는 신상이 모조리 털렸다. 김 전 비서를 둘러싼 온갖 근거 없는 소문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또 미투 운동이 남녀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모습도 나타나면서 불이익을 우려한 피해자들이 다시 입을 다물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미투 운동이 한창 진행될 무렵 ‘펜스룰’이 유행했다. 문제의 소지가 발생하지 않도록 이성과의 접촉을 아예 차단하자는 움직임이다. 

일부 기업에선 직원 선발 과정서 아예 여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한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반면 조용해진 미투 운동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도 있다. 폭발력이 줄어든 대신 광범위한 여성 운동으로 정착했다는 시각이다. 최근 혜화역 시위 등 여성의 주최로 진행되는 일련의 행위가 미투 운동의 연장선상이라는 설명이 나오고 있다. 

혜화역 시위는 홍익대 누드모델 사건에 대한 비판에서 촉발돼 ‘몰카 없는 세상’을 외치는 집회로 발전했다. 두 번의 집회에 각각 2만명이 넘는 여성들이 참여했다.

멈출까 확산될까
본질 훼손 우려도

한편 일각에서는 미투 운동의 변질을 우려하고 있다. 최근 미투 운동을 표방하며 불거진 일련의 사건이 공방 끝에 다른 진실을 드러내는 경우가 왕왕 있어 본질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일이 반복될 경우 정말로 미투 운동이 필요한 권력형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이 주변의 연대와 공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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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