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도래지’ 민주당 왜?

새도 되니깐 개나 소나…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바람이 거세다. 여당과 문재인 대통령(이하 문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율은 그 바람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오는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서 민주당 깃발이 얼마나 꽂힐 수 있을지 주목되는 까닭이다. 시금석은 ‘험지’로 통하는 지역에 있다. 민주당은 오랜 시간 보수적 성향으로 다져진 지역을 대상으로 반전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여당과 대통령에 대한 지지만으로 보수세가 강한 지역민심을 혁파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보수정당에 몸을 담고 있던 전·현직 인사가 민주당 문을 두드리고 있다. 민주당 바람을 타고 선거승리를 기대하는 인사들과 보수성이 짙은 지역을 타개하고자 하는 민주당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어느 정도 상통한다는 해석이다. 반면 철새 도래지, 정치적 이합집산이라는 지적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당 정체성이 흐려질 수 있다는 점과 당원의 비판 역시 감당해야 할 리스크다. 

선거 앞서
보수인사 영입

지난달 27일 김양호 삼척 시장이 민주당에 입당했다. 김 시장은 2008년 자유한국당(이하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을 탈당했고, 지난 6·4 지방선거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약 25%p라는 큰 차이로 삼척시장에 당선됐다. 

김 시장은 이번 6·13지방선거서 민주당 소속으로 삼척시장 재선에 도전한다. 

김 시장은 “원전백지화에 종지부를 찍어주는 정당에 가입한다고 주민들과 약속했다”며 “원전구역 고시해제를 약속한 민주당과 뜻을 같이하기로 했다”고 입당 이유를 밝혔다. 그는 “보수 텃밭이라 일컫는 영동지역서 당세 확장을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겠다는 심정으로 저의 모든 힘을 보탤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삼척서 승기를 거머쥘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다. 삼척서의 승리는 단순한 선거구 1곳의 승리가 아닌 ‘보수 텃밭’이라 일컬어지는 영동지역에 균열을 낼 수 있는 기회로 평가된다.

강원도는 민주당의 험지로 꼽힌다. 보수세가 강한 이유에서다. 지난 6·4 지방선거서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민련)은 18개의 기초단체장 선거구 중 단 1곳(원주)서 승리했다. 새누리당은 15곳서 승리를 거뒀고, 나머지 2곳(삼척, 속초)은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당시 무소속으로 당선된 이병선 속초시장은 작년에 한국당으로 입당했다.

이번 지방선거서 민주당의 고전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선거서 상대적으로 민주당과 한국당의 격차가 크게 났던 곳은 총 10곳(춘천, 강릉, 동해, 태백, 고성, 횡성, 영월, 화천, 양구, 철원)이었고, 비교적 격차가 적은 곳은 총 5곳(인제, 홍천, 양양, 평창, 정선)이었다. 

격차가 컸던 10개 선거구 중 3곳(고성, 화천, 철원)에서는 현직 군수가 재선에 도전한다. ‘현역 프리미엄’과 함께 보수성을 띠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이번 지방선거서도 한국당이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옷으로 갈아입은 한국당 인사
승리 전략은 보수인사 영입에 있다? 

격차가 적었던 5개 선거구 중 4곳(인제, 홍천, 양양, 평창)서도 현직 시장과 군수가 재선에 도전하지만 한국당의 일변도 승리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인제와 홍천의 경우에는 리턴 매치가 주목된다. 
 


이순선 인제군수는 지난 선거서 맞붙었던 당시 새민련 최상기 후보(현 민주당 예비후보)와 만나게 됐고, 노승락 홍천군수도 당시 무소속 허필홍 후보(현 민주당 예비후보)와 선거전을 치르게 됐다. 특히 민주당 허 예비후보는 지난 홍천군수 투표 결과 0.64%p 차이로 석패했다. 

지난 양양군수와 평창시장 투표 결과, 상대 후보와의 격차는 각각 5%p, 9%p 정도로 상당한 수준의 격차는 아니었다. 지난 정선군수 선거 상황도 비슷했다. 이번 정선 군수 선거에 나서는 민주당 최승준 예비후보는 당시 새민련 후보로 나서 약 9%p 차이로 패배했다. 

민주당이 인제 등 4곳과 정선을 차지할 가능이 완전히 배제되지 못하는 이유다.

민주당의 최문순 강원도지사의 3선 연임에도 이목이 쏠린다. 비록 3선 피로감과 춘천 레고랜드 사업 지연 책임과 같은 걸림돌이 있지만 평창동계올림픽의 개최와 남북 평화무드에 통로 역할을 했던 점 등을 내세울 때 이점 역시 충분하다.

최 지사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의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그 기로에 서있다는 평이다.  

‘진보의 불모지’로 불리는 경남도서도 민주당은 인사영입을 통해 반전을 꾀하는 모양새다. 당시 권민호 거제시장은 작년 4월 한국당을 탈당한 후 민주당에 입당했다. 그는 지난달 경남도지사 출마를 위해 시장직을 내려놓았다. 

행보를 이어갔던 그는 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경남지사 후보로 나서자 김 의원의 단일 후보를 지지하며 후보직서 물러났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허기도 산청군수는 지난 2월3일 한국당을 탈당한 후, 지난 2월7일 민주당에 입당했다. 허 군수는 “더 큰 힘으로 일 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일하고 싶다”며 “여당서 못다 한 고향 일을 하고 정치를 끝내고 싶다”고 밝혔다. 

허 군수는 이번 지방선거서 민주당 소속으로 재선에 도전한다. 산청군에 민주당이 깃발을 꽂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국당 출신 경남지역 기초단체장들의 민주당 입당은 선거 구도의 변형을 야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남지사에 도전하는 민주당 김경수 의원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김 의원은 경남지역에 발을 내딛어 민주당의 오랜 숙원을 풀어주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의도가…
선거전략은?

아직까지도 경남은 민주당의 대표적인 험지로 평가된다. 지난 지방선거서 18개 기초단체장 선거구 중 새민련은 1곳(김해)서 힘겹게 승리했다. 당시 표차는 0.12%p였다. 이에 반해 새누리당은 14곳(창원, 진주, 통영, 고성, 밀양, 거제, 함안, 창녕, 양산, 남해, 함양, 산청, 거창, 합천)서 승리를 거뒀다. 나머지 3곳(사천, 하동, 의령)은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당시 무소속으로 당선된 송도근 사천시장과 윤상기 하동군수는 작년에 한국당으로 입당했다. 김해 지역과 무소속 후보의 난립으로 표가 흩어졌던 하동군을 제외하면 나머지 17곳 모두 새누리당과 새민련의 격차가 큰 편이었다.

경남지역 기초단체장 선거구 중 3곳(사천, 양산, 남해)서 현직 시장과 군수가 재선을 노리고 있어 민주당에게 어려움이 예상된다.

그러나 민주당은 보수성으로 다져진 경남에 균열을 낼 수 있는 환경에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당 내 공천 갈등이 그 이유다. 한국당의 갈등은 민주당의 ‘경남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질서가 잡히지 않은 당내 분위기는 민심에게서 외면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당은 창원시장 후보를 결정하는 과정서 경선을 치르지 않았다. 한국당은 창원시장 후보에 조진래 전 경남도 정무부지사를 공천하기로 했다. 조 전 지사는 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측근이다. 

이에 반발한 안상수 현 창원시장은 탈당과 함께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는 입장이다. 책임당원들 역시 공천에 반발해 집단 탈당을 예고했다.

사천시의 경우도 대동소이했다. 한국당 사천시장 후보로는 송도근 현 사천시장이 전략공천 됐다. 공천서 탈락한 박동식, 이종범, 송영곤 예비후보는 기자회견을 열어 송 시장의 공천 취소를 촉구했다. 
 


이들은 취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집단 탈당과 무소속 출마, 후보 단일화가 있을 것이라 밝혔다.

김해시의 경우 김동순 예비후보가 당과 갈등을 겪었다. 김 예비후보는 경선 룰이 불공정하다며 반발했고, 한국당은 김 예비후보가 두 차례의 경선 합의를 거부해 정장수 후보를 단수후보자로 공천했다며 해명했다.

남해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당 공천을 신청했던 이철호 예비후보는 “사전에 공천이 이미 결정됐다는 징후를 느꼈다”며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거창군의 경우 최기봉 예비후보자가 당내 경선방식에 대해 “경선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경선 날짜도 잡지 않고 서둘러 단수로 결정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보수 표밭’으로 일컬어지는 강원도와 경남은 강한 보수성을 보이는 지역적 특성과 현직 인사들의 재선 도전으로 인해 이번 선거서도 구도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한 선거에 보수층의 와해는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6일 CBS 의뢰로 박 전 대통령의 적정 형량에 대한 국민여론을 조사한 결과 강원도에선 ‘과하다’는 응답이 17.4%, ‘부족하다’는 의견이 23.6%으로 나타났다. 

부산·경남·울산에선 각각 35.6%, 36.5%로 비교적 고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주당이 결속력을 잃은 보수적 민심의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보수텃밭
깃발 꽂나

또한 민주당과 문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으로 인해 강원과 경남지역 선거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평가가 있다. 

지난 11일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조사한 4월 2주차 주간집계 결과를 보면 민주당과 한국당에 대한 강원도의 지지도는 각각 39.0%와 26.0%다. 부산·경남·울산에서는 각각 44.8%와 27.8%의 지지를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서도 강원도는 61.3%, 부산·경남·울산은 61.9%가 ‘잘한다(매우잘한다+잘하는편)’고 응답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지난 6·4 지방선거서 당시 새민련은 서울지역 25개 기초단체장 선거구 중 중구, 중랑구, 강남3구(서초구, 강남구, 송파구)를 제외한 20개 지역서 모두 승리했다. 패배한 5개 지역 중 특히나 강남 3구는 보수적 성향이 강한 곳으로 평가된다. 

민주당은 이번 지방선거서 강남 3구에 민주당 바람을 일으키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강남구의 경우 신연희 전 강남구청장이 공금횡령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민주당에게는 이 상황이 다소 호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송파구의 경우 한국당 소속 박춘희 현 송파구청장이 3연임에 도전한다. 
 

지난 선거 당시 새누리당 박춘희 후보는 새민련 박용모 후보와의 대결서 약 10%p 차이로 승리했다. 서초구서도 한국당 소속 조은희 현 서초구청장이 재선에 나선다. 당시 새누리당 조은희 후보는 새민련 곽세현 후보와의 대결서 약 17%p의 차이를 보이며 승리했다.

보수 성향 험지에 반전 노려
“당 정체성 흐릿해져” 우려도

이에 맞서는 민주당 예비후보 중에서 진익철 서초구청장 예비후보가 눈에 띈다. 진 예비후보는 5회 지방선거서 서초구청장에 당선된 인물로 당시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진 예비후보는 지난 대선 때 당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며 민주당 옷으로 갈아입고, 문재인 후보 캠프서 활동했다. 

진 예비후보는 문 대통령의 책 <운명>서 문 대통령의 경남고 동기로 등장한다. 전 서초구청장으로서 중량감이 있는 인물인 만큼 민주당 후보로 나선다면 이번 서초구청장 선거서 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론 역시 민주당의 서울지역 선거 승리라는 목표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 11일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조사한 4월 2주차 주간집계 결과 민주당과 한국당에 대한 지지도는 각각 54.1%, 14.7%다. 

문 대통령에 대한 국정수행평가에도 68.6%가 ‘잘한다(매우 잘한다+잘하는 편)는 응답을 보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주당의 보수인사 영입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선거 승리라는 목표에 치우치다 보니 당선 가능성만 바라보고 영입을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로 인해 민주당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보수인사 영입에 따라 그 지역 예비후보자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도 간과하기 어렵다.

외연 확장이라는 당의 입장을 대승적으로 수용한다 하더라도 성실하게 선거를 준비해 온 후보자들에게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영입 인사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있다. 민주당과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오늘날처럼 높지 않았어도 입당할 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당내 잡음
비판 목소리


정치인과 정당이 선거 승리에 주안점을 두는 것에 대해 비판하기란 다소 무리가 있다. 선거서 승리해 입지를 다지고 정책을 실현하는 건 그들에게 있어 하나의 책무로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선거는 국민들로 하여금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무대이기도 하다. 다만 선거 과정서 보여지는 그들의 행보는 유권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16번’ 철새의 새 둥지는?

이인제 한국당 고문은 6·13 지방선거 충남도지사로 출마한다. 한국당은 이 고문의 전략공천을 사실상 확정했다. 

이 고문은 “나보다 젊고 유능한 인물이 나와 반드시 승리를 이끌어주길 고대했지만 홍 대표도 간곡하게 요청했고 당 재건을 위해 이 자리에 왔다”고 밝혔다. 

이 고문은 지금까지 당적을 총 16번 변경했다. 이 고문은 통일민주당을 시작으로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국민신당,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연합을 거쳐 국민중심당, 민주당, 중도통합민주당, 민주당, 통합민주당, 자유선진당, 선진통일당, 새누리당 그리고 자유한국당을 종점으로 한국당 고문 자리에 있다. <수>


<기사 속 기사> 민주당 본선 은 경선

민주당의 높은 지지율로 '당내 경선 승리가 곧 본선서의 승리'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른 후보들 및 지지자들 간의 네거티브 공방전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네거티브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는 데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경기도지사 예비후보인 전해철 의원을 비방한 트위터 계정 사건이 대표적이다. 

전 의원에 대한 허위사실과 문 대통령에 대해 원색적 비난을 쏟아낸 계정의 주인이 경기도지사 경선에 나선 이재명 전 성남지사의 부인이라는 논란이 발생했다. 경쟁과정서 발생할 수 있는 일이지만 진흙탕 싸움이 지속되다 보면 지지자들 사이서 피로감을 호소할 가능성이 높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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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