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먹는’ 토익의 이면

깜깜이 시험에 취준생 허리 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요즘 청년들은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가졌다는 말을 듣는다. 그들은 잠 줄이고 돈 쏟아가며 스펙을 쌓는다. 기업들은 스펙보다는 업무능력이라며 ‘탈 스펙’을 외치지만 취업준비생들은 쉽게 그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토익은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에 해당하는 시험이다. ‘스펙탑’의 시작점으로 불리는 토익의 이면을 <일요시사>가 들여다봤다.
 

기온이 영하 10도를 밑도는 최강 한파가 몰려왔다. 체감온도는 영하 20도에 달한다. 사람들은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몸을 움츠리고 있다.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에겐 이번 한파가 더욱 뼈아프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꽁꽁 얼어붙은 취업시장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취준생의 겨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스펙 높은데
취업은 안 돼

지난해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역대 최악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부가 일자리 정책을 추진 중이지만 청년들이 느끼는 체감 수준은 아직 낮은 모양새다. 

지난 1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층 실업률이 2000년 이래 가장 높은 9.9%로 집계됐다. 2013년 8.0%, 2014년 9.0%, 2015년 9.2%로 해마다 악화되고 있다.

여기에 체감실업률을 나타내는 ‘고용보조지표3’은 22.7%로 전년보다 0.7% 포인트 높아졌다. 체감실업률은 근로시간이 주당 36시간 미만이면서 추가로 취업을 원하는 근로자와 비경제활동인구 중 지난 4주간 구직활동을 했지만 취업이 불가능한 경우를 모두 실업자로 보고 계산한 수치다. 


공식 실업자의 경우 경제활동인구 중 지난 4주간 일자리를 찾았지만 1시간 이상 일하지 못한 사람의 수로 따진다.

반현준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최근 청년 고용상황이 안 좋다”면서도 “11월은 공무원 추가 채용 시험 원서 접수가 있었고 12월은 조사 대상 기간에 지방직 공무원 시험이 있었다. 그래서 20대와 청년층 중심으로 기존 구직단념자 취업준비생이 실업자로 옮겨온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분석했다. 

구직 단념자는 취업의사와 능력이 있음에도 아예 구직에 나서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청년실업률 역대 최악
스펙에 돈쓰는 청춘들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는 취업 장벽에 취준생은 갈팡질팡 감을 못 잡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공공일자리 증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근로시간 단축, 블라인드 채용 등 노동 관련 이슈를 쏟아내고 있지만 취업시장의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취업절벽에 몰린 취준생은 결국 스펙 시장으로 내몰린다.

스펙은 영어 ‘Specification’서 유래한 말로 2004년 국립국어원 신어 자료집에 수록된 단어다.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서 학력·학점·토익 점수 따위를 합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스펙은 취준생의 무기로 작용한다. 그들은 남들과는 차별화된 스펙을 쌓기 위해 숱한 도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20∼30대에만 겪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채우기 위한 도구로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스펙에 대한 취준생의 압박감은 이미 한계수준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아르바이트포털 ‘알바몬’이 지난 8월 4년제 대학교에 재학 중인 대학생 772명을 대상으로 8월 졸업식을 뜻하는 ‘코스모스 졸업’에 관해 물었다. 그 결과 대학생 10명 중 3명은 코스모스 졸업을 하겠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졸업을 유예해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해’라는 답변이 37.9%로 가장 많았다.

너도 나도 스펙 쌓기에 돌입하면서 경쟁이 심화됐다. 과잉 경쟁은 잉여 스펙, 과잉 스펙 등의 문제점을 낳았다. 스펙을 많이 쌓아도 취업을 못하고 백수로 전전하며 빈곤층으로 빠져드는 취준생을 뜻하는 스펙푸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그만큼 요즘 청년층은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가졌다고 평가 받으면서도 취업 문턱에서 좌절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부 기업 등 사회 한편에서는 탈 스펙의 움직임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지만 정착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점수나 자격증 유무 등으로 지원자를 가릴 수 있는 스펙을 배제한 채 직무 능력으로만 직원을 선발하는 건 공공기관은 물론 중견·중소기업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또 일각에서는 스펙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처럼 사회 분위기상 취준생들은 아직 스펙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원하는 단체나 기업에 맞는 역량은 따로 쌓더라도 기본 스펙은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점수 상향 평준화
그래도 토익 시험

그중에서도 토익은 ‘스펙탑’의 가장 아랫부분에 있는 시험이다. 점수가 높든 낮든 취준생이라면 토익 성적표 하나쯤은 갖고 있다는 뜻이다. 예전만 못하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취업시장에서 토익의 위상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2016년 기준으로 한 해 동안 200만명이 토익 시험을 봤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는 수험생이 매년 60만여명인 것을 감안하면 가히 어마어마한 숫자다.

토익 문제의 출제와 개발을 맡은 미국의 미국교육평가원(ETS)은 지난 2011년 전 세계 토익 응시 인원이 600만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그 해 우리나라의 토익 응시 인원은 210만명으로 전 세계 응시자의 무려 40%를 차지했다. 

만점(990점)을 받은 응시자도 회화 등 실전서 부족함을 드러낸다는 토익무용론이 수년째 불거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서 토익의 독점적 지위는 공고하다.

2015년 채용공고 1000여건 중 94%가 토익 점수를 채용에 활용했고, 25%는 일정 점수 이상을 지원 자격으로 삼았다. 일부 대학은 졸업 조건으로 특정 기준 이상의 토익 점수를 요구한다. 


졸업과 취업에 있어 가장 밀접한 시험인 셈이다. 최근에는 공무원시험에도 토익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국가공무원 7급 영어시험이 자체 시험이 아닌 토익이나 토플, 텝스 등 영어능력검증시험 제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공무원 시험에도
민간·공적 독점

지난해 10월30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사혁신처로부터 받은 국가공무원 7급 응시자 영어성적 제출 현황에 따르면 토익 성적을 낸 응시자가 전체(2만4437명)의 91.2%인 2만2287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7급 공무원 응시자 10명 가운데 9명이 토익으로 영어 성적을 대체한 셈이다.

지난해 7급 응시자는 4만8361명으로 전년 대비 27.5%나 감소했다. 국가공무원 9급 응시자수가 매년 사상 최대 규모를 갱신하는 것과는 대비되는 대목이다. 인사혁신처는 지난해 국가공무원 7급 응시자가 2만명 가까이 줄어든 것이 영어 때문이라고 말했다. 

초기 단계서 일정 점수 이상의 공인 영어 성적을 받지 못한 응시자들이 걸러졌다는 것이다.


국가직 7급 국가검정능력시험 통과 기준 점수는 토익 700점 이상, 텝스 625점 이상, 지텔프 65점 이상(레벨2), 플렉스 625점 이상, 토플 PBT 530점 이상, CBT 197점 이상, IBT 71점 이상이다. 

토익은 다른 시험에 비해 준비 과정이나 방법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응시자들의 선호도가 높다.

그러면서 토익무용론은 토익 독점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구직과 사내 평가 등 민간 영역은 물론 공무원 채용의 공적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서 우월적 지위를 노리고 있는 시험이 아예 독점적 지위를 얻어 그에 따른 폐해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너도 나도 고득점이라 스펙으로서 큰 매력이 없고”(대학생) “오로지 점수만을 위한 시험”(공무원 시험 준비생)인데도 불구하고 매달 혹은 2주에 한 번씩 토익을 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는 것.

한 해 200만명 시험 보는데
정답·배점조차 공개 안 돼

이 과정서 YBM한국토익위원회(이하 토익위원회)의 자의적 운영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토익은 미국 민간재단인 ETS가 출제하고 국내에서는 역시 민간기업인 YBM이 대행을 맡는다. 

토익위원회는 토익 시험 전반을 실제 운영하는 곳이다. 토익 시험이 워낙 광범위한 분야서 이용되고 있기 때문에 정부 관계자 등 공적 인사가 참여한 위원회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토익위원회는 실제로 한 기업의 사내기구로 운영되고 있다.

토익은 응시 횟수나 응시료, 유형, 접수, 성적 발표 등과 관련해 응시자들에게 많은 정보를 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 운영 내용이 응시자들에게 불리한 부분이 많아 불만이 나오고 있지만 독점적 지위를 누리 있는 현 상황서 시험을 아예 외면하긴 힘들다.

토익위원회는 홈페이지 공지 방식을 통해 시행 두 달 전 응시료 인상과 추가 시험에 대해 전달한다. 지난해에는 11월7일 ‘2018년 토익 정기시험 일정’을 발표했다. 

올해(2018년) 토익 정기시험은 총 24회 시행되며, 개인 사정으로 인해 일요일 응시가 어려운 수험생을 위해 1·3·6·7·9·12월에 한 번씩 모두 6회는 토요일에 치르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한 달에 한 번 꼴이던 응시횟수는 매년 꾸준히 늘어 한 달에 두 번 꼴로 늘어났다.

응시료 역시 명확한 설명 없이 통보 형식으로 오르고 있다. 2006년 3만4000원이던 응시료는 2016년 3월21일 4만4500원까지 올랐다. 우리나라 토익 응시료는 30%가량 오른 데 반해 일본은 꾸준히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2016년 토익 유형을 바꾼 이른바 ‘신토익’ 원서접수 개시일을 불과 1주일 앞두고 기습적으로 응시료 인상을 공지한 것은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당시 토익위원회는 안내문을 통해 “현행 응시료는 2012년 1월 조정된 후 4년간 동일하게 적용돼왔으나 물가 상승과 시험시행 관련 제반 비용 증가로 부득이하게 인상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우리나라와 같은 시기에 신토익을 도입한 일본은 응시료를 인상하지 않았다. 이에 토익위원회 측은 “(응시료는) 시행 국가 상황에 따라 조정하고 있어 인상 시점은 국가마다 상이할 수 있다”며 “국내 응시료는 저렴한 편”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토익 응시료 인상은 고스란히 응시자들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지난 2014년 청년 유니온의 발표에 따르면 4년제 대학생의 평균 토익 응시횟수는 9회에 달한다. 현재 응시료 기준으로 평균 40만500원에 이르는 돈을 토익에 쏟아 부었다는 뜻이다. 

토익위원회가 응시자들의 성적을 분석한 내용을 보면 응시횟수와 성적은 비례했다. 많이 볼수록 높은 점수를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유명 토익 강사들은 ‘문제 중심’의 공부를 권유한다. 모의고사나 실제 시험을 많이 접할수록 유형에 익숙해지면서 고득점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조언한다. 

듣기(LC)와 독해(RC) 각각 100문제로 구성된 토익 시험은 파트별로 유형이 존재한다. 그림을 정확히 묘사한 것을 찾는 유형(파트1), 질문에 대한 답을 고르는 유형(파트2), 문법(파트5), 장문 독해(파트7) 등이다.

신촌이나 강남 등 토익 학원이 즐비한 학원가에 가보면 유명 토익 강사들은 이른바 ‘정답 고르는 법’을 알려준다. 첫 두 단어를 듣고 답을 파악하거나 긴 지문의 경우 어디서 답을 찾아야 하는지 등의 기술이 반복 학습을 통해 수험생들에게 전달된다. 

다시 말해 유형을 파악하고 문제를 많이 풀수록 시험을 정복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2016년 토익 유형이 바뀌어 신토익이 등장했을 때 시장은 큰 부침을 겪었다. 문제는 한정된 응시횟수 말고도 접수 과정서 수험생들에게 불리한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이전 회차 시험 점수를 확인한 후 다음 회차 도전 여부를 정한다. 하지만 토익의 경우 성적 발표일보다 시험일이 앞서 있다. 예를 들어 346회차 시험의 경우 1월16일에 성적이 발표되는데 347회차 시험은 1월13일에 치러지는 식이다.

그렇다고 점수를 미리 파악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토익은 정답이 공개되지 않는다. 토익 시험이 끝난 직후 관련 사이트에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문항을 외워온 응시자가 게시글을 올리면 그 아래 정답이 댓글로 달리는 현상이 하루 종일 반복된다. 그리고 반나절 정도 지나면 유명 토익 강사들은 듣기와 독해 문항 200개를 전부 복원해 정답을 공유한다. 시험 다음 날 복원된 해당 회차 시험을 가지고 강의를 하는 강사도 많다.

또 정답을 전부 알았다 해도 각 문항마다 배점이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점수를 산출하는 게 힘들다. 배점에 대한 정보 역시 제대로 알려진 바는 없다. 토익 문제집에 배점표가 기재돼있긴 하지만 비슷한 점수로 환산할 수 있을 뿐 딱 떨어지는 수치는 아니다. 

보통 난이도가 높을수록 상대적으로 정답률이 낮을수록 배점이 높다는 풍문만 있을 뿐이다.

정책상 공개 어려워
수험생이 선택해야

토익위원회는 “시험 문제와 정답은 ETS 정책에 의해 공개하지 않는다”며 “이는 토플, GRE, SAT 등 ETS에서 주관하는 모든 시험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글로벌 정책”이라고 답했다. 

이어 “한 회차의 토익 시행을 위해서 약 8주간의 접수 기간과 성적 발표 약 2주까지 총 10주가 소요된다”며 “국내서 연간 24회의 시험이 시행되고 있어 회차별 접수기간이 서로 겹치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토익위원회는 수험자의 시험 일정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시행일, 접수 기간, 성적 발표일을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안내하고 있다”며 “응시자는 공개된 연간 일정을 통해 시험 응시 일정을 임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서점도 먹여 살리는 토익’ 방학 때 되면 판매량 급증

방학이 되면 서점가도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방학 동안 부족한 과목을 보완하거나 외국어 공부를 하려는 수요가 증가하면서 관련 책의 판매량이 수직 상승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여름방학 직후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외국어 학습서의 순위가 큰 폭으로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점들 다양한 기획행사도

교보문고에서는 토익으로 유명한 출판사의 단어장 순위가 6월 대비 10계단이나 올랐고, 독해(RC) 문제집과 종합서 등도 순위가 급등했다. 

yes24 역시 베스트셀러 30위권 안에 토익 단어장 등 외국어 학습서가 5권이 포함됐다. 방학 시즌에 학습서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온라인 서점들은 다양한 기획 도서행사를 선보이기도 한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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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광주 노른자위 땅을 개발하는 사업이 건설사 간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총사업비 2조여원의 초대형 프로젝트가 양측이 제기한 고소·고발로 표류하는 모양새다. 갈등의 본질은 사업을 좌지우지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의 최대주주 지위가 누구에게 있는지다. 최근 지분확보를 위한 소송 과정서 의문의 돈거래가 포착됐다. 2020년 7월1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도시계획시설서 도시공원으로 지정해놓은 개인 소유의 땅에 20년간 공원 조성을 하지 않을 경우 땅 주민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도시공원서 해제하는 제도인 ‘도시공원 일몰제’가 시행됐다. 도시공원 일몰제의 도입으로 민간공원 특례사업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민관 합작 윈윈 사업 민간공원 특례사업은 민간에 사업시행권을 주고 공원을 조성해 지자체에 기부채납하도록 하는 제도다. 민간 사업시행자는 공원부지 30% 범위서 아파트 건설 등 비공원사업을 진행해 수익을 챙길 수 있다. 정부나 지자체는 민간 자본으로 공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간 사업시행자는 주택 공급 사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서로 이득 볼 수 있는 구조다. 현재 전국 각지서 진행하고 있는 민간공원 특례사업 중 ‘중앙공원 1지구 민간공원 특례사업’의 규모가 가장 크다. 광주시 서구 금호동과 화정동, 풍암동 일대 243만5027㎡에 공원시설과 비공원시설을 건축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비공원시설 부지에는 지하 3층~지상 28층, 39개동 총 2772세대 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총사업비가 2조2000억원에 달한다. 2020년 1월 사업시행사인 특수목적법인(SPC) 빛고을중앙공원개발(이하 빛고을)이 설립되면서 추진되기 시작한 사업은 최근 시행사 지위와 시공권 등을 두고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있다. SPC 설립 시점부터 컨소시엄에 참여한 한양과 이후 시공자로 들어온 롯데건설, 지분 다툼을 벌이고 있는 우빈산업, 케이앤지스틸 등이 갈등의 주체다. SPC 빛고을 설립 초기 한양이 30%로 최대주주, 우빈산업(25%), 케이앤지스틸(24%), 파크엠(21%) 등이 주주로 참여했다. 한양이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의 SPC 빛고을 참여를 위한 초기자본 49억원을 댔다. 한양이 우빈산업에 49억원을 빌려주고 우빈산업이 다시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대여해 지분을 분배했다. 이때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콜옵션’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콜옵션은 특정한 기초자산을 만기일이나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다시 말해 우빈산업은 언제든지 원할 때 케이앤지스틸의 지분을 회수할 수 있는 조건을 걸어둔 것이다. ‘초대형’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이면 한양-케이앤지스틸 모종의 관계 의혹 SPC 빛고을 주주구성에 변화가 생긴 시점은 컨소시엄 구성 당시 한양이 맡기로 한 시공권이 롯데건설로 넘어가면서부터다.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의 지분 24%를 위임받아 주주권을 행사해 롯데건설과 중앙공원 1지구 아파트 신축 도급 약정을 체결했다. 이 과정서 30% 지분의 한양은 배제됐다. 롯데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할 당시 우빈산업에 지분을 위임했던 케이앤지스틸의 태도가 변한 시기는 2022년 5월경으로 추정된다. SPC 빛고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25억3000만원(대여금 24억원+이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빌린 돈을 갚았으니 24% 지분만큼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맺었던 콜옵션을 행사하고 49%의 지분을 확보해 SPC 빛고을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우빈산업 내부 사정이 변하면서 한 차례 더 지분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우빈산업은 대출금 100억원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부도 처리됐다. 지급보증을 섰던 롯데건설은 우빈산업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넘겨 받으면서 49%를 확보했다. 지분양도는 롯데건설이 근질권(담보물에 대한 권리)을 행사해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우빈산업이 빠진 자리에 롯데건설이 들어오면서 현재 기준 빛고을 SPC 지분구조는 한양 30%, 롯데건설 29.5%, ㈜파크엠 21%, 허브자산운용 19.5%로 재편된 상태다. 허브자산운용이 보유한 19.5%는 롯데건설로부터 양도받은 것이다. SPC 빛고을 내에서 롯데건설의 발언권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뉜 지분 콜옵션으로? 사업시행권과 시공권을 두고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이 궤를 같이 하면서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쟁점은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이 가진 지분이 최종적으로 누구의 소유냐는 것이다. 두 회사의 지분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바뀔 수 있다.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을 갚았으니 24%에 대한 주주권이 자사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양은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우빈산업에 49억원의 출자금을 대여하면서 맺은 특별약정을 내세웠다. 해당 약정에 한양이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비공원시설 시공권을 전부 갖는데 우빈산업이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항목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우빈산업이 주도해 롯데건설로 시공사를 바꾼 것은 특별약정에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광주지방법원은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이 각각 우빈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서 모두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주주권 확인 소송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우리가 SPC 주식을 실제로 소유한 주주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한양 관계자도 “1심 법원은 우빈산업이 한양에게 49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보유 주식 25% 전량을 양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반면 롯데건설은 소송 판결 한 달 전, 우빈산업의 지분을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우빈산업이 한양에 양도할 주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한양은 우빈산업의 ‘고의 부도’를 의심하고 있다. 한양은 1심 법원 판결을 근거로 자사가 지분 55%(한양 30%+우빈산업 25%)의 SPC 빛고을 최대주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대법원서 한양에 ‘시공권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으면서 시공자 지위는 잃게 됐다. 소송 이겨도 지위 잃었다 최근 SPC 빛고을 지분 갈등서 케이앤지스틸의 역할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케이앤지스틸은 상하수도 설비공사 업체로 2003년에 설립됐다. SPC 빛고을에 우빈산업과 함께 참여했다가 현재는 빠진 상태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전 대표가 우빈산업과 친분이 있어서 (SPC 빛고을에)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 사태서 롯데건설과 우빈산업은 이른바 ‘비한양파’로 묶여있다. 두 업체의 지분 이동도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 있는 상황이다. 반면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은 두 업체 모두 우빈산업과 소송을 진행하면서도 서로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적(우빈산업)이 같을 뿐 특별히 관계가 있는 업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양의 모기업인 보성그룹 계열사에 속한 ‘앤유’라는 업체가 케이앤지스틸에 2022년 4월, 2억원을 빌려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앤유는 이기승 보성그룹 회장의 동생인 이점식씨가 지분 83.6%를 가지고 있는 친족회사다. 전기 조명장치 제조업체로 2007년에 설립됐다. 2022년 기준 매출은 28억2900만원, 영업이익은 3억300만원으로 확인된다. 한양과의 거래를 통해 27억79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앤유는 케이지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주는 과정서 1주일짜리 주식근질권을 설정했다.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이 2억원을 갚지 못하면서 케이앤지스틸의 주식이 전부 앤유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의 대표이사를 비롯해 사내이사 3명 등 4명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1명은 앤유 대표인 정모씨의 아내로 추정된다. 케이앤지스틸 수뇌부가 물갈이된 것이다. 당시 케이앤지스틸의 채무가 수십억원에 이를 정도로 적자가 누적된 상태였다고 해도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배권을 넘겨준 것을 두고 석연찮은 의문이 일었다. 1주일이라는 짧은 주식 근질권 설정도 의문으로 떠올랐다. 보성그룹에 기생하는 ‘앤유’ 푼돈 주고 1주 만 회사 꿀꺽? 더 흥미로운 대목은 같은 해 5월 케이앤지스틸이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 25억3000만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의혹이 동시에 불거진 점이다. 다시 말해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분 100%를 앤유에 넘겨주고 한 달 만에 20억원이 넘는 돈을 융통해 SPC 빛고을 지분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여기에 우빈산업을 상대로 한 주주권 확인 소송 등에 김앤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하면서 수임료에 대한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케이앤지스틸이 지분확보를 위해 사용한 자금 출처가 한양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양 입장서 케이앤지스틸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확보하면 54%로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법원 판결로 시공자 지위는 상실했지만 롯데건설에 넘어가 있는 시공권을 흔들 수 있는 상황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분 갈등 구조가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로 정리되는 셈이다. 하지만 한양과 케이앤지스틸 모두 두 업체 간 모종의 관계 의혹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앤유라는 계열사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앤유서 케이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줬다거나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우빈산업서 (1심)소송에 져서 계속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듯하다. 대응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보다 광주시가 우빈산업과 결탁해 여러 가지로 유리하게 상황을 봐주고 있다고 판단해 광주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광주시는 사업시행자이자 감독관청으로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은데 그런 일을 하지 않아 공모 제도가 다 무너졌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광주시의 행정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석연찮은 자금 출처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한양이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에 대해 “우빈산업서 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주주가 들어와 투자가 이뤄지면서 주금 대여금을 갚은 것이다. 우빈산업에서는 (우리가)한양의 위장계열사 아니냐, 대표이사 선임 과정이 의심스럽다, 자금 출처가 어디냐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데 그건 주주권 확인 소송서 져서 그러는 것이다. 한양이랑 우리랑은 큰 관계가 없는데 자꾸 엮어서 흠집을 내려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 4월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케이앤지스틸 대표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 사업이 잘 마무리되면 우리 회사에 300억원 정도의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행이익을 1100억원으로 계산했을 때 우리 회사 지분이 24% 정도니까 그렇게 계산한 것이다. 수익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회사를 맡게 됐고, 새로운 주주들도 그 사업성을 보고 투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