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면 더 볼만한 풍경·소리 ⑤창덕궁 후원서 수성동계곡

도심 우중 산책의 완벽한 코스

차분하게 깊어진 궁궐의 색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비가 오면 줄어드는 발길 덕분에 궁궐의 고즈넉함이 더해지기도 한다. 도심에 자리한 궁궐을 홀로 거니는 것, 상상 이상의 즐거움이다.
 

비는 산수풍경을 그리는 붓이다. 장대비로 계곡물을 그리고, 궁궐 낙숫물은 단단한 돌에 홈을 파낸다. 빗물은 초목의 갈증을 해소하고, 차갑게 열린 하늘 아래 포근한 흙냄새를 풍긴다. 

도심에 내리는 비는 빼곡한 공간에 여백을 만들어 청량한 빗소리로 그 풍경을 채운다. 34만490㎡(10만3000여평)에 달하는 창덕궁 후원의 자연은 그렇게 깨어난다. 비 오는 날 창덕궁을 걷고 싶은 것도 그 때문이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창덕궁은 주변 지형과 어우러진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다.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으면 이내 금천교와 만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금천교는 1411년(태종 11) 박자청이 축조했는데 궁궐에 남은 돌다리 중 가장 오래됐다. 궁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흐르는 물에 씻어 바르게 하길 바라는 뜻으로 세웠다. 요즘 금천교 아래 물길에는 초여름이 흐른다.
 


창덕궁서 정치의 중심이 된 곳이 인정전과 선정전, 희정당이다. 인정문을 통과하면 ‘어진 정치를 펼치다’라는 뜻의 인정전(仁政殿)이 모습을 드러낸다. 중앙에 우뚝 솟은 중층 건물이다. 비 오는 날 인정전 앞 넓은 마당에 깔린 박석은 물을 머금어 세월의 흔적을 드러낸다. 인정전을 향해 일렬로 세운 품계석에 서면 조선 시대 양반이 된 기분이다.
 

헌종의 사랑 이야기가 스며들었고, 마지막 황실 가족의 생활공간으로 쓰인 낙선재 일원의 아름다움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단청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 경사진 터와 계단에 심은 꽃나무, 돌로 쌓은 단아한 굴뚝이 눈길을 끈다. 

‘창덕궁 달빛기행’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낮에 공개되지 않은 낙선재 후원에도 가볼 수 있다. 상량정의 대금 연주가 빗소리와 함께 궁궐에 울려 퍼진다.

비 오는 날 창덕궁의 매력은 후원을 거닐며 배가된다. 조선 왕실의 정원인 창덕궁 후원은 중국의 이허위안(頤和園), 일본의 가쓰라리큐(桂離宮)와 함께 아시아 3대 정원으로 꼽힌다. 후원이 조성되기 시작한 1406년부터 600년 이상 나무에 전지가위 한 번 대지 않고, 제 속성대로 자라게 두었다.
 

도심서 300년 넘은 고목이 70그루 이상 숨 쉴 수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단비가 내리는 날, 후원으로 걸어갔다. 갈참나무와 때죽나무, 단풍나무, 팥배나무, 소나무, 산벚나무가 일제히 비를 반긴다. 톡톡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좋다. 도심 온도와 평균 7℃ 차이가 난다니 원시림에 들어선 것 같다.
 

제일 먼저 닿는 곳이 부용지다. 부용정이 물 위에 반쯤 뜬 채로 있고, 맞은편에 주합루가 연못을 지키 듯 섰다. 동쪽의 영화당에 앉아서 부용지를 바라본다. 왕의 휴식처이자 과거를 치른 이곳은 이제 누구나 쉴 수 있는 공간이 됐다. 

비가 내리면 흙내가 코끝을 자극한다. 존덕정 일원도 감탄을 자아낸다. 존덕정에서 옥류천으로 가는 산마루턱을 열심히 걸으면 소요암을 만난다. 후원의 마지막 영역이자 가장 깊숙한 곳이다. 소요암 아래 너럭바위에 홈을 파서 물길을 돌려 작은 폭포를 만들었는데 비가 오면 더 운치 있다.
 


조선시대에 왕이 농업을 장려하기 위해 농사짓는 것을 ‘친경’이라 하는데 창덕궁서 해마다 이를 재현한다. 옥류천 일원의 청의정 주변에 작은 논을 만들어 모내기하고, 가을에 수확한 곡식을 나눠준다.

주변과 어우러진 가장 한국적인 궁궐
조선 선비들이 시를 읊조리던 계곡

비가 많이 온 다음 날이면 인왕산 수성동 계곡으로 발길을 옮기자. 수성동 계곡은 흐르는 물소리가 경복궁까지 들릴 정도로 크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도심 우중 산책의 완벽한 코스다. 

안평대군과 조선 시대 선비들은 계곡의 우렁찬 물소리를 장단 삼아 시를 읊조렸다. 추사 김정희는 ‘수성동 우중에 폭포를 구경하다(水聲洞雨中觀瀑)’라는 시를 남겼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요즘, 계곡은 물이 말라 텅 비었다. 한여름 장맛비가 내리면 인왕산 자락 수성동 계곡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바위 틈을 비집고 콸콸 흘러내리는 풍광이 오래도록 기억된다. 겸재 정선은 이곳 장동(壯洞) 일대를 여덟 폭 진경산수로 담아 ‘장동팔경첩’을 그렸는데 수성동 풍경이 그중 한 폭이다.

이 아름다운 풍경은 한때 아파트 콘크리트 아래 있었다. 1971년 옥인시범아파트를 지었기 때문. 2008년 아파트 철거가 시작되고 2012년 지금의 모습을 되찾았다. 

냇가에 돌덩이를 들추고 숨은 생명을 찾아내듯이 비는 멈춘 듯한 풍경을 움직인다. 가랑비에도 수성동 계곡과 기린교 아래에서 버들치가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계곡에 오르는 길은 볼거리가 있어 힘들지 않다. 걷다 보면 파스텔톤 우산에 쓴 시가 눈에 들어온다. 종로구 누상동 9번지, ‘윤동주 하숙집 터’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윤동주 시인은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했는데, 이곳 수성동 계곡 바로 아래다. 

‘별 헤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등을 이 시기에 썼다. 집 담벼락엔 1970년대 누상동 풍경을 담은 그림이 걸렸다. 현재 하숙집의 원형은 없지만, 계곡을 따라 인왕산에 오르면 윤동주문학관에서 시인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1938년 조선 후기 문신 윤덕영이 딸을 위해 지은 2층 벽돌집도 눈에 띈다. 화가 박노수가 1973년 이 집을 인수해 살다가 2011년 종로구에 자신의 작품과 함께 기증해 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이 됐다.
 

수성동 계곡이 있는 서촌은 골목마다 남은 옛 정취와 감각이 돋보이는 갤러리와 카페가 공존한다. 그래서인지 서촌은 단골 데이트 코스이자 주말 나들이 장소가 됐다. 통의동 골목에 위치한 대림미술관은 서촌의 대표 미술관이다. 

1997년 대전서 한국 최초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출발해 지금은 현대미술 전반으로 전시 영역을 확대했다. 미술관의 공간도 전시와 일맥상통한다. 1967년에 지은 주택을 건축가 뱅상 코르뉴가 리모델링, 대림미술관 간판을 달았다. 


코르뉴의 이력을 살피지 않아도 대림미술관이 바로미터다. 특히 비 오는 날 미술관 산책과 카페 ‘미술관옆집’서 마시는 커피 한잔은 더할 나위 없는 낭만이다.
 

경복궁 서문 영추문을 지나 건너편으로 여관 하나가 있다. 1930년대에 문 열어 80여 년간 수많은 사람이 밤을 보낸 통의동 보안여관이다. 이곳은 무작정 상경해 장기 투숙하던 예술가들의 보금자리였다. 지금은 전시를 겸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운영된다. 

다양한 볼거리

이밖에도 서울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으로 알려진 대오서점은 60여년 세월을 털고 카페로 변모했다. 근처에 엽전 도시락으로 유명한 통인시장은 저렴한 값으로 한 끼를 책임진다. 우산을 쓰고 숨바꼭질하듯 서촌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창덕궁→창덕궁 후원→대림미술관과 인근 갤러리→통의동 보안여관→통인시장→대오서점→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수성동 계곡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인사동→종묘→창덕궁→창덕궁 후원→창경궁 
[둘째 날] 경복궁역→경복궁→대림미술관과 인근 갤러리→통의동 보안여관→통인시장→대오서점→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수성동 계곡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종로엔 다 있다(종로구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http://tour.jongno.go.kr
- 창덕궁 http://www.cdg.go.kr
- 통의동 보안여관 http://www.boan1942.com
- 통인시장 http://tonginmarket.modoo.at
- 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종로문화재단) http://www.jfac.or.kr

문의 전화
- 종로구청 관광체육과 02)2148-1852
- 통인시장 02)722-0911
- 창덕궁 02)3668-2300
- 창덕궁 달빛기행(한국문화재재단) 02)2270-1233
- 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 02)2148-4171

대중교통 정보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서 도보 5분. 1·3·5호선 종로3가역 6번 출구서 도보 10분. 
* 문의: 서울메트로 1577-1234, 
http://www. seoulmetro.co.kr 
[버스] 109·151·162·171번 간선버스나 702번 지선버스, 창덕궁·서울돈화문국악당 정류장 하차. 
* 문의: 서울시교통정보센터 
http://topis. seoul.go.kr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 한남 IC→한남대교→남산1호터널→삼일대로→안국역서 창덕궁 방면 우회전→율곡로→창덕궁삼거리

숙박 정보
- 노블호텔: 종로구 율곡로6길, 02)742-4025
- 호텔더디자이너스 종로: 종로구 수표로, 02)2267-7474
- 센터마크호텔: 종로구 인사동5길, 02)731-1000
- 이비스앰배서더 인사동: 종로구 삼일대로30길, 02)6730-1101 

식당 정보
- 밥+(곤드레밥·소고기부추덮밥): 종로구 옥인길, 02)725-1253
- 메밀꽃필무렵(메밀칼국수·메밀부침): 종로구 효자로, 02)734-0367
- 엘라디(프랑스 가정식): 종로구 필운대로, 02)6677-0434 

주변 볼거리
경복궁, 종묘, 대림미술관, 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 통인시장, 보안여관, 대오서점, 통의동 백송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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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