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A구치소 마약파티설 ‘진상’

모두 잠든 시간 삼삼오오 투약?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치소 수감자들이 ‘마약파티’를 벌였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한 수감자가 구치소에 반입된 향정신성의약품을 교도관 모르게 숨겨뒀다가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투약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구치소 측에선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의혹을 일축했다. 구치소 마약파티설의 진상을 <일요시사>가 따라가 봤다.
 

최근 톱 아이돌 그룹의 멤버, 유명 밴드 출신 가수가 대마초 흡연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또 여성 보컬 그룹의 한 멤버는 지인이 자신에게 마약을 권유했다는 내용을 SNS에 폭로해 논란을 빚었다. 

연예계 마약 스캔들이 자주 보도되면서 초기에 비해 놀라움의 정도가 줄고 있다. 심지어 몇몇 연예인들은 예능 프로그램서 과거 마약 투약 혐의로 수감됐던 사실을 ‘셀프 언급’하며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마약 스캔들↑
이제 별거 아냐?

일각에선 마약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대중에게 친숙한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가 마약 관련 범죄에 연루되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무뎌졌다는 분석이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별다른 제재 없이 다시 방송이나 경기에 얼굴을 비추는 일이 잦아지면서 마약 범죄는 ‘눈 감아 줄 수 있는 수준’이 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안일한 인식과는 달리 마약 범죄는 여전히 횡행 중이다. 특히 인터넷과 SNS가 폭발적으로 발달하면서 마약 구입경로가 이전보다 다양해졌다. 경찰청은 최근 인터넷과 SNS, 국제우편 등을 이용해 마약을 구입한 마약류 사범이 최근 5년 새 급증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또 환각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해피벌룬이 클럽과 술집을 넘어 일반 사회에까지 무차별로 유통되는 등 사각지대가 생기고 있다. 해피벌룬을 과다 흡입한 20대 남성이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지만 대책은 전무한 상태다. 

환경부와 식품의약안전처(이하 식약처)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해피벌룬의 원료인 아산화질소를 환각 물질로 지정하겠다고 밝혔지만 본격적인 단속은 8월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그마저도 실효성 여부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문제는 이처럼 사회 전반에 걸쳐 암암리에 퍼지고 있는 마약 관련 사건이 버젓이 구치소서 발생했다는 주장이 나온 점이다.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 중인 A씨는 담당 교도관들이 향정신성의약품(마약류, 이하 향정약품)으로 지정돼 있는 약품을 교부하는 과정서 투약 확인을 생략하는 등의 허술한 점을 악용해 한 수감자가 약품을 모아뒀다고 주장했다. 

“밤마다 시끄러워 못살겠다”
연루 의혹 수감자 5명 고소

또 모아둔 약품을 다른 수감자들에게 나눠줘 취침 시간 등에 함께 투약하며 마약 파티를 벌였다고 덧붙였다. A씨에 따르면 마약파티는 2월17일부터 3월19일까지 약 한 달 동안 수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A씨는 이 과정서 소음·소란이 지속돼 수면장애, 환청, 이명 등 정신적·육체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또 사건을 미연에 방지했어야 할 구치소 측에서 담당 교도관을 관리·감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A씨는 마약파티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수감자 5명과 구치소장 등 6명을 서울서부지검에 고소한 상태다.

향정약품은 인간의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약물이다. 다시 말해 환각·각성·습관성·중독성이 있는 의약품을 뜻한다. 환각을 유발·발동시키는 물질도 모두 여기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특히 오용하거나 남용할 경우 인체에 현저한 위해가 있다고 인정되는 것을 말한다.

일반인은 향정약품을 사용하지 못하며 약국 역시 반드시 처방전서 따라서만 취급할 수 있다. 제조업자·의료기관·약국 등은 향정약품의 판매·수수에 관한 장부를 작성·비치하고 판매 또는 수수할 때마다 그 내용을 기재해야 한다. 여기에 매수인과 양수인의 서명과 날인도 필요하다. 또 향정약품은 잠금장치가 설치된 장소에 보관하도록 한다.

향정약품은 오·남용 가능성과 그에 따른 위험의 정도에 따라 가목서 마목까지 세분화돼있다. 가목은 오남용 우려가 심해 의료용으로도 쓰이지 않는다. 안전성이 결여돼있어 이를 오남용할 경우 심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의존성을 일으킨다. 성관계시 흥분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최음제인 ‘고메오’가 여기에 분류된다.

필로폰, 암페타민 등은 나목에 속한다. 오용하거나 남용할 우려가 심하고 의료용으로도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다목은 가목과 나목에 규정된 것보다 오용하거나 남용할 우려가 상대적으로 적고 의료용으로 쓰이는 약물을 말한다. 데이트 강간 약물로 알려진 플루니트라제팜 등이다. 

라목은 다목보다도 오·남용 우려가 적은 약물로, 프로포폴이나 일명 물뽕이라고 불리는 GHB(Gamma Hydroxy Butrate) 등이 해당된다.

투약 확인 소홀
약 모아놨나?

교정시설 내 반입이 가능한 향정약품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호 다목부터 라목까지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규정돼있다. A씨에 따르면 피고소인 가운데 한 명인 B씨가 다른 수감자들에게 교부한 향정약품은 졸피뎀 복제약, 디아제팜, 루나팜, 스틸록스 등이다. 졸피뎀과 디아제팜은 교정시설에 반입 가능한 향정약품 라목에 해당된다.

구치소 측에서는 A씨가 제기한 의혹이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입장이다. 
 

구치소 관계자는 “수용자의 가족으로부터 향정약품 교부 신청이 있을 경우, 외부 의료시설서 발급한 의사의 진단서 및 처방전을 제출하도록 한다”며 “의무관과 약무관 또는 전문가의 의약품 감정을 받은 후 필요한 경우에만 허가해 반입하는 절차를 거치고 있다”고 했다.

이 과정을 거쳐 반입된 향정약품은 분류 후 자물쇠 등의 시건장치가 있는 2중 캐비닛에 넣어 잠금장치가 설치된 의약품 창고에 보관한다고 강조했다. 또 매일 수량과 보관상태 등을 확인하고 있으며 담당자 외 출입을 일체 통제해 엄격히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A씨가 언급한 사건이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향정약품 투약 확인 과정이 허술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구치소는 “향정약품은 필요 최소량만 투약하고 있다. 투약일에 담당 근무자에게 교부해 투약수용자에게 1회분씩 지급하면서 동시에 복용여부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향정약품의 경우 수용자의 복용여부를 입속까지 확인한다”고 덧붙였다.


자체 조사 결과
“절대 아니다”

또 A씨가 제기한 의혹에 대해 자체적으로 이미 조사를 마쳤다는 입장이다. 당시 담당 근무자는 투약 확인 과정을 확실히 이행했고 마약파티를 했다고 지목된 수감자들은 “처방받은 약을 나눠 먹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진술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마약파티에 사용됐다고 A씨가 주장한 약품의 종류는 처방되거나 반입된 사실이 없다”며 “거실 검사 결과 어떠한 향정약품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나 A씨는 자신이 마약파티에 대해 제보했을 때 구치소 측이 사건을 은폐·축소하기 위해 마약파티 의혹 대상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증거물 확보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도리어 사건의 피해자나 다름없는 자신을 소란행위로 징벌·경고 처분했다는 입장이다. 실제 A씨는 지난 3월 소란 혐의로 징벌위원회에 회부돼 ‘경고’ 처분을 받았다.

구치소 측 “일방적인 주장”
향정약품 관리에 문제없어

구치소에 따르면 A씨는 3월19일 오후 3시경 비상벨을 계속 누르고 고성으로 근무자에게 항의하며 거실에 있는 다른 수용자들과 다른 수용거실 수용자들의 수용 생활을 방해했다. A씨는 마약파티서 시작된 사건이 자신에 대한 경고 처분으로 끝난 것에 대해 구치소장의 직권 남용과 직무 유기라고 비판했다.
 


A씨는 “수감 전 진료나 처방 기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다량의 향정약품을 처방해주는 병원들이 마약파티 등 사건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며 “해당 처방전을 받아오는 사람 역시 수감자의 보호자나 가족이 아니라 출소한 마약류 사범 동료가 부적절하게 발급받아 전달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A씨가 지적한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 2013년 부산·창원·통영·진주 지역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진찰도 하지 않고 향정약품을 처방해준 혐의로 부산과 전북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두 명이 불구속기소됐다. 

검찰 조사 결과 교도소에 수감된 마약사범들은 교도소와 진료 계약을 체결한 정신과 의사 장모씨와 신모씨의 도움으로 환각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향정약품을 상습적으로 복용해 왔다.

장씨는 재소자의 지인이나 가족이 찾아와 정신불안증세 등을 호소하면 1인당 최소 5일서 한 달간 복용할 수 있는 디아제팜, 라제팜, 졸피뎀 등의 향정약품을 처방한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장씨가 약을 처방해준 재소자 18명 가운데 17명은 마약 사범이었다. 신씨 역시 약 1년간 교도소 재소자 25명에게 진찰도 없이 42차례에 걸쳐 향정약품을 처방한 혐의를 받았다. 신씨로부터 처방받은 재소자 가운데 마약사범은 7명이었다.

수감자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약품을 타낸 뒤 우편으로 교도소에 보낸 혐의를 받던 인물은 당시 수배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수배된 그는 수감자의 주민등록번호로 신분을 속이는 등 재소자 인적사항을 도용해 두 의사들로부터 처방전을 받고 처방전과 향정약품을 등기 우편으로 재소자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재소자들은 장씨와 신씨가 진찰을 하지 않고 향정약품을 처방해준다는 사실을 알고 지인과 가족 등을 보내 처방전을 받도록 했다. 복역 중인 마약사범들에게 향정약품을 제한 없이 복용하도록 한 의사들이 적발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당시도 교정당국의 재소자 관리에 구멍이 뚫린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처방전 없이
약주다 적발

최근에는 향정약품을 처방받아 건네주는 등 재소자에게 편의를 제공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교도관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지난해 12월 인천지검 강력부는 인천구치소 교도관 C씨를 체포했다. 그는 마약성분이 함유된 다이어트 약을 수감자에게 수차례 전달해주는 등 편의를 제공하고 금품을 받았다.

인천지법 형사12부는 지난 2일 C씨에게 징역 3년6개월과 벌금 40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공직사회의 청렴성과 공무원이 처리하는 사무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훼손했다”며 “피고인이 법정서 진술을 번복하고 있어 범행을 진정으로 뉘우친다고 보기 어렵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졸피뎀·디아제팜·루나팜·스틸록스는?
잠 안온다고 막 먹었다간…

구치소에 수감된 A씨는 자신이 고소한 피고소인들끼리 마약파티를 벌일 때 졸피뎀, 디아제팜, 루나팜, 스틸록스 등이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졸피뎀은 불면증 치료용으로 쓰이는 수면 유도제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서 졸피뎀 부작용과 관련된 사건이 대대적으로 드러나면서 큰 논란을 빚었다. 졸피뎀은 복용 후 전날 한 행동을 기억 못하는 증상이 나타날 때가 있어 ‘제2의 프로포폴’ 이라 불리기도 한다.

디아제팜은 정신안정제나 골격근 이완제 등으로 쓰이는 약물이다. 약물 효과에 따라 임의로 용량을 증가시키면 안 된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습관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10일 이상 꾸준히 사용한 경우에는 의사 지시 없이 갑자기 중단하면 좋지 않다.

의식 없이 운전하는 경우도

식품의약품안전처서 최면진정제로 분류한 루나팜은 수면 운전과 같은 복합 행동이 보고된 바 있다. 수면 운전은 수면진정제 복용 후 완전히 깨지 않은 상태서 운전하며 환자는 이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또 루나팜 복용 후 음식 준비, 음식 먹기, 전화하기, 성관계 등의 복합 행동을 한 환자의 사례가 알려지기도 했다. 환자는 기억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최면진정제인 스틸록스는 완전히 각성된 상태서 진행해야 하는 다른 행동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취침 직전에 1회 복용하되 약물 복용 후 기상 전까지 최소 7∼8시간의 간격이 필요하다. 다른 수면제들과 마찬가지로 장기간 사용은 권장되지 않는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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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