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1주년 특집2> ‘일요시사’가 함께한 격동의 21년 정치사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05.22 11:01:37
  • 호수 11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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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 대선과 6번 총선 역사적 순간을 담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종합시사주간신문 <일요시사>가 21번째 생일을 맞았다. 1996년 5월15일 창간한 <일요시사>는 세기를 넘나들며 우리 사회의 외진 곳은 물론 높은 장벽까지 성역 없이 보도해왔다. 단 한 번의 결호 없이 숨 가쁘게 달려온 <일요시사>는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간 21주년을 맞아 그간 <일요시사>에서 다뤘던 대한민국 주요 현대사를 되짚어봤다.
 

21년 동안 대한민국 정치사는 격동의 풍랑 한가운데에 위치해왔다. <일요시사>는 김대중정부의 탄생을 지켜봤고,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 사태와 함께했다. 5번의 대선을 치렀으며, 6번의 총선을 다뤘다. 수많은 역사적 사건 속에서도 <일요시사>는 ‘감춰진 진실’을 보도하고자 무던히도 노력했다.

3김시대 절정
그리고 마감

1996년 4월 제15대 총선이 치러졌다. 총 299명의 일꾼이 선출됐다. 이 선거는 15대 대선을 1년8개월여 앞둔 전초전의 성격이 짙어 큰 주목을 받았다. <일요시사>도 유권자들의 관심에 맞춰 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후보 검증에 총력을 기울였다.

비단 대선을 앞두고 있기에 주목도가 높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신한국당의 김영삼 대통령, 새정치국민회의(이하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 자유민주연합(이하 자민련) 김종필 총재로 대표되는 3김 시대의 승자는 누가 될지 관심이 모아졌다. <일요시사>는 상교동·동교동 인사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정치지형의 변화를 발빠르게 취재했다.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총선 결과 79석이라는 저조한 성적표를 받자 대권 가도에 적신호가 켜졌음을 깨달았다. 의중을 꿰뚫고 있던 이강래 아태재단 상임고문은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의 정책연대를 제안했다. 이에 공감한 김대중 총재는 1996년 7월부터 실행에 옮겼다. DJP 연합의 시작이었다.


1996년 창간 후 지금까지 정계 산증인
김대중∼문재인 역대 정부와의 시간들

1997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은 DJP 연합을 업고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최초의 민주적 정권교체에 <일요시사>도 함께했다. 동교동 인사들과 접촉면이 넓은 <일요시사>는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일요시사>는 기성 언론과는 달리 사안의 저변까지 파고들었다. 대표적인 게 ‘JP 대망론’ 문건 최초 보도였다. 2001년 05월 <일요시사>는 자민련 내부에서 김종필 명예총재의 차기 집권 가능성을 담은 문건을 입수해 세상에 알렸다. 

이는 ‘충청대망론’의 시초가 된 사건이다. <일요시사>의 최초 보도 후 수많은 언론서 해당 기사를 인용했고, 자민련은 문건 작성 경위에 대해 자체 조사에 착수하는 등 엄청난 파급을 불러왔다.

JP 대망론
최초 보도

<일요시사>는 기성 언론서 포착하지 못한 것까지 찾아냈다. 2001년 7월 김종필 명예총재의 후원자가 김 총재에게 산삼을 기증한 사실을 최초 보도했다. 이 역시 수많은 언론서 인용 보도될 정도로 큰 파장을 낳았다. 당시 당 대변인은 냉장고에 보관해온 현물을 기자들에게 직접 보여주며 해명했다.
 

이 같은 기사가 세간의 주목을 받자 <일요시사>를 견제하려는 움직임도 덩달아 심해졌다. 2002년 6월, 16대 대선에 나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병풍 사건을 보도한 <일요시사>는 당으로부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받았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일요시사>를 제외한 다른 언론사들은 “정치권이 대(對)언론 공세를 강화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했다.

<일요시사>는 소송에 굴하지 않고 후속 기사를 통해 외압에 굴하지 않는다는 자세를 명확히 했다. 

2002년 8월 <종로구청장 직인 의혹, ‘진실’ 따로 있다>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이회창 후보의 장남 병적기록표에 찍혀 있는 종로구청장 직인이 당시 사용하던 구청장 직인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추가로 보도, 병적기록표의 위·변조 의혹을 제기했다.

소송에도 후속
거센외압 맞서

<일요시사>는 현장을 발 빠르게 취재하는 데도 힘을 쏟았다. <일요시사>가 창간하고 4개월 뒤 터진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으로 대한민국은 발칵 뒤집혔다. 

당시 IMF 탓에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졌고 온 나라가 시름 섞인 한숨에 허덕였던 상황에서 국민들은 더욱 경악했다. 이에 <일요시사>는 직접 기자를 현지로 급파해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고자 노력했다.

1999·2000년 각각 연평해전과 6·15공동선언도 <일요시사>가 주목했던 사안이었다. 2004년에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소추 때도 <일요시사>는 사안의 본질을 담아내기 위해 여야 의원들을 두루 취재했다. 국회 본회의장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는 모습도 르포 형식을 빌려 독자들에게 최대한 생생히 전하고자 노력했다.

2008년 이명박정부가 들어서자 <일요시사>도 덩달아 바빠졌다. ‘4대강·대운하’ ‘의료 민영화’ ‘자원외교’ 등 논란이 됐던 정부의 사업이 혹시 국익에 반하지 않을지 예의 주시했고, 조그만 의혹이라도 취재에 매달렸다.
 

‘촛불집회’는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한층 성숙하게 만든 사건이자 ‘사람의 향기가 나는 신문’을 지향하는 <일요시사>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이에 <일요시사>는 ‘광우병 파동’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촛불집회 현장에 스며들어 민심을 담아내고자 애썼다.

상교동·동교동 소식, 수많은 최초 보도
탄핵·세월호·촛불집회…현장서 답 찾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벌어진 촛불집회는 <일요시사> 입장서 특히 의미가 깊다. 세상에 최순실의 존재가 알려졌을 때 <일요시사>는 국정농단 세력의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저녁을 반납했다. <최순실 측근 고영태는 강남 호빠 출신> <차은택 강남빌딩 수상한 거래 추적>은 이러한 노력의 결과였다.

정치권을 뒤흔든 ‘용산참사’ ‘세월호 침몰’ 때는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세월호 침몰 1주기를 앞둔 지난 2015년 4월에는 단원고 희생자 민우의 부친 이종철씨를 광화문서 만나 그의 솔직한 심정을 담아냈다.

정치적 이벤트인 총선이 있을 때면 <일요시사>는 후보를 직접 만나 지역 현안과 비전을 물었다. 지금까지 <일요시사>가 만난 총선 후보만도 70여명이 넘는다. 이는 옥석을 가리고자 하는 유권자에게 일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했다.


“정치는 현장”
지역 곳곳 누벼

전직 대통령의 서거와 같이 당장 독자에게 알려야 할 소식이 있을 때면 주간지라는 시간적 제약에 연연하지 않고 기사를 빠르게 전했다. 

<일요시사> 창간 이래 서거한 대통령은 최규하·김대중·노무현·김영삼 등 총 4명. 주말에 예고 없이 찾아오는 비보에도 <일요시사>는 빈소를 직접 찾아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언제, 어떤 소식이 전해질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기에 긴장의 연속이지만 <일요시사>는 ‘독자 우선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30·40·50주년을 향해 달려가고자 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일요시사>와 함께한 정치 거물들 열전
피고 곧 지고 지고 또 피고

1997년 12월 대한민국은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했다. 결국 김영삼정부는 IMF를 상대로 구제금융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IMF 사태’였다. 국민들은 김영삼정부의 미숙한 외환관리정책을 비난했다.


김영삼정부의 친인척 비리도 국민의 지적 대상이었다. ‘소통령’ 김현철씨는 관련 비리로 청문회장에 섰다. 생중계된 청문회는 많은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일요시사>도 김씨의 권력형 비리를 집중 보도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역사상 첫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그는 6·15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6·15 선언의 또 다른 주역은 김정일이다. <일요시사>는 6·15 선언 소식을 전하며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기사화했다. 김 대통령은 2009년, 김정일은 2011년 숨을 거뒀다.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은 아버지의 권력을 승계했다. 이후 언론은 김정은식 숙청작업에 관심을 집중했다. <일요시사>도 마찬가지였다. 장성택, 리영호, 김정남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충청권의 맹주 김종필·이회창도 <일요시사> 레이더망에 있었다. 두 사람은 충청대망론의 현재이자 미래였다. <일요시사>는 두 사람의 대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 집중 보도하는 기사를 내놨다. 그러나 아직 충청대망론은 현실화되지 못하며 난제로 남아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의결은 헌정 사상 처음이라는 점에서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국회를 통과한 탄핵안은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다. 그러나 노 대통령에 대한 기성언론의 공격은 계속됐다. 검찰도 이에 발맞춰 노 대통령을 압박했다. 수사를 받던 노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를 업고 청와대에 입성했다. 동시에 서민적인 모습을 부각시키려 노력했다. 국밥을 먹는 홍보영상은 크게 히트하며 여러 패러디를 양산했다. 그러나 임기 중 벌였던 ‘촛불집회 수사’ ‘4대강 사업’이란 큰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이 대통령으로부터 서울시장 자리를 물려받은 오세훈 전 시장은 한때 대선 후보군으로 묶였지만, 무상급식 파동에 발목 잡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앞선 18대 대선서 51.6%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시작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끝마치는 과오를 범했다. 헌정 사상 첫 파면 대통령으로 기록되며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성에 흠집을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자구도 속에서 41.1%라는 높은 득표율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염원이 득표율로 표현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조국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 ‘박원순의 남자’ 임종석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하는 등 파격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일요시사>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문재인정부를 감시·견제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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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이후···4인 파워게임> 화려한 부활 조국

[4·10 이후···4인 파워게임] 화려한 부활 조국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두 자리 의석수를 확보하면서 원내 3당으로 자리 잡았다. 조국 대표는 비례순번 2번으로 단숨에 여의도행 티켓을 따냈다. 문재인정부 초대 민정수석비서관과 66대 법무부 장관 등 굵직한 이력을 지녔지만 초선인 만큼 처음부터 입지를 다져야 한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조 대표의 생존 전략은 무엇일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과반을 넘기면서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의 표정도 덩달아 밝아졌다. 지난 10일, 민주당의 압승에 가까운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서 상황을 지켜보던 조국당 지지자들도 감탄사를 내뱉었다. 조국당이 기대하던 ‘10석+알파(α)’가 확실해졌다. 주먹을 쥔 지지자들은 연신 “조국”을 외쳤다. 총선 뒤흔든 조국혁신당 조 대표는 이날 총선 출구조사 결과에 대해 “국민이 승리했다”고 소리 높였다. 그는 “국민께서 윤석열정권 심판이라는 뜻을 분명하게 밝히셨다”며 “윤석열 검찰 독재 정권의 퇴행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국민 여러분이 이번 총선 승리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밝혔다. 이어 “윤 대통령은 이번 총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라. 그리고 그간 수많은 실정과 비리에 대해 국민께 사과하라”며 “이를 바로잡을 대책을 국민께 보고하라”며 “총선은 끝났지만 조국당이 만들 우리 정치의 변화는 이제 시작이다. 개원 즉시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강조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비례대표 개표 현황에 따르면, 조국당은 12석으로 집계됐다. 국민의힘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가 18석으로 가장 많은 당선자를 배출했다.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이하 민주연합)이 14석을 얻었으며 개혁신당과 진보당은 각각 1석을 얻는 데 그쳤다. 조국당은 24.2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신생정당이 20%가 넘는 지지율을 거두자 정치권에서는 이례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로써 조국당 비례대표 12번까지는 무난히 당선권에 들었다. 차례대로 ▲박은정 ▲조국 ▲이해민 ▲신장식 ▲김선민 ▲김준형 ▲김재원 ▲황운하 ▲정춘생 ▲차규근 ▲강경숙 ▲서왕진 등의 후보가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 한때 여권서 “조국이 나오면 땡큐”인 ‘조나땡’이란 말까지 나왔지만 이를 상쇄시킬 정도로 조국당의 돌풍은 거셌다. 조 대표가 부산 민주공원서 신당 창당 선언문을 낭독했을 때만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한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기세 좋게 제3지대로서의 존재감을 키워가던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조국 열풍’ 또한 금세 식을 것이란 분석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조 대표는 지난 2월8일 자녀들의 입시 비리 및 청와대의 감찰무마 혐의 등으로 항소심서도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마찬가지로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힐 것이란 해석에 무게가 실렸다. 총선 한 달 앞두고 등장한 루키 정당 민주당과 정권 심판론 쌍끌이 전략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조국당은 이번 총선서 가장 큰 변수로 자리 잡았다.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정권 심판론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특히 이종섭 전 주호주대사 사건과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테러’ 논란이 연이어 터지면서 이는 조국당의 동력으로 이어졌다. 조국당의 슬로건은 윤 대통령의 탄핵을 암시하는 “3년은 너무 길다”였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은 중도층 여론을 의식해 탄핵에는 조심스러운 입장일 수밖에 없다. 결국 ‘윤정부 무력화’를 거침없이 외치는 조국당에 심판을 벼르던 강성 유권자들이 동참한 것이다.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다소 약한 목소리에 갈증을 느끼던 지지층의 표를 흡수한 셈이다. 22대 총선을 통해 조 대표는 완벽한 정치적 부활에 성공했다. 하지만 1·2심 모두 실형이 나온 만큼 조 대표가 22대 국회를 완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의 대표이자 간판인 조 대표가 대법원 판결을 통해 의원직을 상실한다면 사실상 조국당은 존폐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조 대표가 집어든 여의도 생존 전략은 ‘검찰 탄압 프레임’을 굳히는 것이다. 자신을 여의도로 이끈 ‘검찰 탄압’이라는 명분을 긴 호흡으로 유지하면서 원포인트 전략으로 내세우겠다는 설명이다. 이는 조 대표가 출소 후 여의도로 돌아오기 위한 명분으로도 내세울 수 있다. 국회에 입성한 조 대표는 그동안 강조해온 한동훈 특검법을 띄우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그동안 조 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원내에 진입하면 한동훈 특별법을 1호 법안으로 발의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한동훈 특검법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징계 관련 의혹 ▲검찰 고발사주 의혹 ▲논문 대필 등 자녀 입시 비리 의혹 등을 수사 대상으로 삼는 걸 골자로 한다. 이 밖에도 조 대표는 ‘윤석열정권 관권선거운동 의혹 국정조사’를 실시하거나 ‘검찰의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 국정조사’를 추진해 윤 대통령을 국회에 출석시키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12석 확보 완벽한 성공 당선권에 진입하자 조 대표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지난 11일 조국당은 총선 당선자들과 함께 첫 공식 일정으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찾았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에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김건희를 수사하라”고 외쳤다. 조 대표는 “이번 총선서 확인된 ‘윤석열 검찰 독재 정권 심판’이라는 거대한 민심을 있는 그대로 검찰에 전하려 한다”며 “검찰은 즉각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소환해 조사하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도 거론했다. 그는 “검찰은 ‘몰카 공작’이라는 대통령실의 해명에 설득력이 있다고 보느냐”며 “몰카 공작이라면 관련자들을 소환해 조사하고 처벌하라. 그것과 별개로 김 여사도 당장 소환하라”고 주장했다. 끝으로 조 대표는 “조국당은 검찰이 국민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22대 국회 개원 즉시 ‘김 여사 종합 특검법’을 민주당과 협의해 신속하게 추진할 것”이라며 “검찰이 수사에 나서지 않는다면 김 여사는 특검의 소환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조국당이 검찰만 정조준하는 이유는 조 대표가 ‘정치적 죽임’을 당했다는 여론 때문이다. 따라서 조 대표를 향한 동정론도 조국당이 꺼내들 수 있는 카드 중 하나로 여겨진다. 검찰에게 탄압받았다는 이미지를 가진 조 대표가 법정에 모습을 드러낼수록 오히려 지지자의 결집력이 높아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지난 몇 년 동안 조 대표 본인은 물론 그의 가족까지 수사 대상에 올랐다. 이를 시작으로 조 대표와 그의 일가족이 잘못한 부분은 있지만 죄명에 비해 과도하게 탄압받았다는 동정론이 형성됐다. 동정론은 조국당 지지자를 결집시키는 강한 무기다. 오래전부터 조 대표를 지지해 왔다는 A씨는 기자회견 현장에서 <일요시사> 취재진과의 만나 “조 대표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참 짠하다”고 말했다. 함께 온 B씨도 “온 가족이 풍비박산이 나지 않았나. 힘든 일이 많았을 텐데 역경을 딛고 나선 것을 보면 마음이 이쪽(조국당)으로 간다”고 말했다. 이 VS 조 동상이몽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미 이 대표의 재판에 익숙해져 있기 떄문에 조 대표의 범죄 혐의가 비교적 희석됐다는 평도 나온다. 조국당이 총선 직전까지 지지율을 견인하자 여권에서는 급하게 견제에 나섰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은 총선 기간 동안 조 대표를 ‘범죄자’로 규정하며 “범죄자들에게 미래를, 아이의 미래를 맡길 수 없지 않냐”고 강조했다. 이에 조 대표는 “‘한동훈 특검법’에 동의부터 하라”며 맞불을 놨다. 조국당은 한동훈 특검법에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동의할 것이란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중도층을 포섭해야 하는 입장이다. 또한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한 조 대표의 존재가 부담스럽기도 하다. 정치권에서는 여의도 신입인 조 대표와 이재명 대표를 동일선상서 바라보는 모양새다. 총선 다음 날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이번 선거를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던 (윤석열)대통령에게 보낸 마지막 경고”라고 평가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은)하루빨리 이재명·조국 대표를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제1야당 대표인 이 대표뿐만이 아니라 조 대표까지 함께 언급된 만큼 조 대표의 몸값이 크게 뛰었다고 해석했다. 조 대표는 대권주자로서의 가능성은 닫아뒀지만 민주당에서는 견제하는 분위기가 이어진다. 이 같은 흐름을 두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현해 “야권의 분열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이재명 대표와 조국 대표의 속도 차이가 있을 것”이라며 “(야권이) 윤정부에 대한 심판론을 갖고 거대 의석을 이뤘지만 조 대표와 이재명 대표의 시간표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녀 입시 비리’ 사법 리스크 여전 대법 판결 정치생명 마침표될 수도 현재 조 대표는 대법원 판결만 남은 만큼 모든 일정을 빠르게 해치워야 한다.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정치판에 뛰어든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대법원과 견줄 만큼 몸집을 키우거나 진보 진영서 대권을 잡아 스스로의 힘으로 사면해야 한다는 게 이준석 대표의 시나리오다. 반면 이재명 대표는 급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준석 대표는 “이재명 대표는 많은 의석을 가진 정당의 대표기 때문에 서서히 조여 들어가려고 할 것”이라며 “그 속도 차이가 역설적으로 두 세력의 분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현재 조 대표의 생존 전략은 조국당의 원동력을 유지하거나 추후 여의도 복귀를 위한 명분을 쌓는 데 그칠 뿐이다. 조국당의 정치 공간을 넓히고 다른 당과 손을 잡기 위해 매력적인 묘수를 꾀어내는 게 조 대표의 숙제로 남아 있다. 조국당 의석은 12석으로 교섭단체를 충족시키는 20석을 채우기 위해서는 8석이 더 필요하다. 1석씩 얻은 새로운 미래와 진보당, 혹은 소수 야당과 손을 잡고 공동 교섭단체를 꾸리는 것도 방법 중 하나로 제시된다. 이제까지 민주당과 조국당 모두 합당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다. 조국당이 내세운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 슬로건에 민주당은 ‘몰빵론’을 내세우기도 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얻은 지금으로서는 조국당이 거대야당에 협력하는 관계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의외의 성적을 거둔 조국당이 22대 총선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쥐면서 꼬리가 몸통을 흔들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민주당·민주연합·조국당 등 범야권이 힘을 합치면 의석수가 국회의원 전체의 5분의 3인 180을 넘기게 된다. 이 경우 신속처리안건인 패스트트랙 지정을 통해 법안을 강행할 수 있다. 아울러 패스트트랙에 저항할 수 있는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도 강제 종료시킬 수 있다. 혼자일 때 더 강하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조국 대표가 민주당과 합칠 가능성은 매우 적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추후 민주당서 탈당할 의원이나 제3지대 의원이 합류한다면 원내교섭단체인 20석이 충분한 만큼 조 대표가 숙이고 들어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전적으로 조 대표의 판단에 달렸지만 민주당과 손을 잡으면 지금과 같은 선명성이 묻히고 특유의 아이덴티티를 잃게 된다”며 “조 대표는 이번 총선의 캐스팅보트다. 살아남는 방법은 지금과 같은 목소리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다급해진 대법원? 대법원이 업무방해·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를 받는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상고심 사건의 재판부를 결정했다. <뉴스1>에 따르면 주심은 엄상필 대법관으로 2021년 조 대표의 배우자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항소심서 징역 4년을 선고한 이력이 있다. 현재 대법원은 엄 대법관이 상고심 재판을 맡더라도 형사소송법상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조 대표 사건의 하급심 판결에 엄 대법관이 직접 관여한 것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다만 엄 대법관에게 유죄의 심증이 있으므로 조 대표 측은 재판부를 교체해달라는 기피 신청을 낼 수는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