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호 특집> 미제사건 파일6 ⑤경남 부녀자 연쇄실종

하나 둘 셋 넷 다섯…사라진 여인들은 어디로?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실종사건은 미제사건 가운데 가장 해결하기 까다롭다. 실종자의 생사 여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수사를 진행하기 어려워서다. 실종자의 가족들은 온갖 안 좋은 상상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간다. 용의자 특정이 가능한 상황이면 더욱 그렇다. 이런 답답한 상황이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김해·부산 부녀자 연쇄실종’ 사건이다.

10여년 전 경남 김해와 부산서 부녀자들이 잇달아 실종됐다. 실종 당시 해당 여성들은 한 남자와 덤프트럭 사업을 공동으로 계획할 만큼 가까웠다는 공통점이 있다. 해당 남성이 강력한 용의자로 부각되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검찰과 경찰은 혐의에 대한 기소를 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의혹투성이

2006년 6월 10일 보험설계사 김미자(당시 48세)씨가 실종됐다. 가족들은 3일을 기다린 끝에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실종신고를 받은 경찰은 나흘 뒤인 14일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송지리 농로서 김씨의 차량을 발견했다.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차량은 심하게 훼손돼 있었고 번호판까지 떼여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 김씨는 없었다.

실종 당시 김씨는 덤프트럭 기사 A(당시 44세)씨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김씨의 고객이었던 A씨와는 10년 넘게 알고 지냈다. 둘은 덤프트럭 사업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날 김씨는 생림면의 한 은행서 현금 210만원을 인출하는 등 총 4000만원에 달하는 현금을 가지고 있었다. 그와 사업을 구체화할 요량으로 풀이됐다.

실종신고가 들어온 10일, 경찰은 A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당시 A씨는 김씨를 만나기로 했으나 실제로 만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김씨가 약속 당일 연락 두절이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경찰은 별다른 수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되면서 경찰은 A씨를 실종사건의 용의자로 특정했다. 차량이 발견된 인근 CCTV에 A씨가 포착됐기 때문이다.

특히 약속 당일 만나지 못했다는 A씨의 진술과 달리 김씨와 A씨가 A씨의 차량에 동승한 CCTV화면이 심증을 더했다. 또 김씨가 은행서 210만원을 찾을 때 이미 김씨 차량에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그는 사건의 용의자로 부각됐다.

A씨는 경찰 수사의 칼날이 자신을 향하자 종적을 감췄다. 경찰은 A씨를 유력 용의자로 보고 공개수배했다. 그는 사건 발생 6개월 만인 2006년 12월 시민의 제보로 울산 울주군서 체포됐다. 체포 당시 그는 변장을 하고 가명을 쓰고 있었다.

A씨가 잡히자 사건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란 기대감이 고조됐다. 하지만 A씨가 김씨의 실종과 무관하다고 발뺌하면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김씨를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김씨가 차키를 차에 꽂아둔 채 어딘가로 사라져 나타나지 않아 혼자 차를 끌고 왔다” “갑자기 괴한 3명이 와서 나를 폭행하고 김씨를 납치해 가버렸다”는 등 말을 바꾸면서 혐의를 부인했다.

김씨의 차량을 훼손한 것과 관련해서도 “만난 뒤 곧바로 김씨가 실종된 데다, 김씨가 가지고 있던 현금이 없어진 사실이 드러나면 내가 범인으로 의심받을까 봐 두려워 김씨의 차량을 옮기고 도피생활을 한 것일 뿐, 김씨의 실종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해 그를 심문했다. 결과는 ‘거짓’으로 나왔다. 하지만 A씨가 모르쇠로 일관하자 경찰과 검찰은 그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난항을 겪었다.

김해·부산 부녀자 5명 행방불명

재수사 요구에도 수사당국 모르쇠

특히 수사 과정서 드러난 또 다른 범죄 혐의점이 그를 강력한 용의자로 부각시켰다. A씨가 김씨 실종사건 외에도 총 4명의 실종 사건에 연루돼있다는 점이었다. 실종된 4명 모두 실종 직전의 상황이 김씨와 유사했다.

사건은 2002년부터 발생했다. 김남환(당시 46세)씨는 지난 2002년 3월13일, 당시 함께 살던 어머니에게 “식당에 일하러 간다”고 말한 뒤 그가 살던 경남 김해 생림면서 실종됐다. 실종 당시 김씨는 이혼하고 받은 위자료 4000만원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년 뒤인 2004년 6월6일에는 김해 상방동에 살던 김영순(당시 43세)씨가 아파트 담보금과 보험금 등 4850만원을 갖고 집을 나간 후 생사가 확인되고 있지 않다.

또 부산 금정구서도 조금선(당시 46세)씨가 2005년 1월20일 사라졌다. 조씨도 5000만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덤프트럭 사업 동업자와의 문제로 집을 나선 뒤 행방불명됐다. 같은 해 9월30일에는 최점옥(당시 41세)씨가 실종됐다.

최씨는 김미자씨의 고객이었다가 김씨 소개로 보험설계일을 시작한 뒤 김씨에게 A씨를 소개받았다. 최씨 역시 A씨와 덤프트럭 관련 사업을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종 직전 최씨는 3000만원의 현금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과적으로 실종자 4명 모두 A씨와 지인이라는 점과 덤프트럭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다는 점, 모두 실종 직전 거액의 현금을 가지고 있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실종 관련 주요혐의로 A씨를 기소하지 못했다. 이들 모두의 행방이 불분명해서다. 결국 경찰은 차량과 번호판을 훼손한 혐의로 기소해 A씨는 2007년 5월 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현재로선 해당 사건이 미제사건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실종자들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가 좀처럼 어렵기 때문이다. 실종자 가족 가운데 해당 사건의 재수사를 요청한 경우도 있으나 이 같은 어려움 때문에 경찰당국은 수사를 재개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경남지방경찰청은 “이번 사건은 아직 피해자들이 실종된 것인지, 살해당해 죽은 것인지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A씨를 기소하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영구미제?

일각에선 해당 사건에 대한 재수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미제사건은 실마리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한데 해당 사건은 정황증거가 뚜렷하다”며 “‘연쇄실종’이 아닌 ‘연쇄살인’ 사건으로 규정하고 강도 높은 재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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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