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주변인 의문사 추적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6.11.21 10:17:09
  • 호수 10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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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린의 시대’ 건드리면 죽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유독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선 의문사와 사망사건이 끊이질 않았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박 대통령 주변에서 일어났던 사망사건이 주목 받고 있다. 이들 사망자 대부분은 박 대통령과 최태민 목사와 연관돼 있다. 이들은 어떻게 죽었으며, 왜 죽었을까.  
 

그 동안 박근혜 대통령 주변서 일어난 사망사건은 총 4건이다. 이 중 3건은 최태민 목사와 박 대통령과 연관된 사람들의 죽음이다. 나머지 1건은 박 대통령만 연관된 사건이다.

최태민 파헤친
종교연구가 사망
 

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이 지난 1994년, 자신의 아파트 근처서 한 광신도에게 살해당했다. 탁 소장은 사이비 신흥종교·이단문제의 선구자였다. 그는 1970년도 당시 최 목사에 대해 가장 많이 연구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기독교신문사> 기자로 일하던 그가 신흥종교운동 연구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56년, 20세 때인 신흥종교단체 영주교를 목격하면서부터다. 이후 64년부터 본격적인 신흥종교운동 연구에 나서기 시작했다.

1967년부터 1984년까지는 계룡산 신도안 일대를 다니며 신흥종교를 연구했다. 당시 신도안 주변을 하도 집요하게 취재하고 다녀 주변 사람들은 그를 ‘계룡산 출입기자’로 불렀다. 

탁 소장은 신흥종교를 순수한 민족종교와 반사회적 사이비종교 집단으로 분류했다. 그는 특히 기독교의 전통적 가르침서 벗어난 기독교 이단들을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통일교, 천부교, 동방교, 여호와의증인, 대한기독교장막성전 등 70년대에 연구한 단체만 해도 27개나 됐다. 

이렇다 보니 신변 위협도 많이 받았고 실제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이단 강연회를 여는 곳이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해당 신도들이 몰려와 난동을 부렸고 몰매를 때리기도 했다. 하지만 탁 소장은 긴박한 상황이 아닌 한 좀처럼 경찰에 경비를 요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1969년엔 동방교서 살해 계획을 세우기도 했고 유신 치하에선 이단들의 모함으로 정보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탁 소장은 1973년 5월, 한 신문광고를 통해 최 목사의 존재를 알게 됐다. 신문광고는 ‘영 세계에서 알리는 말씀’이란 제목으로 불교와 기독교, 천도교 사상을 혼합한 교리를 전파한다는 내용이었다. 점을 치고 관상을 보던 무속인 광고와 흡사했다. 이 때 광고를 낸 사람이 최 목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독 대통령 주변 사망사건 끊이지 않아
어느날 갑자기 비명횡사…살인도 일어나
 

탁 소장은 이후 최 목사의 정체와 대한구국십자군의 발족과 폐해, 교회를 이용한 정황 등을 담은 글을 <현대종교> 1988년 4∼6월호에 소상히 담았다. 시리즈 글의 제목은 ‘부끄러운 권력의 시녀 목사들’이었다.

탁 소장은 글 말미에 “최태민의 구국선교단 사건은 확실히 암흑기의 권력형 부조리와 야합한 우리 시대의 단막극”이라며 “언젠가는 이 사건이 실제로 기독교 역사에 실명으로 기록될 때가 올 것”이라고 썼다. 

탁 목사는 기사를 내기 직전, 실제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중앙정보부 관계자가 찾아와 “그 사건을 파헤치면 신상에 좋지 않을 거다. 영애(박 대통령)가 관련된 일이니 입 다물고 있어라”고 협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제4공화국> 찍은
촬영감독 교통사고
 

1995년 방영된 MBC 드라마 <제4공화국>에 박 대통령과 최 목사가 등장한 후 촬영감독 조모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제4공화국> 영상 속에는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독대 하는 장면이 담겼다. 극중 대화 속에서 김재규 부장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큰 영애’의 문제를 거론한다.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은 “최태민 목사가 영애(박근혜 대통령)의 후광을 얻어 각종 이권에 개입한다”며 박정희 대통령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드라마의 대사내용이다. 

김재규: 큰 영애(박근혜 대통령) 문제입니다.
박정희: 최(최태민) 무엇인가하는 그 목사 이야기요?
김재규: 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큰 영애의 후광을 입고 지나친 짓을 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아니, 무슨···.
김재규: 구국여성봉사단이라는 건 허울뿐이고, 업체에서 찬조금 챙기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그 여자문제까지... 여기 보고 내용입니다(보고서를 탁자 위에 올려둔다).
박정희: 내 그 문제는 대충 들어서 알고 있어요. 근혜 말은 그게 아니던데? 오늘은 이쯤에서 관둡시다.
김재규: 네(일어나서 자리를 뜬다) 

이 장면이 나간 후 얼마 되지 않아 조 감독이 현장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1995년 9월28일 새벽 1시50분쯤 인천대 제3정문 앞길서 촬영 중이던 제작팀을 음주운전 차량이 덮쳤다. 이 사고로 조 감독이 숨졌고 최모 PD, 분장사 안모씨 등 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날 촬영팀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행렬장면을 찍고 있었다. 최 PD 등이 차도를 일시 차단하고 촬영을 진행했지만 음주운전 차량이 이를 음주단속 현장으로 착각하고 그대로 돌진했다. 사고를 일으킨 이모씨는 혈중 알코올 농도 0.216%로 만취상태였다. 사고 이후 PD가 바뀌었고, 경찰은 술에 취한 사람의 단순 범행으로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MB에게 붙은
최태민 의붓아들
 

최 목사의 의붓아들이자 최순실씨의 의붓오빠인 조순제씨가 지난 2007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순제씨는 2006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MB캠프에 들어갔다. 이 때 MB 측은 박 대통령(당시 대선 경선 후보)을 공격할 카드로 최 목사와의 관계를 집요하게 추적했다. 

일명 ‘조순제 녹취록’에는 최 목사 일가의 재산 형성과정의 비밀이 상세히 기록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녹취록에 따르면, 1970년대 초중반 최 목사 일가의 생활은 궁핍했다. 최 목사가 1975년 구국선교단을 조직하고, 박 대통령을 명예총재에 앉힌 후 엄청난 부를 얻게 됐다. 순제씨는 “돈 천지였다. 우리나라 재벌들이 돈 다 냈다. 돈은 최태민이 관리했다”고 녹취록서 밝혔다. 

그 외에도 녹취록에는 10·26(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사건) 이후 “뭉텅이 돈(전두환 대통령이 준 6억으로 추정)이 왔다”는 내용도 담겼다. 순제씨는 “돈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고, 심부름하는 사람이 있었다. 최순실이 심부름을 꽤나 했다”고 밝혔다. 

총 4건…3건은 최태민과 연관
그들은 어떻게 죽었을까 의혹

순제씨는 ‘1988년 영남대 사태'(박근혜 대통령이 학내 비리와 학원 민주화운동으로 물러난 사건)에 대해서도 증언했다. 박정희 대통령 사망 5개월 후인 1980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은 영남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교수들의 반발에 4개월 만에 재단 이사장에서 물러났다. 이사로 직위를 옮겼는데, 당시 박 대통령의 지시로 영남대를 실질적으로 운영한 4인방이 있었다고 했다. 이중에 순제씨와 손윤호(순제씨의 외삼촌)가 있다. 순제씨는 당시 자신의 아들을 영남대 경제학과에 부정으로 입학시켰다. 불법자금 편취와 공금 횡령, 판공비 사적용도 사용 등 비리도 일삼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녹취록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MB후보 캠프서 작성됐다. 핵심 관계자는 “녹취록 작성자는 전직 언론인 2명이다. 당시 이명박 후보가 앞서 나갔고 결국 승리했기 때문에 해당 녹취록을 공개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한편 박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청문회 당시 “조순제를 모른다”고 말했다. 순제씨는 녹취록 작성 1년 뒤인 2008년 지병으로 사망했다. 순제씨는 이 녹취록서 10·26 이후 굉장히 친밀한 관계로 지내왔음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경선 당시 그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 토사구팽, 배신감을 느꼈다고 적었다. 

대통령 5촌 인척
의문의 살인사건
 

2007년 박 대통령과 5촌 지간이었던 박씨 형제 사이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이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사촌형 박용수씨가 사촌동생 박용철씨를 살해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원한에 의한 사촌 간 살인사건으로 결론 내렸다. 

그러나 수사 종료 후에도 석연찮은 대목이 있어 논란은 계속됐다. 살해된 용철씨는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씨와 박 대통령의 제부인 신동욱 현 공화당 총재 사이에 진행되던 재판의 주요 증인이었기 때문이다.

신 총재는 지난 2009년 지만씨가 박 대통령의 묵인 하에 박근령씨로부터 육영재단을 강제로 빼앗았으며, 자신을 청부살해했다는 주장을 했다. 결국 핵심 내용을 쥐고 있는 당사자가 죽음으로써 육영재단 사건의 내막은 묻히게 됐다. 

당시 사건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먼저 지만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려 했던 과정에서 피살됐다는 점이다. 용철씨는 이전에는 지만씨의 최측근이었으나, 증언 당시에는 사이가 틀어져 있어 재판서 용철 씨의 ‘양심 고백’이 기대되던 상황이었다. 

또 사건 이후 용철씨가 보관하고 있던 핸드폰이 분실된 점도 석연치 않은 대목으로 꼽힌다. 용철씨는 2010년 9월1일 재판서 자신의 휴대전화에 육영재단 사건 관련 녹음파일이 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시신 부검 결과 용철·용수씨 모두 수면제를 복용했다는 점도 수상한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흔히 자살사건과 관련해 수면제는 대개 타살의 근거로 수사 단서가 된다. 이 때문에 제3자 개입의혹이 제기됐다. 용수씨가 자살 직전 소화제를 복용한 점도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용수씨가 사전에 구입한 칼이 실제 살해에는 사용되지 않았고, 살해에 사용된 칼에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도 의문이며, 휴대폰 분실로 통화 내역 자체가 밝혀지지 않은 점도 석연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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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