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돌아온 손학규

‘이랬다 저랬다’ 몸값만 떨어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손사래치던’ 손학규 더불어민주당 전 상임고문이 드디어 돌아왔다.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으로 내려간 지 꼬박 2년 만이다. 손 전 고문의 정계 복귀 선언에 대선판이 어떤 방향으로 요동 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손 전 고문의 그간 행보와 정계 은퇴 번복 과정, 향후 반향에 대해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이제 7공화국을 열어야 합니다.” “국민 여러분, 모든 것을 내려놓아 텅 빈 제 등에 짐을 얹어주십시오.” 손학규 더불어민주당 전 상임고문(이하 손 전 고문)이 지난 20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서 정계 복귀를 공식선언하고 다시 정치권으로 뛰어들었다.

손 전 고문의 복귀 선언에 14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 구도에 또 하나의 변수가 더해졌다. 그는 “정치와 경제의 새판짜기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 국회의원·장관·도지사·당 대표를 하면서 얻은 모든 기득권을 버리겠다. 당적도 버리겠다”며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탈당도 선언했다. 그의 더민주 탈당으로 제3지대 정계개편 속도는 한층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새판짜기
안철수와 연대

손 전 고문은 지난 2014년 7·30 재보궐선거서 경기 수원병에 출마했으나 새누리당 김용남 전 의원에게 패했다. 그는 다음날인 7월31일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으로 내려가 칩거에 들어갔다.

당시 손 전 고문은 은퇴 기자회견서 “정치인은 들고 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평소 생각이다.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 또한 저의 생활 철학”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치인은 선거로 말해야 하는데 재보선서 유권자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도 했다.


당시 정치권 관계자들 사이에선 그의 정계 은퇴 선언이 영구적이진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허다했다. 실제 손 전 고문은 야권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원투수’라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강진 칩거 2년2개월 동안 정치권 인사들과 언론은 그의 행보에 수많은 억측을 내놨다. 그 사이 손 전 고문의 정계 복귀론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흘러 나왔다.

손 전 고문이 칩거생활에 들어간 지 3개월 만에 그의 정계 복귀 가능성이 제기됐다.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와 맞물려 당대표 후보군들이 손 전 고문을 연일 찾아간 것이다. 당시 새정치연합은 내부 계파끼리의 경쟁이 첨예한 상황이었다.

그 과정서 친노 진영과 대척점에 있던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 박지원 원내대표, 더민주 박영선 의원 등은 손 전 고문을 찾아 조언을 구하고자 했다. 하지만 손 전 고문 측은 정계 복귀 가능성에 대해 일축했다.

지난해 5월에는 손 전 고문이 서울 구기동으로 거처를 옮긴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한번 정계 복귀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는 경조사 참석 차 두 차례 상경하는 등 취재진 앞에 몇 번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평창·구기동 일대는 정치계 인사들이 많이 살고 있기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구기동은 당시 문재인 전 대표가 이사해 살고 있는 곳인 만큼 그의 거처 이전은 묘한 해석을 낳았다.

위치뿐만 아니라 시기도 미묘했다. 손 전 고문이 이사한 시기는 새정치연합이 4·29재보궐선거서 새누리당에 참패한 직후였다. 새정치연합은 야당의 텃밭이나 다름없던 서울 관악을 의석을 빼앗긴 것은 물론 광주 서구을에서 천정배 당시 무소속 후보에게 압도적으로 지는 등 완패했다.
 

새정치연합의 재보궐선거 패배는 당대표였던 문 전 대표의 리더십에 큰 상처를 남겼다. 선거 패배로 문 전 대표에 대한 실망감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손학규 대안론’이 급부상한 시기이기도 했다.


2년 만에 정계 복귀…은퇴 또 번복
더민주 탈당 선언 당적도 오락가락

또한 천정배 의원을 중심으로 호남발 신당 바람도 불고 있던 때였다. 손 전 고문의 측근은 “분당 아파트 전세를 더 이어갈 이유도 없고, 마침 손 전 고문의 딸이 구기동 인근에 거주해 딸 가족과의 접근성을 고려해 이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손 전 고문 측은 복귀 가능성에 대해 부인했지만 일각에선 정계 복귀를 위한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는 여기저기서 울리는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초심 그대로, 조용히 있겠다”며 복귀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지난해 8월에는 박영선 의원이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서 정계 복귀를 촉구한 적도 있다. 박 의원은 “그 분(손 전 고문)이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 등을 봤을 때 커다란 역할이 부여돼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손학규 역할론을 내세웠다.

손 전 고문이 한나라당을 탈당할 당시 내세웠던 메시지를 언급하며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는 국민들이 바라는 무언가, 그 무언가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야당 지도자를 찾고 있는데, 손 전 고문도 분명히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신당 창당설로 세간에 오르내리던 천정배 의원 역시 “한국 정치 상황이 워낙 어렵고 특히 야권이 지리멸렬해 있기 때문에 (손 전 고문이) 큰 역할을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게 제 솔직한 바람”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행보…
찻잔 속 태풍?

그 와중에 손 전 고문이 음악회 참석으로 공개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손 전 고문의 등장에 야권은 들썩이는 모습을 보일 정도로 당시 그의 주가는 천정부지에 달해 있었다.

야권 재편 논의에 속도가 붙기 시작하자 손 전 고문을 구심점으로 판을 바꿔보려는 인사들이 속속 등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4월 총선서 ‘새정치연합 80석 예상’ 등 참패론이 나오고 있던 시기라 손 전 고문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는 정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본격적으로 그의 정계 복귀 가능성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해 11월로 보는 시각이 많다. 정계 은퇴 선언 후 카자흐스탄서 첫 해외강연 후 뒤 귀국 현장에서 그는 취재진과 만나 “정치가 국민을 분열시키거나 갈등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정치는 국민을 통합하는 일을 해야 한다”며 묘한 뉘앙스로 발언했다.

박근혜정부의 현안에 대해서도 이전과 다르게 신랄하게 비판했다. 국정교과서 논란에 대해 “우리 학생들은 편향되지 않은 역사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기성세대는 학생들에게 편향되지 않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담보해줘야 한다”면서 “역사 교과서는 학계 최고 권위자들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집필할 수 있도록 맡겨줘야 하고, 국가는 그런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2년 넘는 칩거기간 동안 정치권과는 거리를 둔 손 전 고문은 이후 11월22일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때 모습을 보였다. 그는 매일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지켰고, 정치권에선 이를 계기로 그가 정계 복귀에 시동을 걸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조문 정치, 빈소 정치로 불린 손 전 고문의 행보는 그가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 후 강진 토굴로 되돌아가면서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의 이름은 야권 분열, 신당 창당, 제3지대론 등이 나올 때마다 빠짐없이 거론됐다. 지난해 12월, 문 전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도 손 전 고문은 ‘대안, 역할, 구심점’ 등 정치권 지각변동의 변수로 언급됐다.

그쯤에는 손 전 고문도 칩거 초반보다 훨씬 더 열린 태도로 정계 복귀에 대해 논했다. 손 전 고문은 “강진의 산이 나보고 ‘아우 더 이상 너는 이제 아주 지겨워서 못 있겠다, 나가 버려라’ 그러면 뭐 그때는…”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부 기자는 만나지 않겠다’ ‘돌아갈 가능성 없다’ 등 단호하게 복귀를 부인했던 때와는 달라진 분위기였다.

야권 유세 거절
복귀 시점 놓쳐

안 전 대표가 새정치연합을 탈당하고 새로운 세력을 규합하고 있을 무렵 손 전 고문에 대한 러브콜이 사방팔방에서 이어졌다. 하지만 총선 시기와 맞물려 정동영 의원 등 거물급 정치인들이 기민하게 움직이던 것과는 달리 손 전 고문은 상황을 관망하는 쪽에 가까웠다.

특히 더민주 내 손학규계로 분류됐던 의원들이 야권 재편에 따라 탈당과 잔류 등으로 엇갈린 행보를 보이면서 손 전 고문의 향방을 예측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정치권의 러브콜에도 묵묵부답을 유지하던 손 전 고문은 올해 1월 러시아 극동문제연구소 초청으로 러시아를 방문한 뒤 귀국한 자리에서 “새판을 짜서 새로운 희망을 주고 우물에 빠진 정치에서 헤어날 수 있는 길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새판짜기’는 손 전 고문이 정계복귀를 전격 선언한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도 중요하게 언급된 단어다.


‘정치권 복귀 의사는 없다’면서도 정중동의 움직임을 보이던 손 전 고문은 총선이 다가오자 자신의 측근들을 측면 지원하기 시작했다. 손 전 고문은 더민주 이찬열, 우원식, 이언주 의원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격려 메시지를 보냈고, 국민의당 최원식·김성식 의원의 개소식 때도 격려사를 전했다.

손 전 고문의 발탁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찬열 의원은 그가 정계 복귀를 선언한 후 탈당을 발표할 정도로 사이가 가깝다.
 

4월이 되면서 손 전 고문에 대한 SOS는 간절한 수준으로 변했다. 김종인 전 더민주 대표는 총선을 일주일가량 남긴 시점에서 “손 전 고문께 남은 선거기간 동안 유세를 간곡히 요청할 예정”이며 “공식적으로 더민주를 도와달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민주 당적을 유지하고 있던 손 전 고문은 소속 정당 대표의 공식 요청에도 유세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정계 은퇴 약속과 원칙을 지킬 것”이라며 결국 다시 토굴로 돌아갔다.

일각에선 손 전 고문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자연스럽게 복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후 야권이 총선에서 뜻밖의 승리를 거두면서 이 분석은 힘을 얻었다.

슬슬 간보다 이미지만 나빠졌다
기회 많았지만 결국 최악 타이밍

총선 이후 손 전 고문은 4·19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는 등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는 빈도수를 높였다. 또한 총선 당선자들과의 오찬 자리서 “20대 국회에서 근본적인 제도 개선과 제도 혁명을 위한 새판짜기에 나설 수 있도록 모두 마음을 단단히 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새판짜기로 대변되는 손 전 고문의 정치적 발언은 무수한 해석을 낳았지만 그는 “(4·19 묘지 참배가) 정치적 의미를 둘 만한 일은 아니다”라며 또 한 번 복귀설에 대해 일축했다.

지난해 11월이 그의 정계 복귀 가능성을 가시화한 시점이라면 올해 5월은 구체화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7월 복귀설, 8월 복귀설, 9월 복귀설 등 손 전 고문의 정계 복귀 시점이 구체적으로 제시됐기 때문이다.

총선 때 국민의당의 약진으로 야권 개편이 이뤄진 상황에서 더민주 김 전 대표가 당내 유력 대선주자인 문 전 대표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손 전 고문은 그 대항마로 정계 인사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 사이 손 전 고문은 5·18 시기에 야권의 심장으로 불리는 광주에 방문했다. 당시 손 전 고문은 “국민이 새 판을 시작하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고 광주의 5월은 그 시작”이라며 또 다시 새판에 대해 언급했다.

일본 게이오대학 강연에선 “대선주자들이 개헌에 대한 각자의 안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다음 대통령이 취임해 개헌을 추진하는 게 효과적 방법”이라며 개헌론을 제기했다. 부쩍 잦아진 손 전 고문의 공개 행보와 발언에 그의 정계 복귀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기가 문제였을 뿐이다.

해외에 나갔다가 귀국할 때마다 정치적 발언으로 주목받았던 손 전 고문은 일본 방문 뒤에도 “국민적 요구를 담아낼 그릇인 정치에 금이 갔기 때문에 새 그릇이 필요하다”며 새판에 이어 새그릇론을 내놨다. 새판, 새그릇 등은 손 전 고문이 정계 복귀를 위해 쌓는 명분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사실 그의 정계 은퇴 번복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손 전 고문은 2008년 통합민주당 대표로 있을 무렵 18대 총선 패배 책임을 지고 2년여간 강원도 춘천에 칩거했던 적이 있다. 당시에도 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손 전 고문에 대한 러브콜이 이어졌다.

하지만 손 전 고문은 “반성이 끝나지 않았다” “필요할 때 역할을 할 것” 등의 말로 복귀설을 부인했다. 이에 손 전 고문이 자신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손 전 고문은 2010 6·2 지방선거서 야권연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했다. 그때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출마 희망자들의 지원 요청이 쇄도했고, 결국 수원 선대위원장을 맡아 이찬열 의원의 당선을 견인하는 등 손 전 고문의 영향력이 확인됐기 때문에 ‘부드럽게’ 정치 복귀가 가능했다.

하지만 6년이 지난 현재는 그 명분을 찾기 어렵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4월 총선 당시 더민주와 국민의당의 러브콜을 모두 거절했기 때문이다.

국민 무관심
지지율 3%

게다가 총선이 야권의 승리로 마무리 되면서 손 전 고문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새누리당은 “손 전 고문의 정계 복귀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며 “큰 폭발력은 없을 것”이라는 구두 논평을 내놨다. 더민주서도 이찬열 의원 외에 추가 탈당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는 만큼 제3의 길은 가시밭길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여기에 최순실 게이트,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 등 대형 이슈가 언론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서 복귀 선언이라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한편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9월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손 전 고문의 지지율은 3%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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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