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정권 재창출 시나리오 가동

반기문·김무성·오세훈, 누구에 러브콜?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이 ‘킹메이커’로 거듭날까. 한 유력 월간지는 측근발 소식을 통해 내년 대선서 그가 구심점을 자처하고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의 폭탄발언에 정치권에선 ‘가능론’과 ‘회의론’이 교차하고 있다. 가능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친이(친 이명박)계의 조직적인 움직임을 예상하는 반면, 회의론자들은 발언의 출처를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 어떤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을 것이란 데는 양쪽 모두 동의하는 모습이다. <일요시사>는 해당 발언을 다각도로 분석해봤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차기 정권을 반드시 내 손으로 창출하겠다”고 말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월간조선> 9월호는 이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라는 사람의 입을 빌려 해당 소식을 전했다. 이어 해당 측근 인사는 “대치동 슈페리어 타워에는 모든 정보가 집중되고 있다”며 이미 상황이 진척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 전 대통령은 해당 타워에서 집필활동을 하는가 하면 여러 인사들을 만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력 의지
드러낸 MB

한때 해당 보도의 진위 여부를 두고 정치권이 소란스러웠다.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주장하는 쪽(가능론자)은 검찰 수사와 관련된 일련의 상황들이 이 전 대통령의 생존본능을 자극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재 검찰은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의 장례식 직후 롯데에 대한 수사를 재개한 상태다.

잘 알려진 바대로 롯데는 친이명박 기업 중 하나다. 검찰의 수사가 어느 선까지 올라갈지는 예상하기 힘드나, 이 전 대통령 입장에선 포스코 비리와 관련해 이상득 전 의원이 검찰에 출석했던 지난 상황이 떠오를 법하다. 친이계 인사들이 “박근혜정권은 임기 4년 내내 직전 정권과 관련된 기업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를 하는 이유기도 하다.

반면 내년 대선과 관련해 이 전 대통령이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내다보는 사람들(회의론자)도 다수 존재한다. 그들은 보도의 출처 자체를 의심하는 모습이다. 이 전 대통령이 언론에 직접 얘기한 것이 아니라 측근을 통해 나온 말이기 때문에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 관측하고 있다.


핵심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도 해당 보도에 펄쩍 뛰는 모습이다. ‘친이계 좌장’ 이재오 전 의원은 복수의 언론을 통해 “200% 사실이 아니다”며 가능성을 일축했다.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 전 대통령은 보도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나’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도대체 누가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니느냐며 언짢아하셨다”며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도 하셨다”고 전했다.

박근혜 실정
MB에겐 이득?

그렇다면 해당 발언이 나온 배경은 무엇일까. 이는 현 정권의 행태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호 기사는 “박근혜 대통령과 완전히 갈라선 반박(반 박근혜) 세력이 의지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박 대통령이 임기 중 단 한 번도 ‘역할’을 맡기지 않은 데 따른 섭섭함을 간접적으로 토로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전한 바 있다.
 

실제 현 정권에 대한 이 전 대통령의 섭섭함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 전 대통령은 최근 새누리당의 한 의원을 만나 “나도 (국정 운영을) 못했지만, 나보다 더 못하는 것 같다”고 심경을 전한 바 있다. 해당 의원은 “이 전 대통령은 박 대통령이 국정을 잘못 이끌어 가고 있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강했다”며 “특히 계속되는 검찰의 재벌수사에 불만을 토로했다”고 밝혔다.

이는 가능론자들의 생각과 일치한다. 직전 정권의 비리를 캐기 위한 표적 수사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 전 대통령이 권력의지를 내보였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또 박근혜정권의 잇따른 실정이 해당 발언이 나오게 된 근본 원인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인터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 8월에는 여러 정치적 사건들이 있었다. 먼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새로운 의혹들이 하루 걸러 언론을 통해 보도되던 시점이다. 청와대와 친박계의 ‘우병우 지키기’ 움직임으로 현 정권의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새누리당 8·9 전당대회(이하 전대)에선 이정현·조원진·이장우 등 친박(친 박근혜)계가 지도부에 당선됐다. 이는 친이계를 중심으로 한 비박계의 위기 의식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언론을 통해 비박(비 박근혜)계가 우 수석 사퇴에 무게를 두는 발언이 나오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또한 ‘화해·치유재단’ 설립과 일본의 10억엔 송금에 반발하는 목소리로 시끄러운 상황이다. 야권과 진보언론, 시민단체에선 이를 강제성과 국가배상 책임을 비켜간 굴종적 위안부 합의라 보고 적극적 대응에 나선 상태다.

박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오늘은 제71주년 광복절이자 건국 68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이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부정하는 뉴라이트 역사관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측근 통해 “내 손으로 정권 창출”
가능론 대 회의론…결국 의도된 일?

일련의 사건들로 박 대통령은 여론의 역풍을 맞은 상태다. 이러한 박 대통령의 잇단 실정이 이 전 대통령과 친이계의 자신감을 높여줬을 가능성도 있다. 이 전 대통령이 활동할 수 있는 판은 이미 깔려 있는 상황이다. 친이계 인사들이 원내외 구분 없이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원외에선 이재오·정의화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이 전 의원은 최근 ‘중도 신당’을 기치로 창당을 준비하고 있다. 당명은 늘푸른한국당(늘푸른당)이다. 늘푸른당은 6일 발기인대회를 거쳐 내년 1월 창당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앞서 지난 5월 ‘새한국의 비전’ 출범식을 가진 정의화 전 국회의장 또한 대표적인 원외 친이계 인사로 불린다. 본인은 새한국의 비전에 대해 “대선을 위해서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선 정 전 의장이 내년 대선의 ‘킹메이커’가 될 수 있다고 예상한다. 때문에 이 전 대통령이 이들 친이 성향의 정치세력과 함께 대선에 맞춰 활동할 수 있다는 예상을 충분히 해볼 수 있다.

최근 대권 도전을 시사한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와 함께하는 그림도 그려볼 수 있다. 안 전 대표의 측근인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서 “이재오 전 의원도 중도 정당을 추구하고, 정의화 전 의장도 새로운 모멘텀을 만들고자 한다. 국민의당도 새로운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며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태다. 이 의원은 이 전 대통령 밑에서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을 지낸 인물이기도 하다.

이재오·정의화
원외 인사 주시

최근 정치권에선 새누리당 비박계가 제3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제3지대론’이 제기된 바 있다. 만약 상황이 이와 같이 전개된다면 이 전 대통령이 구심점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비박계 내에는 친이계 인사들이 다수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지난 8·9 전대에서 단일화를 이뤘던 주호영·정병국·김용태 의원 등이 친이계로서 원내서 활동하고 있다. 친박계 지원을 등에 업고 당선됐지만, 정진석 원내대표 또한 대표적인 친이계 인사로 분류된다.

남경필·원희룡 등 지자체장들 중에도 친이계가 포진해 있다. 이미 죽은 권력이지만, 세의 규모적인 면에선 친이계가 친박계에 절대 꿀리지 않는다는 말도 나온다. 특히 박근혜 정권이 임기 말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친박계의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친이계의 상대적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종합해보면 이 전 대통령이 ‘킹메이커’로 나설 수 있는 환경은 이미 조성돼 있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를 내세운다는 것일까. 앞서 <월간조선>서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이 집중적으로 관찰하는 인물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세 명이라고 한다.


해당 측근은 “반 총장의 경우 이 전 대통령이 직접 저울질하고 있다”며 “저울질이란 건 대통령 후보로 나섰을 때 당선 가능성이 있는지를 따져본다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반 총장은 친박계가 내세우는 대표적인 대선주자다.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 친박계의 반 총장 옹립설이 보도된 바 있다. 그러나 친이계 쪽에서도 반 총장 영입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8·9 전대 과정서도 비슷한 논의가 있었다. 당시 비박계 후보들은 “반 총장을 친박 후보로 가둬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연설을 한 바 있다.

잠룡 3인 언급 MB와 인연 있다
냉랭한 여론 “최악의 대통령”

친이계 인사들의 반 총장 접촉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이명박정권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윤진식 전 의원은 반 총장과 동향 출신으로 연이 닿아 있다.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정진석 원내대표는 앞서 반 총장 방한 당시 제주도로 달려가는 등 적극적 움직임을 펼친 바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법무비서관을 지낸 권성동 의원과 대통령실 인사비서관 선임행정관 등을 지낸 윤한홍 의원은 지난달 26~28일 뉴욕 유엔본부를 방문해 반 총장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만남이 정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며 국내 정치에 선을 그었지만, 비박계 의원과 반 총장의 만남 자체만으로 주목받는 분위기다.
 

팽목항을 시작으로 20일간 전국을 돌며 민생투어를 벌였던 김무성 전 대표 또한 이 전 대통령의 리스트 안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표와 이 전 대통령 모두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발탁한 ‘YS 키즈’라는 점에서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1992년 14대 총선 때 민자당 비례대표로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대선출마를 위해 통일국민당을 창당하자 맞불 작전으로 ‘샐러리맨 신화’의 상징이었던 이 전 대통령을 영입했다.

두 사람이 서로 호흡을 맞춘 전례도 있다. 지난 2007년 제17대 대선 때 김 전 대표는 당시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어 이명박 선거대책위원회서 활동한 바 있다.

당시 친박계였던 김 전 대표는 박근혜 선대위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아 이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지만, 이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주자로 확정된 후에는 “이명박 (당시) 후보를 돕는 게 대의명분에 맞다”며 당선을 위해 뛰었다. 무엇보다 김 전 대표가 비박계의 수장이기 때문에 이 전 대통령이 주목하고 있는 대선주자로 분류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MB 주목하는
잠룡들 누구?

오세훈 전 서울시장 또한 후보군 중 한 명이다. 오 전 시장은 친이계 출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제33·34대 서울시장을 역임했다. 당시 오 전 시장은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던 시절의 개발정책을 기본 축으로 이를 확대, 계승하는 방향을 취했다. 오 전 시장은 이 전 대통령의 고려대 후배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오 전 시장이 당선되는 데 이 전 대통령의 지원이 있었다는 당시 정황이 있다. 지난 2006년 5월 지방선거 때 오 전 시장과 당내 경선을 치렀던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인터뷰를 통해 “(이명박 서울시장이) 나를 지지하기로 했던 약속을 깨고 오세훈을 밀었다”고 전한 바 있다.

또한 오 전 시장이 스스로 2017년 대선 출마를 시사했던 적이 있어 눈길이 간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오 전 시장은 MBC 라디오에 출연해 “(지방선거에서 재선을 하면) 8년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국민과 당이 원한다면 (대선 출마를)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과연 이 전 대통령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전면에 나설 것인가. 이에 대해 가능론과 회의론이 공존하지만, 무엇보다 이 전 대통령을 바라보는 여론이 좋지 않다는 점에서 신중한 움직임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온라인 미디어 imTV와 여론조사 전문기관 ‘윈지코리아컨설팅’이 지난달 8∼9일 전국 만 19세 이상 국민 1016명을 대상으로 유·무선 방식(무선 70%, 유선 30%)의 자동응답시스템(ARS조사)을 이용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최악의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32.4%)으로 조사됐다. 이어서 전두환 대통령(17.9%)이 2위를 차지했으며, 노무현(10.3%)·이승만(9.2%)·김대중(8.9%)·박정희(8.5%) 대통령이 그 뒤를 이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새누리당의 격정토로
국회의장 사퇴결의안 보니…

새누리당이 지난 1일 정세균 국회의장의 정기국회 개회사에 강력 반발, 사퇴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총공세를 펼쳤다. 새누리당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정 의장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는 내용을 담은 사퇴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정 의장의 정기국회 개회사가 발단이 됐다. 당시 정 의장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관련한 논란은 국민 여러분께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최근 사드배치와 관련한 정부의 태도는 우리 주도의 북핵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정부여당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우병우 사태’와 ‘사드 배치’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우병우·사드사태 일침
정기국회 개회사 발단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에 발끈하고 나섰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정치적으로 편향된 국론분열적인 언사를 국회의장석에서 버젓이 행하는 국회의장은 헌정사에서 정 의장이 처음일 것”이라며 “사퇴 촉구 결의안을 채택해 달라”고 요구했다. 다른 의원들 또한 “이것은 국회법에 대한 국회의장의 정면 도전”이라며 “새누리당은 지난 70년간 쌓아올린 대한민국의 의회 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든 정 의장의 폭거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전했다. 이어서 새누리당은 정 의장의 사죄와 국회의장직 사퇴를 거듭 촉구했다. <목>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