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조' 국방예산 용처 해부해보니…

안보위기 부추겨 군납업체만 배 불린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주류 언론에선 "미국의 요구에 따라 사드포대를 한반도에 배치해야 한다"라는 여론몰이가 계속되는 중이다. 때마침 우리 국방부는 232조원이라는 세금을 국방력 강화에 써야한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북한과의 군비경쟁을 염원하는 모습이다. '안보주의자'들이 위기론을 부추길수록 득을 보는 곳은 군납업체다. 세계적인 군수업체 록히드마틴은 한국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에 나설 조짐이다.

국방부의 '예산 조르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15일 국방부는 예비군 총기사고와 관련해 '재발방지 안전대책'을 내놓으면서 ▲사격장별 CCTV 설치 ▲사로별 방탄유리 칸막이 설치 ▲총기 고정틀 재설치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예비군 조교에게 신형 헬멧과 방탄복을 지급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할 것이라고 전했다. 모두 '돈'이 드는 개선방안이다.

북한 볼모로
예산 늘리기

국방부는 브리핑에서 관련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국방부의 속내는 1주일 뒤인 22일 드러났다. 이날 국방부는 '국방비, 대한민국의 안전과 국민 행복을 지키는 원동력'이란 자료를 통해 "국내외 안보환경 변화와 군인 복지 증진을 위해 향후 5년간 연평균 7% 수준의 국방예산 증액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공교롭게도 22일은 최차규 공군참모총장에 대한 국방부의 자체 감찰결과가 공표된 다음날이다. 21일 국방부는 "최 총장이 예산집행 관리·감독을 소홀히 하고, 관용차를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엄중 경고 조치했다"라고 알렸다.

감찰결과를 살펴보면 공군은 공군본부 총장실을 이전하면서 공사비로 9억5400만원을 썼다. 이 가운데 1400여만원의 예산을 중복 지급했다. 또 지난해 11월 미국 군수업체인 록히드마틴사로부터 F-35 모형을 기증받고 이를 꾸미는 과정에서 1999만원의 예산을 중복 지급했다.


최 총장의 부인과 아들은 관용차를 수시로 이용했다. 의무병과 장교는 최 총장의 공관에서 애완견을 진료했다. 아울러 최 총장은 공금을 횡령한 의혹과 공관비품을 고가에 구매한 의혹도 함께 받았다. 국방부는 모두 '사실과 다르다'고 했지만 여론은 '봐주기 감찰'이라며 들끓었다.

공군 최고 수장이 사실상 국가를 상대로 배임을 한 사건이지만 국방부는 꿈적하지 않았다. 도리어 하루도 못가 '깜짝 보도자료'를 돌리는 등 예산 삭감 여론을 무마하려는 모습이다. 영국전략국제문제연구소(IISS)가 지난 2월 발간한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한국의 국방비는 344억달러로 파악됐다. 344억달러를 원화로 환산(22일 기준)하면 37조5500억원에 이른다. 국방부는 지난 4월 우리 국방예산이 35조7000억원 규모라고 밝힌 바 있다.

군사비 규모
세계 10위권

한국은 이미 국방비 지출에선 세계 10위 규모의 군사대국이다. 1위인 미국(5810억달러·643조원)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한국보다 GDP(국내총생산)가 2배 이상 높은 일본(447억달러·55조7800억원)과 대조하면 경제수준 대비 상당한 세금을 투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매년 '더 많은 국방예산'을 의회에 요구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이 있어서다.

국방부는 지난해 북한이 투입한 군사비를 102억달러(11조2000억원) 수준으로 추정했다. 이는 국방부의 의뢰를 받은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남북한의 구매력평가환율(PPP) 등을 고려해 산정한 액수다. 지난달 14일 국방부는 "북한이 누락한 전력증강비나 시설투자비 등이 102억달러에 포함돼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세부적인 근거는 막연한 추론에 의존했다.

때문에 국방부가 특정한 의도를 갖고, 북한의 국방예산을 '뻥튀기'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북한은 올 4월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국가 총예산의 15.9%를 군사비로 쓰고 있다"라고 공표했다. 이에 근거한 북한의 군사비는 11억5000만달러에 불과했다. 국방부가 내놓은 추론과는 무려 10배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국방부 홍보자료서 232조5000억 예산배정 요구
군 한해 예산 37조4000억 전체 정부예산의 10%


국방부 인식의 핵심은 '북한이 나라예산의 절반을 군사력 증강에 쏟고 있다'라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국방부는 군비증강에 대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국방부는 '국방비, 대한민국의 안전과 국민 행복을 지키는 원동력'에서 "우리 국방예산이 국내총생산 대비 2.38% 수준"이라고 적시했다. 관련 통계에는 착시효과가 있다. 2015년 정부가 편성한 총예산은 376조원 규모로 전체 예산에서 국방비 비중은 10%를 상회했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국내총생산 대비 국방비가 이스라엘 등 대치국 평균인 3.69%보다 낮다"라며 "핵심 무기체계 도입과 병영문화 혁신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국방예산 증액이 필수"라고 주장했다. 4월20일에는 기관지인 <국방일보>를 통해 "2016~2020년 국방중기계획에 필요한 총 소요예산은 232조5000억원"이라고 발표했다. 매년 46조원 이상을 국방비로 활용하겠다는 얘기다.

지난해 11월 국회는 2015년 국방예산을 37조4560억원으로 편성했다. 이 가운데 무기 구매 등에 사용될 방위력개선비로 11조140억원을 명시했다. 전년과 비교하면 4.8%가 늘었다. 관련 예산은 방위사업청에 배정됐다. 남은 26조4420억원은 국방부의 수중에 떨어졌다. 편의상 이는 전력운영비로 분류됐다. 공군본부 총장실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쓰인 9억5400만원의 공사비는 모두 전력운영비 명목이다.

국방부는 이번 중기계획을 발표하면서 5년간 전력운영비를 155조4000억으로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방위력개선비는 연평균 10.8%가 증가한 77조1000억원이 돼야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규모로는 살림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국방부의 예산은 어떻게 집행되고 있을까.

국방예산 가운데는 항목이 분류되지 않은 '특수활동비'가 있다. 영수증이 필요 없는 현금성 예산이다. 국방부는 2013년 1643억여원의 특수활동비를 지출했다. 국가정보원(4566억여원)에 이어 정부기관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액수다. 국방부는 기밀유지와 정보수집 등을 목적으로 특수활동비를 집행했다. 외부에선 특수활동비가 어디에 쓰였는지 알 수 없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최근 당 대표 시절 수억원의 국회 특수활동비를 유용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국방부가 운영 중인 블로그 동고동락(mnd9090.tistory.com)에는 항목별 예산이 어떻게 쓰일 것인지 홍보하는 내용이 있다. 관련 블로그를 참조하면 의외로 장병들을 위해 쓰이는 예산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병에겐 6%
간부에겐 94%

먼저 장병에게 보급되는 휴지, 면도기, 구둣솔, 동내의 등의 생활필수품 예산은 299억원이다. 관련 예산에는 속옷과 수첩, 위장크림 등의 물품 구매 대금과 치약과 세숫비누 등 일부 현금 형태로 지급되는 예산이 모두 포함돼 있다. 또 군은 뇌수막염 등 4종의 예방접종으로 301억원을 사용했다.

병영문화쉼터와 풋살경기장 등 편의·여가시설 개선에는 1597억원이 투입됐다. 동절기 때 지급되는 방한피복 및 물자 예산은 862억원으로 편성됐다. 자기계발 지원에 87억원, 청소기 및 제설기 등 환경장비 지원에 114억원이 지출됐다. 하절기 온수 지원과 목욕시설 개선에는 340억원이 집행됐다. 국방부가 "좋은 병영환경을 만들겠다"라며 홍보한 예산의 합은 3600억원이었다. 전체 예산(2014년 기준)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장병의 급식비와 월급까지 더해도 비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급식비 예산은 1조1879억원이었으며, 병사 인건비로는 6996억원이 쓰였다. 두 항목을 더해도 장병을 대상으로 한 예산은 2조2475억원에 머물렀다. 전체 국방비 대비 장병을 위한 돈은 약 6%로 확인됐다.

최차규 공군총장 '예산 낭비' '관용차 유용' 적발
'묻지마 무기 구입' '방위분담금 증액 검토' 논란

국회에 제출된 2015년 예산안을 봐도 크게 증감된 부분은 없었다. 일부 전방부대의 환경관리(청소 및 제초) 업무를 '민간업체에 위탁하겠다'며 70억원을 편성하고, 수신용 공용휴대폰 지급에 12억원을 배정한 것이 전부였다. 지난해 군은 예산 편성 과정에서 "병영문화혁신과제를 위주로 1445억원이 증액됐다"라고 알렸다. 1445억원을 더해도 전체 예산 대비 6%의 수치는 변함없었다.


특이한 점은 군사외교 증진 및 국가 위상 제고,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국비 828억원이 군 체육대회에 배정됐다는 사실이다. '2015년 경북문경세계군인체육대회'는 총사업비가 1655억원으로 국방부가 원안에 담은 국고 지원 50%가 예산에 전액 반영됐다.

'없는 살림'에도 무기는 꼬박꼬박 구매했다. 비슷한 무기를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 행태가 반복됐다. 1조6000억원을 들여 외국산 지대공미사일을 사면서 국내 연구진이 M-SAM(저고도 방어)과 L-SAM(고고도 방어)을 동시 개발하는 식이다. 더구나 L-SAM(고고도 방어)은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록히드마틴의 사드와 큰 차이점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한국형미사일방어(KAMD)체계 전력 확보에 2조3000억원을 투입하고 있다.

록히드마틴은 앞서 한국 정부를 상대로 차세대 전투기(FX) F-35A 40대를 팔기로 계약했다. 총사업비는 7조4000억원 규모다. 그런데 국방부는 올해 8조5000억원의 개발비를 투자해 '한국산 전투기'를 양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군은 비슷한 용도의 대전차미사일을 국산을 포함, 6종 넘게 갖고 있다. K-2전차나 K-9자주포, K-21장갑차 등은 국방부가 개발 약속시기를 놓쳐 추가 예산이 투입됐던 기종이다.

국방부가 쓰고 있는 전체 인건비는 9조2445억원 규모다. 장병 인건비를 제하면 어림잡아도 간부 인건비만 8조5000억원이 넘는다. 인건비 증가는 국방부가 군 인력구조 개편을 위해 간부를 충원한 것이 주된 원인이다. 그렇지만 영관급 이상의 간부는 정리되지 않아 인건비 부담이 커지는 추세다. 여러 군사 분야 전문가가 지적한 바 있지만 인건비 과다지출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응할 목적으로 구축 중인 '킬 체인(Kill Chain)' 전력에는 5조7000억원가량이 투입될 계획이다. 킬 체인의 핵심 전력은 다목적 실용위성(6호), 고고도 정찰용 무인기(글로벌호크), 장거리 공대지 유도탄(타우러스) 등이다. 문제는 북한이 만에 하나 핵미사일을 발사한다고 하더라도 고고도나 장거리 무기로 타격할 가능성은 낮다는 데 있다. 지근거리인 남한을 포격하는 데는 '중거리' 무기면 충분하다.

군 안팎에선 같은 이유로 사드배치 회의론이 힘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일부 '안보주의자'들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라며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2011년 기준 아랍에미리트가 구매한 사드 2개 포대의 가격은 19억6000만달러(2조1560억원)였다. 미사일 1개의 가격도 1000만달러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외교 관례상 사드가 한반도에 배치될 경우 현재 내고 있는 주한미군 방위분담금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자신들의 돈으로 사드를 외국영토에 배치한 전례는 없다. 때문에 분할지급 형태로 미국에 돈을 내줄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다. 현재 한국은 연간 8000억~9000억원의 분담금을 미국에 지불하고 있다. 누적 방위분담금으로 발생한 이자에 대해선 미군이 임의로 쓰고 있다.

무기중복 구매
브레이크 없어

설사 한국정부가 사드 비용을 대납하지 않더라도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등은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록히드마틴 입장에선 미국이 구매해도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다. 그러나 록히드마틴은 청와대와 국방부, 방위사업청과 접촉해 사드 구매를 제안했다. 새누리당 고위 관계자도 비밀 리에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무기를 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인지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은 사드배치에 찬성 쪽으로 돌아섰다. 사드배치가 본격화되면 수조원을 투입한 KAMD와 Kill Chain 프로젝트는 원점 재검토될 수밖에 없다. 상호 미사일방어망이 중복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눈먼 안보장사로 득을 보는 세력이 궁금하다. 37조원을 쓰고도 '재원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그들은 대체 누구 편인가.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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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