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어깨 무거운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신임 원내대표

문재인과 궁합은…찰떡? 물과 기름?

[일요시사 취재 1팀] 박창민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의 신임 원내대표로 이종걸(경기 안양 만안) 의원이 선출됐다. 이 원내대표는 당내에서 비주류·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4선 의원이다. 지난해 두 차례 원내대표 선거 탈락의 아픔을 딛고 삼수 끝에 제1야당의 원내 사령탑에 올랐다.
           
 
 
1957년 5월22일 이종걸 원내대표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제강점기 만주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독립운동에 앞장선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다. 이 원내대표는 서울 덕수초등학교에 입학해 학교를 다니다 안양으로 이사했다. 안양시 만안에 있는 만안초등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1970년 이 원내대표는 만안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민변 변호사 활동
99년 정치 입문
 
이 원내대표는 경기중학교 진학을 목표로 공부에 전념했다. 하지만 중학교 입시가 무시험 전형으로 바뀌었다. 그의 어머니는 환경이 좋다는 이유로 서울의 예술전문학교인 예원학교 피아노과에 지원 입학시켰다. 중학생 시절 그는 안양에서 서울까지 완행열차 정기권으로 통학했다.  
 
이 원내대표는 예원학교 피아노과를 졸업했다. 하지만 그는 예원학교 3학년 무렵부터 예술 전공이 자신의 가야 할 길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지원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경기고등학교에 합격했다.
 

그의 핏속에 독립운동을 했던 할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 원내대표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학생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유신 독재에 반대하며 친구들과 ‘귀 있는 자 들어라’라는 유인물을 만들었다. 학교 교내 전관에 뿌리는 일에 가담했다. 평소 온화한 성격으로 알았던 주변 사람들은 그의 변화에 놀라워했다. 
한편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 원내대표는 자연과학을 전공하고 싶어 이과를 선택했다. 하지만 수학적 재능이 없음을 느끼고 문과로 전과한다. 1976년 2월 그는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다. 
 
1977년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성균관대 진학 이후 학생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종로 경찰서의 학생담당 정보과 형사의 주요 시찰 대상이 되기도 했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할머니가 할아버지한테 독립운동 자금을 부치기 위해 마련한 하숙집에 할아버지의 동지가 찾아왔다가 가면 여지없이 종로경찰서 고등계형사가 와서 괴롭혔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라며 이 원내대표가 형사들의 감시를 받는 것에 대해 슬퍼했다. 그러면서 그의 아버지는 이 원내대표의 행동이 경솔하지 않도록 조심시키면서도 그의 학생운동에 대해 ‘그만두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전해진다. 
 
이 원내대표는 대학교에 다니며 아카데미 운동을 했다. 서울 마포지역의 노동자 야학운동에 참여했다. 야학 은강학교에서 노동자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그는 학변자(운동학생들이 시위하다 잡히면 바로 군대로 끌려가는 것)로 군에 징집되어 입대했다. 
 
삼수 끝에 당선 1야당 사령탑 접수
당내 비주류·중도 성향…4선 의원
 
이 원내대표는 양평에서 3년 남짓 복무하고 육군 병장으로 만기제대했다. 그는 복학 후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를 중퇴했다. 이후 1983년 서울대학교 인문 2계열에 다시 입학했다. 1987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졸업 후 다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에 학사편입한다. 서울대학교 공법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는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범 시험을 2년간 준비한 끝에 1988년 제30회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1989년 졸업 이후 사법연수원에 들어갔다.
 

이 원내대표는 사법연수원 2년 차 때부터 변호사 운동을 준비했다. 그 무렵 당시 시민운동가였던 박원순 변호사를 만난다. 그는 잠시 박 변호사와 함께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참여연대’ 설립 기초를 마련했다. 이 원내대표는 참여연대 기초 사항을 작성했다. 
 
1991년 그는 사법연수원을 마치자마자 변호사로 개업했으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에서 인권 변호사로서 사회 활동을 시작했다. 민변의 간사 변호사로 활동하며 전국연합 인권위원회 위원, 천주교 인권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인권 관련 사건과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김영삼 정부 당시 노동악법 및 개악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를 시도할 때 안양에서 서명운동을 주도했다. 이를 계기로 모인 시민운동가들로 창립된 안양의 대표적인 시민운동단체인 ‘안양지역시민연대’의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서울대 민족활동가 사건, 천주교 기독교 애청사건, 시노맹사건 등 많은 시국 사건을 도맡아 승소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의 위원으로서 동티모르 인권침해반대투쟁, 간첩조작사건의 재심사건, 양심수석방을 위한 위원회 활동 등 인권운동도 전개했다. 
 
무계파로 분류
투사 이미지도 
 
노동분야의 활동에서도 노동조합의 법률자문을 역임하며 사업자와 임금협상 등 단체교섭 시에 발생하는 노동법률문제를 자문했다. 수많은 해고 무효확인 소송, 임금 소송 등 노동관계 소송을 맡았다. 
 
이 원내대표는 한국 사회 여성의 권리 신장에 크게 이바지했다. 성폭력특별법, 가정폭력방지법의 초안을 마련해 입법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그는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사건을 담당하여 승소했다. 그 공로로 1998년 여성운동상을 받았다. 
 
그는 법제정 분야에서도 성폭력특별법 제정 및 가정폭력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에서 여성인권운동의 일환으로 초안도 작성했다. 이 때문에 1999년 <여성신문사>가 선정한 ‘여성인권에 가장 기여한 남성 10인’에 선정됐다. 
 
 
1999년 11월 새천년민주당은 이 원내대표를 변호사 20인 중 한 명으로 영입한다. 이듬해 국회의원 총선거에 입후보했다. 
 
2000년 4월 이 원내대표는 제16대 국회의원(새천년민주당, 안양 만안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2002년 당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다. 이때 그는 노무현 후보 비서실 차장이 됐다. 선거 직전인 12월에는 수행실장 역까지 맡았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후 2004년 4월 제17대 국회의원(열린우리당, 안양 만안구)에 출마해 재선의원이 됐다. 그는 이후 같은 지역구에서 내리 4선에 성공한다. 당선 후 열린우리당 원내 수석부대표로 선출됐다. 이 원내대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 집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대중에게 인지도를 늘렸다.
 

이 원내 대표는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에 재선되고 국회 문화체육관광통신위원회 위원,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을 맞으며 종횡무진 했다. 그해 12월 민주당 내 소장파 모임인 민주연대 공동대표를 맡았다.  
 
2009년 4월 이 원내대표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장자연 리스트’에 포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신문사 이름과 최고경영자 실명을 거론해 소송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시 이 원내대표는 “장자연 문건에 따르면 당시 XX일보 X사장을 모셨고, 그 후로 스포츠XX X 사장을 모셨다고 했다. 보고받았나”라고 질문했다. 이 때문에 해당 신문사는 이 원내대표에게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결국 철회하면서 사실상 이 원내대표의 승리로 끝났다. 
 
2010년 경기도지사에 예비후보로 입후보했으나 당내 여론에 따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양보했다. 2012년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 체제가 들어선 6.9전당대회에서 5등 최고위원으로 지도부에 입성했다. 하지만 대선 한달 앞둔 그해 11월 대선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인적 쇄신 취지로 이해찬 대표 등과 함께 지도부에서 사퇴했다. 
 
이후 김한길 대표 체제에서는 당 정치혁신실행위원장을 맡아 국회의원 지위 남용 금지를 골자로 한 정치혁신의 로드맵을 그렸다. 최근에는 ‘클린 종걸’을 자처하며 야당 의원들에 대한 사정기관 수사의 대응책을 마련하는 야당탄압대책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지난해 5월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특별위원장, 올해 2월 박상옥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특별위원장을 잇따라 맡았다.
 
지난 7일 새정치민주연합의 원내대표 경선에서 이 원내대표가 당선됐다. 그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 경선에서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127표 가운데 66표를 얻었다. 61표를 얻은 최재성 의원을 8표 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앞서 1차 투표(128표 참석)에서 이 원내대표 28표, 최 의원은 33표를 각각 얻었다. 하지만 재적 과반(66명) 득표자가 없어 두 사람을 상대로 경선투표가 실시됐다. 역전은 없었다.
 
정치혁신 로드맵
‘클린종걸’ 자처
 
4·29 재보선에서의 참패와 그로 인한 계파 갈등의 위기를 극복하고 1년도 채 남지 않은 내년 총선에서의 승리를 가져올 적임자로 당심은 이 원내대표를 택한 것이다. 그는 당선 소감에서 “원내대표 3수 끝에 영광을 주셔서 그 힘으로 해나가겠다”며 “새정치민주연합의 어렵고 참담한 상황을 여유 있게 힘 있게 풀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에 패배하고 무시당하고 소수당의 참담한 심정을 더 신중하게 풀어나가겠다”며 “서로 나누고 소통해서 어려운 난국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원내대표 당선으로 대여 관계가 심각한 대척 구도로 기울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현안에 따라 강경 성향이 도드라지는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원내대표는 선수가 늘어가면서 의회주의자 면모 역시 강하게 드러내고 있어서다. 이날 당선 뒤 첫 기자간담회에서 이 원내대표는 "공적연금의 강화를 먼저 처리하겠다"면서도 "국민의 불편이 없도록 지난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했던 민생 입법들을 이달 중에 처리하도록 합의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이 원내대표는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위원장을 맡았다. 당내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청문회 개최를 이끌어냈다. 
 
독립운동 할아버지 영향
독재정권 학생운동 주도
 
이 원내대표는 정계 입문 초기에는 당시 다수파였던 DY(정동영)계로 분류됐다. 하지만 18대 국회 이후로는 사실상 계파가 없는 ‘중도파’로 분류된다. 그는 19대 국회에 들어서는 김한길계로 분류되고 있다. 중도 온건 성향 의원 모임은 ‘민주당의 집권을 위한 모임’ 소속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이 원내대표에게는 투사의 이미지가 서려있다. 예측하기 어려운 돌발적인 행보로 이 원내대표를 강경 이미지로 기억하는 여당 의원들이 적지 않다. 
 
실제 5명의 원내대표 후보 중에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가장 괴롭힌 의원 중 한사람이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이 원내대표가 되레 까다로운 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당내에서 이 원내대표가 ‘럭비공 리더십’ ‘비노 강경파’로 불리는 이유기도 하다. 
 
제16대 총선 때 출마해 여의도에 입성한 이 원내대표는 당시 당내 ‘대여 공격수’로 이름을 올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08년 국정감사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 비판하던 과정 유인촌 문화부 장관 등을 ‘졸개’로 비하했다가 논란을 일으켰다. 또 2012년 때는 트위터에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그년’으로 표현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원내대표 경선 투표를 앞둔 정견발표에서 "투쟁과 화합만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면서 "대여 투쟁의 선봉이 되겠다"고 다짐한 것도 여야 관계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당선 뒤에도 향후 공무원연금개혁 법안 무산에 대해 여당에 책임을 물으며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폭거라 생각한다. 야당을 무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국민을 짓밟았다”고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이어 “새누리당이 스스로 파기한 약속 불이행에 대해 그냥 넘어갈 순 없다고 생각한다”고도 경고했다.
 
약자 위해 뛰었다
국민들 위해 뛴다
 
이번 대여 관계가 어떻게 형성될지는 공무원연금개혁의 향후 처리 과정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권은 “당장 여야가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닫지는 않겠지만 우윤근 원내대표 시절보다는 갈등과 대결 구도가 더욱 부각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원내대표도 협상만으로 이번 사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 원내대표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향후 여야 관계가 달라질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 이종걸은?
 
▲서울 종로(1957년생) 
▲경기고, 서울대 법대 
▲사법시험 30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기획간사 
▲노무현 대통령 후보 수행실장 
▲열린우리당 원내수석부대표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18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야당탄압저지대책위원회 위원장 
▲경기 안양 만안구 4선 국회의원(16∼1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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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국회 오픈런 관전 포인트 ‘셋’

22대 국회 오픈런 관전 포인트 ‘셋’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최근 한낮 기온이 30도를 웃돌지만 꽁꽁 얼어붙은 정국은 풀릴 기미가 안 보인다. 여야의 날 선 공방이 22대 국회를 겨냥하면서다. 21대에 이어 22대 국회도 첩첩산중이다. 개원과 동시에 300명의 숨 가쁜 레이스가 시작될 예정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21대 국회가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결국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은 끝내 벗지 못했다. 21대 국회 후반기부터 시작된 여야의 특검법 공방과 용산의 거부권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탓이다. 상임위 줄다리기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이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이하 채 상병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삼권분립에 따라 해당 법안은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9일, 윤 대통령이 취임 2주년 기자회견서 밝힌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진행 중인 수사와 사법 절차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회로 돌아간 채 상병 특검법은 오는 28일,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서 재표결에 부쳐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서 18표 이상의 이탈표가 필요한 만큼 여권 내에서는 가결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22대 국회 개원 즉시 1호 법안으로 재추진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한 만큼 해당 법안은 다음 달 이내로 재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김건희 여사를 겨냥한 ‘쌍특검’도 수면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민주당은 기존 법안에 포함됐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명품가방 수수 의혹을 더해 22대 국회 개원 즉시 재발의하겠다고 예고해 왔다. 이 밖에도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특검법’ ‘한동훈 특검법’ 등을 쏟아내면서 정부여당을 압박하고 나섰다. 다만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의 전화 통화서 “야당이 특검법을 밀어붙이고 있는데 끝까지 추진될 법안은 극소수일 것”이라며 “특검 하나를 위해 드는 돈과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실제 특검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그 단어만으로도 무게가 있기 때문에 효과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특검 정국을 예고한 만큼 주요 상임위 배분이 앞으로의 정국을 좌우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원구성 여부가 22대 국회의 첫 번째 쟁점으로 떠올랐다. 특검법-거부권 무한 도돌이표 야 ‘법사위·운영위’ 싹쓸이? 민주당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와 운영위원회(이하 운영위) 위원장 자리를 싹쓸이하겠다며 강경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국민의힘이 견제에 나서면서 상임위 쟁탈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동안 법사위는 다수당이 의석수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원내 2당이 가져가는 게 관례였다. 운영위는 대통령실을 상대로 국정감사를 진행하거나 예산안 등을 심사할 수 있어 여당의 몫으로 여겼다. 하지만 민주당은 21대 국회 후반기에 국민의힘이 법사위원장을 맡으면서부터 국회가 제대로 일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4·10 총선 민의를 받들어 정부를 제대로 견제하기 위해 두 상임위를 민주당이 가져가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그동안 지켜온 여야 간의 견제와 균형을 깨트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국회 운영위원장은 1988년 13대 국회부터 집권당이 맡아왔다”며 “운영위와 법사위까지 독식하겠다는 민주당의 발상은 입법 독재를 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20일 여야 원내대표가 오찬 회동을 통해 원 구성을 논의 테이블로 올렸지만 입장 차만 확인한 채 빈손으로 돌아섰다. 22대 국회 첫 본회의는 내달 5일 열릴 예정으로 원구성은 내달 7일까지 협상을 마쳐야 한다. 그러나 양당 모두 협상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해당 논의는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큰 걸음 내딛을까? 두 번째 쟁점은 개헌이다. 이전부터 정치권에선 37년째 그대로인 ‘87년 헌법’을 손보는 것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하지만 정부와 야당의 이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만큼 개헌 논의는 흐지부지 끝나기 일쑤였다. 대통령 4년 중임제를 향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22대 국회 전반기에 걸쳐 개헌 요구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힘을 받고 있다. 4년 중임제에 불을 붙인 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이다. 대통령의 임기를 현행 5년서 4년으로 단축해 대선과 지방선거 시기를 맞춘다면 전국 단위 선거 횟수가 줄어들고, 이에 따른 국력 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게 이유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포함한 세븐(7) 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부마 민주항쟁,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의 헌법 전문 수록 ▲동일가치노동, 동일수준 임금 명문화 ▲검사 영장 신청권 삭제 ▲사회권 강화 일반 조항 신설 ▲‘수도는 법률로 정한다’ 조항 신설 ▲토지 공개념 강화 등을 요구했다. 개혁신당 역시 궤를 같이하며 4년 중임제에 군불을 때고 있지만 거대 야당인 민주당은 해당 문제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모양새다. 다만 혁신당이 앞서 주장한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대통령의 권한 남용 제한과 무(無)당적화를 겨냥한 원(one) 포인트 개헌에 집중했다. 민주당 윤호중 의원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입법부와 행정부의 건강한 관계를 제도화하고 정치와 국정에 헌법정신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대통령의 권한 남용 제한과 무당적화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거부권 제안에 대해서는 채 상병 특검법을 언급하며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국회를 무시하고 삼권분립의 헌정질서를 파괴하면서 남용되고 있는 무소불위의 대통령 권한은 이제 제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5·18 개헌에 공감대를 보이면서도 원 포인트 개헌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원 포인트가 아닌 포괄적 개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몸 푸는 한 수습하는 이 국민의힘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은 이 같은 민주당의 주장에 “헌법 전문은 선언적 성격인데 그것만 수정하는 것으로 아쉬움이 해소될까 이런 생각이 있다”며 “이왕 개헌을 한다면 범위를 잡고 근본적 문제를 함께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설명했다. 4년 중임제 등을 둘러싼 개헌 논의는 22대 국회 내내 거론된 것으로 예측된다.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범야권이 만장일치로 개헌안에 동의해도 총 192석에 그친다. 여당인 국민의힘서 8명의 이탈표가 나와야 하는 만큼 현실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지막은 여의도를 배경으로 한 이재명-한동훈의 파워게임이다.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앞둔 시점서 민주당 이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앞날을 놓고 정치권에서는 온갖 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우선, 한 전 비대위원장의 복귀 여부다. 총선 패배 이후 여의도를 떠났지만 사진 한 장, 말 한마디가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가 되면서 전당대회 초읽기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전 비대위원장은 지난 18일 자신의 SNS를 통해 윤정부의 정책을 꼬집는 글을 게재했다. 국가통합인증마크(KC)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의 해외 직접구매 금지 정책에 대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므로 재고돼야 한다”는 작심 발언을 한 것이다. 지난달 20일에는 ‘윤석열 배신론’이 불거지자 이를 의식한 듯 “정치인이 배신하지 않아야 할 대상은 여러분, 국민뿐”이라며 친윤(친 윤석열)계를 겨냥했다. 용산에 들이닥친 개헌 요구 한동훈-이재명 벌써 기싸움 현재 국민의힘 상황을 종합해보면 전당대회 개최 시기는 7월 말에서 8월 초로 예상된다. 비윤(비 윤석열)계까지 목소리를 얹기 시작한 만큼 어수선한 분위기 속 당심이 어느 쪽으로 흐를지 이목이 쏠린다. 반면 민주당은 이 대표의 연임론을 굳히는 모양새다. 국회의장 선거로 인해 ‘명심불패’ 공식이 깨졌다는 평이 나왔지만 당의 주요 인사들이 여론의 흐름을 꺾으면서 연임론을 다시 한번 궤도에 올렸다. 한 민주당 의원은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이 대표가 연임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일각에서는 이 대표의 사당화라고 지적을 하는데, 당 대표란 당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는 이가 선출되는 것 아닌가”라며 “그런 의미서 이 대표의 연임론이 제기되는 건 어떠한 이유에서든 당이 다시 한번 이재명이란 리더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회의장 선거의 여파로 강성 지지층이 대거 탈당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민주당은 진화에 나섰다. 이 대표는 ‘당원 권리 강화’를 내세웠다. 민주당 민형배 전략기획위원장은 당선인이 한데 모인 초선 워크숍서 당원권 강화를 골자로 한 ‘당원민주주의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민주당이 당원 달래기에 나서자 일각에서는 이 대표가 이번 사태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승화시켰다고 내다봤다. 민주당 권리당원 중 대다수는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인 만큼 당원의 권리를 강화함으로써 당의 장악력을 높이고 자연스레 당 대표 단일 후보로 우뚝 섰다는 설명이다. 이로써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 8월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한 전 비대위원장이 전당대회에 출마하고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22대 국회는 지난 총선에 이어 한-이 갈등 제2라운드로 들어서게 된다. 두 사람 모두 차기 대권주자로 주목받는 만큼 22대 국회에 상당한 파급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초반부터 군기 바짝 21대 정국을 집어삼킨 현안은 고스란히 22대 국회로 넘어왔다. 민주당이 1호 민생 법안으로 내놓은 ‘전국민 25만원 지원금’과 연금개혁 논란도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숙제다. 결국 21대 국회는 역대 최악이라는 꼬리표를 잘라내지 못했다. 최근에는 민주당 초선을 중심으로 한 집단행동이 몸집을 키우면서 여권에서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22대 국회 역시 강대강으로 흘러갈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4·10총선 유세 현장서 여야가 한목소리로 외쳐대던 ‘일하는 국회’가 실현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