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노예 사건으로 본' 2014 신 인신매매 충격보고서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4.02.17 11:53:47
  • 댓글 0개

봉고차 납치 옛말…이제 돈으로 꼬드긴다

[일요시사=사회팀] 최근 불거진 '염전 노예' 사건과 맞물려 인신매매 피해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염전 업주와 직업소개소 직원의 공모로 수년간 노예처럼 일했다는 두 장애인의 눈물겨운 사연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그러나 '인간일 권리'를 노예처럼 사고파는 범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빚을 갚기 위해 강제로 성을 파는 매춘부와 영문도 모른 채 바다로 끌려간 뱃사람, 친부모로부터 버림당한 신생아들은 지금 인신매매의 피해로 몸부림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1년 발표한 '국민인권의식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성매매 여성은 '인권이 가장 존중되지 않는 집단'(전체 응답자의 84.7%)으로 꼽혔다. 뒤를 이어 가장 많은 응답을 얻은 집단은 노숙인(81.2%)이었다.

흔히 이들은 인권을 말할 때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대표 후보군으로 지목된다. 사회적 편견은 물론이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어 감금·강제노동·착취로 유인되는 일은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여성과 노숙인
인신매매 타깃

 

무엇보다 이들은 일상 속 다양한 범죄에 노출돼있다. 살인·강간·폭행 등의 강력범죄는 물론이고, 다수의 성매매 여성과 노숙인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인신매매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윤리의 근간을 흔든다는 측면에서 우려의 대상이다.

넓은 범주로 봤을 때 성매매는 인신매매의 한 유형으로 분류된다. 성매매 여성의 상당수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성매매에 동원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소 '일반인'이라고 지칭되는 여성도 포주에게 붙잡혀 성을 제공하면 '성매매 여성'이 된다. 이들은 유흥주점이나 성매매 업소로 팔려간 뒤 수시로 매춘을 강요당한다.

관계 법령상 노숙인은 아니지만 여성 가출청소년 역시 인신매매의 타깃이다. 주거지가 없으며, 경제적 자립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10대들은 악덕 포주의 손쉬운 먹잇감이 된다.

남성도 인신매매에서 자유롭지 않다. 18세 미만의 가출청소년과 18세 이상의 노숙인 모두 노동을 제공하는 대가로 인신의 자유를 철저히 구속당한다. "재워주고 먹여주겠다"는 유혹에 넘어간 이들은 강제노역의 현장에서 지옥을 경험한다.

이처럼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처지에 놓인 성매매 여성과 노숙인은 돈벌이를 찾는 인신매매단의 주요 표적이다. 또 전자가 인신매매의 결과로 파생한 집단이라면, 후자는 인신매매될 확률이 타 집단보다 높은 것으로 보고된다. 특히 노숙인이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경우라면 범죄의 확률은 더 높아진다.

 

갈수록 지능화
단속의지 있나

 

일반적인 인신매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성을 착취하기 위한 인신매매와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인신매매, 범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돈이다.

지난해 여름 있었던 순천 여대생 납치사건'은 생활고에 시달리던 20대 남성 정모씨가 계획한 인신매매 범죄로 뒤늦게 드러났다.


광주지법 제12형사부(부장판사 신현범)는 2013년 12월 정씨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특수강도 및 영리약취 등의 혐의를 인정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당시 정씨는 인터넷을 통해 만난 동년배 A씨와 여성을 인신매매한 뒤 성매매업소 등에 넘기자고 공모했고, 같은 해 6월5일 전남 순천에서 A씨와 친분이 있던 20대 여성 B씨를 납치해 현금 2300여만원과 승용차 1대를 빼앗은 혐의로 기소됐다.

앞서 1700만원 상당의 빚 독촉을 받던 정씨는 인터넷에서 장기매매를 알선해 준다는 A씨를 만나 이 같은 범행을 공모했다. A씨 역시 인신매매의 한 유형인 장기매매 브로커를 자임한 셈이다.

 

매춘부·노숙인·장애인·가출청소년 피해 반복
성착취·노동착취 목적…대부분 조직범죄 성향

 

B씨의 남자친구와 고교 동창이었던 A씨는 남자친구가 이벤트를 해준다고 속여 B씨의 의심을 덜 수 있었다. 또 A씨 등은 B씨와 함께 원룸에서 거주하던 C씨까지 납치하려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B씨에게 휴대전화를 건네며, 통화로 C씨를 불러내라고 했던 것.

다행히 이들의 계획은 C씨의 신고로 비교적 조기에 발각됐으며, B씨 역시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인신매매의 잠재적 위험은 오히려 가까운 곳에 있다는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과거 집창촌 등을 중심으로 성매매가 이뤄졌던 시기에는 고액을 미끼로 여성을 유인한 후 업소로 직접 팔아넘기는 수법의 인신매매가 성행했다. 팔려간 여성 중의 상당수는 10대로 추정됐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다시함께상담센터'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 동안 성매매 여성을 집중 상담한 내용을 살펴보면 10명 중 4명이 13∼19세 때 처음 성매매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 대다수는 가정폭력과 성폭력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즉 가정폭력을 피해 가출했다가 브로커 등을 통해 성매매업소로 유입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여성들은 섬으로 팔려갔다. 불과 5년 전의 사건기록만 봐도 인신매매범들은 납치한 여성을 1인당 400만원을 받고 바닷가 어촌마을로 보냈다. 어촌으로 보내진 여성들은 지역 유흥업소나 티켓다방 등에서 성매매를 강요받았다. 집도 없고, 연고도 없는 이들은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하듯 우리 사법당국은 지난해 3월 '인신매매죄'를 형법에 신설했다. 여성이나 미성년자를 납치해 유흥업소 등에 팔아넘기는 범죄에 대해 지금까지 적용했던 약취·유인죄 대신 인신매매죄를 새로이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개정안을 살펴보면 성 착취나 노동력 착취, 장기 적출 등을 목적으로 하는 인신매매 범죄에 대해서는 최대 15년까지 징역형을 선고하도록 명시했다. 또 성추행이나 성폭행, 결혼 등의 목적으로 사람을 사고판 경우에는 징역 1∼10년에 처하고, 자녀를 입양하기 위해 돈거래를 한 경우에는 브로커와 양부모 모두 형사 처벌을 받도록 조문을 넣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인신매매법 개정을 추진해온 진영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법리 적용이 어려운 유명무실한 법안이기 때문이다. 인신매매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수사기관이 ▲인신매매범들의 구체적인 범행 목적을 증명해야 하며 ▲인신매매한 사람을 제3자에게 팔아넘긴 사실이 있어야 하고 ▲인신매매 당한 사람이 스스로의 의지에 반하여 이동의 자유 등을 구속받거나 착취당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대판 인신매매는 피해자가 인신매매범들의 경제적 유인에 넘어가 착취를 미리 인지하거나 인신의 이동(또는 구속)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고 ▲인신매매범들은 "사람을 모집해서 넘길 뿐이지 착취의 목적은 없었다"며 법망을 빠져나갈 공산이 크고 ▲심지어는 납치한 사람을 제3자에게 넘기지 않고 '사유화'하는 일이 잦다.

 

성접대와
금융범죄

 

실제로 성매매는 집창촌이나 유흥업소가 아닌 오피스텔이나 숙박업소 등을 중심으로 활황하고 있다. 온라인이 발달하면서 성매매가 개인 간의 거래로 음성화된 탓이다. 때문에 과거 브로커 역할을 했던 인신매매범들은 이젠 본인이 직접 여성들을 관리하는 포주가 되고 있다.

서울서부지검 형사3부는 지난달 17일 D양 등 여중생 5명을 유인해 강제로 합숙시키고 성접대를 시킨 혐의(공갈 및 감금)로 빌라 임대업자 우모씨와 성접대 알선책 등 4명을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우씨가 "월 100만원을 주겠다"고 여중생 5명을 속여 이들을 경기 안양에 있는 한 아파트에 합숙시키고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건설 투자자를 상대로 한 성접대와 술 시중에 동원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우씨는 여중생을 감금하기 위해 조직폭력배 김모씨 등에게 감시를 맡긴 건 물론 전문 안마사를 불러 성접대 교육까지 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우씨는 투자자 최모씨(사립대 강사) 등을 아파트로 초대해 D양 등에게 성접대를 시키고, 이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투자자를 협박한 혐의도 받고 있다.


그러나 우씨 일당에게 씌워진 혐의 중에선 인신매매를 찾아볼 수 없다. 우씨 등은 여중생을 다른 곳에 팔아넘기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상 성노예로 전락시켰다. UN협약에 명시된 국제기준상 우씨 등이 저지른 범죄는 엄연한 인신매매다. 하지만 형법상 이들에게는 보다 경미한 죄목이 붙는다. 때문에 인신매매가 현재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한 번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부 중·고교생 및 20∼30대 사이에서 퍼지고 있는 인신매매와 관련한 괴담은 범죄가 발생했다는 보고 사례도 드물뿐더러 범행 수법에서 현실과 차이를 보인다. '어두운 밤 젊은 여자가 봉고차에 납치됐다'는 식의 레퍼토리는 그야말로 확인되지 않는 괴담이다.

 

 

인신매매단은 이미 지능화됐다. 불과 50m간격으로 CCTV가 있는 한국에서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납치나 인신매매는 범행이 발각될 위험에 비해 기대 소득이 적다. 지난해 발생한 '노숙인 인신매매' 사건은 달라진 인신매매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사건을 수사한 경기 양평경찰서의 설명을 종합하면 인신매매단 총책 김모씨 등 18명은 각각 인신매수책, 범행대상 물색책, 유인매도책 등으로 역할을 나눴다. 그런데 이들의 타깃은 가족이 있는 일반 시민이 아니었다. 김씨 등은 집요하게 노숙인만을 노렸다.

이들은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서울역과 용산역 등지에서 일자리를 주겠다며 노숙인 11명(지적장애인 2명 포함)을 꾀었다. 이어 이들은 인천 등지 오피스텔과 여관 등으로 노숙인을 데려가 합숙시키면서 휴대전화, 금융계좌, 사업자등록증 등을 개설해 20여억원의 이득을 챙겼다.

또 이들은 납치한 노숙인의 신용등급을 조회한 뒤 등급에 따라 각각 가격(3등급 750만원, 4등급 650만원, 5등급 550만원, 6등급 450만원)을 매겨, 인신매수책 임모씨에게 모두 6100만원을 받고 노숙인을 팔았다.

가출 상태였던 E씨(지적장애 1급)는 지난해 7월 서울역에서 "일자리를 구해주겠다"는 말에 한 남자를 따라 나섰다. E씨는 서울 전농동에 있는 한 폐업 다방으로 끌려가 목욕을 하고 이발을 했다. 증명사진도 찍었다. 그러나 인신매매단이 호의를 베푼 속내는 따로 있었다.

다음날 이들은 E씨와 함께 장안동에 있는 주민센터에서 E씨의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고, 인근 은행에서 E씨 명의로 된 계좌를 개설했다. 또 이들은 이동통신 대리점에서 휴대전화 4대를 개통했다. 이튿날에는 문래동 주민센터에서 E씨의 인감증명서를 떼었으며, 조회된 신용도를 근거로 650만원의 가격을 매겨 E씨를 또 다른 인신매매단에 팔아넘겼다. E씨를 인수한 조직은 E씨 명의로 된 인감증명서를 이용, 카드할인·신용대출 등으로 모두 5000여만원을 뜯어냈다.

이처럼 신종 인신매매는 피해자의 신체가 범행의 최종 목적이 아니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또 지적장애를 앓고 있거나 일정한 거주지가 없는 '사회적 약자'가 범행대상이 됐다는 점에서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들은 왜 노숙인을 노리는 것일까.

 

브로커 점차 포주화…처벌규정 미흡
사람 따라 등급 매기고 사고팔아

 

시민단체 홈리스행동의 이동현 대표는 "기본적으로 노숙인은 나쁜 일자리(혹은 범죄)로 유인되기 쉬운 동인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명의도용 사건이나 최근 염전 사건 모두 노숙인의 현실적인 욕구를 건드리면서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노숙인은 집이 없거나 배고픈 상태다. 때문에 범죄자들은 '따뜻한 데서 재워줄게' '밥 사줄게' 등의 말로 노숙인의 약한 고리를 파고든다. 그러나 노숙인을 꾀어낸 이들은 곧 본색을 드러낸다. 명의를 빼내 금융범죄에 이용하거나 염전이나 멍텅구리선과 같은 고된 노역장에 돈을 받고 파는 것이다.

특히 노숙인을 상대로 한 인신매매 및 강제노역은 이들의 삶을 통째로 파괴하는 중범죄임에도 사법기관에 의해 적당한 선에서 무마되는 일이 적지 않다.  

이 대표는 "염전이나 무동력선(멍텅구리선) 등에서 노역을 했던 분들을 만나보면 그야말로 노예 형태의 노동을 수개월에서 수년간 강요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며 "그분들의 말만 온전히 믿을 수는 없겠지만 '해양경찰과 지역주민들이 모두 한통속'이라는 말을 자주 하신다"고 말했다.

한 노숙인은 동물사료만도 못한 식사, 불법감금, 폭력, 고된 노역을 견디다 못해 어선에서 스티로폼을 타고 탈출했다. 다행히 인근을 순찰 중이던 해경에 의해 구조됐지만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또 염전에서 노예처럼 부림을 당한 노숙인은 구조 후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린다고 한다.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늘 불안해하며, '잘못했어요'라고 혼잣말을 하는 등 장기간 폭력에 의한 후유증이 남은 것이다.

그러나 치안당국의 조처는 미흡한 실정이다. 이 대표는 "기본적으로 경찰력 강화가 이 같은 연결고리를 모두 끊어낼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노숙인을 명의도용 범죄의 주범으로 조작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냐"고 강조했다.

최근까지 경찰은 노숙인 명의로 금융범죄가 발생하면 노숙인을 공범으로 의심하고 수사를 진행했다. 심한 경우 수사과정에서 피의자가 도피하면 아무 것도 모르는 노숙인이 사건의 주범으로 둔갑하는 일도 있었다는 설명이다. '사회적 약자'인 이들에게 가하는 2차 피해다.

 

예나 지금이나
약자만 당한다

 

전문가들은 "전남 신안에서 일어난 이번 인권유린 사건이 빙산의 일각"이라고 입을 모은다. '제2의 염전 노예', '제3의 섬 노예'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어두운 곳에서 지금도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더불어 인신매매는 사법당국과 치안당국은 물론 정부 각 유관기관의 강력한 의지 없이는 뿌리 뽑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당장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 갓 출산한 신생아를 입양시키겠다는 글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개인 간의 아동 입양은 국내법상 불법이며, 국제법상 인신매매로 정의돼 있다. 그러나 아동을 유기의 수단으로 보는 범죄는 되려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검찰이나 경찰뿐만 아니라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등 각 기관의 긴밀한 공조가 필요하다. 또 관할 지자치단체의 진정성 있는 대책 마련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시민들이 '사람을 수단이나 노예로 보는' 구시대적 관행과 결별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인신매매는 결코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인신매매법 표류 '국제 권고 무시'

'땜질식 처방' 피해자 놔두고 가해자 처벌만

인신매매 가해자를 처벌하는 형법은 신설됐지만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은 논의조차 중단돼 땜질식 처방이란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김춘진 의원이 지난해 발의한 인신매매처벌등에관한법률안은 앞서 통과된 형법개정안과 병합 심사되지 못한 채 아직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해당 법안은 국제법인 '팔레르모 의정서'에 근거한 제정법이며, 인신매매 피해자들의 인권 보호를 중심으로 한 특별법 성격을 갖는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국내법상 인신매매죄가 적용키 어려웠던 범죄자들에 대해 포괄적인 혐의적용이 가능해 진다.

민주당 김춘진 의원실의 유경선 보좌관은 "국제 기준과 달리 국내는 인신매매의 정의를 너무 협소하게 보는 것이 문제"라며 "매년 미 국무부가 발표하는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등급이 강등될까 두려워 형법개정안만 급하게 처리한 뒤 계류 중인 법안을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팔레르모 의정서에 따르면 인신매매는 범죄의 '행위' '목적' '수단'의 요건을 갖춘 경우 피해자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인신매매로 규정하게 돼있으며, 보다 적극적인 형태의 피해자 보호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석>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