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발 '군란' 막전막후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11.12 10:44:13
  • 댓글 0개

정보기관 두고 피 말리는 고지전

[일요시사=사회팀] 군 기밀 정보의 보고인 기무사 수장의 갑작스런 경질을 놓고 남재준 국정원장과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간의 파워게임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박근혜정부 육사 전성시대의 두 주역인 남 원장과 김 실장의 힘겨루기는 자칫 파벌 싸움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어 정국은 지금 폭풍전야다. 또 두 장성을 컨트롤하고 있는 청와대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지 이들의 복잡한 역학구도가 피 말리는 고지전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단행된 중장급 이하 장성 인사에서 장경욱(육사 36기) 당시 기무사령관이 경질된 것과 관련 이른바 '군란(軍亂) 파동' 가능성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있다.

기무사 둘러싼
파워게임 고개

군 관계자 및 복수 매체 보도에 따르면 군 정보기관의 요체인 기무사의 새로운 수장으로는 육군본부(이하 육본) 소속 이재수(육사 37기) 인사사령관이 낙점됐다. 이 사령관은 지난달 26일 취임식을 갖고 본격적인 조직 장악에 나섰다.

그런데 기무사 재편 과정에서 장 전 사령관이 물러난 모양새가 심상치 않았다. 김대중정부 이후 기무사령관의 중도 경질 사례는 전무했고, 김영삼정부 역시 1993년 군 사조직인 '하나회'를 숙청하는 과정에서 김도윤(육사 22기) 당시 기무사령관을 내친 것 빼고는 칼을 빼든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김 전 사령관은 전화 한 통에 스스로 옷을 벗었지만 장 전 사령관은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교체된 상황이라 뒷말은 더 했다. 급작스러운 교체의 배경을 둘러싸고 정치권 및 언론계에선 이른바 '박지만 보고서'가 언급됐다.


'박지만 보고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육사 37기) EG회장의 동향 및 정치적 불안요소 등을 담은 보고서로 소개됐다. 장 전 사령관을 비롯한 군 정보라인이 일종의 '충성 경쟁' 차원에서 "박 회장의 이런 점들을 조심하십시오"라고 청와대에 직보한 게 오히려 박 대통령의 노여움을 샀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기자가 만난 한 군 관계자는 '박지만 보고서'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신임인 이 사령관과 박 회장이 육사 동기이고, 친분이 있다는 점 때문에 박지만의 이름이 나온 것 뿐"이라며 "'박지만설'은 확인되지 않은 소설로 판명났다"고 전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한 관계자 역시 "제정신이라면 그 보고서를 청와대에 내밀었겠냐"며 "보고서가 있다고 해도 그 실체를 밝혀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고 말했다.

20년 만에 기무사령관 중도 경질…육사 파워게임
군인사 주도권 놓고 '남재준 vs 김장수' 대립각

그렇다면 장 전 사령관은 왜 부임 6개월여 만에 경질된 것일까.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부적절한 인사 개입이지만 그 내막엔 남재준(육사 25기) 국정원장과 김장수(육사 27기)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간의 파워게임이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남 원장이 추천한 것으로 알려진 장 전 사령관의 '항명'을 '김장수 라인'인 김관진(육사 28기) 국방부장관이 제압한 게 사건의 본질이란 것. 때문에 남 원장과 김 실장의 오랜 라이벌 구도가 정계 안팎에서 회자되고 있다.

남재준 인사청탁
김장수 묵묵부답


육사 선후배인 둘의 관계가 껄끄러운 라이벌로 굳어진 배경에는 군 인사권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이 꼽히고 있다. 남 원장과 김 실장은 서로 각각의 측근들을 중용하기로 유명한데 '육사 선배인 남 원장이 참여정부 때 자기 사람들을 내친 김 실장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는 소문은 여러 언로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사건은 지난 2004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 용산구 국방부 서문에 있는 장교 숙소 '국방 레스텔' 지하 주차장에선 10여부의 괴문서가 발견됐다. 한 달 전 있었던 육군 장성 진급 심사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투고였다.

이에 군 검찰은 군 장성 진급 비리 수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수사 과정에서 군 검찰은 남 원장(당시 육군참모총장)의 인사 개입을 의심할 만한 정황을 포착했다. 육본 인사참모부 캐비닛에서 비밀 문건을 발견한 것이다.

관련 보도 등에 따르면 육본의 인사관리처장은 남 원장의 지시로 준장 진급 대상자 17명의 서류를 위조했다. 대신 남 원장과 가까운 사이의 인물들은 대거 진급 대상자로 내정됐다. 때문에 남 원장이 육군 내 비밀 사조직을 가동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남 원장은 자신에게 씌워진 모든 의혹을 부인하며 전역지원서를 제출했다. 메머드급 인사 비리와 관련해 자신의 결백을 강조하기 위한 제스처였다. 이 때 남 원장의 후임으로 내정된 신임 육군참모총장이 바로 김 실장(당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었다.

2005년 4월 계룡대에서 열린 육군참모총장 이·취임식에서 남 원장은 김 실장과 정치적인 거래를 성사시키고자 했다. 자신과 가까운 몇몇 간부들에 대해 "구제해 달라"며 사실상의 진급 청탁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김 실장은 남 원장의 인사 청탁을 "내가 왜 구제해야 하냐"며 거절했고, 이어진 진급 심사에서 남 원장이 지목한 간부들을 배제했다. 선배인 남 원장의 입장에선 두 기수나 낮은 후배에게 잊지 못할 수모를 당한 셈이다.

이후 김 실장은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국방부 장관으로 영전했다. 참여정부 시절 '꼿꼿장수'란 별명을 얻은 그는 국방·안보 분야에서 독보적인 능력을 인정받으며 퇴임 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비례대표로까지 영입됐다.

하지만 김 실장이 두 번의 정권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던 것과 달리 남 원장은 권력의 중심에서 배제됐다. 이른바 '김장수 라인'이 뜨면서 상대적으로 덜 유연한 '남재준 사람들'이 일종의 박탈감을 느꼈다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지난 대선 과정에서 김 실장은 박근혜 캠프의 국민행복추진위 국방안보추진단장을 맡아 내부에서 활동했지만 남 원장은 국방안보특보라는 일종의 명예직을 맡아 외부에서 자문을 해주는 역할에 그쳤다.

더구나 국방부의 수장인 김 장관 역시 '김장수 라인'에 근접했다는 평가가 나오자 일부 언론은 '김장수 대세론'을 공공연히 했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자 먼저 치고나간 사람은 남 원장이었다.

칼을 간 남재준
김장수 겨눴다?


박근혜정부 초대 국정원장으로 내정된 남 원장은 검찰이 주도한 봄·여름 정국에서 유독 존재감을 드러냈다. NLL 파문,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태 등 굵직한 공안 사건은 물론이고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 폭로에도 개입하면서 난맥상을 드러낸 박근혜정부의 '호위무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 평가다. 

특히 여권 입장에서 '신의 한수'로 불린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는 참여정부 시절 국방부 장관을 지낸 김 실장에게까지 여파를 미쳤다. 막후에서 재기를 준비한 남 원장의 '화려한 귀환'은 '김장수 대세론'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며 '공안 드라이브'를 걸던 남 원장에게 뜻밖의 변수가 생겼다. 남 원장과 공조 체제를 구축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기무사의 수장이 급작스레 교체된 것이다.

무엇보다 그 시점이 오묘했다. 김 실장이 방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출국한 날은 10월23일이었는데 기무사령관 인사가 단행된 날은 10월25일이었다. 국방·안보분야 인사와 관련해 사실상의 승인권자인 김 실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군내에서 가장 중요한 권력기관의 수장이 교체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군 관계자는 "전임인 장 전 사령관이 전·현직 장성들을 대상으로 사생활을 뒷조사하는 한편 동향보고를 명목으로 수집한 정보를 청와대에 직보하는 등 인사에 개입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즉 이번 경질은 장 전 사령관이 지휘계통을 무시했기 때문에 벌어진 문책성 인사란 설명이다.

청와대 직보에 '불끈' 김관진이 장경욱 쳐내
국정원 틀어쥔 남재준 vs 기무사 장악한 김장수

그러나 기무사의 첩보 수집은 통상 업무란 점과 청와대 직보 역시 절차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군 안팎의 관심은 기무사가 직보한 '내용'에 쏠렸다. 이 과정에서 확인되지 않은 첩보가 생성됐고, '박지만 보고서'와 같은 각종 '설'이 난무했다.


기무사와 관련한 온갖 의혹들이 꼬리를 물었던 지난 1일 김 장관은 국회 국정감사에 나와 작정한 듯 불씨를 지폈다. 이번 경질의 배경을 묻는 질문에 대해 "장 전 사령관은 원래 대리 근무 체제였다. 관찰해보니 기무사를 개혁하고 발전시킬 만한 자질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었다"고 말한 것.

공식석상에서 현직 장관이 인사 대상자를 특정하며 노골적으로 깎아내린 건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자 참고 있던 장 전 사령관도 포문을 열었다. 그는 지난 2일 언론을 통해 김 장관의 '편파 인사'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직격탄을 날렸다.

장 전 사령관은 인터뷰에서 "올 4월 군 장성급 인사 당시 김 장관의 인사 절차와 방식에 대해 내부 불만과 비판 여론이 많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확인 결과 상당 부분 맞는 얘기였기 때문에 청와대에 그런 여론과 분위기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또 "장관의 독단 등을 견제하는 것은 기무사의 고유 임무이고 과거 사령관들도 청와대에 보고를 해왔다"는 해명으로 이번 인사가 '보복성 인사'임을 분명히 했다.

이에 김 장관 측은 맞불을 놨다. 지난 3일 한 언론을 통해 "김 장관이 장 전 사령관에게 그간 음성적으로 해왔던 군내 동향보고를 철폐할 것을 지시했으나 장 전 사령관이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밝힌 것이다.

아울러 김 장관 측은 "기무사가 수집된 정보로 다른 기관과 거래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기무사령관의 역할은 국방부장관의 지휘권을 보장하는 데 충실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장 전 사령관을 아는 인사들은 여전히 그가 김 장관에게 '찍어내기'를 당했다는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장 전 사령관의 청와대 직보는 김 장관을 흔들기 위한 정략이 아닌 특정 인맥의 인사 전횡을 견제하기 위한 소신에 가깝다는 것. 실제로 장 전 사령관이 물러난 이후의 상황을 보면 이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3일 김 장관은 기무사 개혁이란 카드를 꺼내들었다. 개혁의 골자는 기무사의 광범위한 군내 동향 수집 및 음성적인 윗선 보고 관행 철폐였다. 하지만 이번 기무사 개혁의 방점은 국방부장관이 군 정보라인을 직접 컨트롤하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따라서 장 전 사령관의 옷을 벗긴 뒤 그의 참모와 부하들까지 차례로 방출한 것도 결국은 정보라인을 장악하기 위한 시도로 해석되고 있다. 장 전 사령관은 합참 정보생산처장, 합참 군사정보부장 등을 거친 대표적인 '정보통'이다.

그리고 기무사 개혁을 부르짖는 김 장관 뒤에는 '김장수 라인'이 존재한다. 남 원장에게 국정원을 내준 '김장수 라인'이 군내 정보라인까지 뺏길 경우 정국의 주도권을 완전히 내줄 수 있어 사전에 이를 장악했다는 것이다.

김기춘 묵인
독주는 없다

여기서 청와대의 스탠스가 눈길을 끈다. 이번 인사는 표면적으로 김 장관이 주도했지만 청와대 인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다는 게 중론이다.

전직 장성급 출신 관계자의 진술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기무사령관은 국방부 장관이 함부로 끌어내리는 자리는 아니다"라며 "청와대의 승인 없이 장 전 사령관을 찍어내긴 힘들 것"이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일각에선 "'김장수 라인'의 적통인는 박흥렬(육사 28기) 청와대 경호실장의 역할론도 제기된다. 현역 시절 '인사통'으로 이름 높았던 박 실장의 명성을 고려한 추측이다.

하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은 역시 '남재준 견제론'이다. 좀처럼 권력의 독주를 허용하지 않는 박 대통령이 남 원장의 힘이 비대해질 것을 우려, 이번엔 김 실장 쪽에 힘을 실어줬다는 해석이다. 바꿔 말하면 청와대가 남 원장과 김 실장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그러나 군 안팎에선 이번 인사 파문을 시작으로 '남재준 사람들'과 '김장수 라인'이 전면전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김 실장에게 아직 앙금이 남아 있는 남 원장 쪽에서 먼저 선전포고를 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국정원이란 방대한 조직을 갖고 있는 남 원장은 '인사권' 면에서 김 실장보다 월등하다. 최근 국정원의 숨은 실세로 꼽히고 있는 해병대 준장 출신 P씨가 대표적인데 남 원장은 앞으로 군 장성 출신을 꾸준히 요직에 앉힐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같은 맥락에서 보면 청와대가 왜 계속 김 장관을 유임시키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한 관계자는 귀띔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22대 국회 오픈런 관전 포인트 ‘셋’

22대 국회 오픈런 관전 포인트 ‘셋’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최근 한낮 기온이 30도를 웃돌지만 꽁꽁 얼어붙은 정국은 풀릴 기미가 안 보인다. 여야의 날 선 공방이 22대 국회를 겨냥하면서다. 21대에 이어 22대 국회도 첩첩산중이다. 개원과 동시에 300명의 숨 가쁜 레이스가 시작될 예정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21대 국회가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결국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은 끝내 벗지 못했다. 21대 국회 후반기부터 시작된 여야의 특검법 공방과 용산의 거부권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탓이다. 상임위 줄다리기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이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이하 채 상병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삼권분립에 따라 해당 법안은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9일, 윤 대통령이 취임 2주년 기자회견서 밝힌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진행 중인 수사와 사법 절차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회로 돌아간 채 상병 특검법은 오는 28일,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서 재표결에 부쳐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서 18표 이상의 이탈표가 필요한 만큼 여권 내에서는 가결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22대 국회 개원 즉시 1호 법안으로 재추진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한 만큼 해당 법안은 다음 달 이내로 재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김건희 여사를 겨냥한 ‘쌍특검’도 수면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민주당은 기존 법안에 포함됐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명품가방 수수 의혹을 더해 22대 국회 개원 즉시 재발의하겠다고 예고해 왔다. 이 밖에도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특검법’ ‘한동훈 특검법’ 등을 쏟아내면서 정부여당을 압박하고 나섰다. 다만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의 전화 통화서 “야당이 특검법을 밀어붙이고 있는데 끝까지 추진될 법안은 극소수일 것”이라며 “특검 하나를 위해 드는 돈과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실제 특검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그 단어만으로도 무게가 있기 때문에 효과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특검 정국을 예고한 만큼 주요 상임위 배분이 앞으로의 정국을 좌우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원구성 여부가 22대 국회의 첫 번째 쟁점으로 떠올랐다. 특검법-거부권 무한 도돌이표 야 ‘법사위·운영위’ 싹쓸이? 민주당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와 운영위원회(이하 운영위) 위원장 자리를 싹쓸이하겠다며 강경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국민의힘이 견제에 나서면서 상임위 쟁탈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동안 법사위는 다수당이 의석수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원내 2당이 가져가는 게 관례였다. 운영위는 대통령실을 상대로 국정감사를 진행하거나 예산안 등을 심사할 수 있어 여당의 몫으로 여겼다. 하지만 민주당은 21대 국회 후반기에 국민의힘이 법사위원장을 맡으면서부터 국회가 제대로 일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4·10 총선 민의를 받들어 정부를 제대로 견제하기 위해 두 상임위를 민주당이 가져가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그동안 지켜온 여야 간의 견제와 균형을 깨트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국회 운영위원장은 1988년 13대 국회부터 집권당이 맡아왔다”며 “운영위와 법사위까지 독식하겠다는 민주당의 발상은 입법 독재를 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20일 여야 원내대표가 오찬 회동을 통해 원 구성을 논의 테이블로 올렸지만 입장 차만 확인한 채 빈손으로 돌아섰다. 22대 국회 첫 본회의는 내달 5일 열릴 예정으로 원구성은 내달 7일까지 협상을 마쳐야 한다. 그러나 양당 모두 협상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해당 논의는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큰 걸음 내딛을까? 두 번째 쟁점은 개헌이다. 이전부터 정치권에선 37년째 그대로인 ‘87년 헌법’을 손보는 것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하지만 정부와 야당의 이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만큼 개헌 논의는 흐지부지 끝나기 일쑤였다. 대통령 4년 중임제를 향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22대 국회 전반기에 걸쳐 개헌 요구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힘을 받고 있다. 4년 중임제에 불을 붙인 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이다. 대통령의 임기를 현행 5년서 4년으로 단축해 대선과 지방선거 시기를 맞춘다면 전국 단위 선거 횟수가 줄어들고, 이에 따른 국력 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게 이유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포함한 세븐(7) 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부마 민주항쟁,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의 헌법 전문 수록 ▲동일가치노동, 동일수준 임금 명문화 ▲검사 영장 신청권 삭제 ▲사회권 강화 일반 조항 신설 ▲‘수도는 법률로 정한다’ 조항 신설 ▲토지 공개념 강화 등을 요구했다. 개혁신당 역시 궤를 같이하며 4년 중임제에 군불을 때고 있지만 거대 야당인 민주당은 해당 문제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모양새다. 다만 혁신당이 앞서 주장한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대통령의 권한 남용 제한과 무(無)당적화를 겨냥한 원(one) 포인트 개헌에 집중했다. 민주당 윤호중 의원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입법부와 행정부의 건강한 관계를 제도화하고 정치와 국정에 헌법정신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대통령의 권한 남용 제한과 무당적화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거부권 제안에 대해서는 채 상병 특검법을 언급하며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국회를 무시하고 삼권분립의 헌정질서를 파괴하면서 남용되고 있는 무소불위의 대통령 권한은 이제 제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5·18 개헌에 공감대를 보이면서도 원 포인트 개헌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원 포인트가 아닌 포괄적 개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몸 푸는 한 수습하는 이 국민의힘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은 이 같은 민주당의 주장에 “헌법 전문은 선언적 성격인데 그것만 수정하는 것으로 아쉬움이 해소될까 이런 생각이 있다”며 “이왕 개헌을 한다면 범위를 잡고 근본적 문제를 함께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설명했다. 4년 중임제 등을 둘러싼 개헌 논의는 22대 국회 내내 거론된 것으로 예측된다.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범야권이 만장일치로 개헌안에 동의해도 총 192석에 그친다. 여당인 국민의힘서 8명의 이탈표가 나와야 하는 만큼 현실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지막은 여의도를 배경으로 한 이재명-한동훈의 파워게임이다.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앞둔 시점서 민주당 이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앞날을 놓고 정치권에서는 온갖 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우선, 한 전 비대위원장의 복귀 여부다. 총선 패배 이후 여의도를 떠났지만 사진 한 장, 말 한마디가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가 되면서 전당대회 초읽기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전 비대위원장은 지난 18일 자신의 SNS를 통해 윤정부의 정책을 꼬집는 글을 게재했다. 국가통합인증마크(KC)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의 해외 직접구매 금지 정책에 대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므로 재고돼야 한다”는 작심 발언을 한 것이다. 지난달 20일에는 ‘윤석열 배신론’이 불거지자 이를 의식한 듯 “정치인이 배신하지 않아야 할 대상은 여러분, 국민뿐”이라며 친윤(친 윤석열)계를 겨냥했다. 용산에 들이닥친 개헌 요구 한동훈-이재명 벌써 기싸움 현재 국민의힘 상황을 종합해보면 전당대회 개최 시기는 7월 말에서 8월 초로 예상된다. 비윤(비 윤석열)계까지 목소리를 얹기 시작한 만큼 어수선한 분위기 속 당심이 어느 쪽으로 흐를지 이목이 쏠린다. 반면 민주당은 이 대표의 연임론을 굳히는 모양새다. 국회의장 선거로 인해 ‘명심불패’ 공식이 깨졌다는 평이 나왔지만 당의 주요 인사들이 여론의 흐름을 꺾으면서 연임론을 다시 한번 궤도에 올렸다. 한 민주당 의원은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이 대표가 연임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일각에서는 이 대표의 사당화라고 지적을 하는데, 당 대표란 당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는 이가 선출되는 것 아닌가”라며 “그런 의미서 이 대표의 연임론이 제기되는 건 어떠한 이유에서든 당이 다시 한번 이재명이란 리더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회의장 선거의 여파로 강성 지지층이 대거 탈당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민주당은 진화에 나섰다. 이 대표는 ‘당원 권리 강화’를 내세웠다. 민주당 민형배 전략기획위원장은 당선인이 한데 모인 초선 워크숍서 당원권 강화를 골자로 한 ‘당원민주주의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민주당이 당원 달래기에 나서자 일각에서는 이 대표가 이번 사태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승화시켰다고 내다봤다. 민주당 권리당원 중 대다수는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인 만큼 당원의 권리를 강화함으로써 당의 장악력을 높이고 자연스레 당 대표 단일 후보로 우뚝 섰다는 설명이다. 이로써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 8월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한 전 비대위원장이 전당대회에 출마하고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22대 국회는 지난 총선에 이어 한-이 갈등 제2라운드로 들어서게 된다. 두 사람 모두 차기 대권주자로 주목받는 만큼 22대 국회에 상당한 파급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초반부터 군기 바짝 21대 정국을 집어삼킨 현안은 고스란히 22대 국회로 넘어왔다. 민주당이 1호 민생 법안으로 내놓은 ‘전국민 25만원 지원금’과 연금개혁 논란도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숙제다. 결국 21대 국회는 역대 최악이라는 꼬리표를 잘라내지 못했다. 최근에는 민주당 초선을 중심으로 한 집단행동이 몸집을 키우면서 여권에서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22대 국회 역시 강대강으로 흘러갈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4·10총선 유세 현장서 여야가 한목소리로 외쳐대던 ‘일하는 국회’가 실현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