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특집] '한국경제 초비상' 10대그룹 총수 '2013로드맵'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1.04 16: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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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터널 지나니…혹독한 가시밭 험로

[일요시사=경제1팀]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국내 10대 그룹 총수들도 하나쯤은 걱정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MB정부가 저물어가고 새 정부가 뜨는 이 시점에는 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올해 경기는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불투명해 총수들의 미간은 펴질 줄 모른다. 10대 그룹 총수들, 어떤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을까. 10대 그룹 총수의 어제와 내일을 비교해 봤다.


집안 문제로 뒤숭숭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2012년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취임한지 25주년이 된 해다. 이 회장 취임 이후 삼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국가 경제에 큰 몫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지난해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최대 호황을 누렸다. 삼성전자 영업이익 70%(15조원)이 휴대폰 사업을 통해 이뤄졌다. 장남 이재용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후계구도도 더욱 공고해졌다.

고민도 있다. 맏형인 이맹희씨와의 상속분쟁과 CJ그룹과의 갈등이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이자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부친인 이맹희씨는 지난해 2월 동생인 이 회장과 삼성에버랜드를 상대로 삼성생명·전자 주직을 돌려달라는 상속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이 회장의 누나인 이숙희씨, 조카 며느리, 그의 자식들까지 가세한 삼성가 소송은 상속 소송으로는 단군 이래 최대 규모로 불거졌다. 소송금액만 4조원 규모다.

형제간의 감정대립은 선대회장의 추모식까지 파행으로 이어졌다. CJ측은 삼성이 정문 출입 요구를 계속 거부했다고 비난했고 삼성 측은 참배를 못하게 길을 막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결국 추모식은 반쪽으로 치러졌다.

재계를 대표하는 기업이 삼성이라는 점도 이 회장을 난처하게 하는 부분 중 하나다. 경제민주화 열풍에 삼성이 그 주요 타깃이 되고 있는 것. 압도적인 1등이라는 점에서 담합 문제, 일감 몰아주기, 무노조 원칙에 대한 비판과 질타의 수위도 높다.

2013년 당장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사업 편중성이다. 무선사업부의 선전에 힘입어 승승장구 하고 있지만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다른 사업부와의 시너지 창출도 중요하다.


글로벌 침체 초비상 정몽구 현대차 회장

현대자동차그룹은 2012년 글로벌 700만대 판매를 돌파했고, 브라질 공장을 완공해 남미 시장 공략의 교두보로 삼는 등 충분한 성장을 이뤘다. 현대·기아차의 11월까지 세게 시장 누적 점유율은 3.4%, 2.7%로 지난해 대비 각각 0.5%p 올라 올해 6%대 달성이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걱정거리였던 지난해 10월 '미국 과장연비 사태'는 직접 미국 출장에 오른 정몽구 회장의 발 빠른 대처로 무사히 진화됐다.

문제는 내수시장이다. 하반기 들어 세제혜택 등이 맞물려 회복세를 보였지만 전반적으로는 하락세였다. 한-미 FTA와 한-EU FTA, 개별소비세 인하로 수입차의 가격이 낮아진 것이 이유다. 2013년 내수시장 판매목표는 아직 확정하지는 않았으나 현대차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기아차는 목표를 하향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은 내수 시장을 다지는 데 전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소비심리 위축에 따른 내수시장 침체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더 이상 수입차들에게 시장을 내주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재판 결과 기다리는 최태원 SK 회장

최태원 회장은 지난해 12월 말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직을 내려놓고 김창근 부회장에게 의장직을 물려줬다.수펙스추구협의회는 1998년 선경경영협의회라는 이름이 바뀐 것으로 대기업의 사장단 회의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최 회장은 SK주식회사·SK이노베이션·SK하이닉스의 대표이사 회장직을 계속 유지하게 된다. 최 회장은 1년에 3분의 1정도는 해외에서 머물면서 해외사업에 매진할 예정이다. 수펙스 의장직을 내려놓은 것도 이와 맥락을 함께한다.

다만 오는 1월31일 선고공판이 예정되어 있어 결과에 따라 최 회장의 행보는 달라질 수 있다. 최 회장은 2008년 선물에 투자하기 위해 SK계열사 자금 497억원을 빼돌리고 2005년부터 5년여 간 그룹 임원들에게 지급하는 상여금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약 139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재판을 받고 1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최 회장의 동생 최재원 수석부회장도 최 회장과 공모해 자금을 횡령하는 등 총 1943억원의 횡령·배임 혐의로 징역 5년이 구형됐다.

스마트폰에 사활 건 구본무 LG 회장

피처폰 시절 휴대폰 명가로 불렸던 LG전자는 스마트폰 시대에 들어서 부진을 거듭했다. 지난 2010년을 전후로 대규모 적자가 발생하는 등 경영이 급격히 악화됐다. 구본무 회장은 조직 내부의 체질개선에서 해답을 찾았다. 지난해에만 6차례 임원들에게 체질개선을 주문했다.

LG그룹은 스마트폰 사업 정상화에 회사의 역량을 집중, 2011년 9월 '구본무폰'이라고 불리느 '옵티머스G'를 출시했다. '회장님폰'은 출시와 동시에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예전 '휴대폰 명가'의 명성을 되찾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다.

따라서 LG그룹의 새해 경영화두는 '시장선도'와 '실천'이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구 회장은 최근 열린 임원세미나에서 "시장 선도를 향한 실행이 더욱 강조되고 한층 강화되어야 할 것"이라며 "철저한 실행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단지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룹 교통정리 골치 신동빈 롯데 회장

MB정권서 승승장구하던 롯데그룹은 사면초가에 빠졌다. '잠실 제2롯데월드 건축 허가' '맥주사업 진출' '유통 확대' 등 특혜에 가까운 수혜를 받으며 고속성장 해온 롯데는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중소상인들의 조준 대상이 되고 있다. 정권 말 '역풍'을 맞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신동빈 회장이 꺼내들 2013년 경영전략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단 롯데그룹은 그룹 재정비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2002년 이후 크고 작은 M&A만 30개에 육박할 정도로 롯데그룹은 그간 다양한 분야의 사업에 진출했다. 덩치가 커진 만큼 교통정리는 필수라는 얘기다.

지난해 2월 '부'를 떼고 '회장'으로 경영 일선에 나선 신 회장은 나이가 많거나 오래 머무른 임원들을 용퇴시키고 젊은 피로 수혈했다. 지난해 대대적 인사를 벌인 만큼 올해에는 눈에 띄는 조직개편과 인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장기계획보다는 단기계획에 힘을 쏟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세계적 경제불황 예고…외실 보단 내실 다지기
"지금이 기회다" 과감한 투자 등 신사업 발굴도


오너경영 강화한 허창수 GS 회장

허창수 회장의 고민은 GS그룹이 내수와 에너지 사업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GS그룹은 매출 70% 정도를 GS칼텍스에 의지하고 있고 GS리테일과 GS홈쇼핑 등 대부분 내수 기반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허 회장은 경기침체 속에서도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는 등 신성장 동력 발굴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혀 주목을 받고 있다. 허 회장은 지난해 12월 열린 4분기 그룹 임원모임에서 "내년 사업계획에는 먼 미래를 보는 안목을 바탕으로 꼭 필요한 투자를 가려내고 과감하게 실행하는 '원대한 구상'을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총수 일가의 이동도 허 회장의 뜻을 뒷받침한다. 허 회장의 친동생인 허진수 GS칼텍스 부회장이 GS칼텍스 대표로 선임됐으며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은 GS칼텍스와 GS에너지 이사회 의장직을 맡아 신재생 에너지 등 신성장 사업에 집중하도록 했다.

KAI 아리송 행보 조양호 한진 회장

지난해 9월 대한항공은 인천국제공항급유시설 입찰에 실패했다. 급유시설 간부가 직원들에게 운영권이 한진 측에 내정됐다는 발언을 한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가능성은 불투명해졌고 한진과 MB정부의 유착 의혹이 제기되면서 강한 비난을 받았다. 결국 급유시설 운영권은 아시아나에 넘어갔다.


하지만 무엇보다 조양호 회장의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KAI 인수 불발이다. 지난해 12월17일 진행된 KAI매각을 위한 본입찰 결과 현대중공업만 본입찰서를 제출해 2차 KAI매각이 유찰됐다. 조 회장은 인수가격이 지나치게 높아졌다며 대한항공의 본입찰 불참 배경을 밝혔다. 수의계약으로 진행될 재입찰 참여 여부도 인수 가격 수준에 따라 불확실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나 "10년을 기다렸는데 조금 더 못기다리겠느냐"며 인수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조 회장의 2013 경영전략은 '새 시장 개척'이다. 대한항공은 적극적인 해외 시장 개척을 통해 글러벌 네트워크를 강화할 예정이며 한진은 동남아 신흥국가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중동, 아프리카, 남미 등으로도 진출을 확대할 방침이다.

창사이래 최대위기 김승연 한화 회장

한화그룹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신성장 동력인 태양광 사업이 글로벌 경기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경영공백까지 더해졌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다.

왕성한 활동을 벌이던 김승연 회장은 지난 8월 법정 구속이라는 큰 암초를 만났다. 10대 그룹 총수로는 처음이었다. 김 회장은 위장 계열사의 채무를 그룹 계열사가 대신 갚도록 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배임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 항소 중에 있다. 지난해 12월5일에는 김 회장의 보석 신청도 기각됐다.

지난해 5월 우리나라 해외건설 역사상 최대이자 해외 신도시 건설 노하우 수출 1호로 한화건설이 80억 달러에 수주한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프로젝트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사업단 인력, 협력업체 직원, 제3국인 등이 거주할 캠프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지만 앞으로 초대형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서는 한화그룹의 경영공백이 조기에 해결돼야 한다고 건설업계가 지적하고 있다. 100억 달러 규모로 추산되는 이라크 2, 3단계 프로젝트 수주활동에 힘을 실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M&A 후유증 겪는 박용만 두산 회장

두산그룹 주요계열사 두산인프라코어는 올해 실적전망을 매출 10조28억원, 영업이익 8510억원으로 잡았다가 매출 9조2000억원, 영업이익 6700억원으로 수정했지만 이마저도 달성이 쉽지 않다. 2012년 3분기까지 매출 6조3823억원, 영업이익 3626억원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49억원을 투입해 인수한 미국 밥캣이 2012년 들어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M&A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에는 두산캐피탈 매각도 실패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게 될 전망이다. 두산그룹은 공정거래법상 일반 지주회사가 금융회사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조항으로 2012년 내 두산캐피탈을 매각해야만 했다. 

10대 그룹 중 가장 큰 폭으로 시가총액이 떨어지는 굴욕도 맛봐야 했다. 지난 12월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두산그룹 시총은 2011년 15조1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11조4000억원으로 24.10% 하락했다.

박 회장은 이럴 때 일수록 인재경영과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2013년 경영스타일도 소통이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대기업 경영자로는 드물게 총 14만9000여명의 팔로워가 뒤따르는 트위터 스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두산그룹 TV광고를 통해 강조하고 있는 '사람이 미래다'라는 문구 역시 박 회장이 직접 쓴 글이다. 그는 "사람이 자산인 기업은 업종이 바뀌어도 경영상황이 변해도 살아남는다"며 "두산그룹이 대표기업"이라고 강조했다.

재무구조 개선 진땀 강덕수 STX 회장

STX그룹은 유럽발 금융위기 이후 장기불황 국면에 접어들면서 어려움을 겪어왔다.

강덕수 회장은 최근 STX팬오션을 매각키로 했다. STX팬오션은 STX그룹 성장의 발판이 된 주요 계열사 중 하나다. 그런데도 STX팬오션을 매각키로 한 것은 그만큼 STX의 위기가 뚜렷해졌다는 뜻이다. 이에 앞서 STX그룹은 유럽의 조선 자회사인 STX OSV를 이탈리아 조선업체에 매각을 확정했다.

강 회장은 STX팬오션 외에도 중국에 있는 조선계열사 STX다롄 자본 유치, STX메탈과 STX중공업의 합병, 해외 자원개발 지분 매각 등 추가적인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업계는 STX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재무구조 작업이 모두 마무리된다면 부채감소와 더불어 2조원 이상의 현금이 확보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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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끝난 ‘의정 갈등’ 퍼즐

1막 끝난 ‘의정 갈등’ 퍼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어느 한쪽의 승리라고 하기엔 양측 모두 타격이 컸다. 의과대학 정원 증원이 확정됐지만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은 더 첨예해지는 모양새다. 문제는 출구전략이라고 할만한 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회유책, 의료계는 강경책으로 밀어붙이고 있어 접점을 만들기 요원한 상태다. 1998년 이후 27년 만에 의과대학 정원이 늘어났다. 정부와 의료계의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나온 결과다. 의료계가 제기한 소송서 법원이 정부의 손을 들어준 뒤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당초 인원보다는 줄었지만 증원을 이뤄내면서 정부 입장에서는 절반의 승리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4개월 만에 결론 났다 정부는 3058명인 의대 정원을 5058명으로 2000명 늘리기로 하고 전국 40개 의대 중 서울지역을 제외한 경인권과 비수도권 32개 의대에 배분했다. 이른바 정부의 ‘의료개혁’ 시도에 의료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의대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결국 정부는 2025학년도에 한해 증원분의 50~100%를 자율모집할 수 있도록 했다. 대학들은 올해 입시서 증원분 2000명 중 1509명만 모집하기로 하고 지난해 발표한 2025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에 의대 증원분을 반영해 변경사항을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에 제출했다. 지난달 24일 대교협이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을 변경‧승인하면서 의대 증원이 확정됐다. 이로써 의대 정원은 의학전문대학원인 치의과대를 포함하면 4567명으로 늘게 됐다. 대입전형위원회 위원장인 오덕성 우송대 총장은 “교육부서 결정한 정원 조정 계획에 대해서 어떻게 (입학)사정을 시행할지 입학전형 방법에 대해서 논의한 것”이라며 “지역인재전형, 또 가급적이면 융통성 있게 학생을 뽑을 수 있는 방법 중심으로 각 대학서 올라온 안건에 대해 전원 찬성하고 동의했다”고 밝혔다. 교육부와 대교협은 지난달 30일 ‘2025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 주요사항’을 안내했다. 정원 내 선발과 정원 외 선발을 모두 합쳐 4595명의 신입생을 선발한다. 서울대와 중앙대서 2023학년도 2명이 추가 모집된 만큼 올해 감축했다. 교육부는 특정 학년도에 동점자 발생 등의 이유로 신입생이 추가 모집되면 다다음 학년도에 그만큼을 감축 선발하도록 정하고 있다. 27년 만에 의대 증원 내년 4565명 입학 예정 세부사항을 살펴보면 비수도권 대학의 지역인재전형 선발 규모가 크게 늘었다. 지역인재 선발 의무가 있는 비수도권 대학 26곳에서는 내년 대입서 총 1913명을 지역인재 전형으로 뽑는다. 이들 대학의 전체 모집인원의 59.7%에 달하는 숫자다. 전년(1025명)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다. 내년 지역인재전형 선발 인원 중 81%는 학생부종합·학생부교과·논술 등 수시로, 19%는 정시로 뽑는다. 지난달 31일 각 대학이 내년도 입시모집 요강을 안내하면서 의대 증원 절차는 모두 마무리됐다. 지난해 10월 윤석열 대통령이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해 처음 언급한 이후 7개월, 실제 증원 규모를 발표한 2월 이후 4개월 만이다. 그사이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은 평행선을 달렸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숫자를 고수했고 의료계는 전공의 사직, 의대생 휴학 등의 방법으로 맞섰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는 등 현장에서는 의료 대란이 발생했다. 특히 중증 환자들은 병원을 떠난 전공의의 복귀를 촉구하는 등 목소리를 내왔다. 정부 차원서도 전공의 복귀를 위한 회유책을 제시하는 등 움직임을 보였지만 이들은 ‘의대 증원 백지화’ ‘원점 재논의’ 등을 비롯한 7대 요구안을 들어주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전공의의 7대 요구안은 ▲의대 증원 계획 및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전면 백지화 ▲과학적 의사수급 추계 기구 설치 ▲수련병원의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전공의 대상 부당한 명령 전면 철회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등이다. 여기에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회장을 수장으로 내세우면서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갔다. 정부는 개원의 중심의 의협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고 의료계의 의견을 모을 수 있는 협의체를 만들어 오라는 입장을 드러냈다. 2000명보다 줄었지만… 이 과정서 의료계 내부서 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정점에 치달은 시기는 법원의 판단을 앞두고다. 의대 교수와 전공의, 수험생 등 18명이 보건복지부,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의대 증원 취소소송의 집행정지 가처분신청 결과를 두고 긴장 수위가 최고조로 높아졌다. 정부 입장에서는 마지막 관문, 의료계 입장에서는 최후의 보루였다. 행정소송법상 집행정지 요건은 ▲원고 적격성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 등 3가지다. 항소심 재판부는 의대 정원 확대로 의대생이 입을 손해는 인정하면서도 증원을 멈출 경우 공공복리에 미칠 영향이 더욱 중대하다고 판단했다. 앞서 1심인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교수와 의대생 모두를 사건의 ‘제3자’로 판단하면서 원고 자격을 인정하지 않고 집행정지 신청을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하거나 청구 내용이 판단 대상이 아닐 경우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재판을 끝내는 결정이다. 하지만 항고심인 서울고법 재판부는 의대 교수와 전공의 등은 역시 제3자라는 이유로 신청을 각하했지만 의대 재학생 신청인의 원고 적격성은 인정했다. 재판부는 “의대 재학생 신청인의 신청은 헌법, 교육기본권, 고등교육법 등 관련 법령상 의대생의 학습권이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에 해당한다고 본다”면서도 “(이들에 대해)‘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으므로 신청을 기각한다”고 밝혔다. 또 의대생의 경우 의대 증원으로 기존 교육시설에 대한 참여 기회가 실질적으로 봉쇄돼 동등하게 교육시설에 참여할 기회를 제한받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했다. 의대 증원으로 의대생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그럼에도 의대생이 입을 수 있는 손해보다 의대 증원 집행을 정지했을 때 공공복리에 미치는 영향이 더 중대한다고 본 것이다. 전공의 이탈 현장은 마비 이외에도 부산대 의대 전공의·학생 등이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 역시 각하됐다. 의료계서 정부의 결정을 멈춰달라며 1심 법원에 제기한 8개의 집행정지 신청의 결과는 모두 각하로 판결 난 것이다. 의료계는 1심 각하 처분에 불복해 모두 항고한 상태다. 법원의 결정은 정부의 의료개혁에 날개를 달아줬다. 문제는 의대 정원 증원 절차가 마무리된 것과는 별개로 의료계의 반발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의대 A 교수는 “의정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정부가 출구를 아예 막아버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A 교수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의사들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개진해 왔다. 실제 전공의의 복귀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달 29일을 기준으로 전공의가 병원을 떠난 지 100일이 됐다. 전공의들은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지난 2월20일 오전 6시를 기해 병원을 이탈했다. 전공의의 부재로 남아 있는 교수와 전임의 등이 의료공백을 메꾸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한응급의학회가 응급의학과 전공의 수련을 담당했던 병원 59곳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모든 병원이 전공의 이탈 이후 응급실 운영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김인병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은 “인력을 갈아 넣고 있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2월 이후 주간 평균 응급실 근무 인원(전문의)은 5.4명에서 1.8명으로 야간의 경우는 4.7명에서 1.6명으로 줄었다. 김 이사장은 “근무 인원이 2명 이내로 줄어들면 환자 10명당 중증환자가 1~2명 정도 유지된다고 했을 때 나머지 환자들은 진료 자체가 안 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3월에 ‘응급실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성명을 냈는데 이렇게 갈아 넣으면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근무 인력 자체가 돌아올 기약이 없어 언제까지 사태가 지속될지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법원 쐐기 의료개혁 날개 의료계 반발 계속 평행선 전공의 이탈 여파가 더 크게 나타나는 곳은 의존도가 높은 대학병원이다. 말 그대로 ‘악화일로’ 상태다. 주요 병원들은 비상경영을 선포하면서 대응 중이지만 줄도산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는 수련병원에 건강보험 급여비를 미리 지급하는 등 숨통을 틔우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주요 수련병원들은 전공의 집단 이탈로 진료와 수술이 급감하면서 누적되는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빅5 등 상급 종합병원 중에서도 규모가 큰 곳에서는 하루에 많게는 10억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 악화는 의료인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등을 비롯한 전국 곳곳의 병원은 의사를 제외한 간호사, 행정직 등을 대상으로 무급휴가 신청을 받고 있다. 일부 병원은 희망퇴직 절차까지 진행 중이다. 정부는 경영난을 겪는 병원의 신청을 받아 지난해 같은 기간 급여비의 30%를 우선 지급하고 내년 1분기 이후 정산할 계획이다. 건보 급여비 선지급은 정산이 완료되기 전 일정 규모의 급여비를 우선 지급하고 추후 실제 발생한 급여비서 다시 정산하는 것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당장 내달부터 건보 급여 선지급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근본적인 해소는 아니더라도 숨통을 트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이고 추가 지원이 필요한지 여부는 지속해서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 미봉책 아닌 근본 변화해야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은 전공의 복귀가 진행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A 교수는 “전공의는 개원을 한다든지 하는 일종의 퇴로가 있지만 정부는 없다”며 “의료현장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의대 증원 확정으로 의정 갈등의 1막이 끝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시에 2막은 ‘멸망전’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타협점이 사라진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접어 들었다는 설명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