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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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4.04.01 09:52:49
  • 호수 14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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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푸크너 / 어크로스 / 2만2000원

문학, 종교, 예술에는 최초의 창시자가 존재하지만, 언제까지나 창시자의 의도에 머물러 있진 않다. 문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을 만든 이들의 의도를 벗어나고 점점 더 풍성한 의미를 담게 된다. 14세기 에티오피아 서사시 <케브라 나가스트>가 바로 그런 역사적 변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케브라 나가스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왕조는 솔로몬 왕을 계승한 유대 왕조의 직계 후손이다. 히브리 성경의 이야기와 달리 <케브라 나가스트>의 솔로몬 왕은 에티오피아 여왕이 방문했을 때 그녀를 품에 안았고 여왕은 왕의 아이를 임신한다.

솔로몬 왕과 에티오피아 여왕의 아이 메넬리크는 훗날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되는데, 고향을 그리워한 그는 모세가 만든 계약의 궤를 훔쳐 에티오피아로 도망친다. 솔로몬 왕의 혈통, 히브리 성경에 등장하는 계약의 궤, 이 두 가지 요소 덕분에 에티오피아는 유대 왕조의 권위를 손에 넣는다.

푸크너는 이런 문화 혼합이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히브리 성경을 구약으로, 기독교 정전을 신약이라고 정의한 오늘날의 성경 역시 이질적인 두 문화가 결합된 사례다. 후대의 해설자들은 역사적 권위와 함께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의미도 갖고 싶어 한다.

정통성과 독창성을 모두 손에 넣으려면 과거의 텍스트를 존중하는 동시에 그것을 부정해야 한다. <케브라 나가스트>는 에티오피아를 영광스러운 나라로 만들기 위해 솔로몬 왕을 등장시켰지만, 솔로몬 왕을 여왕에게 욕정을 품은 죄인으로 만들기도 했다.

<케브라 나가스트> 역시 수 세기가 흐른 뒤에 예상치 못한 미래를 만들었다. 20세기 초에 만국흑인진보 연합을 결성한 자메이카 태생의 마커스 가비는 흑인 기독교의 역사적 모델로서 에티오피아에 주목했다. 당시 에티오피아 왕이었던 리즈 타파리 마코넨은 <케브라 나가스트>로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했고, 마커스 가비를 포함한 자메이카 흑인들은 <케브라 나가스트>에 매료됐다.


유대 왕조의 권위에 기댔던 <케브라 나가스트>는 백인들의 역사를 반박하고 흑인들의 새로운 역사를 상징하는 텍스트가 돼 영화 <블랙팬서>의 모티브가 된 흑표당(Black Panther Party) 등의 흑인 인권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히브리 성경서 <케브라 나가스트>와 <블랙팬서>까지, 이 같은 역사의 연쇄는 문화에 대한 끊임없는 재해석이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텍스트의 원작자는 오해라고 말했을 재해석이었지만, 덕분에 인류는 인권과 평등의 문제에 있어서 큰 진보를 이룰 수 있었다.

실제로 인류의 역사에서 원작자라는 직함은 그리 큰 힘을 갖지 못한다. 때로는 오해와 재해석이 더욱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유럽서 발전한 자연권 사상은 백인과 남성만을 위한 것이었지만, 프랑스 식민지 생도맹그의 노예혁명을 촉발시켜 독립국가 아이티를 탄생시켰다. 

일본 다색판화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는 서양 기법을 도입한 작품이었고 당시 일본 미술서 이질적인 화풍이었으나 그 맥락과 상관없이 일본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됐다. <컬처>는 독창성과 고유성에 대한 신화를 파괴하며 역사를 앞으로 전진시키는 힘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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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모씨와 조직원 3명이 필리핀 현지 수용소서 탈옥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와 함께 보이스피싱 등의 범행을 함께한 조직원 포함 총 4명은 최근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지방 비콜 교도소로 이감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지난 4월 말, 현지서 열린 재판에 출석한 박씨와 일당은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수사 당국 관계자는 “박씨와 일당 3명이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체적인 탈출 방식 등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던 바 있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간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왔다. 특히, 박씨는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는 후문이다. 박씨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필리핀 루손섬 비콜교도소 수감 보이스피싱 이어 마약 유통까지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 박씨는 새로운 마약왕으로 떠오르고 있는 송모씨와 함께 비콜 교도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한 제보자에 따르면 “박씨의 텔레그램방에 있는 인원이 10명이 넘는다.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마약 전과가 있는 인물들로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씨는 본래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교도소 내에서 마약 사업을 이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 안팎에서는 “새로운 조직을 꾸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들이 비콜 교도소서 탈옥을 계획 중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쿠탄 교도소 관계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서 약 100만페소(한화 약 2330만원) 정도면 인도네시아로 밀항이 가능하다. 비콜 지역 교도소는 비쿠탄보다 탈옥이 쉬운 곳”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편, 지난 7일 외교부와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측은 정확한 탈출 방식이나 사건 발생 일자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일축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