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죽음’ 자발적 안락사의 세계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3.19 11:23:26
  • 호수 14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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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지막을 선택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정말 죽음을 원합니까? 당신은 ○○씨가 맞나요? 이걸 마신다면 죽게 됩니다. 정말 당신의 뜻이 맞나요.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겠습니다.” 이 질문은 모두 자발적 안락사를 선택한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 받는 질문이다. 질문을 받는 사람이 모두 “네”라고 대답하면 스스로 안락사 약을 복용하고, 곧 깊은 잠에 빠진다.

안락사는 불치병에 걸린 등의 이유로 치료나 생명 유지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이나 생물에게 직·간접적 방법으로 고통을 느끼지 않고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행위다. 안락사가 선택이 아닌 필수일 때가 있다. 드리스 판 아흐트 네덜란드 전 총리는 동갑내기 부인과 93세를 일기로 고향인 네덜란드 동부 네이메현에서 동반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모두 다
스위스로

그는 평소 아내를 ‘내 여인’이라고 부르며 애정을 드러내는 등 아내 사랑으로 유명했는데, 이 부부의 사연이 알려진 뒤 국내서도 자발적 안락사의 관심이 일었다. 특히 한국은 초고령화 사회로, 내년부터는 한국인 10명 중 4명이 65세 이상이다.

국내는 안락사가 불법이다. 다만 질병이 있는 환자에 관해 의사가 치료할 수 없는 상태라고 판단했을 때 산소호흡기 등을 설치하는 연명 치료를 거부하는 소극적 안락사는 가능하다. 소극적 안락사의 경우 생명 유지에 최소한으로 필요한 진통, 영양, 물, 산소의 공급을 하지 않는다.

자발적 안락사가 가능한 곳은 현재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콜롬비아, 캐나다는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미국은 주마다 다르다. 현재까지 오리건과 워싱턴, 몬태나, 버몬트,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6개주서 합법화됐다.


그렇다면 한국인에게 자발적 안락사는 불가능한 일일까? 국내서도 자발적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들은 꽤 있다. A씨는 선천적으로 희귀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온몸에 마비가 되는 병이었고 외모도 일그러졌다.

수술과 재활을 하던 중 다리에 후유증도 생겼다. 무엇보다도 병이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고통으로 자발적 안락사를 희망하고 있다. A씨는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병으로 항상 고통받고 살았다. 이제는 고통받고 싶지 않고 자발적 안락사가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발적 안락사를 희망하는 사람은 대개 이런 이유가 있다. 그래서 이들이 찾는 것은 자발적 안락사를 도와주는 단체다. 스위스 바젤에 한 비영리단체는 자발적 안락사가 허락되지 않은 나라의 사람이 자발적 안락사를 희망할 때 절차를 도와준다. 이 단체는 2019년에 생겼으며 심각한 질병이나 장애가 없더라도 고령에 안락사를 선택하는 것을 지지한다.

초고령화 사회서 반드시 필요?
“스스로 선택한 후 평화로웠다”

이들은 건강 상태와 관계없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성인이라면 누구나 죽음의 방식과 시기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단체의 사이트에는 자발적 안락사를 선택한 사람의 사연들이 소개돼있다. 자발적 안락사를 선택한 B씨의 친구는 “난 스위스 바젤서 친구와 나흘 밤을 함께 보냈다. 친구는 죽기 12시간 전에 자신의 삶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B씨는 20대 때부터 쌓아 올린 경력을 35살에 그만뒀다. 갑자기 생긴 근육통성 뇌척수염과 만성 피로 증후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B씨는 병원을 꾸준히 다녔지만 B씨의 병은 호전되지 않았다. 28세에는 갑상선을 제거했고, 50대에는 헤일리병이라는 희귀 유전 질환을 앓기 시작했다. 온몸에 물집이 생기는 질환으로, 이제 B씨에게는 ‘또 어떤 병이 올지 모르는 고통’만이 남아 있었다.

새로운 치료법이 나오길 기다리다가 치료를 받기도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B씨는 자발적 안락사를 선택하기 위해서 해당 단체에 연락했다.


이민을 간 뒤 B씨는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삶의 마지막을 꾸민다는 생각이었고, 삶이 의미 있길 바랐다. 죽음을 선택하기 4~5년 전에는 집에서 나오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죽을 수 있다는 희망이 삶의 원동력이 됐다. B씨는 그렇게 자신의 삶을 채우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했다. 

B씨는 삶의 마지막 길을 해당 단체와 함께했다. 자발적 안락사를 선택한 마지막 길은 친구와 함께였고, 친구는 “그의 죽음은 평화로웠다”고 평했다.

해당 단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연간 100유로(한화 약 14만원 정도)가 필요하다. 이름, 주소, 생년월일, 국적, 여권 정보 등을 입력하면 가입할 수 있다. 가입 후에는 안락사를 신청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서류가 있다.

죽음 후
절차는?

필요 서류는 ▲자발적 안락사를 요청하는 이유 ▲시민권과 현재 생활 상황 ▲간단한 자기소개 ▲가족 상황 ▲건강 진단서 ▲연락 담당자 지명 ▲출생증명서 ▲거주 증명서(요금 고지서, 공과금 고지서 등) ▲결혼·이혼 증명서(미혼은 법정선언문) ▲화장, 유골 등의 주의사항이다. 

이 서류를 제출하면 해당 업체는 신청서를 검토한다. 승인이 나면 업체는 신청자와 함께 자발적 안락사를 할 날짜를 정한다. 자발적 안락사의 방법은 일반적으로 넴뷰탈(펜토바르바탈)을 정맥 주사로 투여받거나 마시는 방법이 있다. 이때 신청자가 직접 정맥 주사의 밸브를 열어야 하고,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발적 안락사를 하는 경우 필요한 비용은 총 1만유로(한화 약 1435만원)다. 여기에는 자발적 안락사가 가능한지 서류 평가와 관리 비용, 예약, 의료상담, 장례서비스, 사후 관리 비용까지 포함된다. 나라나 지역이 다른 경우는 비행기 값이나 숙소 비용이 추가된다. 

이 단체의 특징은 ‘장기간의 우울증’ ‘극심한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더라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정신질환이 있다고 자발적 안락사가 거절당하지 않는다.

중요한 점은 해당 업체는 영어를 잘 하지 않아도 안락사를 진행할 수 있다. <일요시사>는 해당 업체에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도 진행할 수 있는지” “한국인 회원은 얼마나 있는지”를 물었다. 업체는 “영어가 부족해도 안락사가 필요한 사람은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한국인 회원이 있다”고 답했다.

스위스의 또 다른 업체는 회원이 되면 ‘위험한 자살 예방’ ‘완화 치료에 대한 조언과 지원’ 등의 정보를 보내준다. 평생 회원 회비는 140만원 정도이고, 연간 회원은 7만원 정도다. 이곳은 회원에 한해 자발적 안락사를 요청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불치병에 걸렸거나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의 장애가 있는 경우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수반하고 있고 ▲가능한 치료와 대안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정신질환
환자는?

또 ▲죽음을 다른 사람에게 영향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해야 하고 ▲오랫동안 죽음을 원했으며 ▲가족에게 죽음을 통보한 경우여야만 했다.


이곳에서 안락사를 진행하고 싶으면 두 번의 의사 상담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때 의사는 회원을 진찰한다. 왜 죽고 싶은 건지, 온전한 정신에서 죽음을 선택했는지 판단하는 시간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안락사는 회원이 직접 정맥 주사 밸브를 열어야 한다. 이것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죽음을 원했다는 증거다. 해당 순간은 녹화된다.

해당 업체의 한 담당 의사는 고의적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2019년 1심에는 징역 5년을 구형받았지만,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의사가 정신질환자의 의견을 듣고 안락사를 허용한 것을 두고 고의적 살인을 한 간접 가해자라고 판단했지만, 재판부는 안락사 회원이 상담 중에 “정신질환에 불만이 없다. 몸에서 오는 고통이 너무 힘들다. 치료할 수 없는 질환 때문에 죽음을 원한다”고 말한 것을 두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으로 봤다.

해당 업체의 경우는 한국 사람은 거의 없고 일본 회원이 많은 편이었다.

마지막으로 알아본 업체는 창립자가 변호사이며, 의사들이 협력해 안락사 약물을 처방해 주는 곳이었다. 다른 곳과 다 비슷했지만, 이곳은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 병력이 있으면 진행이 매우 까다로웠다. 엄밀히 말하면 이곳은 말기 암 등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돕기 위한 곳이었다.

다른 곳에 비해 준비할 서류도 많고, 업체 쪽에서 언어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안락사를 준비하는 한국 회원이 있었다.


합법적으로…금액은 1400만원 들어
본인이 직접 정맥 주사 밸브 열어야 

가장 최근 안락사가 합법화된 나라는 호주다. 호주서 인구가 가장 많은 뉴사우스웨일스(NSW)주에서는 자발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존엄사법이 발표됐다.

지난해 11월28일 호주 <AAP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날 NSW에서 안락사가 허용되면서 노던 준주(NT)와 수도 준주(ACT) 등 2개 준주를 제외한 호주의 모든 주에서 안락사가 가능해졌다. NSW주 의회는 2022년 5월 환자 자의에 따라 안락사를 허용하는 내용의 존엄사법을 통과시켰고 시행일은 1년6개월 뒤인 지난해 11월28일로 미뤄 놓은 상태였다.

이날 법이 시행되면서 기대 수명이 최대 6개월이라고 진단받은 불치병 환자나 기대수명이 최대 12개월이라고 진단받은 신경계 퇴행성 질환자는 안락사 신청을 할 수 있게 됐다. 안락사 신청은 NSW주에 최소 12개월 이상 거주한 자의식 있는 성인 환자가 직접 해야 한다.

안락사를 신청하면 보건부와 법무부 장관이 임명한 위원 5명이 승인해야 하며 이와 별도로 독립된 의사 2명의 승인도 필요하다. 안락사 지지 단체인 NSW 존엄사 협회는 첫 12개월 동안 약 600~900명의 말기 환자가 안락사를 선택할 것으로 예상했다.

NSW 존엄사 협회의 셰인 힉슨 대표는 “사람들이 이 법으로 여러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에 큰 마음의 평화를 얻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기독교 단체인 호주 크리스천 보이스는 안락사법이 ‘반 생명 로비스트’에 의해 추진된 것이라며 “인간 생명의 신성함에 대한 터무니 없는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한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안락사에 대한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한국존엄사협회는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조력 존엄사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해당 토론회는 녹색정의당 정책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존엄사협회가 함께 했다.

이날 화상회의 토론자로 척수염 환자 이명식(63)씨가 발표했다. 이씨는 3시간 이상 앉아 있기 어려운 탓에 화상회의를 통해 이날 토론에 참여했다. 그는 조력 존엄사를 입법하지 않은 현행법은 위험이라며 지난해 12월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다. 이씨는 “(국내서 조력 존엄사를) 반대하고 싶다면 제 통증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반대해야 할 것이다. 통증 완화나 치료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는 무책임한 반대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지금 내 몸이 아무렇지 않게 건강하다고 해서 죽는 그 날까지 튼튼하게 살다가 죽을 것이라고 자신하느냐. 현대의학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이라면 그 통증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거나 멈출 수 있는 마지막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도
공론화

반대 측에서는 자발적 안락사가 법제화된다면 취약 계층의 생명권을 앗아갈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아 동아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장애, 노령 등 자본주의 안에서 생산능력을 의심받는 이들에게는 (자발적 안락사가) 의무사항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인으로서의 양심의 자유 문제도 거론됐다. 김 교수는 “의사들에게는 이에 대한 실질적인 역할을 하거나,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들에게 의뢰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한다. 조력사가 윤리적으로 논쟁적인 지점에 있는 만큼, 어떤 의사들에게는 자신의 정체성과 상충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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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