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전국노래자랑’ 새 얼굴 남희석

채워지지 않는 송해 빈자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전국노래자랑>의 MC가 돌연 바뀌었다. 일각에는 정치적인 이유, 내부적인 문제 등의 이유가 나오고 있다. MC 교체를 보류해달라는 시청자들의 의견이 나오지만 그럴 일은 전혀 없어 보인다.

<전국노래자랑>의 MC가 1년6개월여 만에 교체됐다. 코미디언 남희석이 새로운 MC로 발탁됐다. 종편 최장수 프로그램의 MC가 지상파 최장수 프로그램 MC가 됐다. 유행어 “빠라바라바라밤~”의 주인공 개그맨 남희석의 이야기다.

남희석은 1971년 7월6일 충남 보령군서 태어났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영화 <내사랑 동키호테>서 동키의 동생 역을 맡은 김민종의 학교 친구 역으로 10초가량 나왔다. 이후 KBS1 <자니윤 쇼>에 1989년 11월에 나와 자니 윤의 성대모사로 주목받고 1991년 제1회 <KBS 대학개그제>로 데뷔했다.

개그맨으로
살아온 길

<해피투게더>에 KBS 공채 개그맨 7기 동기들과 함께 출연했을 때 언급된 바에 의하면, 그는 개그맨 시험 전날 술을 잔뜩 먹고 왔는데도 왠지 모르게 절대 떨어질 것 같지 않은 자신감을 풍겼다고 한다.

그리고 시험 현장에 이전에 쓰던 글짓기 대회 안내 현수막이 남아있는 것을 보더니 자기 순서에 심사위원들에게 ‘글짓기 심사하시느라 수고 많으십니다’라는 애드리브를 쳐서 바로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최고의 전성기는 SBS의 <좋은 친구들> <남희석 이휘재의 멋진 만남>을 진행할 때로 보는 시각이 많다. 실제 당시의 두 프로그램은 예능 프로그램 시청률 1, 2위를 다퉜으며 남희석도 개그맨 인기 순위 최정상에 있었다.

다만 한창 전성기를 누릴 시기에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TV서 사라지며 짧은 전성기를 끝내게 된다.

공백기 이후에는 외국인과 어르신 전문 프로그램 MC로 이미지를 잡아가고 있다. 특히 2011년부터 채널A 개국과 동시에 탄생한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MC를 맡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이 크게 히트하면서 다시금 재기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남희석은 오는 31일부터 후배 코미디언 김신영의 뒤를 이어 <전국노래자랑> MC를 맡을 예정이다.

남희석은 KBS의 공식 발표 이후 “누가 해도 부담이 되는 자리고 정말 어려운 자리라는 걸 알고 있다. 그동안 해온 김신영이 너무 잘 해줘서 고맙다”며 “나도 이 자리서 어르신들과 공감을 형성할 수 있는 진행을 하겠다. 제 나이에 맞게 진행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고 소회를 밝혔다.

<전국노래자랑>은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이다. 1950년대 라디오 노래자랑을 거쳐 1980년 11월9일 정규 편성됐다. 

처음엔 <KBS배 쟁탈 전국노래자랑>이라는 이름이었다. 현재와 같은 일반인들의 장기자랑 프로그램이 아니라 대학가요제와 마찬가지로 가수 또는 지망생들이 노래 실력을 겨루는 오디션 형식의 프로그램이었다. 해당 프로그램은 1971년 10월16일 첫 방송 했으며, 1977년 4월2일까지 방영됐다.


지난 4일 KBS 전격 발표
“부담되고 어려운 자리”

이후 1980년 11월9일에 전국노래자랑으로 방영되기 시작했다. 

<전국노래자랑>은 일반인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프로그램으로 특정 가수의 출연 여부에 따라 시청률이 오락가락하지 않으며 시청층도 50~70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고정적인 시청률도 나오는 편이다. 

게다가 젊은 세대들에게도 인기가 없다고 보기는 힘들다. 젊은 층의 참가자들도 많이 등장하는 데다가 프로그램 특성상 관심을 끄는 참가자가 많기 때문이다. 1980~1990년대에는 참가자 대부분이 20~30대였을 뿐만 아니라 20~30대 시청자들도 많았다. 

<전국노래자랑>은 전국 각 지방을 돌면서 주민이 참여하는 순회공연 형식이며, 공개 녹화 방식으로 녹화되고, 특정 시, 군, 자치구, 즉 기초자치단체 단위로 녹화를 한다.

예선을 거치고 선발된 지역주민들이 노래나 장기자랑을 선보이는 방식이며, 물론 초대 가수도 등장하고, 해당 지방자치단체장도 등장하여(구청장이나 시장, 군수를 비롯한 정치인들) 지역 소개도 하고 일부 지자체장들은 본인의 애창곡을 무대서 부르고 내려가기도 한다.

출연자들이 녹화 지역의 특산품이나 유명 음식을 가져와서 MC와 노래자랑 악단에게 권하는 장면은 <전국노래자랑>의 한 묘미로 꼽히기도 한다.

초대 MC 이한필을 시작으로 MC 이상용, 아나운서 고광수, 최선규 등이 거쳐갔다. 송해는 1988년 5월부터 2022년 6월까지 34년간 진행했다. 송해가 진행할 당시 <전국노래자랑>은 ‘신흥종교 송해교’가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그만큼 시청자들의 충성도가 높았다는 이야기다.

송해는 나이를 불문하고 오빠라 불렸다. 아이들과 여중고생들조차도 오빠라고 불렀으며 심지어 송해와 나이가 같거나 나이가 더 많은 여성 참가자 일부도 오빠라고 불렀다. 원조 국민 오빠인 셈이다.

송해는 생전 죽을 때까지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한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2022년 고령의 나이와 코로나19 확진 후 체력 저하, 병원서 입원 치료를 받을 만큼 건강이 안 좋아져 제작진에 하차 의사를 전했다.

지난 2022년 6월8일 송해가 자택서 사망하면서 <전국노래자랑>과의 동행은 마무리됐다. 공식적인 후임 MC는 미정이었으나 2022년 7월10일부터 정규방송이 재개된 후로는 임시 MC였던 임수민 아나운서와 이호섭 작곡가가 후임이 정해질 때까지 임시로 진행을 맡았다.

최장수
프로그램


이후 2022년 10월16일부터는 김신영이 단독으로 MC를 맡았다. 

김신영 첫 방송은 전임 MC 송해의 뒤를 잇는 의미로 실향민이던 송해의 아내의 고향이자 본인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며 살아온 대구광역시 달서구 편으로 선정됐다.

첫 녹화 당시 어마어마한 인파가 방문했으며 젊은 층들의 방문이 눈에 띄었다. 이른바 김신영 효과라고 불렸다.
첫 방송 이후 임시 MC였던 이호섭, 임수민 아나운서 대의 6~8% 시청률을 극복하고 다시 송해 시대의 10%대에 근접한 9.2%의 시청률을 내기도 했다.

다만 지난해에 들어서 평균적으로 6% 대의 시청률을 뽑으며 초라한 성적을 내 <전국노래자랑> 위기설도 나왔다. 시청자들은 “어리고 어색한 MC” “아직은 경험이 부족하다”며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이 같은 이유인지 KBS는 지난 4일 “<전국노래자랑>의 새 진행자로 남희석이 확정됐음을 알린다”며 “고 송해에 이어 젊은 에너지로 이끌어주셨던 김신영에게 감사드리며 새로운 진행자 남희석에게 응원 부탁드린다”고 했다. 남희석의 첫 방송은 오는 31일로 예정됐다.

하지만 MC 교체 이유나 김신영의 일방적 하차 통보 주장과 관련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김신영 소속사 씨제스스튜디오는 “9일 인천 서구편 녹화를 끝으로 하차 통보를 받았다”면서 “제작진 역시 지난주 MC 교체 통보를 받고 당황하며 연락했다. 김신영은 2년여간 전국을 누비며 달려 온 제작진과 힘차게 마지막 녹화에 임할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하차 통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김신영의 하차 발표 이후 일각에선 정치적 배경에 대한 의혹도 나온다. 

남희석이 여권 핵심 인사들과의 친분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남희석은 지난해 12월 충남 보령시서 ‘보령을 바꾸는 시민들의 목소리’라는 강연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소울메이트’라고 지칭한 장동혁 의원의 부인이 출연했다. 

남희석은 또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인 박성민 의원의 신년 인사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김신영이 문재인 전 대통령 시계를 자랑해서 잘렸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를 두고 전여옥 전 새누리당(전 국민의힘) 의원은 “김신영씨는 정치 성향을 드러낸 적이 없다. ‘문재인 시계’는 이번에 좌파 커뮤니티에 올라온 것을 보고 알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예계와 정치판은 사람들의 인기를 먹고 사는 점에서 비슷한데, 연예계가 정치판보다 더 냉정하다”면서 “저도 방송국서 일해 보기도 했고 프리랜서도 하면서 전날 교체 통보받은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MC로 발탁된 남희석이 보수 성향이라 뽑혔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남희석과 방송해 봐서 아는데 그는 정치적 발언조차 안 하는 얄미울 정도로 ‘중간’”이라며 “<전국노래자랑> MC 교체를 정치와 연관 짓지 말라”고 반박했다.

1년6개월
MC 변경

남희석 측 관계자는 “남희석은 국민의힘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인사들과도 많은 친분이 있다”며 “이번 MC 교체에 정치적 고려는 전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방송계에서는 KBS 경영진의 입김이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우선 예전만 못한 <전국노래자랑>의 시청률이 김신영의 하차 이유로 꼽힌다.

여러 방송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KBS는 <전국노래자랑>의 주 시청층인 노년 시청자를 다시 불러 모아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김신영 교체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김신영 투입 후 10~30대 시청자의 관심은 높아졌지만 반대로 60대 이상 시청자의 호응은 전보다 줄었기 때문이다. 송해가 진행을 맡았을 때 10%대를 유지했던 시청률은 최근 하락세였다. 지난해 10월 시청률은 3~4%까지 떨어졌고 그 이후에도 4~5%대에 머물렀다.

또 다른 이유로는 KBS 전사적인 차원서 이뤄지고 있는 예산 감축, 예능 개편의 영향권서 <전국노래자랑>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앞서 KBS 이사회는 총 1101억원의 인건비를 삭감하는 올해 종합예산안을 확정했다. 이로 인해 박민 사장은 전사적인 차원서 인원과 제작비를 축소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28일에는 특별명예퇴직 신청자와 희망퇴직 신청자 등 87명을 면직하는 인사발령을 냈다.

박 사장은 전사적인 프로그램 개편도 진행 중이다. 박 사장은 취임과 동시에 <더 라이브> <주진우 라이브>를 폐지했고 <뉴스9> 등 주요 뉴스 앵커를 시청자와 인사하지 못한 채 물러나게 했다.

예능 <홍김동전> <옥탑방의 문제아들> 시사교양 <역사저널 그날> 등도 갑작스럽게 폐지하거나 편성 중단했다.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다큐 <인사이트-바람이 되어 살아낼게(가제)>가 당초 다음 달 18일 방송을 목표로 만들어지고 있었으나 사측 반대로 제작이 무산되기도 했다.

문제는 박 사장이 해당 프로그램 편성 중단과 출연진 교체를 통보했다는 것이다.

정치적·KBS 내부 의혹 제기
반대 청원 20건 넘게 나오기도

방송법과 KBS 편성 규약 등에 따르면 누구든 임의로 프로그램 폐지·편성 변경을 하거나 제작자나 출연진을 교체할 수 없다. 실무자 의견을 존중해 합리적 절차·방식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박 사장은 이 같은 절차를 계속해서 무시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KBS 내부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 시청자들도 KBS의 일방적인 통보에 대한 반발하고 있다.

지난 5일 기준 KBS 시청자 청원 게시판에는 김신영 하차에 반발하는 청원이 약 20여건 올라왔다. 

그중 “<전국노래자랑> 진행자 그대로 유지시켜 달라”와 “<전국노래자랑> 진행자 김신영 화이팅”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시청자 청원 두 건은 각각 1000명의 동의를 얻었다. KBS는 1000명 이상이 해당 청원에 동의할 경우 직접 답변해야 한다.

“<전국노래자랑> 진행자 김신영 화이팅”이라는 청원을 올린 임모씨는 글에서 “<전국노래자랑> 진행자 김신영의 진행 덕분에 그 시간은 많이 웃을 수 있었다”며 “바뀐 김신영 진행자가 <전국노래자랑>을 더 활기차고 웃음 가득하게 만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교체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냐. KBS가 국민의 방송이라면서 이렇게 진행자를 막무가내로 바꿀 수 있냐”고 물었다.

이외에도 “김신영 하차 반대” “KBS는 공영방송이다. <전국노래자랑>은 시민들의 방송이다. 제발 지켜주시라”며 김신영의 하차를 반대하는 내용의 청원 글도 다수 눈에 띄었다.

하차 사실이 알려진 뒤 KBS <전국노래자랑> 시청자 소감 게시판에도 수십개의 항의 글이 쏟아졌다. 그중에서도 특히 일방적인 하차 통보를 지적하는 글들이 많았다.

“막무가내식 MC 교체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쓴 문모씨는 청원서 “이 글 쓰려고 회원 가입했다”며 “어떤 이유도 없이 절차 없이 막무가내로 MC 교체는 안된다. 국민을 위한 방송이라면 막무가내식 MC 교체는 아니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청원 글을 올린 작성자는 “최소한의 절차를 지키고 후보자를 검토해야 하지 않냐”며 “한 명의 시청자도 소중히 대하는 김신영 MC를 응원한다”고 했다.

하지만 <홍김동전> 등의 프로그램이 폐지될 때에도 올라온 글에도 KBS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아 이번에도 무대응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청률 때문?
교체 내막은…

일각에선 김신영이 여자 MC라서 교체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매체는 김신영 측이 MC 교체를 듣는 과정서 ‘젊은 여자 MC는 (프로그램 특성에)맞지 않는다는 KBS 내부 의견을 들었다’고 보도했다. KBS 측은 “KBS 내부서 이런 여성 차별적 의견은 나온 적이 없을 뿐더러 KBS서 이런 말이 통하지도 않는다”며 “경영진 차원서(교체를) 결정한 것도 아니다”라고 전했다.

한편 남희석의 <전국노래자랑> 진행도 기대된다는 의견도 있다. KBS 시청자 게시판에는 “김신영도 열심히 했지만 남희석의 입담도 기대된다”는 글도 많은 공감을 받았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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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이 야당 주도로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19일 사건 발생 10여개월 만이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반발하며 퇴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서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된 뒤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하며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을 요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사건을 초동 조사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찰 이첩 개입 의혹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를 수용해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고, 재석 168명 전원 찬성표로 가결됐다. 표결에는 야당만 참여했고, 국민의힘은 반발해 사실상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당은 원래 본회의 안건에 없었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기 위해 의사일정 변경을 우선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은 이번 본회의에 합의되지 않은 법안이 올라가는 것 자체를 반대해 왔다. 당초 김진표 의장도 여야가 합의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양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서 마지막으로 중재를 시도했지만 5분 뒤 김 의장은 여러 가지로 고려한 끝에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양당의 마지막 협상도 결렬됐고, 국민의힘에서는 유일하게 자리에 남았던 김웅 의원만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방청 중이었던 해병대 예비역연대 법률 자문, 김규현 변호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년의 해병대 예비역들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야당이 강행 처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로텐더홀서 규탄대회를 열고 “그간 우리 당은 이태원참사특별법에 합의 처리하는 조건으로 의사일정에 동의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이)채 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저희는 오늘 본회의 의사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처럼 이태원법 합의 처리를 통해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고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는데 오늘 의사일정 변경까지 해서 채상병법을 처리하겠다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채 상병 특검법 표결 시 본회의장을 퇴장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채 상병이 의사일정으로 상정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규탄대회 뒤 거부권 행사 건의와 관련한 질문에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국힘 퇴장 속 야당 전원 찬성 조각난 협치···대통령 또 거부?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 의사일정 변경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날 본회의는 이태원특별법 처리를 위해 여야 합의로 잡은 일정인 반면, 여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상황서 입법을 강행하기 위해 의사일정을 변경해 본회의 부의를 시도하겠다는 의도였다. 대통령실은 이날 야당의 강행 처리 예고를 예의주시하면서도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서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서 채 상병 특검법을 의사일정까지 바꿔가면서 일방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실장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 수사 중인 사건인데도 야당 측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고 하는 것은 진상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권에선 채 상병 특검법 자체의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미 수사 중인 사안에 특검을 도입하는 배경에 정쟁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바라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서 진행 중인 수사가 끝난 다음, 그 과정이나 결과를 토대로 특검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야당이 특검을 당장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통령실은 무엇보다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해병대수사단에 수사권이 없어졌기 때문에 야권이 주장하는 ‘수사외압’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병대수사단이 기초 조사는 할 수 있겠지만, 관계자 수십명을 소환하고 연루자가 몇 명이고 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당시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월권’ 가능성을 지적한 셈이다. “정치적 의도” 대통령실 발끈 또 과거 공수처 설치와 군사법원법 개정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특검을 추진하는 모순을 거론하며, ‘참사의 정쟁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이날 정 실장은 “현재 공수처와 경찰서 철저한 수사를 진행 중이므로 수사 당국의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특검 도입 등의 절차가 논의되고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수처는 민주당이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해 설치한 기구다. 당연히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는 것이 상식이고 정도”라며 “지금까지 13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야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이유도 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서 윤 대통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수사를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관련 정황은 이미 상당 부분 나왔다. 국방부는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들의 혐의를 축소하려 했고,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도 매끄럽지 않은 과정을 통해 회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조율한 흔적도 엿보였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공수처 수사가 1년 가까이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야권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과거 대통령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그마한 사고’라고 언급한 사건도 국민적 분노를 유발했다. 지난 3월22일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 인터뷰서 ‘조그마한 사고’로 표현하고 “전 지휘관이 법적인 문책을 받는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실언한 바 있다. 더구나 공수처는 지난해 8월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 인력 부족, 수사 의지 등을 핑계로 현재까지 ‘수사 진행 중’이라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해병대를 비롯한 국민 여론도 특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눈물 흘린 해병들 왜?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채 상병 특검법 상정과 통과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여 “채 상병 특검법 통과, 박정훈 대령 탄압 중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같은)이런 세력들이 우리나라의 집권여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이 나라의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민심을 외면하지 말고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외쳤다.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해병대 출신 김규현 변호사는 “(국민의힘은)처음엔 ‘독소 조항이 있다’고, 지금은 ‘공수처와 경찰이 수사 중이니 그 수사가 끝난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과거 특검 때에는 (앞서)경찰·검찰이 수사를 안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사실상 가장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방법은 법정 수사 기간을 최대 3개월로 정해놓고 있는 특검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병대 측은 이날 “3개월이 지나면 우리 군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안보에 전념할 수 있고, 정치권도 채 상병 문제를 일단락하고 지금 산적한 안보, 민생 정책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수사를 기다리며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채 상병 문제로 정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은 오후 2시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전원 참석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집회를 마친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 45명은 채 상병 특검법의 상정·통과 여부를 보기 위해 곧장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앞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지난달 3일 본회의 자동 부의 요건을 충족했다. 여야는 지난 1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는 합의했지만, 채 상병 특검법과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통한 것이다. 1년 가까이 진척 없는 수사 역풍 뻔한데···용산 선택은? 특검법 통과에 대해 대통령실은 야당을 향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수세에 몰린 대통령실이 야당을 지적할수록 부정 여론만 키우는 분위기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스스로가 수사 대상이 되는 사안서 ‘협치’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역풍을 맞게 되는 형국이다. 당장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용산의 뜻을 따를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어렵사리 여당 의원들을 단속하더라도 다음 달에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는 궁지에 내몰릴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신중한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김진표 국회의장은 합의 정신을 존중하는 분”이라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여야 합의 없이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들에 대해선 ‘과도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데다 야권과 언론이 국가안보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 등 대통령실 연루 의혹을 잇달아 제기한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당의 총선 참패 한 달여 만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국회 재표결 시 여당 이탈표도 우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 회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의 적극적인 수용을 요구한 데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도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공수처는 특검 출범 여부와 별개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외압 의혹’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을 불러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회수하고 재조사하는 과정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부터 외압이 있었는지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환조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수사는 진행 중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지난 2일 오전 9시25분쯤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공수처는 박 전 직무대리를 상대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재조사한 후 혐의자를 축소해 경찰로 넘기는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