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군부 장악 및 전개와 평가…김주애, 4대 세습 가능?

집권 10년 차를 넘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3가지 방식을 통해 군부를 장악하고 세습 체제를 완성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첫째는 당 중심의 국정운영 구축이다. 200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후계구도 확립을 위한 군부의 영향력이 조정됐다.

조직개편 통해 군부 효과적 통제

우선 2010년 당규약을 개정해 국방위원회보다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국방사업 전반을 당적으로 지도한다고 하면서 최고 군사기관으로 격상시켰다. 그리고 그해 9월, 제3차 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이 당중앙위원회 위원과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됐다.

“당 대회와 당 대회 사이에 군사 분야서 나서는 모든 사업을 당적으로 조직 지도한다”면서 군사 문제들을 국방위원회가 아닌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관할토록 했다.

그 후 이듬해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자 김정은은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됐고 2012년 4월, 제4차 당 대표자회를 개최해 당 제1비서로 등극했다.

본격적으로 정권을 잡은 김정은 제1비서는 국방위원회를 통해 운영되던 국정운영 방식을 당 중심으로 개편할 수 있었다. 2016년 6월, 7차 당 대회와 사회주의 헌법 개정을 통해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국무위원회를 신설할 때까지 김정은 위원장은 본격적으로 군부를 장악했다.


당시 개정된 사회주의 헌법에 따르면 국무위원회는 국가 주권의 행정적 집행기관이며 국무위원회의 역할은 국정 계획과 정부의 일반정책, 대내외정책을 심의하도록 했다.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으로,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변경시켰다.

과거 국방위원회와 국무위원회를 비교하면 인적 구성의 변화가 특징적이다. 초기 국무위원회의 부위원장에 군 출신 황병서뿐 아니라 당료인 최룡해, 내각 총리인 박봉주를 임명한 것은 과거 국방위원회가 오로지 군부 출신으로 이뤄진 것에 비하면 당·정·군의 균형을 맞춘 것이다.

임무 면에서도 과거 국방위원회는 선군 혁명노선을 관철하기 위한 국가 주요 시책을 입안하는 것으로 돼있으나 국무위원회는 국방 건설사업을 비롯한 국가의 중요정책을 토의 결정하겠다면서 정책 결정의 범위를 확대했다.

또 과거 국방위원회가 비상시기, 국가관리의 기구적 성격을 가졌다면 국무위원회는 평시적, 상설적 최고 의사결정 기구적 성격을 가졌다. 이런 조직개편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은 군부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고 동시에 당의 기능을 정상화했다.

둘째는 선군정치를 거치면서 비대해진 군부를 숙청과 잦은 인사 교체를 통해 길들이기를 시도했다. 사실 숙청은 김일성, 김정일 집권 시대에도 유효했던 공산주의 권력 장악의 대표적 방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일성 주석은 1956년 8월 종파 사건이 발생하자 당시 연안파와 소련파의 숙청을 단행했고 이어 이들과 연결고리가 있는 군부 내 소련파, 연안파 군인들을 쿠데타 음모 등의 명목으로 역시 숙청했다. 군부 숙청을 계기로 1961년 4차 당 대회서 당규약에 군대 내의당 조직이 처음으로 명시됐다.

숙청 통해 처형된 인사 100여명


김정일 시대에는 선군 노선의 의미에 맞는 군부에 대한 배려로 집단적이거나 대대적인 군부 숙청은 많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군벌 관료주의를 통해 영향력을 증대시키고 세력을 결집하려는 군부 개개인에 대한 숙청을 단행함으로써 권한 남용의 위험성을 주지시키는 방식으로 군부의 충성을 유도했다.

이 과정서 김정일 위원장은 안정적인 후계체제 확립을 위해 오히려 군부를 통제하는 변화를 추구했다. 다시 말해서 선군정치를 표방한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권력을 승계하는 데 있어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는 군부에 대해 오히려 견제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군부를 숙청하는 방식이 아니라 후계자에게 충성할 것으로 판단되는 로열패밀리, 혹은 당 정 군의 최측근들을 활용해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를 뒷받침한 것이다.

2010년에는 군과 전혀 관계가 없는 김정은의 고모 김경희와 남편 장성택이 인민군 대장으로 임명되는가 하면,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의 아들이자 당 관료 출신인 최룡해를 총정치국장으로 임명했다.

군수 담당 비서였던 박도춘이나 당 기계공업부장 출신인 주규창도 그 무렵 대장과 상장 지위를 받는 등 민간 출신의 군 간부화 작업도 진행됐다. 이 같은 당과 민간에 의한 군부 통제로의 전환은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후 군부를 장악하는 데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이후 군부의 당적 통제를 기반으로 당시 군부 실세들을 하나둘씩 제거해 나갈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조치가 잘 알려진 운구 4인방의 교체다. 2012년 말까지 김정은 위원장은 당시 군부 실세인 리영호 총참모장을 모든 직위서 해제하고 영결식 당시 인민무력부장이었던 김영춘을 비롯, 김정각 총정치국 1부 국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1부 부장을 한직으로 밀어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도자로서의 위상 정립을 위해 군 파벌 간 외화벌이 사업의 독식 문제를 제기하면서 군 실세에 대한 본보기식 숙청을 단행했는데 리영호는 반혁명 분자로 몰아, 장성택은 국가 전복 음모행위라는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 재판 판결 직후 무자비한 처형이라는 방식을 통해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숙청을 단행했다.

2012년부터 이런 숙청을 통해 처형된 인사들은 100여명이 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 숙청과 함께 김정은은 군 고위 관료들에 대한 강등과 복권을 반복하는 이른바 ‘견장 정치’도 펼쳤다. 군부 장악이 절정을 이뤘던 정권 출범 이후 2~3년 동안을 보면 총정치국장을 제외하고 인민무력부장, 총참모장 등 군부의 핵심 요직의 인사를 최소 4회에서 8회에 걸쳐 교체했다.

그나마 북한 군부의 당적 통제를 담당하는 총정치국장은 최룡해서 황병서로 2회 교체됐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좀 더 기간을 확대해 보면 김정은 집권 이후 2023년까지 총정치국장의 교체 횟수는 11번에 달했고 평균 재임 기간은 12개월이었다.

승진, 갈등, 해임, 재기용을 반복한 사례 중 대표적인 것이 현 총참모장 이영길의 사례다.

군단장이었던 그가 2012년 김정은 집권 이후 진급을 거듭하면서 2013년 총참모장이 임명됐으나 2016년 이후 한동안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아 처형설이 나돌았다. 그러나 2018년 총참모장으로 복귀했고 이듬해 또 총참모장서 해임됐다.


그러다 2020년 사회 안전상, 2021년 국방상으로 임명됐고 지난해 8월 총참모장으로 재임명됐다. 이 같은 회전문식 반복적 인사패턴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은 군부를 장악하고 충성 경쟁을 유인해 온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정책적 측면서 병진 노선의 추진과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국방력 강화 기조는 김정은 위원장의 대표적인 군권 장악 사례와 연결될 수 있다. 과거 김일성 시대 병진 노선과 김정일 시대의 선군 노선은 국방 강화를 위해 경제 분야의 손해를 감수했고 그 결과 경제와 국방 분야의 불균형은 북한 경제의 장기침체를 가져왔다.

반면 김정은 위원장의 집권 이후 제시한 병진 노선은 “국방비를 추가로 늘리지 않고도 전쟁억제력과 방위력의 효과를 결정적으로 높임으로써 경제건설과 인민 생활 향상에 힘을 집중할 수 있게 한다”는 경제발전 전략에 중점을 둔 측면이 있었다.

핵·미사일 개발 지속해 군 통제

군부의 통제 역시도 핵 무력 발전이 우선돼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는 점에서 과거처럼 국방이 경제에 우선될 소지는 있었다.

그러나 병진 노선으로 국방에 대한 투입이 제한될 경우, 군부의 반발 등이 우려되기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은 2015년부터 4대 전략 노선을 강조하면서 정치사상, “도덕 강군과, 전법 강군과 다 병종 강군과” 등을 제시하고 고위급 인사 교체와 군부대 현지 지도 등을 통해 군부의 동요를 통제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핵을 개발하기 시작한 2016년부터는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개발을 통해 자연스럽게 군부 위상이 다시 강화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김정은 위원장이 군부를 통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북한 군부 내부의 성격 변화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김일성, 김정일 시대 북한 고위 군부 관료들은 빨치산 혁명 등 출신 성분의 연계성이 높았다. 그러나 핵미사일을 본격적으로 개발하는 과정서 김정은 위원장은 전문 직업군으로서의 군부의 성격을 변화시켰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 군부 내 테크노크라트를 중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군부 내의 정치성의 발호를 배제하고 국방력 강화에만 집중케 할 수 있었다. 또 군의 경제활동 투입을 장려하면서도 책임성을 강조함으로써 과거처럼 군부가 무질서하게 이권에 개입하는 것을 철저히 통제해 왔다.

결론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초기 단계적인 숙청과 보직 변경을 통해 군부의 정치성을 배제하고 정권에 충성하는 조직으로 발전될 수가 있도록 군부를 장악했다. 핵 개발이 본격화된 이후에는 당과 국가를 보위하고 정권의 핵 정책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하는 선 핵 정치의 상징으로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군을 통제해 나갈 수 있었다.

앞으로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는 한, 국권 수호와 인민 안전 보호라는 역사적 사명의 부여, 핵 강국의 군대라는 자부심을 사상적으로 심어줌으로써 군을 효과적으로 통제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김명삼 대기자
<hntn1188@naver.com>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모씨와 조직원 3명이 필리핀 현지 수용소서 탈옥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와 함께 보이스피싱 등의 범행을 함께한 조직원 포함 총 4명은 최근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지방 비콜 교도소로 이감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지난 4월 말, 현지서 열린 재판에 출석한 박씨와 일당은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수사 당국 관계자는 “박씨와 일당 3명이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체적인 탈출 방식 등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던 바 있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간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왔다. 특히, 박씨는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는 후문이다. 박씨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필리핀 루손섬 비콜교도소 수감 보이스피싱 이어 마약 유통까지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 박씨는 새로운 마약왕으로 떠오르고 있는 송모씨와 함께 비콜 교도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한 제보자에 따르면 “박씨의 텔레그램방에 있는 인원이 10명이 넘는다.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마약 전과가 있는 인물들로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씨는 본래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교도소 내에서 마약 사업을 이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 안팎에서는 “새로운 조직을 꾸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들이 비콜 교도소서 탈옥을 계획 중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쿠탄 교도소 관계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서 약 100만페소(한화 약 2330만원) 정도면 인도네시아로 밀항이 가능하다. 비콜 지역 교도소는 비쿠탄보다 탈옥이 쉬운 곳”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편, 지난 7일 외교부와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측은 정확한 탈출 방식이나 사건 발생 일자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일축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