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특집 인터뷰> 외로운 아이들의 따뜻한 공간 푸른학교 임은경 대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12.26 15:47:07
  • 호수 14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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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다 밥 먹고 놀기도 하죠”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눈이 오는 추운 겨울,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한 작은 도서관에는 꾸준히 사람들이 방문한다. 빨간 옷을 입은 초등학생이 “안녕하세요!”라고 외치며 뛰어간다. 김치를 가지러 온 어른, 자원봉사하러 온 교대생, 아이와 책을 빌리러 온 엄마가 찾는 이곳은 사단법인 푸른학교 사무실이다.

1997년 12월3일. 이날을 ‘국가부도의 날’ 혹은 ‘경제 국치일’이라고 부른다. 한국경제는 부도로 국제적 신용 위기에 처했고, IMF의 긴급 구제금융을 지원받게 된 것이다. IMF 사태는 한국 국민에게 커다란 충격을 줬고, 이후 한국사회의 모습은 크게 변했다.

다 함께

가장 큰 변화는 직장을 잃어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게 된 부모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실직의 아픔을 겪은 부모의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이 틈에 아이들은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 학교를 마치고 학원이나 학습지 또는 공부방을 다니던 아이들은 갈 곳을 잃었다.

자연히 교육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단법인 푸른학교는 이 같은 이유로 설립됐다. 성남에 있는 무료급식소서 식사 시간이 지난 뒤 청소를 한 후 작은 공부방을 열었다. 성당서 공부를 시켰고 밥은 직접 해서 먹였다. 모두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아이들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마음에서 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장소를 빌리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당시 있었던 학부모와 보증금 500만원을 모아서 월세살이를 시작했다. <일요시사>는 지난 20일 푸른학교 사무실이 있는 경기도 성남시 소재의 사단법인 푸른학교 임은경 대표를 만나 과거와 현재에 대해 들어봤다. 

임 대표는 “푸른학교는 아동·청소년 돌봄사업을 하는 사단법인이다. 지역아동센터, 어린이집, 다함께돌봄센터 등이 있다”며 “푸른학교는 성남서 시작됐는데, IMF 때 (여기는)서민이 많이 사는 동네라 경제적으로 직격탄을 맞았다”고 말했다.

당시 성남시엔 작은 공장이 많아 건설 노동자들이 많았다. IMF 이후 시민단체 상근자들이 성남시 주민에게 생활하는 데 무엇이 가장 힘든지 설문조사를 했다. 당연히 직장 문제가 가장 힘들었는데, 그 다음이 바로 아이들 돌봄 공백이었다.

이때부터 푸른학교라는 이름으로 공부방이 시작됐다. 교대에 다니는 학생이 봉사활동을 했고, 나중에 봉사활동을 했던 사람이 자신의 지역에 가서 다시 푸른학교를 만들었다. 이렇게 푸른학교는 지역아동센터가 됐다.

지역아동센터는 차상위 계층의 아이들에게 우선순위를 준다. 이곳은 아동·청소년을 위한 보호와 돌봄, 그리고 학습 지도까지 이뤄진다. 센터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식사까지 챙겨준다.

현재 푸른학교는 17개 지역서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직원이 월급을 받고 일하지만, 처음 푸른학교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무급 자원봉사자였다.

초창기 멤버인 임 대표는 “2~3년은 월급을 못 받았다. 오히려 운영비가 부족해서 운영비에 보태려고 저녁에 알바도 했다. 이후에는 정부 지원을 받게 됐지만 한 달에 25만원 받을 때도 있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당시엔 길거리서 파는 오뎅을 먹고 싶어도 사 먹지 못했다고 웃었다.


그렇다고 그 시절이 힘들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보다 사람 사는 정이 넘쳤다. 붕어빵 장사를 하는 학부모는 푸른학교 교사에게 붕어빵을 먹어보라고 챙겨주기도 했다. 아이들 챙겨달라고 두부를 일주일에 한 번씩 후원해 주는 학부모도 있었다.

임 대표는 “주변에 있는 학부모들이 많이 도와줬다. 당연히 처음이니까 부족한 게 많았지만, 사람들이 채워줬다. 그때는 그럴 수 있었다”고 감사해했다.

“졸업한 아이 봉사자로 오기도”
“커서 만족하는 삶을 살았으면” 

푸른학교에는 다양한 학생이 오고 그만큼의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있다.

임 대표는 “지금은 대학 졸업한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으로 들어왔는데 중등부까지 다녔다. 부모님이 사이가 안 좋았는데, 결국 이혼하셨다”며 “이렇게 가정이 해체되거나 부모가 직장을 잃은 경우가 많다. 이런 아이들에게 사회문제로 부모님이 힘드신 것이라고 설명해준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때는 더 바빴다. 이때는 저소득 가정 아이들이 아니라 맞벌이 가정 아이들을 더 챙겨야 했다”고 부연했다.

아이들이 태블릿PC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은 불가능했다. 이때는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이 학교 교사들보다 더 바빴다. 결국 잘사는 집 아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 아이나 돌봄이 필요한 것은 똑같다는 것을 의미했다.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푸른학교서 지냈던 아이가 ‘사회복지사’로 돌아왔을 때였다. 임 대표는 “푸른학교서 졸업한 아이가 자원봉사하러 오기도 하고 교사로 오기도 한다. 한 아이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서 센터에 와 일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푸른학교는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저출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피부로 느낀다. 아이들이 뛰어다녔던 골목에는 어른들로 가득 찼다. 실제로 학교 바로 앞에 있는 문방구는 올해까지만 문을 연다. 놀러 오는 아이도 없을뿐더러, 요즘은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고 학교서 다 챙겨주기 때문이다.

임 대표는 “원래 이 동네가 집도 저렴하고 빌라촌이라 신혼부부가 많이 사는 동네였고 학교 등하교 시간에는 아이들로 바글바글했다. 지금은 어려운 사람들이 이쪽으로 몰렸고, 아이들보다 어르신들이 많이 보인다. 이런 상황서 우린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시대에 따라 상황이 바뀌는 것은 학교 입장서도 어쩔 수 없다. 그렇기에 푸른학교는 내년부터 새로운 계획을 꿈꾸고 있다. 바로 ‘노인센터’를 만드는 것이다. 이 계획은 동네 어르신이 “주말은 외로워서 너무 싫다”고 말한 것에서 시작됐다. 노인정도 인원 제한이 있고, 집과 거리가 멀면 가기 힘들다. 결국 돌봄이 필요한 것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돌봄


푸른학교가 바라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임 대표는 “무슨 일이든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고 사는 삶이면 좋겠다. 배달 일을 하더라도 쉴 때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고,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있는 사회, 아이들이 스스로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푸른학교서 다양한 실천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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