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특집 일요초대석> 무너진 교권 한탄한 유정우 훈장

인성 없는 교육 “해서 무얼 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다사다난했던 계묘년이 저물고 있다. 올해는 유독 각계각층서 흉흉한 소식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교육계는 교사, 학부모, 아동 할 것 없이 모두 상처받은 한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 답을 찾아 ‘양지서당’으로 향했다. 

‘양지서당’이 새겨져 있는 표지석을 지나고도 시골길을 한참 더 들어가야 했다. 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을 만한 좁은 도로를 10분 정도 달리자 멋스러운 한옥 지붕이 먼저 눈에 담겼다. ‘충효당’이라고 쓰여 있는 현판이 달린 가로로 긴 건물, 양지서당에 도착했다. 

20년 명맥
전통문화

충남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 범골에 위치한 양지서당은 ‘큰 훈장님’ 의정 유복엽 훈장이 설립했다. 한학을 통해 아이들에게 인성과 예절을 가르치는 민간 교육기관이다. 2002년 7월 대전서 논산으로 자리를 옮긴 뒤 20년 넘게 ‘예절학당’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12일 오후 양지서당을 찾았다. 인기척을 내자 양지서당 사람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유복엽 훈장은 어린 여자아이와 장기를 두고 있었다. 상투를 틀고 유건을 쓴 모습은 전래동화에 나오는 훈장의 모습 그대로였다. 

양지서당에는 유복엽 훈장과 향산당 김초선 여사, 대산 유정인 훈장·봉암 유정우 훈장·해암 유정욱 훈장, 그리고 그 자녀들까지 3대가 함께 살고 있다. 여기에 도심서 농촌으로 유학 온 아이들 10여명도 한 집에서 생활한다. 


오후 12시30분 양진당에 모여 점심을 먹었다. 양지서당 관계자를 비롯해 아이들까지 나란히 앉아 자기 몫의 식사를 했다. 유명원 양지서당 홍보이사는 밥과 반찬이 부족하지 않은지 연신 물었다. 앞마당에는 새끼 고양이 5마리가 엉킨 채 놀고 있었다.

흐린 날씨로 공기는 차분하게 가라앉았고 사위는 고요했다. 물레방아 물소리가 백색 소음으로 흘러들었다. 

유정우 훈장은 인터뷰 진행에 앞서, 붓으로 ‘선(善)’이라는 한자를 적었다. 그러면서 ‘지극한 선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의 지어지선(止於至善)을 언급했다. 그는 “<대학>의 말씀이 내 심성을 밝힘으로 인해서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게 바로 지선의 자리에 그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정우 훈장은 양지서당을 운영하면서 1000여명의 아이를 만났다. 빠른 아이들은 7세에 양지서당에 들어와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0여년간 머물다가 관내 고등학교 기숙사로 진학한다. 이보다 길게 머무는 아이들은 13년 동안 서당서 생활한 뒤 다른 지역으로 가기도 한다.

아이-학부모-교사 악순환
흉흉한 교육계 대책 없나

양지서당은 이름대로 아이들의 뜻(志)을 길러주기(養) 위한 교육을 하고 있다. 학교 수업을 보완하는 이른바 ‘방과 후 수업’ 같은 방식이다.

유정우 훈장은 “일반 학교서도 도덕 과목을 통해 인성교육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는 기능성을 키워주는 교육으로 조금 기울어 있다”며 “서당 역시 아이들 개개인의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을 하고 있지만, 그보다도 ‘사람됨’을 키우는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지서당의 아이들은 <사자소학>과 <추구>를 배운다. <사자소학>은 살아가면서 반드시 지켜야 할 생활 규범과 예절 등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가르치는 생활철학 글이다. 서당서 처음 배우는 글이기도 하다. <추구>는 좋은 글귀를 뽑아 모은 책이라는 뜻이다. 고리타분한 옛것으로 여겨지지만 그 안에는 삶의 진리가 들어있다.

아이들은 부모, 형제, 친구, 스승, 어른 등 사회적 관계에 대해 배운다. 한 달에 한 번 계룡산 둘레길을 걸으며 자연과 접한다. 이 과정서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법, 앞으로 나아가는 법,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는 법을 익힌다. 

유정우 훈장은 “양지서당에 처음 온 아이가 둘레길을 걷는 데 너무 힘들어했다. 안 가면 안 되냐고 몇 번이나 말하길래 ‘천천히 가는 건 괜찮은데 포기는 하지 마’라고 말했다. 결국 그 아이는 끝까지 걸었다. 지금은 누구보다도 잘 걷는다. 아이가 잘 있나 보러 오신 아버지보다도 잘 걸어서 놀랐을 정도”라고 말했다.

미디어나 휴대폰에 대한 접촉도 가급적 줄이도록 했다. 유정우 훈장은 “아이들은 한쪽을 차단하면 다른 한쪽에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미디어를 차단하면 그 시간에 서예나 검도 같은 몸으로 하는 것, 그리고 책에 관심을 보인다. 독서에 대한 맛을 알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아이가 스스로 찾게 된다. ‘습’(습관)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망가진 교육
무너진 교권

최근 학교서 아이가 문제를 일으키고 이를 학부모가 교사의 탓으로 돌리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학부모의 항의에 견디다 못한 교사가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고 남은 교사들은 교권 회복을 위해 거리로 나왔다.

유명 웹툰 작가가 아들이 아동학대를 당했다며 특수교육 교사를 고소한 사건도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유정우 훈장은 “개인에 대한 존중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이기주의로 변화했고 이것이 공동체의 균열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과거와 비교해 자녀 수가 현저하게 적어지면서 부모의 관심이 집중되고 이 과정서 공적인 부분과 사적인 부분의 경계가 흐릿해졌다는 설명이다.

아이가 ‘자신의 것’에 대해 강하게 어필하면서 균형이 깨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20여년간 수많은 아이와 부대끼며 살아온 유정우 훈장 역시 그 변화를 몸소 느끼고 있다. 그는 “과거에는 가정교육이 굉장히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이 한 밥상서 밥 먹기도 어려워졌다. 대가족 시대에는 아이들이 어른들을 보면서 성장했다. 생활 과정서 조심하고 예의를 갖추는 모습을 자연히 배우고 컸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부분이 많이 사라지면서 ‘난 이렇게 해도 돼’ ‘내가 하고 싶으면 해도 돼’라는 표현이 많아졌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방어적으로 굴지만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그게 어때서?’라는 식으로 변해버렸다”고 한탄했다.

실제 양지서당에 처음 오는 아이들 가운데서도 ‘왜요?’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요?’라고 말하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한다.


대단한 부모
대견한 아이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유정우 훈장은 “예전에는 기본 교육을 가정서 하고 그다음에 학교 교육을 받았는데 지금은 보육과 교육 모두를 학교에 의존하는 상태가 돼버렸다. 그래서 책임까지도 학교에 전가하는 식이 된 거다.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가정 교육을 잘 못 시켜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부모가 먼저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 사건이 반복되다 보니 교육이 무너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교서 생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면서 교권이 추락하고 공교육이 붕괴하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 계속되다 보니 교육청 등 정부 기관을 중심으로 인성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양지서당서 2020년부터 진행 중인 농촌 유학도 그 일환이다. 

도시와 농어촌 간의 교류 촉진에 관한 법률(도농교류법)에 따라 농촌 유학을 온 아이들은 주소지를 양지서당으로 옮기고 관내 학교에 다닌다. 아침에 일어나 청소를 하고 식사를 한 뒤 함께 등교한다. 하교 후에는 서예, 검도 등 이른바 ‘방과 후 수업’을 한다.

아이들은 공동생활을 하면서 인내와 배려를 배운다. 조부모-부모-자녀 등 3대가 생활하는 모습서 예절을 습득하고 인성을 기른다.

유정우 훈장은 “사회는 나만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곳이다. 공동체에 대한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요즘 아이들은 누군가와 부대끼며 함께 생활하는 경험을 거의 하지 못한다. 그런 지점서 필요성을 느껴 서당으로 아이를 보내는 부모님들이 꽤 있다”며 “교육청서도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인성을 함양할 수 있는 기관이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되면 무너진 교육이 회복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유정우 훈장은 “모든 상황을 경제 논리로 해결하려 들면 결국 수단과 방법이 나오게 된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방식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경제 논리 위에 교육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가치 있는 인재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했다.

기능보다는 인성에 집중
“옛 선조 지혜서 배워야”

2006년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한민국 100대 민족문화상징’을 선정했다. 당시 선정된 교육 분야 두 가지 상징 중 하나가 바로 서당이다. 다른 하나는 ‘한석봉과 어머니’가 뽑혔다. 고구려 때 ‘경당’이 서당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에 세워진 서원, 향교 등과 비교해 그 역사가 어마어마하게 긴 편이다. 

서당은 다른 기관에 비해 접근성이 좋아 민초의 학력 향상에 큰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민족 말살 정책의 하나로 ‘서당 철폐’가 있을 정도였다.

유정우 훈장은 “서당은 지역민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던 장소다. 교육의 문턱을 낮춘 기관인 셈이다. <사자소학> <추구> 등 사람다움에 대한 글이 가득한 옛 선조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기관이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농촌 유학을 오는 아이들 수가 급감하는 등 위기를 겪었지만, 서당은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유정우 훈장은 “인성교육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하고 이를 위한 정책이 진행된 찰나에 코로나가 확산하면서 많은 부분이 흐트러졌다. 특히 코로나를 겪으면서 대면 접촉이 줄어들었고 이 과정서 사람 사이의 끈이 많이 끊겼다. 더 안타까운 부분은 끊어진 관계가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인기를 누리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멀리 봐야 한다. 유아교육, 초등교육 과정서 인성교육이 빠져버리면 중‧고등학교서 이를 바로잡는 게 정말 힘들어진다. 교육기관서 지속성을 가지고 인성교육을 기본소양으로 배울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한국 사람은 인성이 좋다는 인식이 해외에 널리 확산하면서 외국에 있는 우리 국민이 융숭한 대접을 받는 일이 많다고 한다. 양지서당에도 해외서 오는 아이들이 있다. K-문화가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전통 교육과 서당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생긴 일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인성 역시 세계로 수출될 수 있었으면 한다”고 ‘K-인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세계적으로 미래가 밝은 국가를 선정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부분이 청소년의 꿈이라고 한다. 청소년이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청소년이 가치 있는 꿈을 많이 꾸고 있는 곳이 바로 미래가 밝은 나라라는 것이다. 

청소년의 꿈
K-인성으로

유정우 훈장은 “좋은 토양일수록 여러 가지 식물을 심어도 잘 자라지 않나. 또 땅을 단단하게 고르면 어떤 건축물을 세워도 잘 떠받칠 수 있다. 마찬가지다. 교육이 바로 서면 아이들의 심리적 터전을 잘 닦아줄 수 있다”며 “인성은 기능보다는 본연의 본심서 일어난다. 심성의 토양을 잘 관리하면 거기에 어떤 기능을 더해도 가치 있는 인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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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모씨와 조직원 3명이 필리핀 현지 수용소서 탈옥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와 함께 보이스피싱 등의 범행을 함께한 조직원 포함 총 4명은 최근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지방 비콜 교도소로 이감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지난 4월 말, 현지서 열린 재판에 출석한 박씨와 일당은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수사 당국 관계자는 “박씨와 일당 3명이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체적인 탈출 방식 등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던 바 있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간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왔다. 특히, 박씨는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는 후문이다. 박씨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필리핀 루손섬 비콜교도소 수감 보이스피싱 이어 마약 유통까지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 박씨는 새로운 마약왕으로 떠오르고 있는 송모씨와 함께 비콜 교도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한 제보자에 따르면 “박씨의 텔레그램방에 있는 인원이 10명이 넘는다.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마약 전과가 있는 인물들로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씨는 본래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교도소 내에서 마약 사업을 이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 안팎에서는 “새로운 조직을 꾸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들이 비콜 교도소서 탈옥을 계획 중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쿠탄 교도소 관계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서 약 100만페소(한화 약 2330만원) 정도면 인도네시아로 밀항이 가능하다. 비콜 지역 교도소는 비쿠탄보다 탈옥이 쉬운 곳”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편, 지난 7일 외교부와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측은 정확한 탈출 방식이나 사건 발생 일자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일축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