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사각지대 놓인 정신질환자의 민낯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8.21 13:25:09
  • 호수 14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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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살고 치료 없이 바로 출소하니…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범죄를 저지른 후 스스로를 ‘조현병 환자’라고 말하는 범죄자들이 많다. 이런 일이 지속되다 보니 ‘조현병 환자는 잠재적 범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실상 조현병 환자들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무엇보다 이들이 제대로 치료될 수 있도록 복지를 탄탄하게 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 

묻지마 범죄 또는 무동기 범죄는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구체적인 동기 없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저지르는 범죄를 말한다. 칼부림 사건 등에 따른 묻지마 살인이나 상해 범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최근 한국은 묻지마 범죄가 급증하고 있어 ‘안전한 나라’라는 타이틀이 흔들리고 있다. 

늘어나는
묻지마 범죄

묻지마 범죄 피의자들은 범행 후 자신이 조현병에 걸려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그에 맞춰 언론들은 피의자들과 관련한 보도를 쏟아낸다. 특히 피의자의 정신질환을 언급하는 기사들이 많다. 지난 11일, 대전 소재의 한고등학교에 침입해 교사를 흉기로 찌른 혐의(살인미수·건조물 침입)로 구속된 20대 A(28)씨도 마찬가지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4일 오전 9시24분 대전 대덕구의 한 고등학교에 침입해 교사 B(49)씨의 얼굴과 가슴, 팔 부위 등을 흉기로 7차례 찔러 살해하려 한 혐의를 받는다. 

학교 정문을 통과해 교내로 들어온 A씨는 2층 교무실로 올라가 B씨를 찾았고, B씨가 수업 중이란 말을 듣고 복도서 기다리고 있다가 B씨를 발견하고 교무실 안으로 들어가 흉기를 휘둘렀다. 범행 직후 달아난 A씨는 3시간여 만에 거주지 인근서 긴급 체포됐다.


그는 피해 교사 말고도 다른 교사와 동급생들을 가해자로 지목해 경찰이 조사를 벌였는데, 이들은 A씨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경찰은 A씨가 2021년 정신질환 진단을 받았고, 평소 망상 증세를 보였다는 어머니 진술을 확보해 망상에 따른 범행에 무게를 두고 있다. 

A씨는 조현병과 우울증 진단을 받고 지난해까지 치료받다가 의사로부터 입원 치료를 권유받았지만 입원도, 치료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내가 원해서 치료받지 않았다”는 의미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14명의 사상자를 낸 ‘분당 서현역 흉기 난동’의 피의자 최원종(22)은 “나를 감시하는 스토커 조직이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범행을 저질렀다는 수사 결과가 나왔다. 자신의 범행 자체는 후회하지만 피해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끼지 않았다.

치료감호 청구 기각 증가
치료소 정신과전문의 부족

최원종은 2020년 조현성 인격장애(분열성 성격장애)를 진단받았지만 최근 3년간 아무런 치료를 받지 않다가 망상에 빠져 범행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경찰은 최씨의 진술 및 휴대전화 등 디지털증거 분석(포렌식) 결과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을 모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최씨는 “나를 해하려는 스토킹 집단에 속한 사람을 살해하고 이를 통해 스토킹 집단을 세상에 알리려고 범행했다”는 검거 당시의 진술을 유지했다. 또 커뮤니티에 흉기를 든 사진 등 게시물을 올린 적 있고, 이것 역시 스토킹 집단이 커뮤니티를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향해 경고성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였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또 서현역을 범행 장소로 삼은 이유에 관해서는 자기 집 주변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어서 스토킹 집단 소속인 이들이 다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서현역서 디저트 먹는다”는 글도 스토킹 집단이 찾아올 것이라는 이유에서 작성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조현병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고 있다.

한 온라인 지역 커뮤니티에는 “이웃에 조현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일방적으로 반말하고 욕을 하는데 너무 스트레스받는다. 고통스러워서 경찰, 주민센터, 변호사 상담까지 받아봤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다. 가족들도 이미 포기했다고 한다”며 “조현병 환자가 직접적인 상해를 가하지 않으면 처벌이 어렵다고 한다. 정말 누구 한 명 죽어야 해결되는 거냐”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해당 글에는 “강제입원 말고는 답이 없는데 그것도 위협을 받아야 가능하다” “이웃 환우는 안타깝지만 경찰이 강제라도 병원 입원을 시켰으면 좋겠다. 이러다 정상적인 사람까지 정신병 걸린다” “흉기를 들고 난동 부릴 수 있으니 조심하라” “이사 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등의 답변이 달렸다.

통제 불능
어쩌나…

조현병 환자는 위험하니 알아서 피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결국 주변의 조현병 환자들 때문에 일반인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조현병 환자는 왜 통제 불능 상태가 된 것일까?

국립정신건강센터가 발간한 ‘국가정신건강 현황보고서 2021’을 보면 2021년 기준 중증 정신질환자는 65만1813명이며, 이 중 조현병 진단 환자는 18만2901명, 분열형 및 망상 장애 환자까지 포함하면 23만554명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조현병 환자나 정신질환 범죄자에 대한 형벌에만 집중하고 있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정신질환 범죄자의 치료 및 사회 복귀를 위한 치료감호 청구와 인용률이 동시에 크게 떨어진다.

법조계는 날로 짙어지는 엄벌주의 위주의 형사정책 경향과 함께 치료감호소의 만성적인 인력·예산 부족 등을 원인으로 꼽으며, 치료감호 제도 정상화를 위한 인적·물적 인프라 확대 및 인식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지적한 바 있다.

치료감호법 제2조에는 치료감호 대상자로 ▲형법 제10조1항에 따라 벌하지 않거나 조 2항에 따라 형을 감경할 수 있는 심신장애인으로 금고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은 자 ▲마약·향정신성의약품, 그 밖에 남용되거나 해독을 끼칠 우려가 있는 물질이나 알코올을 식음·섭취·흡입·흡연 또는 주입받은 습벽이 있거나 그에 중독된 자로서 금고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은 자 ▲소아성기호증, 성적가학증 등 특정 성적 성벽이 있는 정신성적 장애인으로 금고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성폭력 범죄를 지은 자 등이 있다.

손 놓은
재범 위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피고인은 재범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선 치료를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데, 법원이 치료감호 청구를 기각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검찰의 치료감호 청구가 줄어드는 건 2009년부터다. 2022 검찰연감에 따르면, 검찰의 치료감호 청구 수는 2009년 350건이었지만, 2013년 254건, 2019년 184건, 2021년 78건 등을 기록해 크게 줄었다.

법원이 1심서 치료감호 청구를 인용하는 비율도 줄고 있다. 사법연감 등에 따르면, 1심서 치료감호 청구 인용률은 2014년 82.9%(223건)에 달했지만 2020년에는 68.3%(114건)로 절반가량 낮아졌다.


전문가들은 치료감호 청구·인용이 줄어든 원인으로 정신질환 범죄에 대한 엄벌주의 강화 기조와 함께 치료감호소의 만성적인 인력·예산 부족 등을 꼽았다. 하지만 정신질환 범죄자는 2018년 이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고, 이들의 재범률은 65.4%를 기록했다.

반면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의 정신과 전문의 충원율은 절반 수준에 불과해, 전문의의 진료 부담이 늘고 있다. 국립법무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충원율은 53.3%밖에 안 돼 정원 15명 중 8명만 일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중증 정신질환자 치료·관리체계의 허점이 드러나 조현병이나 망상장애 진단을 받은 환자 8명 중 7명이 치료를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에도 입원치료할 수 있도록 국가의 관리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정신의료기관서 치료받은 조현병과 망상장애 환자 중 지역사회서 제공하는 정신건강증진사업을 이용하는 환자의 비율은 0.13으로, 8명 중 약 1명만 지역사회가 제공하는 정신건강관리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나 죽으면 조현병 형 삶은…”
“비자의 입원 더 용이해져야”

조울증으로 알려진 양극성 장애 환자 등록률은 0.05로 20명 중 1명밖에 안 됐고, 주요 우울 장애 환자의 등록률은 그보다 더 낮은 0.01로 100명 중 1명꼴이다. 특히, 조현병과 망상장애 환자가 지역사회서 관리받는 비율은 ▲2018년 0.14 ▲2019년 0.14 ▲2020년 0.13 ▲2021년 0.13으로 소폭 감소했다.


정부는 지역사회 내 정신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전국 260개소에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운영하는 등 정신건강 관리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하지만 홍보 부족과 환자에게 강제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없어서 대상자의 동의를 통해서만 제공된다. 

다만, 자·타해의 위험이 발생한 경우에는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센터가 입원 개입 등 긴급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정신질환 환자와 가족 역시 일상이 힘들다. 조현병 환자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더라도 보호자가 옆에 있어야 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

B씨는 결혼했고, 그의 형은 오랜 기간 조현병을 앓고 있다. 형은 치료를 꾸준히 받았기 때문에 일상생활을 혼자 할 수 있지만, B씨가 형의 실질적인 보호자다. B씨는 규칙적인 시간에 형에게 전화해야 하고, 매주 두 번은 방문해 보살펴야 한다. 한 달에 한 번은 병원에 동행해 형의 주치의와 상담한다.

B씨가 없으면 B씨의 형은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집 앞에 좋은 공원과 산책길이 있지만 한낮에도 커튼을 두껍게 쳐놓고 지낸다. 믿고 의지하는 것은 B씨 뿐이고, 그가 방문하면 형은 어린아이가 떼를 쓰듯 감정을 드러낸다. 

불안한 일이 있거나 신경 쓰이는 일이 있으면 형은 B씨에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화한다. B씨가 가족과 함께 있거나 일을 하고 있다는 것도 고려되지 않는다. 새벽에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택시를 타고 B씨가 있는 곳으로 찾아온 적도 있다.

누군가와 끊임없이 대화하거나 욕을 하기도 하고, 전자 도어록을 믿지 못해 문에 자물쇠를 달아두기도 한다. 물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생수를 직접 골라 마신다. B씨는 평생 형을 보살피면서 살아야 한다. 결국 형이 이만큼 살 수 있는 것은 B씨 덕분이지만, 그만큼 그의 삶은 희생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명백한 허점
결국 답은?

B씨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형을 꾸준히 보살폈다. 그래서 지금 이만큼이라도 스스로 생활할 수 있게 됐고, 폭력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그만큼 내 가정을 보살피지 못한 죄책감이 있다. 나중에 늙으면 형을 보살피기 힘들고, 내가 형보다 먼저 죽으면 형이 어떻게 될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한 의료 관계자는 “자신이나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해 지자체장이 보호와 진단을 신청할 수 있는 ‘행정입원’도 법에 규정돼있지만, 소송 우려 등으로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비자의(非自意) 입원이 더 용이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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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