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㊴어중간한 타협 ‘통일 환청’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3.07.04 09:02:01
  • 호수 14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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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대명천지 21세기 초현대 사회 속의 산적 소굴! 사람은 하루를 살아도 진실을 호흡해야 한다. 비록 그 공기가 오염물질로 혼탁해져 있더라도!! 자유란 그런 것이다, 내가 내 생명을 호흡할 수 있는 것! 철의 장막, 암흑의 장막 속엔 ‘순수의 독가스’가 자유라는 거짓 이름으로 사람의 숨통을 조르고 있다! 인민이여, 진정한 자유를 향해 투쟁하라!!!…’

어그러진 믿음

토요일인데 6시가 되어서야 업무가 끝났다. 여기저기서 책상을 정리 정돈하며 일과를 마친 감흥을 북한 사투리로 지껄여대기도 하고 기지개를 켜기도 했다.

과연 무슨 일을 했기에 저토록 뿌듯할까? 의문스럽기도 했으나, 인간 노동의 가치를 함부로 재단할 필요까진 없다고 여겨졌다. 

“자, 모두 빡쎄게 일했으니깐두루 이제부터 신나게 놀아봅세그려.” 


“얼쑤~ 좋구~”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어떤 유흥 시간이 준비돼 있는 모양이었다. 모두 사무실을 나서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피에로 씨의 권유에 못 이긴 척 나도 결국 따라붙었다. 

옥상으로 나가자 매연에 찌든 서울의 바람이나마 시원스런 느낌을 안겨 주었다. 옛날 옛날 한 옛날, 이곳 사람들이 예사롭게 평양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이북 사람들이 서울로 내려오기도 하고 또 경평[京平] 축구 시합에 벌어지곤 하던 시절엔 아마 숨쉬기가 더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여름 삼복 더위에도 휴전선 부근에만 가면 살인적인 냉기가 떠도는 수상쩍은 이 상황이 좋은가, 치고 박고 싸우다가도 평양냉면 한 그릇 나눠 먹은 후 웃으며 악수하는 게 좋은가?’ 

그런 상념도 떠올랐다. 그 자리의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시멘트 바닥에 돗자리를 깔곤 둘러앉았다. 어느새 무쇠 솥뚜껑 위에서 삼겹살이 지글지글 익어 가고 상추와 풋고추, 마늘, 김치 등속이 준비되었다. 시원한 막걸리, 소주, 맥주가 취향대로 가득 찬 잔을 들어 올린 사람들은 건배를 외쳤다. 

“우리의 선덕여왕님을 위하여!” 


“백두산 영봉에 태극기 휘날릴 그날을 위해서!”

“통일의 역군인 우리 탈북 국민들의 꿈을 위하여!”

이북 사람들의 기질 때문인지, 혹은 서울이라는 특이한 도시의 마약성에 감염된 탓인지 모르지만, 그들은 빠르게 마시고 성급하게 취하고 과격하게 흥겨워졌다. 

모든 대도시가 그렇겠으나 특히 서울은 초보자로 하여금 불합리한 과대망상과 몽상과 환상에 젖어 들뜬 채 허위적거리게 만드는 성싶다.

그 밑바닥 구덩이 속엔 순화되지 못한 욕망, 오히려 병들어 왜곡된 원초적 본능의 불이 너울거린다. 하지만 그걸 지적하는 건 결코 예의가 아니다. 

극우파, 좌파 빨갱이…극좌파, 수구 꼴통 비하
박쥐 닮은 양다리 걸치기 “이제 중도는 없다”

남한 사람은 자본주의 공해에 찌들어 추악하고 북한 사람은 자연성을 간직한 채 아직 순진하다는 생각은 유치하고 시시껄렁한 관념일 뿐이다.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도 오해이거나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공산주의 독재와 물질적 궁핍을 견디고 살아나온 사람들은 결코 만만치 않으며 의외로 영악스럽고 위선적일 수도 있다. 

발랑 까졌다고 자부하는 남한 사람일지언정 막상 북한 사람과 맞붙여 놓으면 당해내기 어려울 터이다. 남북 정상회담이나 실무자급 회의를 보면 우리 쪽은 왠지 당당함과 지혜가 부족한 성싶다.

왜 그럴까?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론 비겁한 점이 우리 내부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제는 남한 자체의 분열상이리라.

여야당 정치꾼 나부랭이들은 국리민복보다 사리사욕에 미쳐 초딩생들도 비웃을 만큼 저열한 광견 투쟁이나 벌이며 민의의 전당을 허구헌날 개판으로 만들고 있다.

아직도 그 광견들을 자기네의 대표라고 착각하는 하인 근성 지닌 사람을은 역시 패를 나눠 광견의 앞잡이 꼭두각시 놀음을 벌인다. 극우파는 상대를 종북 좌파 빨갱이라 욕하고 극좌파는 상대방을 향해 수구 꼴통 얼간이라 비하한다. 중도(中道)는 없다.


어중간한 타협이나 박쥐 닮은 양다리 걸치기가 아닌, 극우와 극좌의 폐해를 버리고 초월하여 참다운 진보와 보수의 미덕을 대한민국 용광로에 넣고 삼칠일 동안 푹 고아 진국을 우려내어 맛깔나게 조화시킨 진짜 중도 통일탕.

그걸 국민들이 한 그릇씩 훌훌 마시고 심신이 건강해진다면 사이비 선동꾼들이 설쳐대더라도 바른 길을 의연히 걸어 나갈 수 있을 텐데…. 만일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 대표들이 북한이나 미국 혹은 일본 등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더라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정정당당히 국리민복을 위해 능력을 십분 발휘하련만….

그렇게만 된다면 월드컵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골을 펑펑 터트리듯 아니꼬운 북한과 미국 대표들의 어거지를 콘소리쳐 물리치고 우리의 합리적인 이익을 챙길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정치적 싸움

자, 이제 공상은 접어두고 현실로 돌아가자. 내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술자리의 취흥은 점차 무르익어 갔다. 약간 억지스러웠던 서울 말투는 차츰 사라지고 이북 어투가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좀 요란벅적하긴 해도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말의 내용이야 어떻든 간에, 고향 사투리를 타고 가슴속 정서와 삶의 희비애락이 묻어 나오기 시작했다. 사무실에서는 열성적으로 보였던 업무상의 얘기는 쑥 들어가 버리고, 머나먼 고향의 추억과 객지 생활의 애환이 얽혀 희비 쌍곡선을 이루었다.

중국의 현정세와 그곳에서 겪은 고생담 틈틈이 ‘통일’이란 낱말이 무슨 환청인 양 들려오기도 했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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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