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맞아?’ 잔혹한 영아살해 백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7.17 12:57:01
  • 호수 14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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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통 출산·냉장고 유기·야산 매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태어나자 마자 죽는 아이들이 있다. 방법도 각양각색. 친모가 변기통서 아이를 낳고 그대로 두거나, 살해한 뒤 냉장고에 유기되는 등 잔혹한 방법이다. 죽은 영아는 태어나서 울어보지도 못했건만, 이들을 살해한 부모들의 사연은 구구절절하다.

형법 제251조(영아살해)에는 ‘직계존속이 치욕을 은폐하기 위해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만한 동기로 인해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영아를 살해한 때 10년 이하의 징역을 처한다’고 적시돼있다. 영아살해는 말 그대로 영아를 살해한 행위며, 아동학대 중 하나다. 

10대에서
20대까지

지난 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이 경찰청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2021년 영아살해 피의자 86명 중 20대가 38명(44.2%)으로 가장 많았고 20세 이하(14∼20세)는 29명(33.7%)으로 집계됐다. 두 연령대를 합하면 77.9%로 영아살해 피의자 대다수를 차지했다.

이어 30대 16명(19%), 40대 3명(3%)이었다. 성별로는 여성이 78명, 남성이 8명이었다.

같은 기간 영아유기 피의자 361명의 연령대는 20세 이하 73명(20%), 20대가 140명(39%)으로 두 연령대가 전체의 절반이 훌쩍 넘는 59%를 차지했다. 30대는 118명(33%), 40대가 16명(4%)이었으며 50대 이상도 12명(3%)으로 나타났다. 성별로는 여성 291명, 남성 70명이었다.


10?20대가 영아살해·유기 범행서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을 보인 건 경제·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서 예상치 못하게 출산하게 되는 경우가 다른 연령대보다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기간 영아살해 범죄를 지역별로 보면 경기도(19건)가 가장 많았고 다음은 서울(12건)이었다.

과거에는 영아살해가 남아선호 사상 때문에 발생했다. 선별적 영아살해였는데, 이 경우는 출생 이후 여자 아이를 선별적으로 죽이거나, 태어났지만 돌보지 않아 사망에 이르게 했다. 

한국의 출생성비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은 2000년대부터다. 하지만 이때부터는 초음파검사가 시작돼 낙태를 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영아살해는 태어난 뒤 부모가 영아를 살해한 경우다. 영아살해 부모는 대부분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경우가 많아, 구구절절한 사연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수법은 엽기적인 경우가 많다.

전주지법 형사5단독 노미정 부장판사는 지난달 22일 영아살해 혐의로 기소된 A(27·여)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 1월8일 오후 6시45분 전북 전주시 덕진구 자택 안방 화장실서 자신이 낳은 아들을 남편 B씨(43)와 공모해 변기 안에 30분가량 방치해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앞서 같은 혐의로 기소된 남편 B씨도 비슷한 형량이 선고됐다. 전주지법 형사1단독 김승곤 부장판사는 지난달 17일 B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120시간의 사회봉사와 5년간 아동 관련 기관 운영 및 취업 금지도 명령했다.

대부분 ‘원하지 않은 임신’ 이유로…
친모 몰래 짜고 살해 후 유기하기도


A씨와 B씨는 왜 영아를 살해한 것일까? 지난달 26일 전주지법 등에 따르면 A씨 부부는 같은 병원서 근무하던 동료였다. 교제를 시작한 4년 전부터 동거했다. A씨는 초혼, B씨는 재혼이었다. A씨는 지난해 10월부터 B씨 전처가 낳은 아들도 함께 키우며 살았다.

경찰 조사 결과 둘 사이엔 최소 세 차례 임신이 이뤄졌다. 하지만 2019년 4월에 낳은 아이는 출산 직후 보육원에 보냈고, 두 번은 임신중절을 택했다. 모두 남편이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이후 A씨는 또다시 아이를 가졌고 임신 8개월 차인 지난해 12월 말까지 이 사실을 숨겼다. 남편이 임신 사실을 알면 임신중절을 종용할 것을 걱정해서다. 예상은 적중했다. 남편은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안 뒤 경제적 사정, 아버지의 병환, 전처 아들 양육 문제 등을 들었다.

A씨는 남편의 의견에 따랐다. 남편 도움이 없으면 아이를 낳거나 키울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부부가 처음부터 영아살해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산부인과를 알아봤지만 “임신 후기여서 중절수술을 할 수 없다”는 답만 들었다.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국내서 사용하지 못하는 낙태약을 구매했다. 낙태약 가격은 180만원이었고 송금한 뒤 약을 받았다. 낙태약 복용 후 진통이 왔다. 출산을 준비해야 하는 느낌이었다. A씨는 지난 1월8일 오후 6시45분쯤 안방 화장실 변기에 앉은 상태서 분만했다. 약 31주 된 남자아이였다.

A씨는 곧바로 남편에게 연락했다. 아이를 낳았으니 화장실로 오라고. 이에 B씨는 A씨의 상태를 재차 물어봤다. A씨는 “아파서 못 움직이겠다. 직접 와서 확인해달라. 혹시 살아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변기 물에 
잠긴 아들

B씨는 “나도 확인을 못하겠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아들(전처)을 데려다 주고 오겠다”며 집을 나갔다. A씨는 남편이 올 때까지 변기에 앉은 채 기다렸다. 휴대전화로 ‘탯줄 처리’ 등을 검색했다.

A씨는 오후 7시11분 119에 전화해 “집에서 아이를 낳았다”고 신고했다. B씨가 전화로 “지금 엘리베이터 타니까 이제 119에 신고해”라고 말한 직후였다.

A씨 부부는 오후 7시15분에 변기 물에 잠긴 아들을 꺼냈다. 영상 통화를 하는 과정서 갓난아이가 변기 속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119 종합상황실 직원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아이는 119가 도착한 후 곧바로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오후 11시경 사망했다.

재판부는 “A씨 부부가 영아가 살아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는데도 분만 직후 약 30분간 아무 조치 없이 변기 안에 방치해 살해해 죄질이 나쁘다. 갓 태어난 아기의 생사가 보호자의 양육 의지나 환경에 따라 결정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서 유기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친부모가 영아살해를 한 것은 아니다.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난 영아를 친모 몰래 데려가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체포된 친부와 외할머니가 지난 8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했다. 이날 오후 1시50분, 경기 용인동부경찰서를 나선 40대 친부 C씨는 “살인 혐의를 인정하느냐” “아이가 아파서 범행한 것이 맞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60대 외할머니는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정말 미안하다”고 답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2015년 3월 아내이자 딸인 친모가 병원에서 남자아이를 낳자 출산 당일 집으로 데려가 하루 동안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 및 이튿날 아이가 숨진 것을 확인한 뒤에는 시신을 인근 야산에 매장한 혐의도 받고 있다.

아이 낳고 
그대로 방치

경찰은 이들이 아이를 살해하기 위해 하루 동안 방치한 것으로 보고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친부와 외할머니는 출산 전부터 유전자 검사를 통해 아이가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날 것을 미리 알고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파악됐다.

친모는 출산 후 병원에 입원해 있어 이 같은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잠정 조사됐다. 친부는 친모에게 “아이가 아픈 상태로 태어나 이내 사망했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아살해죄서 살인죄로 혐의가 바뀐 경우도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여성청소년과는 영아살해죄로 구속한 피의자 친모에 대해 살인죄로 혐의를 변경했다. 해당 사건의 친모는 2018년 11월과 2019년 11월 각각 병원서 딸과 아들을 출산하고, 수시간이 지나 목졸라 살해한 뒤 자신이 살고 있는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소재 아파트 세대 내 냉장고에 시신을 보관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이미 남편과의 사이에 12세 딸, 10세 아들, 8세 딸이 있었던 친모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또다시 임신하자 이 같은 범행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친모의 범행은 보건당국 감사 결과 출산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는 되지 않은 ‘출생 미신고’ 사례가 드러나면서 현장 조사가 이뤄지던 중 밝혀졌다.

경찰은 친모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받아 지난달 23일 구속했다. 당시 구속영장에 적시된 혐의는 영아살해였다. 경찰은 친모가 분만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상태서 제3의 장소로 이동해 범행한 점, 2년 연속으로 자신이 낳은 생후 1일짜리 아기를 살해하는 동일한 범죄를 저지른 점 등을 반영했다.

영아살해죄서 살인죄로 변경
“위기 임산부 지원 우선돼야”

경찰은 친모가 범행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에 관해서도 면밀히 살펴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친모를 체포한 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해온 친부를 살인 방조 혐의로 입건, 피의자로 전환했다.

친부는 경찰 조사 결과 현재까지 살인의 공모 혹은 방조와 관련한 혐의점은 드러난 바 없으나 면밀한 조사를 위해 신분을 참고인서 피의자로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 이같이 조처했다.

수사권 조정 이후 시행된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참고인을 상대로는 사건 혐의와 관련한 질문 등을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살해 피해자인 아기들의 친부이자, 범행 일체를 자백한 피의자인 친모를 단순 참고인으로 조사해서는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경찰이 일단 살인 방조 혐의로 친부를 형사 입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사당국의 한 관계자는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피조사자의 인권강화가 상당히 많이 이뤄졌다. 참고인을 상대로 피의자를 조사하듯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사건에 관해 집중적인 추궁을 하기 위해서는 피의자로 신분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친모에 대한 혐의를 살인죄로 변경하면서 신상정보 공개 가능성도 열렸다. 당초 친모에게 적용됐던 혐의인 영아살해죄는 특강법이 정한 범죄서 제외되지만, 변경 혐의인 살인죄의 경우 해당하기 때문에 향후 친모의 신상정보 공개를 위한 심의위원회 개최가 가능하다.

다만 친모가 친부와의 사이에 나이 어린 세 자녀를 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친모의 신상이 공개될 경우 남은 가족들에게 2차 피해의 우려도 존재한다. 이 때문에 신상공개 여부는 매우 신중한 검토를 거쳐 결정해야 할 문제다.

경찰 관계자는 “친모의 혐의를 영아살해죄서 살인죄로 변경하고, 친부를 방조 혐의로 입건했다. 그 이상의 내용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 말해줄 수 없다”고 전했다.

알든 모르든
친부 책임은?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 원장은 “영아살해·유기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면 위기 임산부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 위기 임산부들이 관련 기관 어느 곳에 전화하더라도 정확한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며 “또 출생 미등록 아동의 안전을 확인한 후 법률 지원 등 다양한 지원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 ‘출생 미등록 아동’ 전수조사 결과를 토대로 유형별로 접근·지원 방법을 달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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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