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돌아온 MB맨 유인촌

그렇게 사람이 없나?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명박정부(MB) 당시 올드보이들이 속속 돌아오고 있다.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보에 이어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문화특보에 임명됐다. 정치권을 떠난 지 12년 만이다. 그는 타 ‘MB맨’처럼 논란을 달고 다녔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취재진에게 폭언을 일삼아 ‘욕쟁이’라는 꼬리표가 붙었고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직접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배우 출신인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맡게 된 자리는 ‘문화특보’다. 새롭게 신설된 자리인 만큼 윤석열정부가 ‘MB맨’들을 위해 레드 카펫을 깔아줬다는 비판이 나온다. 과거부터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기에 유 특보를 바라보는 문화예술계의 시선도 찬반으로 나뉘고 있다.

‘문화특보’
레드 카펫

유 특보는 타 정무직 공무원과는 출신이 다르다. 배우라는 독특한 이력으로 꽤 잘나가던 탤런트이기도 하다.

1951년 3월20일,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4남2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난 유 특보는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무서운 형들 때문에 누가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할 정도로 내성적이었는데 그나마 그를 귀여워해준 이는 누나였다.

서울미동국민학교와 한성중학교, 한성고등학교를 각각 거칠 당시에는 배우가 꿈이 아니었다. 고교 졸업이 가까워질 때 어느 대학을 다닐지 고민하다 연기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으로 알려진다. 맏형 유길촌씨가 TBC PD였기에 유 특보의 결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들은 부모는 “큰형 하나면 족하니 넌 다른 진로를 찾아라”고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 특보는 고려대학교 시험을 낙방한 이후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1년 동안 재수한 끝에 1971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해 연기자의 전철을 밟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에는 연극 경험이 없어서 기초 지식이 전무했음에도 교내 실습작인 <북위 38도>에 주연으로 발탁됐고, 1973년 MBC 공채 6기 탤런트로 합격해 일일연속극 <강남가족>서 유승근(최불암)의 고등학생 아들 역으로 데뷔했다.

1974년 <복녀>서 주연을 처음 맡고 군 생활을 거쳐 1977년 이후 <옥녀> <알뜰가족> <미소> <안국동 아씨> 등에서 주연을 연속으로 맡아 점차 인기 탤런트로 자리매김했다.

1980년 대학 졸업 후 1986년 동 대학원서 연극학 석사학위를 받고 1994년에 극단 ‘성좌’ 대표를 맡다가 1995년 극단 ‘유인촌레파토리(극단 유)’를 창단했다. 1999년 소극장 ‘유시어터’도 세웠다.

잘나가던 배우, 장관으로 깜짝 발탁
일반 공무원과 정반대 ‘소통킹’ 평가

1993년부터 서울시립대학교, 중앙대학교 등에서 시간강사를 맡다가 1997년부터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전임강사로 재직했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연극학과 교수로 재직 도중 중앙대학교 극장장, 중앙대학교 멀티미디어센터 소장을 겸임했다. 2007년에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교수로 복귀했다.

그는 1980년대 모 드라마서 삼청교육대에 간 후 착한 성격을 갖게 되는 역할을 맡았었다. 1980년엔 전상국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8·15 특집극 <아베의 가족>에서는 한국서 동네의 날건달들과 미성년자 성추행 등을 일삼다가 우연히 미국 이민서도 날라리로 살다 입대해 주한미군으로 귀국해 모친의 과거와 이복형의 존재를 찾는 역할도 했는데, 그에게는 이 작품이 인생작이었다.


<알뜰가족>에선 스튜디오 촬영에 적응되는 데 도움을 받았고, <여인열전> ‘장희빈’에선 숙종 역으로 맡았으나 장희빈을 편애하는 연기 탓에 시청자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다.

특히 연극 <햄릿>은 총 6번을 연기한 그의 대표작으로 2016년 이해랑 탄생 100주년 기념공연 <햄릿>서 다시 햄릿 역을 맡았다. 또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에서는 연산군 역을 맡아서 무대에 섰는데 이 연기는 1988년 임권택 감독 영화 <연산일기>서도 잘 나타나 있다.

뛰어난 가창력과 현대무용 실력을 바탕으로 뮤지컬에도 다수 출연했는데 특히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빌라도 역은 1980년 초연 이래 무려 십수년간 계속 맡았다. 무용 자체는 현대무용가 김복희와 김화숙에게 배웠고, 공연 종료 후에도 무용연습실에 계속 나와 실력을 더 다듬어 서울모던댄스그룹의 정회원까지 된 바 있다.

문화예술계
시선도 찬반

연기 커리어 도중 1990년부터 2년간 제2~3대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위원장을 맡았다. 2000년 환경부 환경홍보사절과 2002년 산림청 산림홍보대사까지 맡기도 했고 1996년 KBS1 <역사추리>를 시초로 역사 다큐멘터리 MC로 변신을 시도해 이듬해 <TV 조선왕조실록>을 거쳐 1998년 10월부터 <역사스페셜> MC를 5년간 맡으며 대중들에게 친숙해졌다.

그 외에 KBS 드라마 <야망의 세월>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한 박형섭, SBS 드라마 <삼김시대>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 역으로 출연했다. 특히 드라마 중 이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한 인물의 역할을 두 번 맡은 적이 있다.

정치인이 된 이후 행보를 보면 꽤나 괴리감이 느껴질 수 있지만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유 특보는 정치 성향 여부로 평가되는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역사스페셜> 진행자로서 공정한 이미지가 컸다.

유 특보는 2002년 이명박 서울특별시장 당선인 인수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면서 정치권에 몸을 담기 시작했다. 2004년부터 서울문화재단 초대 대표이사를 역임하면서 2007년 제17대 대통령선거 때 문화예술정책위원장 대행을 맡아 이 전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 또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까지 맡았다.

2008년 2월, 이명박정부(MB)서 문체부 장관을 지내고, 2011년 장관 퇴임 이후에는 대통령실 문화특별보좌관으로, 2012년에는 예술의전당 이사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서 퇴임한 이후에도 개인적으로 자주 만났다. 2018년 3월14일과 같은 해 3월22일, 이 전 대통령의 구속이 확정됐을 때와 형이 확정돼 교도소로 가게 된 2020년 11월2일에도 친이(친 이명박)계 의원들과 함께 마중을 갔었다.

“찍지 마 XX”
부적절 언행

잘나가던 유 특보는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해 ‘훅’ 간 인물이기도 하다. 장관 시절의 ‘찍지 마’ 사건 등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문체부 장관 재임 당시 직원들에게도 ‘호감’ 장관으로 통했던 만큼 예상치 못했다는 평가다.


사건의 발단은 2008년 국정감사에서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이명박의 휘하들이고 졸개들”이라고 비하한 것에 대해 유 특보가 사진을 찍으려는 취재진에 “찍지 마 XX. 성질 뻗쳐서”라고 크게 막말했으나 이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격적 모독이라고 느낄 수 있는 발언을 듣고 참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부적절한 언행을 보였다”고 사과했다.

이 사건 전까지는 대부분 국민에게 지적이고 예의 바른 이미지가 컸던 그였으나 이후로 이미지가 산산조각 났다.

일각에선 정계 진출만 하지 않았어도 존경받는 배우로 남을 수 있었는데 좋던 이미지를 다 버린 게 안타깝다는 의견도 있다. 문체부 장관 퇴임 이후 2011년 7월 이명박정부의 문화특별보좌관을 맡았다. 2012년에는 2월부터 9월까지 예술의전당 이사장 업무를 수행했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유 특보의 <파우스트> 공연을 관람하는 등 두 사람의 인연은 30여년간 굳건한 편이다.

유 특보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2017년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 산하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는 이명박정부 초기인 2009년 국정원이 ‘좌파 연예인 대응 TF’를 구성해 정부 비판 성향의 문화·연예인 목록인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프로그램서 하차하도록 전방위적으로 압박했다고 밝혔다.

12년 만에 귀환 “지금도 MB와 깊은 친분”
지워지지 않은 ‘블랙리스트’…국감 폭언도

국정원 개혁위는 2017년 9월11일 “정부 비판 연예인의 특정 프로그램 배제·퇴출 및 소속사 대상 세무조사, 프로그램 편성 관계자의 인사조치 유도 등 전방위적으로 퇴출을 압박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문화예술계 인사는 82명으로 ▲문화계에서는 이외수, 조정래, 진중권 등 6명 ▲배우에는 문성근, 명계남, 김민선 등 8명 ▲영화감독에는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등 52명 ▲방송인에는 김미화, 김구라, 김제동 등 8명 ▲가수에는 윤도현, 신해철, 김장훈 등 8명 등이라고 밝혔다.

개혁위는 “청와대(기획관리비서관, 홍보·민정수석)와 원세훈 전 국정원장 지휘부가 문화·연예계 특정 인물 견제와 관련된 지시를 계속 하달했다”며 “담당부서는 온·오프라인서 전방위적인 활동을 전개했는데 오프라인에서는 유관부처 및 기관을 조정, 직접적인 조치를 통해 압박하고 온라인에서는 소위 ‘문화·연예계 종북세력’ 대상 심리전을 주도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 특보는 언론을 통해 “당시 문체부 내부에 지원 배제 명단이나 특혜 문건은 없었다”며 “당연히 만든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그는 “내가(문체부 장관으로) 있을 때 문화예술계를 겨냥한 그런 리스트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박성제 전 MBC 사장은 ‘쌍욕보다 ‘진보 인사 솎아내기’가 먼저 기억난다’고 주장했다. 박 전 사장은 지난 5일 SNS를 통해 “국회서 기자들에게 ‘찍지 마 XX’라고 쌍욕했던 분이 문화정책을 좌우할 자리에 다시 중용된다니 뭐라 평할 말이 없다”면서 이같이 촌평했다.

박 전 사장은 “쌍욕은 사과했으니 그렇다 치고, 그보다는 유인촌 문체부 장관 시절 문화계서 진행됐던 이른바 ‘진보 인사 솎아내기’가 먼저 기억난다”며 MB 국정원의 ‘비판 성향 문화·연예인 퇴출 공작’ 사건을 떠올렸다.

지원 배제 명단
“만든 적 없다”

박 전 사장은 “뉴라이트가 황지우 한예종 총장,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장 등을 퇴출대상으로 지목하자, 문화부가 온갖 명목으로 감사를 벌여 결국 사표를 받거나 해임했다”며 2008년 청와대의 ‘문화 권력 균형화 전략’ 문건을 짚었다. 이어 “요즘 방송계서 벌어지는 일과 비슷하죠?”라며 “이동관 차기 방통위원장과도 합이 잘 맞을 듯하다”고 덧붙였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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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