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미국으로 떠났던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최근 돌아왔다. 온갖 풍파를 겪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보면서 자신의 역할을 찾은 것일까? 한솥밥을 먹던 이들의 사이가 심상치 않다. 흔들려고 하는 자와 버티는 자, 이들의 물밑 싸움은 장기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4일,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코너에 몰린 시점에서다. 이 전 총리의 귀국과 함께 친명(친 이재명)계와 비명(비 이재명)계 사이에 자리 잡은 친낙(친 이낙연)계가 서서히 고개를 들면서 미묘한 신경전이 예상된다. 앞으로 당내 갈등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금의환향?
이 전 총리는 문재인정부서 첫 번째 국무총리를 지낸 후 2020년 당 대표로 선출됐다. 이듬 해인 2021년에는 민주당 대선후보를 두고 이 대표와 경쟁했지만 2위에 그쳤다.
이후 지난해 6월7일 두 인물의 행보는 엇갈렸다. 같은 해 ‘당 대표’ 타이틀을 따낸 이 대표는 국회로, 이 전 총리는 미국으로 향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의 한국학연구소 방문연구원 활동을 위해서다. 그는 “국내 여러 문제는 책임 있는 분들이 잘해주실 거라고 믿는다”는 말을 남기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 전 총리의 미국행을 두고 여러 추측들이 난무했다. 당시 기준으로 총선이 약 2년 남았으니 그동안 미국 유학을 빌미로 “호흡을 가다듬을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했다.
그랬던 그가 최근 “못다 한 책임을 다하겠다”며 본격적으로 한국에 터를 잡았다. ‘책임 있는 분들’께 정치를 맡기고 유학길에 올랐지만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해당 귀국 인사를 두고 일각에선 여야를 ‘일타쌍피’로 비판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현재 윤석열정권은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수능 킬러문항 배제 논란 등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지지율은 오히려 국민의힘에 뒤쳐지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치밀한 물밑싸움 장기전 양상
친·비명 사이 자리 잡은 친낙
여당인 국민의힘서도 이 같은 판세를 읽었는지 이 전 총리를 향한 공격태세를 갖췄다. 국민의힘 황규환 수석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못다 한 책임’을 이야기하기 전에 문재인정권과 민주당 잘못에 반성문부터 쓰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면서 ‘누더기 부동산 정책’ ‘망국적인 탈원전 정책’ 등을 문정권의 실정으로 규정하고 “이 전 총리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이 대표의 뚝심은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몸풀기가 끝나는 대로 호남 지역에 대한 집중 공략에 나설 것으로 관측되면서다.
귀국 이후 이 전 총리는 첫 공개 외부 일정으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 참배를 택했다. 그는 지난달 28일, 묘역을 참배한 뒤 기자들과 만나 “고 김 전 대통령은 제 정치의 원점”이라고 언급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 전 총리를 제16대 총선에 공천하면서 정치권으로 이끈 인물이다.
당 안팎에선 이를 두고 정치 재개를 위한 본격적인 행보라고 해석했다. 고향이자 정치적 기반인 호남을 시작으로 본격 지지층 구성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호남은 민주당의 텃밭으로 분류돼왔던 지역이었으나 이 대표와 관련한 대장동 개발사업,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 악재가 겹치면서 표심이 시들해지는 추세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0일부터 22일까지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광주 및 호남의 민주당 지지율은 전주 대비 13%p 떨어진 43%로 집계됐다.
현 시점서 이 전 총리가 기세를 몰아 호남권의 지지를 등에 업는다면 판도가 뒤집힐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전남 영광 출신인 이 전 총리는 전남도지사 및 5선 중진 의원을 지내 호남의 대표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현재 호남 지역은 걱정이 많다. ‘이재명이 당 대표를 그만두면 이낙연 대표 체제로 돌아가는데, 과연 차기 총선서 승리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있다”며 “이를 해소하지 않으면 이 전 총리의 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흔들리는 호남 표를 많이 가져오는 자가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지역민들의 민심을 끌어오는 것은 결국 지도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견인 성공 여부가 앞으로 이 전 총리의 정치의 성패를 가를 중요한 분기점으로 찍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가 호남 유권자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낼 경우 민주당 내 힘의 구심점이 이동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당내 지지율 쓸어 담고
단숨에 대권주자 티켓?
이 전 총리가 이 대표를 꺾고 당내 지지율을 얻어 대권주자로 나서게 될 것이란 시나리오도 제시됐다. 당권 복귀인 동시에 ‘대선 준비 신호탄’인 셈이다.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 전 총리가 윤석열 대통령과 싸우기 위해서는 당내 이 대표를 먼저 끌어내려야겠다고 생각하지 않겠냐”고 주장했다. 대권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나 집권세력과 맞서는 구도가 효과적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당내 지지율을 단박에 올리고, 야권주자로서 대선후보가 될 수 있는 지름길로 꼽히기도 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비명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재명 대표 체제’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다는 점 역시 해당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몰아치는 각종 설을 두고 정치권의 시선은 두 인물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이 대표는 이 전 총리의 귀국과 관련해 “백짓장도 맞들어야 할 어려운 시국”이라며 ‘원팀’을 강조했다. 윤정권이 검찰과 감사원 등 국정의 모든 힘을 야당 압박에만 쓰고 있는 만큼 당을 위해 단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부 친명계 역시 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 합심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했다.
하지만 친낙계 일각에서는 “이 전 총리의 ‘악마화’에 이 대표도 무관치 않다”며 맞불을 놨다. 지난해 20대 대선서 이 대표의 패배 책임을 이 전 총리에게 덮어씌웠다는 주장이다. 당심이 쪼개질 때로 쪼개지면서 계파 갈등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재 이 전 총리와 이 대표 간 물리적 마찰은 아직 표출되지 않고 있지만 묘한 기류도 감지된다.
숨 고르기
이 전 총리는 최근 발간한 저서를 바탕으로 북 콘서트와 대학 강연 등에 나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 계파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적 행보는 되려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 당장 공개적인 정치활동에 나서기보다는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장 소장은 “이 전 총리는 호남 쪽을 의식해 윤정권을 거칠게 공격하고, ‘반윤(반 윤석열)’ 이미지를 심으려 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직접적인 권한이 없기 때문에 말뿐인 공격이 얼마나 호소력을 가질지 회의적인 부분이 있다. (신경전이)장기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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