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평면에의 천착’ 정상화

거장이 내뿜는 ‘은밀한 숨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갤러리현대가 정상화 작가의 개인전 ‘무한한 숨결’을 준비했다. ‘무한한 숨결’은 정상화와 갤러리현대가 함께하는 9번째 전시다. 이번 전시에서는 정상화의 독보적인 표현 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1970년대 작품부터 근작까지 40여점을 소개한다.

갤러리현대는 프랑스 파리서 활동하던 정상화의 예술성에 반해 1983년 첫 개인전을 진행했다. 이후 현재까지 40여년간 그의 예술 세계를 국내외에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뜯어내기

정상화의 개인전 ‘무한한 숨결’은 2014년 이후 10여년 만에 갤러리현대서 열리는 전시다. 1970년대 이후 전개된 독창적 그리드의 다양성을 주목하고 매체 실험을 통한 조형적 탐구정신을 재조명하기 위해 기획됐다.

정상화는 ‘뜯어내기’와 ‘메우기’라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프로세스로 새로운 차원의 평면성을 탐구하는 시적인 작품을 발표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전시 제목 ‘무한한 숨결’은 작가의 숨결이 닿은 캔버스 화면이 화폭 너머의 무한한 시공간으로 확장되길 바라는 세계관을 은유한다. 

정상화는 신체·정신적 노동이 집약된 방법을 통해 2차원 평면을 숨결이 존재하는 공간으로 확장했다. 매순간 엄청난 집중력으로 화면에 몰입해 완성된 과정을 시각화했다. 미술평론가 이일은 1980년 발표한 글에서 정상화의 작품을 “은밀한 숨결의 공간”이라고 평했다. 


갤러리현대와 아홉 번째 전시
2014년 이후 10년 만의 조우

그러면서 “정상화의 회화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자칫 표정 없는 밋밋한 그림으로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시간과 음미를 일단 거치고 나면 눈요기의 시각적 효과를 겨냥한 그림보다 비길 수 없이 깊은 숨결을 내뿜고 있는 것 또한 그의 그림이다. 그의 회화는 네모꼴이 빡빡하게 쌓이고 서로 인접하면서도 그 전체가 한데 어울려 무한히 확산해가는 은밀한 숨결의 공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층 전시장에서는 정상화만의 화면 구축 방법론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공간 구축을 위한 바탕재로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힘을 가진 고령토를 선택했다. 고령토는 공간을 구성한 뒤 사라지지만 그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낸다. 

정상화에게 고령토는 그 자체로 방법론이 됐다. 그는 “고령토는 평면에 힘을 축적시키는 나의 방법론, 죽 그었다고 해서 선이 아니요, 평면하다고 해서 면이 아니요, 비워 뒀다고 공간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작업하는 중에 ‘발생’하는 것”이라며 “고령토와 물감을 들어냈다 메우는 과정서 선과 면, 공간이 자연히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작품 ‘무제 12-5-13’을 통해 고령토가 사라진 공간이 시차 속에 서로 다른 층위를 형성하면서도 서로 밀착돼 전체를 이루고 하나의 통일된 색채가 그 앞에 내재돼있는 깊이를 달리하며 조화에 이르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작품 ‘무제 2019-10-15’에는 최근 바탕을 이루고 공간을 구축한 뒤 사라지던 존재인 고령토가 화면에 남아 선이 되고 면이 돼 조화를 이루는 과정이 담겼다. 

고령토를 바탕재
선 면 공간 발생

지하 전시장은 백색 작품을 통해 정상화가 구축하려고 했던 평면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그는 1970년대부터 기존의 강렬한 색채와 거친 마티에르를 사용한 비정형의 앵포르멜식 회화서 점차 벗어나 평면의 깊이를 탐구하며 변화를 모색해왔다. 이 시기 엄격하게 색을 절제하고 내용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평면화를 추구했다. 


1973년부터 단색의 그리드 회화를 제작했고 1974년 일본 오사카의 시나노바시 화랑에서 처음 발표했다. 백색을 사용한 정상화의 작업은 같은 색이라 할지라도 구성하는 요소가 작업마다 다르고 개별 격자의 크기와 형태, 그리고 색채와 높낮이가 모두 다르기에 화면은 결코 같은 표정과 색감을 지닐 수 없다. 

2층 전시장에서는 종이를 재료로 한 정상화의 평면을 향한 탐구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1970년대 들어서면서 캔버스를 이용한 평면 실험 이외에도 종이라는 매체를 적극 활용했다. 캔버스 작업에서는 고령토를 올린 후 뜯어내고 메우기를 통해 공간을 구축했다면 종이 작업은 데꼴라주, 프로타주 기법을 통해 실험을 진행했다. 

메우기

갤러리현대 관계자는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데꼴라주, 프로타주, 목판 작품은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표현, 재료와 대상에 대한 조형성 탐구, 표현의 실험적 시도를 추구한 결과로 그의 실험정신에 가장 근접한 작품”이라며 “정상화에게 종이 작업은 유화 작업을 종이로 옮겨 제작한다는 단순한 차원이 아니라 종이라는 매체의 유연하고 손쉬운 특성을 이용해 방법적 실험과 도전을 감행하고 방향을 모색한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

 

[정상화는?]

▲1932년 경북 영덕 출생

▲학력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1957)

▲개인전 
갤러리현대(2023)
국립현대미술관(2021)
레비고비 갤러리(2020)
버그루언 갤러리(2018)
도미티크 게비 갤러리(2016)
그린 나프탈리 갤러리(2016)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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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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