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 여행 ②광주 남한산성

하늘과 산과 숲 사이로 난 요새

남한산성(사적)은 1624년(인조 2년) 축성을 시작해 1626년에 완공했다. 이괄의 난을 겪은 뒤 조선 왕실의 보장처(전쟁 시 임금과 조정이 대피하는 곳)로 지었다. 통일신라 주장성 터에 성돌을 쌓고, 여장(성 위에 낮게 쌓은 담) 1897타, 옹성 3곳, 우물 80개 등을 조성했다.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쌓아, 방어에 유리한 요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1636년,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한다. 병자호란이다.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보낸 시간은 소설과 영화로 만들어졌다. 2007년 작 <남한산성>은 <칼의 노래>와 <하얼빈> 등으로 알려진 소설가 김훈의 작품이다. 무심한 듯 덤덤히 써 내려간 글은 그날의 시린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남한산성>은 2017년 영화로 다시 태어났다.

남한산성의 시간

웹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만든 황동혁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이병헌과 김윤석이 각각 이조판서 최명길과 예조판서 김상헌 역을 맡았다. 영화는 치욕을 견디는 것과 끝까지 항전하는 것, 그 어느 편에도 서지 않음으로 그날의 비통함을 전달한다. 영화와 소설을 읽고 방문하면 어렴풋하게나마 그날을 그려볼 수 있다.

남한산성은 201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동아시아에서 도시계획과 축성술이 교류한 증거로서 군사 유산이라는 점’ ‘지형을 이용한 축성술과 방어술의 시대별 층위가 결집한 초대형 포곡식 산성이라는 점’을 인정받았다. 포곡식(包谷式)은 글자 그대로 계곡을 감싼 성이다. 성이 골짜기를 끼고 있어, 물이 충분하니 장기전이 가능했다.

인조는 남한산성서 47일을 버티다 청나라에 항복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6월 남한산성은 그 겨울과 달리 푸르고 청명하다. 파란 하늘과 초록 산의 경계를 따라 산성이 지난다. 부속 시설을 포함한 성벽 둘레가 약 12.4㎞, 가파른 구간이 많지 않아 산책이나 가벼운 등산이 가능하다. 길가에서 오랜 나무의 신록을 마주하거나, 너른 그늘에서 쉬기도 적합하다.

남한산성은 보통 5개 탐방로를 기본으로 돌아본다. 1·2·4코스는 산성로터리, 3·5코스는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꼭 탐방로를 따를 까닭은 없다. 샛길이 많으니 체력에 맞춰 원하는 만큼 걸으면 된다. 가장 인기 있는 구간은 1코스다. 산성로터리서 출발해 북문-서문-수어장대-영춘정-남문을 지나 회귀한다.

약 3.8㎞로, 1시간20분쯤 걸린다. 북문(전승문)이 해체 보수공사(오는 10월까지 예정) 중이나, 북문을 보지 못하는 점 외에 큰 불편은 없다.

북문 쪽에서 산성을 따라 서문(우익문)까지 걷는 구간은 완만하다. 북서쪽 끝에는 옹성을 연주봉까지 연장했다. 연주봉 옹성 입구에서 서문까지는 전망이 일품이다. 잠실과 롯데월드타워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아래 성곽 바깥으로 서문전망대가 있으나, 산성 안쪽에서 보는 풍경이 더 매력적이다. 서문은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기 위해 삼전도로 향할 때 나선 문이다. 성문에 슬픈 역사가 깃든다.

수어장대(보물) 역시 남한산성의 대표적인 장소다. 군사 지휘와 관측 목적으로 지었으며, 남한산성 장대 5곳 중 유일하게 남았다. 인조 때 1층으로 지은 것을 영조 대에 이르러 2층으로 개축했으며, 안쪽에 무망루(無忘樓)라는 편액을 걸었다. 병자호란의 치욕을 잊지 말자는 의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성문에 깃든 슬픈 역사

수어장대-영춘정 구간은 여장 보수공사(2023년 6월 30일까지 예정)로 산성을 따라 걷지 못하지만, 성안 숲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수어장대를 비롯해 남한산성 일대는 소나무 숲이 울창하다. 산성리 사람들이 금림조합을 결성해 지켜낸 덕이다.


남문(지화문)에 이르면 산성로터리로 돌아가도 되고, 동문까지 산성 길을 따라도 무방하다. 남문에서 동문 가는 길은 옹성 3곳이 이어지고, 암문이 많아 이전과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남문-동문 구간은 남한산성 탐방로 5코스의 끝자락이다. 5코스는 동서남북 성문을 두루 돌아볼 수 있는, 제일 긴 코스다.

약 7.7㎞로, 3시간20분 남짓 걸린다. 동문에서 장경사(경기문화재자료) 방면은 일부 구간 성곽이 허물어져 유의해야 한다.

3코스 역시 동문 중심인데, 승군이 머물던 주요 사찰을 포함한다. 장경사, 망월사, 현절사(경기유형문화재) 등 숲길을 지나는 구간이 우세하다. 그 가운데 장경사(長慶寺) 현판이 걸린 요사채가 유서 깊다. 한글 주련(기둥이나 벽 따위에 장식으로 써서 붙이는 말귀)이 눈에 띈다.

현절사는 병자호란 당시 항복에 반대한 삼학사(홍익한, 윤집, 오달제)와 김상헌, 정온 등을 배향한다. 가장 짧은 탐방로는 2코스다. 산성로터리서 서문과 수어장대를 오가는 2.8㎞ 거리로, 약 1시간이 걸린다. 산성 구간은 서문과 수어장대 정도지만, 그윽한 숲이 매혹한다.

남한산성까지 갔다면 남한산성 행궁(사적)을 빼놓을 수 없다. 행궁은 왕이 임시로 거처하는 도성 밖의 궁궐이다. 남한산성 행궁은 인조가 남한산성을 축성할 때 같이 세웠으며, 병자호란 당시 거처한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것을 2002년과 2004년 재건했다.

왕이 집무한 외행전, 왕의 침실인 내행전 등을 갖춘 227칸 궁궐이다. 조선 시대 행궁 가운데 유일하게 종묘와 사직을 두고 있다. 한남루에 들어서면 외삼문 남북 행각을 사선으로 마주하는데, 시각적 긴장감이 행각을 웅장하게 연출한다. 좌승당 뒤편의 이위정은 활을 쏘기 위해 세운 정자로, 행궁서 한적한 시간을 보내기 좋다.

광주는 이천, 여주와 더불어 경기도를 대표하는 도예의 고장이다. 조선 시대 나라에서 운영하던 관요가 있어, 왕실용 도자기를 생산한 곳이기도 하다. 곤지암도자공원 내 경기도자박물관은 광주 도예의 역사를 확인하는 명소다. 상설전 〈도자기로 보는 우리 역사〉는 고려와 조선의 도자기, 생활 속의 백자 등을 전시한다.

곤지암도자공원은 박물관 외에 스페인조각공원, 전통가마, 구석기체험마당 등을 포함해 6월의 야외 쉼터로 적합하다. 도자쇼핑몰에서 도자기 쇼핑이 가능하다.

경안천습지생태공원은 광주8경 가운데 3경에 해당한다. 경안천 변에 자리하며, 팔당댐이 건설됨에 따라 일대 농지와 저지대 등이 습지로 변한 곳이다. 연밭길, 금개구리 서식지, 갈대·수생식물 군락 사이를 걸으며 수생 생태를 관찰할 수 있다.

경안천습지생태공원

공원과 경안천 사이로 난 벚꽃길도 시야가 트여 경쾌하고, 공원의 수생식물 군락지 사이로 난 단풍나무길은 호젓해서 다정하다. 봄가을이 아니어도 충만한 자연이다. 6월부터는 연밭길 덱 위에서 연꽃을 감상하는 게 또 다른 즐거움이다. 아직 외부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광주에서는 알음알음 소문난 쉼터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역사 여행: 남한산성→남한산성 행궁→경기도자박물관, 풍경 여행: 남한산성→남한산성 행궁→경안천습지생태공원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남한산성→남한산성 행궁→경기도자박물관
-둘째 날: 영은미술관→경안천습지생태공원

관련 웹 사이트 주소
-광주문화관광 www.gjcity.go.kr/tour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www.gg.go.kr/namhansansung-2
-경기도자박물관(한국도자재단) www.ggcm.or.kr

문의 전화
-광주시청 체육관광과 031)760-1723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031)8008-5155
-경기도자박물관 031)799-1500
-경안천생태습지공원(광주시청 도시공원팀) 031)762-1039

대중교통
[전철] 수도권전철 8호선 산성역 2번 출구, 산성역·포레스티아동문 정류장서 52번·9번·9-1번(휴일 운행) 버스 이용, 남한산성(종점) 정류장 하차.

*문의: 서울교통공사 1577-1234, www.seoulmetro.co.kr 


[셔틀버스] 3~11월 주말 남한산성면행정복지센터 주차장-남한산성도립공원 중앙주차장 무료 셔틀버스 운행(평일, 7~8월 제외).

*문의: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031)8008-5155, www.gg.go.kr/namhansansung-2

자가운전
중부고속도로 경기광주톨게이트→해공로 팔당·하남 방면 우회전, 3.2㎞→남한산성로 성남 방면 좌회전, 7.3㎞→좌회전, 287m→남한산성도립공원 중앙주차장

숙박 정보
-곤지암리조트: 도척면 도척윗로, 1661-8787, www.konjiam resort.co.kr
-제이알랜드: 도척면 독고개길302번길, 031)797-3330, www.jrland.co.kr
-정온펜션(반려견 동반 가능): 퇴촌면 갈올길11번길, 010-2679-8199, www.jo-pension.co.kr

식당 정보
-시래마루(시래기가마솥밥): 곤지암읍 경충대로, 031)797-33 14
-두메산골집 (능이버섯백숙): 남한산성면 불당길37번길, 031)743-3155
-남한산성카페 류(마카다미아크림라테): 남한산성면 남한산성로, 031)747-4006

주변 볼거리
화담숲, 율봄식물원, 닻미술관, 풀짚공예박물관

<webmast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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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