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인문학> 뱃사람 놀이는 전국으로 퍼지고…

집안에서 부인이 저녁 식사가 준비됐다고 헨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회상에 잠겨 있던 헨리는 눈을 떴다. 저녁노을이 세인트앤드루스 바닷가의 반대쪽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헨리는 의자에 몸을 기대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찰스에게 함께 가자는 손짓을 하며 두 사람은 집으로 들어갔다.

식탁 위에는 저녁 메뉴가 올라 있었다. 감자와 옥수수, 약간의 양고기가 저녁 메뉴였다. 옥수수를 하나 집어든 헨리는 갑자기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찰스를 불현듯 바라보았다. 두 사람으로 인해 세인트앤드루스 바닷가에서 동네 사람들이 모두 골프 바람이 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놀이의 시작

그렇게 한평생을 골프 사랑으로 보낸 헨리와 찰스는 지난해부터 바닷가에서 골프를 치는 사람들을 볼 수가 없었다. 지난해 주교가 골프를 쳤다고 군인들한테 잡혀가는 일이 발생하면서부터다. 그 주교는 골프를 친 죄로 감옥에 갇혔다. 전해인 1457년 스코틀랜드 왕이 ‘축구와 골프 금지령’을 내린 탓이었다.

헨리와 찰스는 동네 사람들이 바닷가에서 골프를 치는 모습을 앞으로는 평생 볼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두 해 전까지만 해도 해질 무렵 어부들은 만선의 노래를 부르며 바닷가에 배를 묶고는 골프채를 챙겨 나왔다.

그들은 모래사장에서부터 시작해 갈대 언덕을 넘어 들판을 지났고 토끼 굴까지를 목표로 해서 둥근 자갈돌을 몰고 다녔다. 귀갓길을 따라 만선의 어부들은 골프채를 휘두르면서 하루의 고생을 잠시 소일하는 것이었다.


세인트앤드루스의 바닷가에서 그 놀이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큰 파도를 피해 안쪽 깊숙히 만으로 들어온 에딘버러와는 달랐다. 세인트앤드루스는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을 나무도 제방도 없어 어부들은 늘 바람을 안고 살아야 했다. 게다가 모래사장과 모래웅덩이며 또 잡초까지 어느 하나 만만한 게 없었다.

하루 고생 잠시 소일하는 행동
틈만 나면 돌을 때리던 사람들

천혜의 자연 조건은 사람들의 오기를 발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마을 사람들은 틈만 나면 돌을 때려댔다. 어느새 놀이는 글래스고, 던디 등 인근 마을로 퍼져 나갔다. 그렇게 사람들의 위안이 됐던 골프를 왕의 칙령이라는 이유로 이제는 칠 수 없게 된 사실에 헨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병사들이 훈련은 안 하고 골프만 즐긴다면서 제임스 2세가 내린 골프 금지령이 골프와 관련된 첫 기록이다.

식사를 마친 헨리는 벽장에서 뭔가를 꺼냈다. 조부가 만들어준 골프채였다. 두 손으로 겹쳐 쥐고 턱밑에 괸 채 그는 초점 없이 바닷가만 응시할 뿐이었다. 처음으로 골프채를 만들어준 할아버지는 예전에 돌아가셨지만 그 골프채는 지금도 헨리의 손에 들려있었다. 너무도 낡고 오래돼서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이따금 꺼내 닦아주곤 했다.

할아버지는 헨리에게 골프와 비슷한 놀이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심어주었던 스승이었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뱃사람으로 무역선을 타고 수십 년 동안 네덜란드, 스웨덴 등 동쪽 대륙의 나라들을 왕래하고 있었다.

네덜란드에 머물고 있을 때 동네 아이들이 마당에서 비슷한 놀이를 했다고 말해주었다. 또한 네덜란드의 길었던 겨울에 그들은 심심치 않게 얼음판 위에서 공치기 놀이를 한다는 이야기도 옛날이야기처럼 해주었다.


골프를 막았던 왕정 분위기 
그래도 이어진 질긴 생명력

조부에 따르면 네덜란드 집 마당에선 주로 아이들이 편을 짜서 하고 있었고 아주 추운 날에는 집안에서도 막대기로 공을 때려서 문고리를 맞추곤 했다. 문고리를 맞고 떨어진 공의 거리를 재서 가장 근접한 공이 이기는 놀이였다. 어른들은 주로 성당의 뒷마당이나 넓은 뜰에서 정방형의 네모반듯한 선 안에서 목표물을 땅에 꽂아두고 맞추곤 했다.

빙판에서도 행해졌는데 역시 작은 목표물을 세워놓고 이를 맞추기도 했다. 빙판은 지면이 해수면보다 낮아 얼음판이 도처에 산재했던 네덜란드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흔한 광경이었다. 할아버지가 태어나기 100년 전부터 네덜란드에는 이미 골프코스와 비슷한 필드가 존재했다.

그러나 마지막 마무리는 홀에 집어넣는 것이 아니었고 부엌, 성채, 법원 등지의 정문 따위가 목표물이었다. 교회 마당에서 장지에 이르기까지, 혹은 그들이 살고 있는 동네나 마을 모두 그들에겐 코스였다.

게임이 끝나면 진 팀이 이긴 팀에 맥주통을 줘야 했다. 그들에겐 막대기를 휘두르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마을에서 유리창을 파손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사람들은 여름에는 마을에서 벗어난 농토나 들판에서 겨울에는 얼음판으로 장소를 바꿔 놀이를 하곤했다.

흔한 광경

그리고 무역선을 타고 왕래하던 네덜란드 상인들이 헨리가 살고 있던 에딘버러에 정박하는 동안 해당 놀이를 이따금씩 했다고 조부는 헨리에게 일러주곤 했다. 헨리가 초원에서 목동들과 어울려 돌을 때리는 것과 네덜란드 상인들이 에딘버러에 와서 하던 놀이에는 물론 차이가 있었다.

상인들의 놀이는 편을 짜거나 혹은 기둥 같은 목표물을 세워놓고 좁은 공간에서도 놀 수 있는 것이었다.

반면 헨리는 편을 짜지 않고도 혼자 플레이를 할 수 있는 놀이였다. 거리도 상인들의 그것에 비해 몇 배나 길게 해 토끼 굴로 최종 타깃을 만들어 놓았다. 몇 번이고 쳐서 양들이 밟아놓은 페어웨이를 거쳐야 했고 그렇게 해서 그린 위에 공이 올라간 뒤 굴 속에 집어넣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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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