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억원 다단계 사기 ‘남양주 조희팔’ 쫓고 쫓기는 추적기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4.24 11:42:32
  • 호수 1424호
  • 댓글 2개

우즈베크, 필리핀… 피해자들이 잡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우즈베키스탄으로 도망친 200억원 사기 대부업체 사장을 잡은 건 누굴까? 바로 해당 업체로 피해를 입은 피해 당사자다. 피해자 세 명은 도망친 대부업체 사장을 잡기 위해 우즈베키스탄서 필리핀까지 갔다. 5일간의 쫓고 쫓기는 긴 여정이었다.

지난 17일 경기도 남양주서 200억원대 사기를 친 대부업자가 잡혔다. 이날 남양주남부경찰서는 50대 A씨에 대해 특수경제 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사채업자
사기꾼으로

경찰이 밝힌 A씨는 남양주 지역서 10년 이상 대부업체를 운영하며 봉사 및 향우회 활동으로 신뢰와 인맥을 쌓은 인물이다. 그는 “골프연습장 등 투자로 연 20% 이상 이익을 보장한다”며 투자자들을 모았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달 21일, 우즈베키스탄으로 출국한 사실을 파악하고 여권 무효화 조치를 했고, 그 여파로 필리핀으로 이동했다가 발이 묶여 국내로 돌아와 공항서 체포됐다.

이렇듯 설명은 간단했다. 하지만 A씨를 잡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A씨에게 사기 피해를 본 피해자 3명이 직접 우즈베키스탄에 가서 그를 회유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피해자들은 A씨를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 A씨는 그저 안전한 투자처였다.

가족 전체가 총 8억원의 사기 피해를 본 김지선(가명)씨는 투자 종용을 1~2년 전부터 계속 받았다. 결정적으로 그를 신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김씨의 어머니가 7~8년 전부터 A씨에게 안정적으로 돈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 어머니는 지인의 소개로 투자했다.

1000만원을 투자하면 30만원을 받는 수준이었다. 사람마다 기준은 모두 달랐지만, 은행보다는 훨씬 이자가 높았다. A씨는 김씨에게 “은행에 적금을 넣을 바엔 나에게 투자하는 게 좋다”고 조언하듯 말했다.

김씨도 처음에는 의심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투자해 이자를 수년간 받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A씨는 남양주서 호남향우회, 산악회, 성당, 봉사활동을 계속했던 데다 동네 유지였고 주변의 평판도 좋았다. 대부업체를 운영했지만 법정 이자를 잘 지키는 ‘안전한 대부업’이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2021년 김씨의 어머니가 김씨에게 같이 투자하자고 했고 함께 A씨의 사무실에 방문했다. A씨는 “나한테 돈 빌린 사람이 많다. 지금 골프장 등 부동산 개발을 하고 있다”며 투자를 종용했다. 

대부업체 운영하며 지역 유지로 ‘떵떵’
“은행보다 좋아” 연 20% 이상 이익 보장

김씨는 그 자리서 투자약정서를 작성했다. 투자약정서에는 ‘‘을’이 ‘갑’에게 직접 투자하고 ‘갑’이 ‘제3자’에게 투자하는 방식’ ‘‘갑’이 알선하는 금전차용희망자 ‘제3자’로부터 ‘을’ 명의로 담보를 제공받고 ‘을’이 그 ‘제3자’에게 직접 대여하는 방식’이라고 적혀 있다.


한동안은 이자가 잘 들어왔고 김씨도 안심했다. 문자나 카톡으로 안부를 물어보기도 했고, 자신이 알고 있는 투자 방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힐스테이트 ○○는 현 시세 8.6억~9억원이다. 차주 직장인 1주택자다. 5억7000만원이 필요하다” “요즘 돈을 많이 찾고 있다. 좀만 더 투자해서 용돈 벌어라. 기회는 이틀 남았다. 원래 기존에도 다른 사람보다 이자를 더 많이 준 것”이라는 식이었다.

김씨 가족이 야금야금 투자한 금액만 8억원. 장시간 안전하게 이자를 받던 김씨 어머니는 지인들까지 A씨에게 연결했다. 피해는 이런 식으로 커졌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만 투자한 것이 아니다. A씨 사무실 건물의 청소부, 시장서 장사하던 상인, 노후자금을 갖고 있던 노부부 등도 투자했다. 주위서 이자를 많이 준다는 소문이 나자 너도나도 투자했다.

A씨가 김씨에게 마지막으로 돈을 준 것은 지난달 15일이다. 그러고선 4일 뒤인 19일에는 갑자기 A씨로부터 급박한 목소리로 “음주운전 교통사고가 났다. 합의해야 하는데 합의금이 없다. 1000만원만 빌려달라”고 연락이 왔다. 하지만 김씨 가족은 “당장 줄 수 있는 현금이 없다”고 거절했다.

“믿고 맡겨봐”
투자자 모아

결국 A씨는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렸는데 그 돈을 들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도망친 것이다. A씨가 한국에 없으니 이자를 주는 사람도 없었다. 피해자들은 사기당한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의 대응은 뜨뜻미지근했다. 경찰은 “이미 A씨가 해외에 도주했다. 인터폴에 요청했다”고 말할 뿐이었다.

피해 금액은 계속 커졌다. 몇몇 피해자는 사기당한 사실을 알고 난 뒤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아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다 가족에게 발견되기도 했다. 피해자는 입을 모아 A씨를 빨리 잡아달라고 재촉했다. 그러나 특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피해자 3명이 모여 A씨를 잡기 위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났다. 이들 3명(B씨)은 현지 영사관에 방문했지만 협조를 전혀 받지 못했다.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한 B씨가 A씨를 찾기 위해 수소문한 곳은 여행사였다. A씨는 우즈베키스탄 언어인 우즈베크어나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지 통역사 없이 우즈베키스탄서 지낼 수 없었다. 

현지 통역사 수소문 중 A씨를 만난 적 있다고 밝힌 한 사람은 그의 개인 정보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리면서 영사관에 찾아가라고 조언했다.

B씨는 영사관을 찾아 “한국서 A씨에 대한 적색수배(체포영장이 발부된 중범죄 피의자에게 내리는 국제수배)가 곧 내려질 것이다. 우리가 피해 당사자인데 좀 도와달라”고 말했지만, 영사관으로부터 “여기서 분란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는다”는 대답만 들었다.

처음에는
꼬박꼬박


당시 B씨 일행은 A씨가 거주하고 있는 호텔을 알아낸 상태였다. 우즈베키스탄은 우즈베키스탄에 체류 중인 외국인에 한 해 3일에 한 번씩 ‘거주증 신고’를 해야 하는데, 이를 추적해 알게 된 거주지다. 

이 같은 사실을 영사관에 알려도 영사관에선 “곤란한 일을 만들지 말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영사관이나 현지 경찰도 도와주지 않으니 우즈베키스탄 현지서 직접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한인 식당이나 한인 마을을 돌며 사진을 들고 물색에 나섰다.

그러다가 기적같이 A씨를 알고 있다는 사람을 찾아 전화번호를 입수하는 데 성공했고 A씨에게 연락했다. 도망 중인 사람에게 ‘너 잡으러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면 누가 만나줄까? 일행 중 그나마 피해 금액이 가장 적은(1억6000만원) 일행 중 한 명이 나서 A씨를 회유했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A씨의 변제 능력 여부 ▲한국으로의 귀국이었다.

B씨 일행은 A씨가 묶고 있는 호텔에 방문해 10시간이 넘게 이야기했다. 이 과정서 A씨는 “돈은 없다. 이곳저곳에 돈을 사용했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을 믿지 마라”고 말했다. 그는 계속 두려워하면서도 돈이 없다고만 했다. 

B씨 일행은 A씨에게 “너가 필리핀 마닐라로 가면 도망가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말했고, A씨 역시 이에 동조해 필리핀으로 향했다. 문제는 마닐라 숙소를 구할 돈이 없었다. 장기체류를 하게 되면 숙박비가 많이 든다. A씨는 스스로 여자친구에게 5000만원을 달라고 전화 요청했지만, 여자친구는 돈이 없다고 거절했다. 

충격을 받은 A씨는 B씨 일행이 모두 잠이 든 사이 도망쳤다. 당시 핸드폰 2대를 갖고 있던 A씨는 한 대는 남겨두고 한 대만 가져갔다. 남겨놓은 핸드폰에는 “죽음으로 죄를 갚겠다”는 유서를 남겨놨다. 


“일단 돌아가자” 현지서 만나 회유
“한 푼도 없다” 유서 남기고 사라져

도망치는 A씨를 본 사람은 숙소 가사 도우미였다. 도우미가 봐도 A씨의 모습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양말을 신지도 않은 채 길거리를 걸어 택시를 탔다. 그 방향으로 1시간 반 넘게 가면 바닷가 마을이 있었다.

이 사실을 안 B씨 일행도 바닷가로 향했다. 바닷가는 작은 동네와 붙어 있었는데 그 동네를 아무리 뒤져도 A씨를 찾을 수 없었다. 8시간 뒤, 한인에게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400명 넘게 있는 필리핀 한인 단체 카톡방에 “바닷가서 한국 사람이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데 누군지 아는 사람 있나요”라는 글이 사진과 함께 올라온 것이다. A씨를 찾고 있었던 B씨 일행에게 이 연락이 닿았다.

A씨는 그 지역 한인회장이 경찰로부터 인계받아 보호 중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한인회장에게 가는 도중 A씨는 다시 도망쳤다. 도망치면서 결제하지 않은 병원비는 B씨 일행이 결제했다. 쫓고 쫓기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B씨 일행도 지칠 대로 지쳤다. 다만, A씨의 여권을 B씨 일행이 가지고 있었는데, 여권은 전달해줘야 했다.

이 시점부터 A씨가 사기꾼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한국의 사채업자, 향우회 인맥이 A씨가 갈만한 곳에 연락한 것이다. 이때부터는 한인회장이 B씨 일행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A씨는 도망쳤지만 멀리 가진 못했고 필리핀서 도망치던 중 다른 한인에게 사기를 당했다. 들고 있던 골프 가방, 서류 등 마지막 물건들을 모두 뺏기자 한국으로 다시 들어오게 된 것이다.

결국 A씨를 잡은 것은 B씨 일행이 우즈베키스탄까지 가서 회유한 덕분이다. 필리핀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까지 했던 사람이었다. 경찰은 B씨 일행에게 수사를 도와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경찰은
어디에?

B씨 일행은 “A씨가 돈이 없었기 때문에 죽어서라도 한국에 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경찰의 너무 소극적인 태도에 실망했다. 결국 피해자가 우즈베키스탄, 필리핀까지 가서 잡아온 것”이라며 “처음 뉴스에 보도되길 ‘공조수사’로 A씨를 잡았다고 발표했다. 전혀 그런 것(우리 도움 내용)이 없어서 억울하다. 지금 피해자들이 너무 많다. 더 적극적으로 수사해 A씨가 재산을 어디로 빼돌렸는지 알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다단계 사기업체 내부자료
“과세 근거로 삼아도 적법”

다단계 사기업체의 내부자료라도 신빙성이 있으면 과세 근거로 삼아도 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지난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김순열 부장판사)는 A씨가 서울 성북세무서장을 상대로 ‘종합소득세 부과 처분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을 최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A씨는 외환 차익거래 사업을 벌인 B사에서 2014∼2016년 본부장으로 근무했다.

B사 설립자는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사기)로 약 5년간 1만2000명으로부터 1조740억원을 편취한 혐의(특가법상 사기)로 2017년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15년을 확정받았다.

A씨 역시 회사의 사기행위에 동조한 혐의(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돼 2020년 1월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확정받았다.

그는 재직 기간 회사와 금전소비대차계약 및 투자약정을 체결해 약 2년간 매월 이자 명목으로 대여금의 5%, 이익 배당금 명목으로 투자금의 2%를 지급받았다.

종합소득세 부과 처분 취소 소송
“피해액 커도 사업소득액 산정 무관”

과세당국은 A씨가 이렇게 받은 이자·사업소득 약 5억8000만원에 대한 종합소득세 신고를 누락한 사실을 확인하고 2020년 9월 그에게 세금 1억9000만원을 부과했다.

A씨는 “당국이 아무런 관리·감독을 받지 않은 불법 다단계 회사가 만든 자료를 토대로 세금을 산정했기 때문에 근거과세 원칙에 반한다”며 과세처분에 불복하는 소송을 냈다.

하지만 재판부는 B사 자료에 신빙성이 있고, 이를 근거로 한 과세 처분도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사 자료 내용 중 특별히 사후적으로 변경됐다고 인정할 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며 특히 “폰지 사기는 오직 다단계 구조에 참여한 투자자들의 신뢰를 토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투자금·수익금 지급 현황을 장부에 기계적으로 정리하는 게 사업 유지의 필수 요소가 된다”고 설명했다.

자금거래를 수시로 기록하는 만큼 장부의 신뢰도가 높다는 취지다.

A씨는 “B사에서 받은 돈보다 B사에 줬다가 돌려받지 못한 투자 피해액이 더 커 사실상 사업소득이 없었음에도 종합소득세를 부과한 것은 실질과세 원칙에 반한다”고도 주장했다.

재판부는 “설령 A씨가 받은 수당보다 재투자로 인한 투자 피해액이 더 크더라도, 재투자는 총수입금액에 포함한 수당을 처분하는 한 방법에 불과해 사업소득액 산정과 무관하다”고 판단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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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