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두 가지 시선’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

기대보다 걱정 앞선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던 포르투갈전. 아직도 그 여운을 느끼고 있는 국민이 많다. 또 다른 드라마를 만들어갈 한국 축구의 새 사령탑 선발이 초미의 관심사였던 이유다. 그런데 적어도 당장은 물음표 투성이다. 선수가 아닌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을 택했던 팀이 웃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사위는 던져졌다. 클린스만은 전임자를 향한 그리움을 지우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증명하라는 과제를 받아들었다. 

대한축구협회(이하 축협)는 대표팀의 새 사령탑으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했다고 지난달 27일 밝혔다. 계약기간은 이달부터 2026년 열리는 북중미월드컵까지 총 3년5개월이다. 연봉은 양측의 합의에 따라 밝히지 않기로 했지만, 전임자 파울루 벤투 전 감독을 넘어서는 수준(18억원 이상)으로 전해진다. 감독을 보좌할 코치진 명단 등은 조만간 클린스만 감독과 축협이 논의해 확정한다. 

전술능력
의문부호

계약 후 클린스만 감독은 축협에 보내온 인사말을 통해 “한국 대표팀의 감독이 돼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다”는 뜻을 전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인사말에서 “한국 대표팀이 오랜 기간에 걸쳐 끊임없이 발전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비롯해 전임 파울루 벤투 감독에 이르기까지 역대 한국대표팀을 지휘한 훌륭한 감독들의 뒤를 잇게 된 것을 영예롭게 생각한다. 다가오는 아시안컵과 2026년 월드컵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취임 각오를 밝혔다.

마이클 뮐러 축협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은 이튿날인 28일, 서울 종로구 소재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클린스만 감독 선임 배경을 설명했다. 뮐러 위원장은 “전체적인 과정을 통해 5명의 후보군을 추렸다. 우선순위를 두고 협상을 시작했는데, 클린스만이 첫 협상 대상이었고, 최종적으로 선임하게 됐다”고 말했다. 


뮐러 위원장은 클린스만 감독이 한국과 한국 축구에 대한 좋은 인상을 느끼고 있다는 점, 협상에 긍정적인 자세로 임했다는 점 등을 역설했다.

뮐러 위원장은 “(클린스만 감독은)한국에 살고 싶어 하고 한국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독일 해설가로 한국을 방문했고, 2017년에는 20세 이하(U-20) 월드컵에 출전한 아들을 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고 전했다.

이어 클린스만 감독이 1994년 미국월드컵 조별리그 경기(3-2 독일 승)서 한국을 상대로 득점한 것을 언급하면서 “당시 치열한 접전 속에서 한국의 ‘파이팅 정신’과 투지에 감명받았다고 얘기했다”고 강조했다.

이때 위원장은 “클린스만 감독이 독일 대표팀을 이끌던 2004년 한국과의 평가전서 지고 한국 감독을 하기로 결심한 것 같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역대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 중 개인 명성이 가장 높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선수 시절 ‘전차 군단’ 독일의 간판 공격수로 맹활약했다. 수많은 독일 축구 ‘레전드’ 사이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힐 수준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는 독일 국가대표로 108경기에 출전해 47골을 터뜨렸고, 특히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는 3골을 넣으며 독일(당시 서독)의 대회 우승을 견인했다. 이어 1994년 미국, 1998년 프랑스월드컵까지 독일이 유럽지역 3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금자탑을 쌓는 데 일조했다.

1996년 독일이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정상에 오를 때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아울러 바이에른 뮌헨·슈투트가르트(분데스리가), 토트넘(EPL), 인터 밀란·삼프도리아(세리에A), AS 모나코(리그앙) 등 유럽 최상위권 리그 명문 팀에서 클럽 생활을 이어가며 통산 620경기 284골을 기록했다.

신임 사령탑 선임…3년5개월 계약 
벤투 이어 9번째 외국인 감독으로

선수 은퇴 직후에는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04년 클린스만 감독은 당시 ‘녹슨 전차’라는 혹평을 받던 독일 대표팀을 맡아 ‘체질 개선’을 단행했다. 그 결과 독일은 2006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3위에 올랐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간 클린스만 감독은 2008년 친정팀 바이에른 뮌헨 감독을 맡으며 약 2년 만에 복귀했다. 하지만 팀이 부진을 거듭한 끝에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경질됐다. 다시 2년간 공백기를 가진 그는 2011년 7월 미국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다.

그는 미국의 2013년 북중미카리브축구연맹(CONCACAF) 골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선 독일·포르투갈·가나와 함께 ‘죽음의 조’에 속했음에도 16강 진출에 성공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8 러시아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연패를 거듭하다 또다시 불명예 퇴진했다. 이후 부임한 헤르타 BSC에서는 약 두 달 만에 물러나는 수모를 겪었다. 

클린스만 감독의 첫 등장이 연착륙으로 평가받기는 어렵다. 우선 선발 과정부터 잡음이 나왔다. 뮐러 위원장은 클린스만 감독 선임 과정에서 다른 한국인 위원들과 소통이 부족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질문이 여럿 나왔다.

이와 관련해 뮐러 위원장은 “어제 광화문에서 2차 회의를 진행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위원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고, 충분히 내용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슈틸리케
따라가나

이어 “후보군을 선정하고 접촉하고 선임하는 과정은 축구협회의 정책적인 사안으로 민감한 부분이 많아 (위원들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 이에 대한 (위원들의) 동의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축구팬 사이에선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이 재소환됐다. 두 감독이 국적부터 지도 스타일 등 여러 공통점을 갖고 있어서다. 클린스만 감독 역시 슈틸리케 감독처럼 한국 축구의 실패 사례로 남게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

우선 두 감독은 모두 독일 출신이다. 나이는 10살 차이여서 전성기가 겹치진 않지만, 선수 시절 출중한 기량으로 빅클럽과 국가대표팀 주전으로 활약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슈틸리케는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레알 마드리드 CF 등에서 뛰었다. 


하지만 이들의 화려한 선수 시절 경력과는 달리, 감독으로서의 역량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슈틸리케 감독은 유럽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축구 변방을 전전했고, 클린스만 감독은 일부 호성적을 거뒀음에도 평가가 엇갈린다. 특히 클럽 감독을 맡을 때마다 시즌 도중 경질, 조기 사퇴 등을 거듭한 이력이 있다.

물론 이들이 매번 실패만 반복한 감독은 아니다. 슈틸리케 감독의 한국 대표팀 2015 호주 아시안컵 결승 진출, 클린스만 감독의 2006 독일월드컵 3위 기록 등은 당시 해당 국가 내부 여론에서 ‘명장’으로 인정받은 성과다.

다만 이 성과가 온전히 이들이 해낸 몫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들은 모두 ‘감독으로서의 전술 세부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는데, 성과를 보였을 때만큼은 이를 메워줄 유능한 수석코치의 보좌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당시 거둔 성과가 사실은 이들이 아닌, 수석코치의 몫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

전설적인 선수 맞는데…
감독 역량에 의문 가득
각종 기행에 구설수까지

실제로 해당 수석코치들은 이들이 물러난 뒤 감독 자리를 이어받아 더 큰 성과를 냈다. 슈틸리케 감독은 당시 신태용 전 대표팀 감독을, 클린스만 감독은 요하힘 뢰브 전 감독을 수석코치로 거느리고 있었다. 둘 모두 각 나라에서 탁월한 전술가로 꼽히는 지도자다.


신 전 감독은 슈틸리케 감독 경질 이후 급하게 소방수 역할을 도맡아 2018년 러시아월드컵을 치렀다. 이 과정에서 일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당시 세계랭킹 1위인 독일을 2:0으로 잡아내는 이변을 연출해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에 월드컵이 끝난 뒤엔 4-2-3-1 포메이션만 고집했던 전임 감독들과 달리 4-4-2·3-5-2 등 다양한 전술 도입을 고려했다는 점, 신인 김민재를 발굴해 정상급 선수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해줬다는 점 등이 재평가되기도 했다. 

뢰브 전 감독은 약 15년간 독일 축구대표팀을 맡아 이들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대표적인 성과가 2014년 브라질월드컵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당시 준결승전에서 개최국 브라질을 전술적으로 완벽히 압도하며 7:1 승리를 거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외에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준우승 1회·3위 2회, 2017 러시아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등의 성과를 남겼다. 그는 2014 발롱도르 올해의 남자팀 감독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 당대 최고의 감독으로 인정받았다.

이런 탓에 국내 축구 팬 사이에선 클린스만 감독에 관한 회의론이 벌써 제기되고 있다. 감독 역량 자체에 대한 의문에 클린스만 감독이 각종 기행으로 구설에 올랐던 과거 사례가 얹어지면서 ‘클린스만호’의 성공 가능성 자체가 의심받고 있는 것. 

독일 매체 <11프로인데>는 지난달 24일 ‘세계 축구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프로젝트! 한국 축구 팬들이 위르겐 클린스만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클린스만 감독의 기행을 열거했다. 

매체는 먼저 “팬들은 페이스북 앱을 빠르게 설치하는 게 좋다. 훈련 계획, 67분(후반 22분)에 이뤄지는 선수 교체, 구단과의 결별 등 새로운 감독이 무엇을 하든 페이스북에서 먼저 알아낼 수 있다”고 꼬집었다.

데뷔전
어떨까?

클린스만 감독은 헤르타 BSC에서 사임을 발표할 때 개인 SNS을 통해 사임을 발표해 구설에 올랐다. 이 발표가 구단과 일절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진 돌출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이어 “클린스만 감독이 데뷔전에서 휴대폰을 꺼내 경기장을 촬영해도 놀라지 마라”고 덧붙였다. 이는 클린스만 감독이 헤르타 시절 사진촬영을 하느라 ‘아디다스’ 로고가 새겨진 휴대폰 케이스를 내보인 사건을 언급한 것이다. 당시 헤르타는 아디다스의 경쟁 기업인 나이키에게 유니폼 후원을 받고 있었다.

또 “클린스만 감독은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 대신 열심히 일하는 보조 코치를 미리 보내는 데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으니 그를 주시하라”고 조언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2006년 독일월드컵 때 다른 코칭스태프에게 선수 점검이나 대표팀 스케줄 조정을 상당 부분 떠넘기면서 자질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때 수석코치로 근무하다 지휘봉을 넘겨받은 이가 바로 뢰브 전 감독이었다.

이외에도 “클린스만은 헬기를 타고 훈련장에 가는 걸 좋아하기에 헬기장을 설치하라” “클린스만 감독은 자신의 일을 매우 진지하게 생각하기에 선수들에 대한 평가를 일기에 작성한다” 등 비꼬는 주장도 이어졌다. 클린스만 감독이 헤르타 시절 자신의 일기에 소속팀 선수에 대한 비난을 적었다가 들통난 바 있었기 때문이다.

또 미국으로 이주한 클린스만 감독은 과거 독일서 감독 생활을 하면서도 미국 생활을 고집해 ‘재택 감독’ 논란을 자초했다. 심지어 자국서 열린 월드컵 워크숍에도 참석하지 않아 독일 내에서 거센 비난 여론에 시달리기도 했다.

클린스만 감독이 차기 감독 후보군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 여론 역시 이 문제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클린스만 감독이 몇 년 전에도 한국행을 추진하다 국내 거주 여부에서 이견을 보이며 협상이 결렬된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전임자’ 벤투 전 감독은 파주 국가대표 트레이닝 센터와 가까운 경기 고양시에 재임기간 내내 머물렀다.

일단 이번에는 계약 내용에 ‘국내 거주’가 포함되면서 관련 문제는 일단락된 모양새다. 다만 클린스만 감독의 충동·독선적인 과거 태도를 고려했을 때,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부정적인 여론 
경기로 뒤집나

클린스만 감독의 데뷔전은 오는 24일 울산 문수축구장에서 열리는 평가전이다. 이날 대표팀은 남미의 강호로 평가받는 콜롬비아와 맞붙는다. 관건은 ‘실전감각’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2020년 2월 헤르타 BSC 지휘봉을 내려놓은 이후로 3년간 야인으로 지냈다. 그가 한국 축구가 외국인 감독에게 원하는 ‘최신 트렌드에 맞는 선진 축구’를 전파할 수 있을지, 곧바로 지도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쉽게 확신할 수 없는 이유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술 지시 없었다” 클린스만 폭로한 독일 레전드

축구 팬들 사이에서 역대 최고의 ‘축구 지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필립 람.

‘독일 레전드’인 그가 자신의 자서전에서 클린스만 감독을 비판한 구절이 클린스만 감독의 한국 축구 사령탑 부임에 발맞춰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람은 2021년 출간한 자신의 자서전에서 “클린스만의 전술 지시는 없었다. 선수들의 체력만 단련했을 뿐”이라며 “결국 선수들이 경기 전 따로 모여 어떻게 경기를 해야 할지 토론했다”고 폭로했다. 

람은 2004년부터 독일 대표팀 명단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FC 바이에른 뮌헨의 ‘원클럽맨’이다.

클린스만 감독과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독일 대표팀에서, 2008년부터 2009년 사이에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함께했다.

대표팀 감독과 클럽팀 감독으로서의 클린스만을 모두 겪어본 셈이다.

더군다나 람은 현역 시절 좌우 풀백과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을 종횡무진하며 활약했고, 감독 임기응변에 따라 때로는 공격수로도 출전하는 등 최상급의 전술 소화력을 보여주며 많은 찬사를 받은 선수다.

“클린스만은 전술이 없었다”는 람의 비판이 한국 축구 팬들에게 더욱 뼈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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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