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열리는 ‘김만배 게이트’ 막전막후

언론, 법조계…다음은 정관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대장동 의혹’ 핵심 멤버들의 전방위적 로비 정황이 드러났다. 대상은 언론계에 그치지 않았다. 현직 판사와 검찰 고위직 인사 여럿이 연루됐다. 법조계에서는 뇌물죄를 적용해 수사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제 식구를 겨눠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지속적 언급을 꺼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장동 핵심 멤버들은 사업이 틀어질 위험성에 대비하기 위해 개발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금액으로 수년간 법조·언론계에 전방위적 로비를 시도했다. 중앙 일간지 간부 등 전·현직 기자들은 언론사를 퇴직하고 화천대유 임직원으로 계약한 후 거액의 연봉을 받거나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인 김만배씨와 수억원대 금전거래를 하기도 했다.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지는 모양새다.

드디어 열리는
판도라의 상자

검찰은 김씨가 화천대유와 천화동인 1호에서 빼낸 자금을 추적 중이다. 이 돈은 김씨가 2019년부터 3년간 자신이 대주주인 회사에서 장기 대여금과 수표 인출 등으로 빼낸 금액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김씨가 빼돌린 자금 중 사용처가 불분명한 금액은 화천대유 80억원, 천화동인 168억원 등 총 248억원이다. 검찰은 대장동 핵심 멤버인 남욱 변호사가 2014년 조성한 40억원대 비자금이 대장동 사업 시작 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측에 대한 뇌물 혐의로 이어진다는 논리를 다졌다.

김만배의 수백억은 대장동 사업이 어그러질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돈으로 해석된다.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남 변호사의 수십억원대 비자금 중 일부는 박영수 전 특검 측에 흘러 들어갔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팔짱만 끼고 있다. 제 식구 감싸기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정영학 녹취록에는 대장동 멤버들이 언론계에 로비를 시도한 정황이 상세하게 드러난다. 2020년 3월24일, 김씨는 정영학 회계사에게 “너 완전히 지금 운이 좋은 거야”라면서 “수사 안 받지. 언론 안 타지. 비용 좀 늘면 어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기자들 분양도 받아주고 돈도 주고, 응? 회사(언론사)에다 줄 필요 없어. 기자한테 주면 돼”라고 한다.

같은 해 7월 김씨는 정 회계사에게 “대장동 막느라고 너무 지쳐. 돈도 많이 들고. 보이지 않게”라면서 금품을 돌리며 대장동 관련 비리가 불거지는 걸 막고 있다고 말한다. 김씨는 “끝이 없어. 이놈 정리하면 또 뒤에서 숨어 있다가 다시 나오고”라고 했다.

이어 김씨는 “어차피 광고 내려면 그 정도 내라 그러면 어떻게 해”라고 말하면서 언론사에 광고비를 주는 대신 기자들에게 돈을 주고 대장동 관련 기사 작성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녹취록을 보면, 김씨는 녹취 당일 저녁에도 여러 기자와 만날 것이라고 말하는 등 상당수에게 로비한 정황이 드러난다.

김씨는 “오늘 (기자들이)되게 많이 오는데”라고 말하자 정 회계사가 “형님, 맨날 기자들 먹여 살리신다면서요”라면서 김씨에게 상품권을 건네는 정황이 나온다. 상품권을 확인한 김씨는 “와, 이 정도면 대박인데. 아이, 걔네(기자)들은 현찰이 필요해”라고 했다.

대장동 사업 불발 우려에 기자 수년간 관리
현금·상품권에 아파트 분양까지 사실상 뇌물

이에 정 회계사가 “아, 현찰로 할까요? 다음에는?”이라고 묻자 김씨는 “아니야. 아니야. 그래서 내가 지금 하고 있어”라고 말한다.


이외에도 대장동 멤버들이 언론계를 관리한 정황은 여럿 등장한다. 김씨는 대장동 사업 이후 경기도 분당 오리역 인근의 LH 사옥 부지를 매입해 개발하는 사업을 계획했다. 김씨는 녹취록에서 이 사업이 성공하면 자신이 가져갈 이익이 최소 3000억원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언론에 대장동 관련 특혜가 언급되면 사업이 무산될 수 있기에 로비를 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2021년 1월6일, 정영학 녹취록에서 김씨는 대장동 사업을 재빠르게 마무리해야 한다고 정 회계사에게 강조한다. 개발업자는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준공을 받은 후에야 번 돈을 전부 빼갈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씨는 “준공이 늦어지면 이익이 얼마 남니, 뭐니, 지역신문이나 터지면 어떻게 해. 응? 너랑 나랑. 응?”이라면서 “지금까지(기사를) 돈으로 막았는데…기자들 떠들면 어떻게 해”라고 우려했다. 이어 “지회도 떠들고”라고 말했는데, 정 회계사는 자필로 ‘지회’란 단어에 ‘신문사 모임’이라는 설명을 달았다.

김씨가 돈으로 관리하던 기자 모임인 ‘지회’가 실제 존재한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해당 사실이 드러나자 2019∼2020년 김씨에게 총 9억원을 받은 <한겨레신문> 간부 기자 A씨는 이번 사건으로 전날 해고 조치됐다. A씨는 물론 김씨와 금전을 거래한 <중앙일보> 간부 B씨, <한국일보> 간부 C씨가 만일 대장동 사업과 관련해 유리한 기사를 보도하도록 했다면 배임수재죄로 볼만하다는 해석도 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3부는 최근 B씨 명의의 은행 계좌에 김씨가 추가로 1억원을 보낸 사실을 파악했고 B씨는 이날 사표를 냈다.

김씨는 대장동 업자들에 대한 검찰 수사를 막을 목적으로 수시로 고위 법조인들을 만나왔다. 2013년을 전후로 서울중앙지검과 수원지검 성남지청이 남 변호사와 자금책 조우형씨 등을 수사할 당시, 김씨와 <머니투데이> 사회부 법조팀 출신이자 천화동인 7호 소유자인 배성준씨가 각자의 역할을 분담해서 수사를 무마한 정황이 녹취록에도 등장한다.

뇌물 리스트
수사 어디까지?

2013년 3월5일에 김씨는 정 회계사에게 “터지면 대장동 사업 못해” “그 당시에 그걸 다 깔끔히 막았잖아”라며 자신이 수사를 무마했단 취지로 말한다. 그러면서 김씨는 “형이 공적으로 쓴 것 말고 사적으로 쓴 돈이 더 많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공적으로 들어간 돈 따지면 형이 더 받아야 해”라고도 말한다.

여기서 김씨가 언급하는 ‘공적으로 들어간 돈’의 정체에 대해 정 회계사는 “로비한 돈”이라고 적어놨다. 대화가 이뤄진 2013년 시점을 감안하면, 이날 김씨가 막았다는 수사는 최윤길 전 성남시의회 의장에 대한 수원지검 성남지청의 수사였던 걸로 보인다.

당시 검찰은 대장동 업자들이 최 의장에게 1억원의 뇌물을 준 것으로 보고 수사했지만, 결국 무혐의로 종결됐다.

김씨의 법조인 로비 정황은 남 변호사의 진술에서도 확인된다. 2021년 10월20일, 검찰이 작성한 남 변호사 피의자신문조서에 따르면 남 변호사는 검찰에 “(김만배가)판·검사들하고 수도 없이 골프를 치면서 100만원씩 용돈도 줬다고 들었다. 골프 칠 때마다 500만원씩 가지고 간다고 했고, 그 돈도 엄청 썼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남 변호사는 “이 사건 터지고 나서 국회에 있는 <조선일보> 기자와 통화했는데, 윤석열 밑에 있는 검사들 중 김만배한테 돈 받은 검사가 워낙 많아서 이 사건 수사를 못할 거라 했다”고 강조했다.

정영학 녹취록에는 그가 자필로 남긴 ‘대장동 로비 인맥도’도 있다. 이 인맥도는 정 회계사가 2012년 8월~2014년 7월에 녹음한 녹취록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인맥도의 정중앙엔 김씨가 있다. 녹취록에는 김수남 전 검찰총장, 윤갑근 전 고검장, 신경식·강찬우 전 검사장 등 고위 법조인 4명이 등장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윤 전 고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을, 나머지 3명은 수원지검장을 지냈다.

2012년 8월18일 정 회계사가 “원래 그쪽하고 좀 친하신 사이?”라고 묻자, 남 변호사는 “(만배 형이)김수남 검사장하고 정말 친하대요”라고 답한다. 남 변호사는 배씨로부터 ‘김만배와 김수남이 깐부’일 정도로 친하단 얘기를 전해 들었다고 말한다.

2012년 8월은 최 전 의장이 대장동 업자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수원지검 성남지청의 내사(수사 직전 단계)를 받고 있던 때였다. 또 녹취록에는 ‘형, 내가 대장동 사업에 참여하고 있어’라면서 수사하지 말 것을 청탁한 정황이 담겨있다. 남 변호사가 김씨로부터 들은 얘기를 다시 정 회계사에게 설명하는 상황이다.


남 변호사는 정 회계사에게 “(김만배에 따르면)김수남 검사장이 어디서 무슨 얘기까지 들었는지는 자세하게 얘기는 안 하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쭉 하면서, 그래서 만배형이 형(김수남), 저 그 최 회장님하고 내가 이 사업 대장동…”이라고 말한다.

이어 남 변호사는 “근데 뭐 (최윤길)땅이 (대장동에)있다는 얘기도 있고 뭐, 시행사에서 돈 받았다는 얘기도 있고 뭐, 별 얘기가 다 있는데…그런 것 아니야. 그런 거 없어. 그런 줄 아시오. 그랬더니. (김수남이) 응, 알았다. 뭔 말인지”라고 답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씨가 현재 변호사인 김 전 총장의 이름값을 이용하거나 실제 수사 무마 청탁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김 전 총장은 ‘50억 클럽’에서도 이름이 등장한 바 있다.

남 변호사는 정 회계사에게 “(김만배)다음 주에 한 번 들어가실 것 같아요. 윤갑근 차장 만나러”라고 말한다. 이때 윤 전 고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이었다. 당시 최 전 의장 내사는 성남지청에서 맡았다. 그러나 윤 전 고검장은 김씨와의 수사 무마 청탁 의혹에 대해 부인했다.

50억 클럽 수사 제자리…박영수·김수남 봐주나
“지난해부터 알았다” 전방위 로비 의혹도 묻히나

윤 전 고검장은 “김씨와 아는 사이는 맞지만 그 당시에 미팅을 한 적은 없다”고 전했다.

강 전 검사장은 대장동 핵심 멤버 중 일부가 2015년 수원지검의 수사를 받을 때 수원지검장이었다. 당시 이들의 변호를 맡은 건 박영수 전 특검이다. 남 변호사는 당초 ‘횡령 및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았지만, 검찰이 남 변호사를 재판에 넘기는 과정에서 ‘횡령’ 혐의를 지웠다. 이후 남 변호사는 재판에서 물러났다.

강 전 검사장은 퇴직 후 2018년, 자신이 속한 로펌에서 화천대유의 법률 자문을 맡아 구설에 올랐다. 녹취록을 보면, 김씨가 정 회계사와 대화하면서 ‘사실은 박영수나, 강찬우에 대한 자문료도 남욱이 다 부담해야 한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인맥도에 나오는 고위 법조인으로 김만배 ‘50억 클럽’에도 들어간 김 전 총장의 경우, 녹취록에 관련 사건과 청탁 과정이 비교적 자세히 언급된다. 김씨의 ‘허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나 남 변호사는 지난해 11월21일 열린 대장동 재판에서 “사실 확인을 한 적은 없지만, 김씨로부터 김 전 총장께 최 전 의장의 뇌물수수 사건을 잘 봐 달라, 이런 얘기를 했다는 것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이외에도 검찰 대장동 수사팀은 김씨가 2017년 당시 부장판사였던 변호사 및 판사와 술자리를 가진 뒤 비용을 지불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술집 직원으로부터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사의 경우 따로 술을 마신 뒤 김씨가 사후 정산했다는 진술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당사자인 판사는 최근 언론을 통해 “잠깐이라도 들러 인사나 하고 가라는 연락을 받고 술자리 중간에 동석해, 길지 않은 시간 머물렀던 기억이 있다”며 “중간에 자리를 떴으므로 술값을 누가 계산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같은 사실을 지난해부터 알고 있었다. 피의자 신분 소환조사가 아닌 대부분 서면조사로 강도가 약한 수사로 시간을 끌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진퇴양난 검
여론전 대비

서울중앙지검 한 검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내부가 어수선하다. 지난해부터 알고 있던 내용인데 이걸 어떻게 수사해야 하나 난감해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짚고 넘어가야 할 건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곽상도 전 의원을 제외한 검찰의 50억 클럽 수사는 사실상 멈춰있다. 최근 드러난 김씨의 법조·언론계 전방위 로비 수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인 이유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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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