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위한’ 사면? 김경수 사면론 해부

‘1+1’ MB용 패키지 쓰나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인 특별사면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광복절 특사(지난 8월15일) 당시 불거졌던 정치인 사면론이 이번 크리스마스와 신년을 맞아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정계에선 광복절 특사 때와는 달리 이번엔 비로소 사면이 이뤄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특히 주목하는 사람은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와 이명박 전 대통령, 두 정치인이다. 양쪽 다 각 진영의 ‘아픈 손가락’인 만큼 사면에 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뜨거운 형국이다.

사실 김경수 전 도지사, 이명박 전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사면할 명분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김 전 도지사는 윤 대통령의 정적이라 할 수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복심 중 복심으로 알려진 인물이고, 이 전 대통령은 윤 대통령이 직접 수사해 유죄 확정을 받아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을 윤 대통령이 직접 사면한다는 것은 여러 모로 모양새가 맞지 않다.

명분 없는
두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사면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여러 정치적 계산이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정치인 사면 카드를 본인의 정치적 이익이 극대화될 때마다 사용해왔다. 정치인이나 경제인을 대통령 직권으로 사면해줌으로써 본인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해온 것이다.

고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하나회 사면’이 좋은 예다. 이들은 각각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던 시절에 고 전두환 씨와 고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논의를 시작했다.

하나회 척결을 대통령 과제로 내세운 김 전 대통령으로선 여러 모로 명분 없는 사면이었으나 당시 김 당선인과의 수차례 면담 뒤 마음을 틀었다.


두 사람에 대한 사면은 형이 확정되기 전부터 나오던 오래된 의제였다. 두 전직 대통령은 국가반란수괴 및 내란죄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으며 1심에서 사형 등 중형을 선고받았다. 여의도에선 이때 처음 ‘대법원 확정 판결 뒤 사면설’이 흘러나왔고 당시 정계 분위기는 ‘일단 사법부가 두 사람에게 확정 판결을 내린 뒤 대통령이 사면할 것’이라는 예측이 팽배했다.

일단 명분은 챙기되 정치적 실리는 저버리지 않을 것이란 분석 때문이었다.

당시 두 전직 대통령은 부당한 방법으로 국가권력을 탈취했다는 사실 때문에 여러 비판 여론이 항상 뒤따랐지만, 그에 못지않는 부동의 지지층도 확보하고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향으로 군부독재에 큰 저항감 없는 6070세대와 경상도 지역의 보수 지지층들은 두 전직 대통령에게 호의적인 마음을 갖고 있었다.

당시 이들 중 상당수는 ‘하나회 척결’을 부당한 정치탄압으로 받아들였다. 하나회 척결이 지역감정으로 번질 조짐이 보일 때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것이다.

특히나 새로운 대통령이 될 김 당선인 입장에서는 국민 통합이 최대 숙제였다. 당시 외환위기를 겪고 있던 터라 국정동력을 얻기 위해선 통합된 국민의 힘이 필요했고, 근소한 차이로 이회창 후보를 꺾은 김 당선인은 국정 시작 전에 힘을 다잡아야했다.

실제로 두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사람도 김 당선인 본인이었다. 김 당선인은 김 전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에서 두 전직 대통령을 김 전 대통령이 직접 사면해줄 것을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형식은 ‘김 전 대통령 주도, 김 당선인의 동의’라는 모양새를 갖췄지만, 사실상 주도는 김 당선인이 했던 것이다.


결국 사면을 이끌어낸 김 당선인은 국민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일부 호남지역 사람은 처음에 크게 실망했으나 이내 김 당선인을 믿어주었고, 영남지역민들도 그가 내민 화해의 제스처를 외면하지 않았다. 

특사 카드 만지작…세 가지 숨은 의도?
야권 분열, MB 구하기 명분, 여론 전환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그는 대통령에 취임한 뒤 국가를 뒤흔든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었고, 국정동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 남북정상회담을 최초로 성사시켰다. 김 당선인은 본인을 죽이려 했던 정적을 용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했다.

정적을 사면해 입지를 공고히 한 사례는 이명박정부와 문재인정부에서도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를 사면하면서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노씨는 2006년경 농협중앙회에 세종증권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약 30억원을 받은 뇌물죄와 탈세,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2년6개월형을 확정받았다.

당시 검찰 측 수사 자료에 따르면, 노씨는 노 전 대통령의 고교 동기인 정화삼씨 측과 공모해 세종캐피탈 홍기옥 사장으로부터 농협 정대근 전 농협회장을 소개해달라는 부탁의 대가로 29억6300만원을 받았고, 증여세와 부가가치세 총 5억2000만원을 탈세했다.

또 정원토건과 관련해 2004년 3월부터 2005년 11월까지 회사자금 15억원을 주식 매수 등에 사용하는 횡령 범죄까지 저질렀다.

이 모든 과정이 드러나고, 재판을 받은 기간은 이 전 대통령 재임 기간과 겹친다. 또 이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노 전 대통령이 검찰의 전방위적인 수사를 이겨내지 못하고 사저 뒷산에 있는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해 생을 달리하기도 했다.

광우병 사태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반쪽짜리’ 대통령으로 불리던 이 전 대통령은 해당 사건으로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게 됐다. 유독 심한 레임덕을 겪던 이 전 대통령은 퇴임 전 ‘국민 통합’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사면으로 풀려 노력했다.

야권에서는 이미 노씨에 대한 대통령 사면을 수차례 건의해왔고, 임기 후반 들어 법무부가 나서서 사면을 주도했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은 노씨를 전격 사면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려 했다.

문 전 대통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 전 대통령은 임기 중 최초로 두 명의 대통령이 구속된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친문
구심점


‘적폐 청산’이라는 명목 아래 대대적인 전 정권 수사를 벌인 검찰은 우선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유죄판결을 이끌어낸 후, 이듬해엔 이 전 대통령의 혐의도 입증했다.

전직 대통령들이 구속 수감될 때마다 한쪽 진영은 박수를 보냈으나 다른 한쪽 진영은 큰 앙심을 품게 됐다. 그리고 그 앙심은 문 전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지지층은 부당한 수사에 의한 정치탄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매주 광화문에서는 태극기 집회가 벌어졌고, 집회에서는 항상 ‘박근혜, 이명박 석방’이라는 피켓이 등장했다.

결국 문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이때도 명분은 국민 대통합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5번째로 시행한 대통령 특별사면에서 총 3092명을 사면시켰고, 그중에 박 전 대통령과 한명숙 전 총리를 포함시켰다.

당시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사면·복권의 이유로 ‘박 전 대통령의 건강상태’와 ‘국민 통합’을 들었다.

문 전 대통령은 “우리 앞에 닥친 숱한 난제를 생각하면 무엇보다 국민 통합과 겸허한 포용이 절실하다”며 “박 전 대통령의 경우 5년 가까이 복역한 탓에 건강상태가 많이 나빠진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번 김 전 도지사의 사면론이 불거지는 이유도 이때의 이유와 많이 닮아있다. 대대적인 전 정권 수사를 시작한 윤정부 검찰은 현재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상태다. 그의 양팔로 불리던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정진상 당 대표실 정무실장은 구속 상태고, 남욱 변호사와 유동규 전 성남개발도시공사 기획본부장은 연일 핵폭탄급 폭로를 이어가고 있다.

검찰의 수사선상에는 문 전 대통령 측도 포함된다.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4일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구속시켰다. 서 전 실장과 더불어 박지원 전 국정원장도 수사선상에 포함돼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정계는 결국 문 전 대통령에게 화살이 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야권 관계자는 여러 모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김 전 도지사에 대한 사면 카드가 ‘신의 한 수’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 사면 카드는 항상 정치적으로 이용돼왔다. 이번에도 같은 맥락”이라며 “현재 여권은 전 정권 수사에 대한 반발심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면 카드는 한시름 덜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면 전환
신의 한 수?

야권에서 김 전 도지사의 사면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이유는 그를 사면하면서 윤 대통령에게 세 가지 이득이 생길 것으로 계산하기 때문이다. 야권에서 바라보고 있는 윤 대통령의 정치적 이익은 야권 분열, 여론 전환, MB 사면 명분 등 세 가지다.

김 전 도지사는 일명 ‘드루킹’ 김동원씨 일당과 공모해 2016년 11월부터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문 전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자동화 프로그램인 ‘킹크랩’으로 여론을 조작한 혐의(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를 받았다.

검찰은 김 전 도지사가 김씨에게 댓글 조작을 의뢰하고 일본 총영사직을 주기로 한 혐의(공직선거법)도 있다고 의심했고, 김 전 도지사는 1심과 2심에서 댓글 조작 혐의가 인정돼 유죄판결을 받았다. 다만 공직선거법은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며 해당 혐의는 벗게 됐다.

김 전 도지사는 징역형이 확정돼 옥살이를 이어오고 있으며 형기 만료 이후에도 약 5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돼 적잖은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됐다. 

이번 사면의 관전 포인트는 그의 복권 여부다. 윤 대통령이 그를 사면함으로 야권 분열까지 노린다면 복권까지 이뤄져야 한다. 복권되지 않을 경우 김 전 도지사는 2028년까지 선거에 나갈 수 없다.

반면 복권 시 차기 총선에서 영향력을 보다 크게 발휘할 명분이 생긴다. 친문(친 문재인) 진영이 2024년에 있을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김 전 도지사가 구심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만일 사법 리스크로 낙마하면 민주당은 새로운 리더가 필요해진다.

친문 의원들은 김 전 도지사가 돌아와 제 힘을 발휘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그가 부당하게 수감됐다고 생각한 몇몇 민주당 지지자를 중심으로 친문이 결집하면 현재 집권세력인 친명(친 이재명)계를 몰아낼 수 있다는 계산 아래서다.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로 정치 1선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커져 있는 가운데, 민주당은 새로운 리더를 찾아야만 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대통령실 측은 사면은 하되, 복권까지는 고려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김 전 도지사에 대한 사면은 거의 기정사실화됐다. 다만 복권은 안 할 계획으로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항상 비판 여론 일었는데…
‘국민 통합’ 시대적 요구?

이 관계자는 사면은 (거의)하자는 분위기지만 정치적 복권까지는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고 덧붙였다. 김 전 도지사를 사면함으로써 야권의 분열을 노릴 것이라는 여의도 전문가들의 예측을 대통령실이 전면 부정한 것이다. 

정계에 오래 몸담고 있던 여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어차피 이낙연 전 대표가 내년에 돌아올 것인데 김경수 전 도지사를 왜 사면해줘야 하냐는 내부 의견을 들었다”며 “이 전 대표가 이 대표에 대한 의혹 제기를 가장 많이한 인물인 만큼 우리는 사태를 관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즉 대통령실은 명분만 챙기되 김 전 도지사에 대한 정치적 명분은 주지 않을 것이라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 가 있는 이 전 대표가 돌아온다면 김 전 도지사보다 훨씬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란 게 대통령실의 의중이다.

이 전 대표는 지난 지방선거 후, 1년간 미국 워싱턴주에 머물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연구원 신분으로 미국 현지에서 교민들과 활발히 교류 중이며 워싱턴대학교에서 공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상 내년 6월에 복귀가 예정된 그는 2024 22대 총선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일요시사>의 취재를 종합하면 이 전 대표는 현지 교민들과 활발한 강연활동을 벌이고 있고,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지지층들과도 자주 화상 연결을 통해 교류하고 있다. 여야가 이 전 대표의 귀국 시기를 점치고 있는 이유다.

윤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의 사면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이 전 대통령은 특정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혐의로 징역 17년, 벌금 130억원이라는 중형을 확정 판결받은 바 있다. 

그는 현재 건강상의 사유로 형집행이 정지된 상태지만 혐의는 아직 벗지 못했다. 정계에선 이번 정치인 사면 배경은 사실상 이 전 대통령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현재 국민의힘 주류 세력이라고 알려진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측에서 대통령실 관계자들에게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며 “아시다피시 윤핵관 의원 대부분이 친이(친 이명박)계 출신”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친이계 출신의 윤핵관 의원들이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강력히 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김 전 도지사에 대한 사면 논의도 이 전 대통령 사면의 일환이며 여권 측에서는 정치적 노림수를 크게 두기보다는 이 전 대통령의 사면에 무게를 싣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적 
노림수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에 의한 대통령 사면은 관례로 인식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현재 김 전 도지사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이 본인에게 어떤 이익을 줄지 면밀히 살피고 있다. 사법부를 견제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준 ‘사면권’이 정치싸움의 무기로 전락하고 있는 모양새다.


<ingyun@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