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선물’ 풍산개 파양의 진실

12월 알리려 했는데 그새 못 참고?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5월 퇴임 당시, 강아지 두 마리를 본인의 사저로 데려갔다. 키우던 강아지들을 끝까지 책임지려는 모습은 대중에게 매우 ‘아름다운 그림’으로 비쳤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지금, ‘아름다운 그림’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정치싸움의 ‘씨앗’으로 변질됐다. 서로 “네 탓”이라 주장하는 상황에서 누구의 말이 ‘진실’에 가까운지 <일요시사>가 두 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확인해봤다.

풍산개는 함경도 ‘풍산’ 지방에 뿌리를 둔 북한 토종견이다. 김정일 주석이 특히 총애했던 견종으로 지난 60년간 북한에서 개체 수가 대량으로 늘어났으며, 1980년에는 북한의 공식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여러 마리가 모이면 맹수로부터 주인도 지킬 수 있다’는 속설이 있을 만큼 풍산개는 매우 용맹하고 충성심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애견인들은 풍산개를 주인과의 의리를 귀중하게 여기는 ‘의리파’ 반려동물로 분류하곤 한다.

자의?
타의?

그러나 반려동물이 아무리 주인에게 의리를 지킨다고 해도, 주인의 애정이 없으면 의리를 이어나갈 수 없는 법이다. 지난 8일, 풍산개 곰이와 송강이는 의리를 지킬 대상을 한순간에 잃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측이 ‘대통령기록물’인 곰이와 송강이를 정부에 ‘반환’한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문 전 대통령 측에 따라 곰이와 송강이는 이날 경북대 동물병원으로 인도됐고, 약 1주일 동안의 건강검진을 마친 후 제3의 위탁기관으로 보내질 예정이다.

두 마리의 풍산개는 2018년 9월 제3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선물한 암수 한 쌍의 강아지다.


역대 북한 지도자들은 남북의 관계가 호전될 때마다 종종 풍산개를 선물해왔다. 2000년 최초로 성사된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자주’와 ‘통일’이라는 이름의 풍산개 한 쌍을 선물한 바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서로의 성공적인 교류를 두고두고 확인하기 위해 풍산개를 활용해왔으며, 풍산개 선물의 의미는 단순히 반려동물을 선물한다는 의미를 넘어 국가 간 교류의 매개체 성격을 띤다고 분석한다.

문 전 대통령 측 또한 청와대 공식 홈페이지와 개인 SNS 등을 통해 풍산개들과 함께 찍은 대통령 내외의 사진을 공개하며 북한 측에 화답했다. 이렇게 곰이와 송강이는 문재인정부와 김 위원장 사이의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문제는 문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무렵 발생했다. 현행법상 국가 정상 간 선물은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돼 국가에 귀속돼야 하기 때문에 문 전 대통령이 ‘합법적으로’ 곰이와 송강이를 키울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 문제를 두고 문재인정부는 윤석열 당시 당선인과 수차례 의견 조율을 한 바 있다. 원칙에 따라 강아지들을 대통령기록관에 넘겨야 하지만, 살아있는 생물을 ‘물건’ 다루듯이 반환한다는 것이 상식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원칙과 상식 사이에서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가운데,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두 가지 쟁점이 발생했다.

첫 번째 쟁점은 ‘곰이와 송강이의 거취를 누구의 의지로 결정했냐’를 두고 불거졌다. ‘문 전 대통령이 강아지들을 본인의 뜻에 따라 데려왔는지’와 ‘윤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 강아지들을 데려왔는지’에 대한 양측의 의견이 갈린 것이다.


문의 선택 둘러싼 두 쟁점, 확인해 보니…
누구 의지로 강아지들 데려왔냐가 관건

이 쟁점이 중요한 이유는 강아지들을 데려온 것이 누구의 ‘의지’인가에 따라 국가 지원금의 정당성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통령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곰이와 송강이를 데려갈 당시, 의무가 아닌 자발적 의지로 데려간 것으로 알고 있다. 본인 뜻에 따라 데려간 반려동물에 ‘국가지원금이 필요하냐’는 내부의 반대 의견이 있었다”며 “(세금이)우리 돈도 아닌데 강아지들의 양육비를 쉽게 승인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라고 전했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 마지막날, 대통령 비서실과 대통령기록관은 협약서 한 장을 작성했다. 해당 협약서에는 곰이와 송강이를 위한 지원금 내역이 자세히 기록돼있다.

양측이 합의한 바에 따르면, 강아지들의 양육비는 한달 242만원으로, 사료비(35만원), 의료비(15만원), 사육관리용역비(192만원) 등이 고루 포함됐다.

연간 1000만원 이상의 세금이 들어가는 문제인 만큼 행안부와 법제처 안팎에서는 지원 예산을 두고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 과정이 길어질수록 문 전 대통령 측의 불만은 고조돼갔다.

민주당 측은 윤 대통령이 ‘먼저’ 제안해서 데려간 국가기록물에 대한 정당한 보조금이라 주장하고 있고, 정부 관계자들은 ‘자발적으로’ 강아지들을 데려갔으니 보조금 지원은 ‘무리한 요구’라 믿고 있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윤 대통령이 ‘먼저’ 강아지들을 데려갈 것을 문 전 대통령 측에 제안했고, 이를 문 전 대통령이 ‘수락’한 것이 사실에 가장 가깝다. 이는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했던 강아지들에 관한 발언에도 고스란히 나와있다.

강아지들에 대한 거취 문제에 최초로 의견을 공개 타진한 것은 윤 대통령 본인이었다.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었던 지난 3월23일, 기자들은 곰이와 송강이의 거취 문제에 대해 윤 대통령에게 묻자 “아무리 정상 간에 주고받았다 해도 키우던 주인이 계속 키워야지”라며 “동물을 볼 때 사람 중심으로만 생각할 게 아니고 정을 자기한테 많이 쏟은 주인이 계속 기르게하는 것이 오히려 선물의 취지에 맞다”고 다소 강한 어조로 ‘데려가야 한다’는 뉘앙스로 답했다.

한달에
242만원

이로부터 5일이 지난 3월28일, 두 사람은 공개석상에서 만나 강아지들의 거취 문제를 공식적으로 합의했다. 문 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준 거라 당선인의 허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위탁해서 키워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윤 대통령은 “주인이 바뀌면 환경 적응이 어려울 것이다. 계속 키우시라”고 화답했다. 


<일요시사>와 만난 여야 관계자들은 이날 대화를 두고 양쪽이 모두 합의한 상황에서 ‘공개한 대화’라는 점에 동의했다. 여권 관계자는 “이미 논란이 되고 있던 상황이라 빨리 그걸(강아지들 거취 문제)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윤 대통령이 문 전 대통령께서 강아지들을 데려가길 원했고, 문 전 대통령도 이를 승낙했다”고 알렸다.

문 전 대통령과 가까운 민주당의 한 의원도 “당시 문 전 대통령이 정든 강아지들을 그냥 두고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인수위 측에서 먼저(강아지 위탁을) 제안한 것으로 안다. 법적인 문제는 그 후에 시행령 개정을 통해 해결해준다고 약속까지 받았다”고 주장했다.

즉, 당시 형식상으로는 문 전 대통령이 강아지들을 ‘위탁’받아 키우는 형태가 됐다. 애견 전문가들은 첫 번째 문제가 여기서 출발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문 전 대통령을 개들의 ‘주인’으로 인식하는 반면, 문 전 대통령은 강아지들을 ‘부탁받아 키우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9일 문 전 대통령은 SNS를 통해 “사룟값과 양육에 소요된 인건비와 치료비 모두를 그동안 퇴임 대통령이 부담해왔다”며 “지난 6개월 간 대통령 기록물인 반려동물들을 무상으로 양육하고 사랑을 쏟아준 것에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애견 단체 회원은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강아지 양육에 들어간 비용을 ‘무상’이라고 표현한 점과 사랑을 ‘쏟아준 것’이라고 표현한 점이 의아하다고 했다.

이 회원은 “문 전 대통령이 본인을 ‘주인’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또한 강아지들과 문 전 대통령이 함께 있는 영상에서 둘의 교감 또한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랑은 ‘쏟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의 의지였느냐가 첫 번째 쟁점이었다면 두 번째 쟁점은 대통령실이 ‘시행령 개정을 일부러 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민주당 측은 현재로선 문 전 대통령이 ‘불법으로’ 대통령기록물을 가져와 위탁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시행령 개정이 계속 늦어진다면 문 전 대통령이 점점 부담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갑론을박
누구 말이?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2조 1항에는 ‘대통령기록물이란 대통령의 직무 수행과 관련해 다음 각목의 기관이 생산·접수한 기록물 및 물품’이라고 적혀 있고, 3항에는 ‘대통령기록물의 소유권은 국가에 있으며, 국가는 대통령기록물을 이 법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관리해야 한다’고 쓰여 있다.

법으로 정하는 바가 없는 상황에서 공직을 내려놓은 퇴임 대통령이 대통령기록물을 반년 이상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도 위탁을 제안할 당시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이 부분에 대한 우려를 해소해주겠다고 문 전 대통령 측에 전달했다. 그러나 이것이 계속해서 늦어지고 있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두 번에 걸쳐서 입법 예고 시행령 개정 시도가 있었던 건데 6월에 한 번 있었던 건이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취소됐다”며 “입법 예고까지 온 것은 관련 부처가 다 사실상 합의된 사항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처 간에 다 합의를 이뤄놓고 취소된 게 6월에 있었던 1차 취소고, 우여곡절 끝에 두 번째 시행령을 만들었는데 지지부진하면서 몇 개월을 끌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당 건은 우리(대통령실) 소관도 아니고 우리는 반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행안부와 법제처 실무자들이 전향적인 협의를 진행하고 있었다”고 <일요시사>에 알려왔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기존 6월의 입법 예고를 반대했던 행안부와 법제처는 다시금 전향적인 합의를 진행했고 오는 12월에 공포를 목표로 지난달 말까지 문 전 대통령 측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는 <일요시사>의 취재 결과와도 일치한다. 행안부와 법제처에 문의해 확인한 결과, 문서로 남아 있는 공식 논의는 지난달 13일까지 있었으며 그 이후에도 수차례 문 전 대통령 측과 비공식적으로 의견을 조율해왔다.

“10월 말까지 긍정적 합의 있었다”
“윤 대통령, 시행령 개정 반대했다”

해당 논의는 곰이와 송강이의 지원금 242만원이 포함된 것이었고, 부처 직원들은 하나같이 전향적인 논조로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시행령 개정이 늦어진 이유에 대해서도 한 행안부 직원은 “법률을 공포하는 데까지 걸리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보통 입법계획을 수립하고 공포까지 적어도 150일 이상 걸린다. 최소가 그 정도고 까다롭게 진행되면 반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주장했다. 

시행령의 개정 절차는 ▲입법계획 수립 ▲법령안의 입안 ▲관계기관과의 협의 및 당정 협의 ▲입법예고 ▲규제 심사 ▲법제처 심사 ▲차관화의 및 국무회의 심의 ▲대통령 재가 ▲공포까지 총 9단계로 진행된다. 

그중에서 ‘법령안의 입안’과 ‘관계기관과의 협의 및 당정 협의’을 거쳐 ‘입법예고’까지 걸리는 시간은 100일에서 150일가량이고, 그 이후에도 규제 심사와 법제처 심사를 거치는 단계에서 평균 30일~40일이 더 소요된다. 

물론 예외적으로 짧은 시간이 걸린 시행령 개정 사례가 더러 있지만, 절차를 정식적으로 밟아 진행한다면 수개월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지난 3월 논의 필요성이 시작된 이후 6월에 한 차례 협상이 결렬됐다. 

지난 5개월간 다시 협상을 진행한 끝에 입법예고를 눈앞에 뒀지만, 문 전 대통령의 일방적인 ‘파양 통보’로 모든 게 무위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들은 원래 예정대로였다면 12월 중 공포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12월 공포 예정이었다”는 주장에 대해 “그것은 저자들(윤석열정부)이 하는 거짓 선동”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1차 협상 취소 때와 마찬가지로 국무회의에 올리지도 않고 (12월 공포가)흐지부지 됐을 것이라고 본다. 그것을 문 전 대통령 또한 믿지 못한 것”이라고 <일요시사>에 전했다. 그는 윤석열정부가 주장하는 ‘전향적인’ 협의에 강한 불신을 나타냈으며 그 이면에는 윤 대통령의 반대가 있다고 했다.

그는 “아시다시피 (지난 6월에)입법예고 단계까지 갔던 것은 관련 부처가 다 사실상 합의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국무회의까지 당연히 상정돼야 하는 단계였다”며 “그런데 이게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멈춰버렸다. 실무자들이 이 단계에서 본인들의 판단만으로 취소시킬 힘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라며 “비공식적으로 확인한 바로는 대통령실의 반대가 있었다. 자료를 직접 공개할 수 는 없지만 이는 내가 직접 확인한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문 전 대통령이 파양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가 윤 대통령의 시행령 개정에 대한 반대 때문이었고, 그 결정을 지난 몇 개월간 고심하다가 내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디로?

정리하자면, 문 전 대통령은 국가로부터 ‘위탁’받아 풍산개를 키운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곰이와 송강이에 대한 주인 의식이 부족했다. 윤정부도 시행령 개정을 한 차례 무산시키는 등 해당 논란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결과적으로 전·현직 대통령들의 정치싸움에 애꿎은 곰이와 송강이만 안락했던 보금자리를 잃은 셈이다. 양측 모두 자료 공개를 꺼리는 상황에서 풍산개를 둘러싼 진실공방은 한동안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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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