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윈데믹’ 부른 정부 헛발질

‘삽질’했으니…묻히는 쌍 백신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끝없는 코로나19 굴레. 엔데믹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또 다른 복병이 등장했다. 올겨울 코로나와 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는 ‘트윈데믹’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독감·코로나 ‘쌍 백신’ 접종을 권하고 있지만, 국민들 반응은 냉담하다. 앞서 정부가 백신 수급·접종 과정에서 선보였던 헛발질 때문이다. 일각에선 정부가 자초한 ‘백신 불신’ 때문에 트윈데믹 피해가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코로나19 확진자는 대유행 시기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한때 60만명을 넘어섰던 일간 신규 확진자 수는 지난 13일 기준 2만6957명까지 내려앉았다. 한 달 전(9만3981명)과 비교해도 눈에 띄게 감소한 수치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는 최근 3주 연속으로 코로나 위험도를 ‘낮음’으로 평가했다. 

겨울철 
재유행?

하지만 의료계는 일찌감치 겨울철 재유행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호흡기를 통해 공기 중으로 전파되는 코로나는 겨울철에 유행할 개연성이 높다. 건조한 겨울 날씨는 바이러스 전파를 가속한다. 환기가 줄고 실내활동 비중이 커지는 생활 양식 역시 확산세를 높이는 데 일조한다. 

지난 대유행 지배종 ‘오미크론’의 하위 변이가 국내에서도 잇달아 확인되는 점을 재유행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질병관리청(질병청)은 지난 5일 국정감사장에서 “새로운 변이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고 보고했다. 질병청은 특히 ‘BA.2.75’ 하위 변이인 ‘BA.2.75.2’를 관찰·감시 강화가 필요한 변이로 꼽았다.

BA.2.75.2변이는 지난달 말부터 검출률이 오름세인 BA.2.75변이보다 면역 회피 수준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BF.7’변이도 국내 유입이 확인되며 주요 감시 대상으로 떠올랐다. BF.7변이는 지난달 국내 지배종을 차지한 ‘BA.5’변이의 하위 변이로, 감소하던 유럽 등지의 확산 상황을 다시 증가세로 돌려놓은 주범이다. 


방역당국이 겨울철 재유행 가능성을 직접 언급하면서 올겨울 재유행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질병청은 향후 재유행 전망에 대해 “감소 추세인 현 유행 상황 반영 시 당분간 감소세는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도 “12~3월 재유행 발생을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래도 ‘숨 고르기’할 틈새는 보인다. 국내 연구기관의 전망에 따르면 가을철 확산세는 안정적으로 관리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 기관에선 일일 확진자 수가 네 자릿수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질병청이 7개 연구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코로나 향후 전망치를 보면 7개 기관 중 4곳이 2주 후 평균 확진자 수를 최소 2000명에서 최대 2만1000명으로 예측했다. 나머지 3곳은 4주 뒤 확진자 수를 최소 1만2000명에서 최대 1만3000명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잠잠한 사이, 이번엔 독감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 9일 질병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40주 차(9월25일~10월1일) 의료 기관을 찾은 외래 환자 중 독감 의심 환자가 1000명당 7.1명에 달했다. 직전 주(4.9명)와 비교하면 일주일 만에 45%가량 급증했다. 

질병관리청은 전국 의료기관 중 200곳을 표본조사해 독감 의심 환자(38도 이상 발열·기침·인후통) 비율을 살피고 있다. 질병관리청이 정한 올해 독감 유행 기준은 1000명당 4.9명으로 이미 기준선을 넘어섰다. 

올해는 가을철부터 독감 환자가 늘며 지난달 16일 이미 유행 주의보가 내려졌다. 통상 유행 주의보가 내려지는 시기보다 2~4개월 빠른 추세다. 코로나 유행 이후 겨울철 독감 유행 주의보가 내려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재작년과 작년 겨울철에는 마스크 착용과 개인위생·거리 두기 등의 영향으로 독감 환자가 비교적 적었다.

현 추세가 통상 수준보다 빠르긴 하지만. 독감 유행 정점은 대체로 12~1월이다. 정점에 이르면 환자 수가 1000명당 70~80명에 달한다. 본격적으로 코로나 재유행이 시작되는 시기와 독감 유행 정점이 맞물리는, 이른바 ‘트윈데믹’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엔데믹’ 향하는 길목서 또 다른 복병 등장
저조한 접종률 왜?…돌아보니 낮은 신뢰 탓

트윈데믹 우려는 코로나 유행 이후 매년 겨울철마다 제기돼왔다. 다만 그동안은 강도 높은 방역수칙 등 선제 조치 덕에 우려가 현실로 이어진 사태는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방역수칙 대부분이 완화·중단됐고, 그 결과 이미 독감 유행 상황은 임계점을 넘었다.

더군다나 이번 독감 유행은 그 위험도가 더욱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오랜만에 독감이 유행하면서 자연 면역력이 없는 환자가 예년보다 많을 것이란 설명이다. 실제로 독감 유행을 한 번도 겪지 않았던 영유아 사이에서 환자가 크게 늘고 있다.

올해 40주 차 영유아 독감 환자는 전주 대비 53% 증가했다. 영유아는 독감 감염 시 합병증 발병 소지가 커 ‘독감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정부는 ‘적극적인 백신 접종’을 해결책으로 삼았다. 코로나·독감 백신 ‘동시 접종’이 가능하다는 점을 피력하면서 피해 최소화에 전력을 쏟는 모양새다.

이번 5차 접종에 사용되는 코로나 백신은 모더나가 개발한 2가 백신(공식 명칭은 코로나19 오미크론 함유 2가 백신 스파이크박스2주)이다. 이 백신은 코로나 초기 바이러스부터 오미크론 하위 변이까지 폭 넓게 효과를 보이는 점이 특징이다.

방역당국 설명에 따르면 이 백신은 기존 접종 백신에 비해 중화능이 초기 바이러스에서는 1.22배 높다. 현재 지배종인 BA.5에는 중화능이 1.69배 높다. 

방역당국은 2가 백신 접종을 원하지 않을 경우 유전자 재조합 방식인 ‘노바백스’나 ‘스카이코비원’ 백신 대체 접종을 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모더나에 이어 화이자가 만든 2가 백신은 국내 도입 즉시 투입해 2가 접종률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독감 무료 접종도 시작됐다. 정부는 지난 12일 만 75세 이상 고령층을 대상으로 독감 무료 접종을 시작했다. 이를 필두로 만 65세까지 순차적으로 접종 대상에 포함될 예정이다. 기한은 올해 연말까지다.

질병청 관계자는 “65세 이상 독감 예방접종은 12월 말까지 전체 접종 대상자의 99% 이상이 맞는다”며 “적기에 신속한 접종을 위해 접종기간을 연말까지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슬슬 느는
독감 환자

코로나 2가 백신은 독감 백신과 동시에 접종받을 수 있다. 다만 접종 부위를 달리해야 한다. 이를테면 코로나 백신은 왼팔에, 독감 백신은 오른팔에 맞는 식이다.


하지만 정부의 대대적인 홍보에도 불구하고, 백신 접종률은 저조하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접종 누적 인원은 6만여명으로 접종 대상 대비 0.5%에 그쳤다(지난 12일 0시 기준). 접종 첫날 신청이 쇄도했던 예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황경원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접종기획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제 막 접종을 시작했기 때문에 접종률이나 접종 추이에 대한 평가는 아직 좀 이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참고로 지난 4월 시작했던 4차 접종의 1일 차 접종 건수는 3만2000명 정도였기 때문에 이번 동절기 추가 접종이 이보다는 좀 더 많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접종률이 저하됐다고 못 박기는 시기상조라는 게 방역당국 입장이지만, 사전 예약률이 한 자릿수에 지나지 않는 게 그 방증이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접종 첫날 사전 예약자는 37만1429명으로 집계됐다. 1순위 접종대상자가 1138만5737명인 점을 고려할 때, 이들 중 단 3.3%만 접종 예약에 나선 셈이다. 방역당국은 아직 사전 예약 대상이 아닌 2~3순위 대상자도 잔여 백신을 통해 당일 접종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에도 접종률은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백신 접종률이 저조한 이유로 정부의 과거 행적을 지목한다. 정부가 코로나 백신 접종을 적극 장려, 혹은 사실상 강제하면서도 이어진 부작용 논란과 피해보상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감 있는 대처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


결국 이로 인해 국민 사이에서 백신의 신뢰성과 접종 필요성이 큰 타격을 입었고, 낮은 접종률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국민 사이에선 개량 백신의 안전성이 아직 완벽하게 확인되지 않았다는 의심이 만연하다. 이 분야 권위자인 정기석 국가감염병위기대응 자문위원장 또한 지난달 4차 백신 접종을 독려하면서 개량 백신에 대해 “안전성·효과성이 불확실하다”고 평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백경란 질병청장은 “2가 백신은 기존의 백신과 동일한 메신저 리보핵산(mRNA) 플랫폼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백신”이라며 “mRNA 백신 접종은 전 세계에서 수십억 명의 접종을 통해서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인된 바 있다”고 해명했다.

개량 안전성
완벽하지 않다?

지금까지의 임상 실험 결과를 종합하면 2가 백신은 기존 백신과 이상 반응 증상은 유사하지만 발생 빈도가 더 낮다.

실험 결과를 대동한 해명에도 의심과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정부가 백신 부작용을 지나치게 폭 좁게 인정하고, 보상을 질질 끌었던 탓이다. 피해자 호소가 수년간 이어지고 정권이 바뀌어도 문제 해결이 요원하다.

지난 6일 보건복지부와 질병청을 대상으로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는 코로나 백신 부작용 피해자 가족이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이들은 정부에 책임 있는 자세로 신속하게 백신 부작용을 인정·보상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참석한 최미리씨는 지난해 9월 남편을 잃었다. 기저질환 없이 건강했던 남편이 백신 부작용으로 사망했다. 최씨는 “남편의 나이는 고작 36살이었고, 남겨진 아이는 여덟 살과 네 살이었다”며 “지난 1년간 아이들과 저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슬픔과 상실감에 하루하루를 살았다. 경제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그는 “작년 9월 바로 피해 보상을 신청했지만 유독 인과성 (여부에 대한 확인)결과가 늦어졌고, 지난 3월 (사망과 백신접종 사이에)인과성이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하지만 같은 날 피해보상 신청을 (다시)하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알아보니 다시 피해 보상 신청 (순위가) 한참이나 미뤄져 버렸다”며 “콜센터 직원으로부터 무작정 기다리라는 대답만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인과성을 인정받았지만 그저 기다려야 하는 답답한 현실”이라며 “피해 보상 신청 후 120일 안에 결과를 통지해야 함에도 질병청은 묵묵부답이다. 엄연한 직무유기”라고 꼬집었다.

뒤이어 발언한 김두경 코로나19백신피해협의회 회장은 “윤석열정부가 백신 피해를 인정해준다고 해서 잔뜩 기대했지만 피해 보상이 아닌 지원금을 인정해주는 것에 그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국감에서 일부 의원들은 정부가 지난달 코로나 백신 피해보상 관련 소송에서 패소한 뒤 상소하기로 한 결정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서울행정법원은 백신 접종 뒤 뇌 질환 진단을 받은 남성이 ‘예방접종 피해보상 신청을 거부한 처분을 취소하라’며 질병청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질병청은 항소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백신 강요하곤 나 몰라라
피해자 등지고 추가 접종?

의원들의 지적에 대해 백 청장은 “관련 부처와 잘 협의해 보완하겠다”고 답했다. 아울러 방역당국은 개량 백신 접종 시행 초기 이상 반응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다. 접종자가 문자 수신에 동의하면 접종 후 1주일간 능동 감시를 통해 건강상태와 일상생활 문제 여부 등을 확인한다. 접종자 전원은 접종 후 3일 차에 주의사항과 조치사항을 다시 안내받는다.

독감 백신에 관한 ‘헛발질’도 있었다. 2020년 벌어진 백신 ‘부실 배송’ 사건이다. 당시 정부는 독감 백신 유통업체 선정에 난항을 겪었다. 두 달에 걸쳐 4차례 유찰됐고, 5차에서 가까스로 낙찰됐다. 업체 입장에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무료 접종 백신을 기존 3가 백신보다 더 비싼 4가 백신으로 바꾸면서도 입찰단가는 크게 올리지 않았다. 이때 정부가 제시했던 조달 입찰가는 8740원. 시중 가격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같은 시점 서울의료원과 서울시 산하의료기관은 4가 백신을 1만800원에 입찰했다.

접종 시작을 불과 한 달 앞둔 그해 8월이 돼서야 유통업체 ‘신성약품’ 참여가 결정됐다. 그런데 정부는 독감 백신 무료 접종을 하루 앞둔 2020년 9월21일, 신성약품이 적정 냉장온도(영상 2~8도)를 제대로 유지하지 않았다는 신고를 접했다. 조사 결과 신성약품의 위탁업체가 백신 상자를 옮기면서 한동안 상온에 노출한 정황이 드러났다.

신성약품의 공급 물량은 국내 총공급물량 2964만 도즈(1회 접종분) 가운데 국가 확보 물량 전량인 1259만 도즈였다. 21일 하루 동안에만 약 500만 도즈가 전국 각지로 옮겨졌다. 유통업체의 운송 과정상 실수로 정리됐지만, 정부 역시 “부실 배송을 자초했다”는 비판에 홍역을 치렀다.

당시 정부는 트윈데믹을 막기 위해 독감백신 무료 접종 대상을 크게 늘렸다. 공급량이 대폭 늘어났음에도 백신 공급단가를 올리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빡빡한 예산 안에서 종전 계획보다 더 많은 물량을 배송하라고 요구한 셈이다.

뒤늦게 업체가 결정되면서 촉박한 일정 속 위탁업체 관리·감독 부실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처럼 백신에 얽힌 정부의 촌극은 아직도 국민 뇌리에 날카롭게 박혀 있다. 1순위 접종 대상자임에도 접종이 꺼려진다는 A씨는 <일요시사>에 “믿음이 가질 않는다. 코로나도 다 끝나가는 와중에 (백신 접종으로)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나 싶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국민 개인의 건강과 국가적 확산세 안정을 위해 백신 접종은 필수불가결하다. 전문가는 결국 사태 해결의 열쇠는 ‘신뢰 회복’이라고 조언한다. 

그래 봐야
안 믿는다?

천병철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지난달 <뉴데일리 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코로나 접종 과정에서 접종률 제고가 제1원칙이었다면 이제는 장기적 관점에서 피해 보상 체계 개선 등 수월한 접종이 가능하도록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접종과 후속대책이 고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단 코로나 백신뿐만 아니라 백신에 대한 전반적 인식과 신뢰가 떨어졌음을 인지하고 보다 전향적 자세로 백신 관련 정책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라고 제언했다. 


<jeongun15@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