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기획> 가습기살균제 참사, 그후 ②가해 기업들의 짬짜미 그림자

정보 공유에 몰래 회의까지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세월호·가습기살균제 사건 진상규명 활동이 지난 6월 마침표를 찍었다. 작은 성과가 있었으나 피해자와 유족의 눈높이에 맞는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요시사>는 사참위 가습기살균제 사건 진상규명 소위원회가 4년 가까이 조사해온 결과물을 입수했다. 이 보고서에는 가습기살균제 원료를 만든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의 만행이 적나라하게 담겨있다.

SK케미칼과 애경산업(애경)은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원흉이라고 불린다. 가습기살균제 원료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과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을 만든 SK케미칼은 사정기관의 조사와 수사가 시작되자 증거인멸과 피해자 회유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SK케미칼·애경
팀 꾸려 대응

SK케미칼의 참사 대응 과정을 조사한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가습기살균제 진상규명소위원회(특조위)는 SK케미칼과 애경이 사건을 공동으로 대응해왔다고 봤다. 실제 양사 임직원은 여러 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이들 기업은 환경부와 공정거래위원회 국회, 검찰 등에 대한 공동 대응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2017년 10월18일과 2017년 11월1일 두 차례 대면 회의를 진행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AS 미팅’이라는 이름의 회의록에는 총 6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대부분 회사 고위 관계자였다. 이들은 주로 ▲공정위 표시광고법 위반 재조사 관련 사안 ▲형사사건 관련 모니터링 ▲환경부 실험 관련 모니터링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취한 특별법 개정안 관련 사안 ▲옥시의 SK에 대한 정보공개청구 관련 사안 등을 논의했다.

SK케미칼과 애경은 먼저 검찰 내부 동향을 알아봤다. 첫날 회의에서 양사는 “새로 부임한 형사2부 박종근 부장검사는 검찰 동향 모니터링 중이기는 하나 공정위로부터 자료 등을 받은 것이 없고 당장 조치를 취할 계획은 없다고 함” “현재 기존에 가습기 사건 담당하던 검사들이 흩어지고 1명만 남아 해당 검사가 모니터링 업무 위주로 진행 중이라고 함” 등의 내용을 공유했다.


SK케미칼은 “85배 농도까지 폐 손상 증세가 나타나지 않고 100배의 농도를 올리니 특정 증세가 나타나기도 전에 쥐가 사망했다고 함” “수돗물과 비교 실험, PHMG와 CMIT 혼합 실험 등을 진행 중”이라며 환경부에서 가습기살균제에 사용된 원료에 대해 진행 중인 실험 내용을 애경 측에 공유하기도 했다.

2017년 환경부에서 진행 중이던 실험의 종료 시점은 12월이다. 최종보고서가 공개된 시점은 2018년 3월로 SK케미칼은 이보다 약 5개월이나 앞서 자세한 상황을 파악한 것이다.

이들은 가습기특별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막기 위한 플랜도 세웠다. SK케미칼과 애경은 국회 상임위가 열리는 날을 파악하고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에 개정안 내용을 비판하는 의견서 작성을 요청했다. 야당 측 의원에게는 법률이 통과되지 않도록 지연시킬 명분을 만들어주거나 환경노동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절차에서 전문위원의 검토를 받고 진행될 수 있도록 조치하는 등의 계획을 짰다.

정부·국회·환경부 조사 대응 머리 맞대
검 수사 대비 증거인멸 공동 모의 정황

애경 출신 한 재계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시 보수 매체를 선정해 가습기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비판 기사가 나오게끔 하자는 얘기도 있었다”며 “SK도 동의했고 개정안에 대해 찬성하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등의 여론을 조성하려 한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SK케미칼과 애경은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를 사칭하거나 사찰하기도 했다. 앞서 피해자들은 항의 행동 밴드, 4차 접수 판정 정보 공유, 환경노출확인 피해자연합,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포럼 등 온라인 커뮤니티를 개설해 활동해왔다.

특조위는 조사를 통해 SK케미칼 커뮤니케이션팀 소속 직원과 애경 직원이 네이버 아이디를 만들어 해당 커뮤니티에 가입해 피해자들의 주장과 논의 등을 수집하고 사측에 보고하거나 피해자의 게시글을 열람하는 등 피해자 및 피해자 단체를 사찰한 사실을 파악했다.


특조위에 따르면 SK케미칼 직원은 특조위로부터 출석 통보 요구를 받은 직후 업무용 PC를 교체했다. 해당 직원은 사측 법무법인 사무실을 방문해 휴대폰으로 피해자 온라인 모임에 로그인한 적이 있으나, 특조위 조사관에게는 로그인한 휴대폰이 아닌 다른 휴대폰을 제출했다.

애경산업 소속 직원의 경우 2019년 온라인 모임에서 얻은 관련 정보를 사측 임직원이 속해있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화방에 공유하기도 했다.

SK케미칼과 애경은 피해자 사찰을 통해 모은 자료를 활용해 검찰 수사 직전 증거를 인멸하는 치밀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의 ‘SK케미칼 공소장’에 따르면 2013년 5월 SK케미칼 윤리경영부문장을 맡은 박철 전 부사장은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진상규명을 통해 관련 기업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고조됨에 따라 SK케미칼과 SK그룹에 초래할 위기 상황을 우려해 ‘가습기살균제 태스크포스(TF)’를 조직했다.

TF는 ▲SK케미칼은 PHMG를 가습기살균제 용도로 공급 및 사용되는 것을 알지 못했다 ▲미국 환경청(EPA)에 등재된 CMIT·MIT의 흡립독성 자료에 근거해 ‘가습기메이트’를 제조했고, 최초 유공에서 개발할 당시 전문가를 통해 흡입 독성 실험을 거쳐 안전성을 재차 검증했으므로 SK케미칼은 가습기메이트를 비롯한 가습기살균제의 제조·판매·원료물질 공급과 관련해 법률적 책임이 없다는 식의 대응 논리를 마련했다.

피해자 모임
가입 후 사찰

그러나 같은 해 5월부터 7월 사이 가습기살균제 TF 구성원 중 1명이 자동차소재팀에서 보관 중이던 한 대학교 실험 보고서를 발견해 검토하게 됐고 유공이 해당 대학교의 흡입독성 실험 종료 이전 유공 가습기메이트를 출시했다.

특히 실험 결과 실험 대상 쥐들에 병변이 생겨 안전성 검증을 위한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확인됐다.

또 연구팀은 가습기살균제 성분으로 백혈구 수가 변화하는 것을 확인하고 무해성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박 전 부사장은 이 보고서가 SK케미칼 관계자들의 형사책임 등 각종 법률책임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될 것을 우려해 ‘가습기메이트는 출시 당시 안전성을 확보했으나 해당 대학교 실험 보고서는 보관하고 있지 않다는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

검찰은 박 전 부사장과 양정일 당시 법무실장, 이광석 홍보실장 등 핵심 임직원들만 해당 내용을 비밀로 공유하기로 하는 방법으로 대학교 실험 보고서를 인멸 및 은닉하기로 공모했다고 판단했다.

2016년 8월30일 국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 출석한 김철 SK케미칼 사장은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이 담긴 연구 보고서를 보관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김 사장은 “서울대학교 이영순 연구팀의 연구소에 그 문서가 보관돼있지 않고 또 그 문서를 우리도 보관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안전성 확보를 위해 저희가 마땅히 내야 하는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구할 수가 없다”고 했다.

회사 서버 포렌식
관련 자료 은닉도

그러나 2019년 서울중앙지검은 압수수색을 통해 SK케미칼이 해당 보고서를 보관 중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박 전 부사장을 포함한 SK케미칼 간부들은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위반 및 증거인멸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5단독 주진암 부장판사는 지난 8월 30일 ▲가습기살균제 성분에 대한 서울대학교 실험보고서에 대한 증거인멸·은닉 ▲노트북 저장자료에 대한 증거인멸 ▲USB 저장자료에 대한 증거인멸 ▲외장하드 저장자료에 대한 증거인멸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박 전 부사장은 2012년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장을 끝으로 퇴직한 뒤 SK그룹으로 자리를 옮긴 인물이다. 그는 SK케미칼 법무실장, SK에코플랜트 윤리경영총괄, SK가스 법무실장 등을 역임하다 2017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SK케미칼이 지주회사인 SK디스커버리와 사업회사인 SK케미칼로 인적 분할한 뒤에도 SK디스커버리 윤리경영담당으로 근무하며 SK케미칼의 법무와 홍보 업무를 총괄했다.

박 전 부사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양 전 법무실장도 같은 공소사실이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판사 출신인 양 전 법무실장은 2013~2014년 SK케미칼 법무담당 임원, 2015~2018년 SK케미칼 윤리경영부문 법무실장 등으로 근무하며 SK케미칼의 법무 업무를 맡았다.

두 사람은 최근 윤리경영부문에서는 물러났으나 여전히 임원 신분을 유지 중이다.

지난 8월 기준 SK디스커버리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박 전 부사장은 미등기 임원(상근)으로 이름이 올라가 있다. 담당 업무는 ‘CEO 보좌’다. 그는 SK가스 본사 임원도 겸직 중이다. 양 전 법무실장 역시 ‘사장 보좌’라는 업무를 맡고 SK케미칼 미등기 임원(상근)으로 재직하고 있다.

애경의 증거인멸은 SK케미칼보다 더 치밀했다. 법률자문을 받으면서 검찰 수사를 대비했을 정도다. 특조위 조사 결과 고광현 전 애경 사장은 2016년 1월 서울중앙지검이 가습기살균제 특별수사팀을 구성하자 홍보·총무부문장에게 애경에 대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검찰의 압수수색 등 수사에 대비한 대응 방안 마련을 지시했다.

고 전 사장의 지시를 받은 애경 총무부문장과 총무채권팀장, 법무 담당자들은 2016년 10월 국회 가습기 국정조사특위 종료 후 여러 차례 증거인멸을 감행했다.

‘AS 회의’ 만들어 사정기관 동향 파악
서울대 연구팀 보고서 철저히 은폐도

이들은 애경 직원들의 PC에서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메이트’ ‘CMIT·MIT’ ‘MSDS’ ‘파란하늘’ 등의 검색어로 검색되는 이메일과 그룹웨어 쪽지, 기안문, 보고자료, 연구자료, 논문 등의 자료를 없앴다. 특히 애경 마케팅부서와 영업부서, CRM 부서 직원들의 PC에서 가습기살균제 제품 관련 고객 상담 및 클레임 자료 일체를 삭제하고 업무용 PC·하드디스크를 교체했다.

검찰 수사로 위기감을 느낀 고 전 사장은 애경 국정조사TFT(GA TFT)를 조직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GA TFT 구성원들은 2016년 6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애경 직원들로부터 취합해 관리해 오던 가습기살균제 관련 자료, 애경 서버에 저장돼있는 가습기살균제 관련 파일 일체, 법률사무소에 의뢰해 분석한 애경 서버 포렌식 결과 등을 모두 점검했다.

고 전 사장은 GA TFT에 국회 국정조사가 끝난 직후 해당 자료들을 폐기 및 삭제를 지시하고, 핵심 자료들을 회사 외부의 별도 장소에 은밀히 보관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애경의 한 간부는 ▲쥐를 이용한 유공 가습기메이트의 6개월 흡입노출 시험 최종보고서(서울대 보고서) ▲애경중앙연구소 기반기술팀 혁신파트에서 위 시험보고서 자료를 요약 정리한 가습기살균제 흡입독성 자료 ▲파란하늘 맑은 가습기 관련 자료 ▲가습기메이트 출시 경위 등 가습기메이트의 안전성 검토와 관련된 주요 증거자료들을 별도의 장소에 은닉했다.

애경은 증거인멸 과정에서 김앤장으로부터 형사 관련 자문을 받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당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애경 법무팀은 검찰 수사를 대비해 각 부서별 관련자들을 특정해 총 49명의 하드 교체를 계획하고, 김앤장에 어느 수준까지 자료를 삭제해야 하는지 등을 문의했다.

실제 애경 법무팀 대리는 김앤장 소속 변호사들과 만나 ‘회사 전산(그룹웨어 상에 등록된 기안문 등도 압수수색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전산관리회사(AKIS)에도 압수수색이 진행될 수 있는지’를 물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김앤장의 조언을 받은 애경은 실제 회사 서버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을 실시했다. 애경 법무팀은 포렌식 작업을 통해 확인한 가습기살균제 관련 자료들에 대해, 김앤장 포렌식팀으로부터 ‘해당 자료를 서버에서 삭제할 경우 복구 가능성이 높은지 낮은지’ 등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김앤장 자문
철저히 대비

증거인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 전 사장과 애경 간부들은 2020년 4월 실형을 확정받았다. 당시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증거인멸교사 증거은닉교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 전 사장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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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