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진 본능’ 박지현 마이웨이

‘이재명 키즈’서 ‘저격수’로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거침없는 행보가 멈추지 않고 있다. ‘586 용퇴론 주장’ ‘당 대표 출마 선언’ 등 지난 몇 달간 파격 행보를 이어온 박 전 위원장은 당내에서 줄곧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왔다. 용퇴론 주장 때는 선거를 앞두고 분란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고, 당 대표 출마 선언 때는 비대위로부터 ‘피선거권 없음’이라는 통보를 받아야 했다. 일반적인 청년 정치인이었으면 몇 번이고 좌절했을 상황에 박 전 위원장은 굴하지 않는 기세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그의 다음 행보를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지난 13일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이 우상호 현 비대위원장을 만났다. 그가 당 대표 출마의 키를 쥐고 있는 우 위원장을 만난다는 소식에 기자들이 현장으로 몰려갔다. 물론, 초미의 관심사는 박 전 위원장의 ‘당 대표 출마 허용’ 여부였다. 

전현직 만나
설득 작업?

민주당 취재 기자들에 따르면, 이 회동은 우 위원장의 제안으로 이뤄졌으며, 박 전 위원장은 해당 자리에서 본인에게 특별조항을 적용해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당초 비대위 측은 민주당 당헌·당규 제2장 6조 1항을 들어 박 전 위원장의 피선거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해당 당규에는 ‘당직 선거 및 공직 선거 후보자 선출 선거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은 권리당원에게만 부여한다’고 쓰여있다. 여기서 박 전 위원장의 발목을 잡은 것은 권리당원이 되기 위한 조건이다.

민주당의 권리당원이 되려면 최소 6개월, 6번 이상 당비를 납부해야 한다. 그러나 박 전 위원장이 민주당에 들어온 시기는 지난 2월이다. 당시 대선주자로 뛰고 있었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이대녀(20대 여자)’의 표심 공략을 위해 박 전 위원장을 영입했던 바 있다.


박 전 위원장은 이때 선대위에 합류하며 처음 민주당원이 됐다.

다음 달 말에 있을 전당대회까지 6개월이란 시간은 충족되지만, 전대 후보 등록일 마감기한은 17일로, 등록일 기준으로는 6개월이 채 되지 않는다. 당 대표 후보로서 기본조건을 충족하지 못할뿐더러 권리당원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 박 전 위원장은 특별조항을 들며 반박 논리를 펼쳤다. 비대위 측이 근거로 제시한 6조 1항 말미에는 ‘다만 당규로 예외를 인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다. 여기서 말하는 당규는 ‘당무위원회 의결로 달리 결정할 수 있다’고 쓰여 있는 항목이다.

실제 민주당은 해당 당규로 몇 번이고 당헌을 비틀어왔다.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김 도지사는 지난 대선 기간 동안 새로운물결의 대선후보로 이 의원과 경쟁한 바 있다.

김 도지사는 대선 한 달을 앞두고 이 의원과 극적인 단일화에 앞서 민주당으로부터 합당 제안을 받았다. 이때 시점은 박 전 비대위원장의 입당 시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물며 양당의 합당은 이때보다 한참 지난 대선 후에나 이뤄졌다. 입당순으로만 보면 박 전 위원장이 김 도지사보다 몇 달이나 빨랐던 것이다.

그러나 김 도지사는 ‘당무위원회’로부터 예외 조항을 인정받아 민주당 경기도지사 경선 후보가 될 수 있었다. 당시 민주당은 “합당을 전제로 당의 후보로 경기도지사에 출마하게 된 것”이라며 “그 사안과 이번(박 전 위원장)의 사안은 다른 것 같아 비교대상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새로운물결 당원으로서 지낸 시간을 ‘민주당원으로서의 시간’으로 인정해준 것인데, 민주당 지도부는 합당하면서 새로운물결이 민주당이 됐으니 김 도지사가 권리당원 요건에 충족하다고 해석했다.

민주당은 “박 전 위원장에 대한 다른 부분이 있는 게 아니라 당헌·당규에 나온 부분을 봤을 때 예외를 인정할만한 불가피한 사유가 없다”고 덧 붙였다.

당내 만류에도…대표 출마 강행
우상호와 회동 “입장 변화 없어”

이처럼 “예외 조항을 인정해달라”라는 박 전 위원장의 주장과 “인정할 사항이 아니다”라는 비대위 측의 주장은 지속해서 대립해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당사자인 박 전 위원장과 우 위원장의 만남은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파격적인 회동에도 불구하고 양측의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박 전 위원장은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진행하겠다”며 “내가 생각하는 책임정치는 부결했다면 부결 이유를 국민들에게 소상히 밝히는 것”이라며 민주당 지도부와 대립각을 다시 세웠다.

이어 “우 위원장에게 당무위 의결로 예외 조항을 적용시켜 달라고 여러 차례 말씀 드렸지만, 이 사안을 다시 한 번 논의하기는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을 풀어보면 우 위원장은 이날 박 전 위원장의 당 대표 출마를 ‘말리려고’ 회동을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젊은 정치인의 출마를 민주당의 수장격인 인물이 직접 나서서 만류하려는 것은 어색한 그림이다.

그러나 여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 박 전 위원장의 전대 출마 사안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계륵’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박 전 위원장은 지난 대선에서 이대녀의 결집을 이끌어냈다는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몇몇 인사는 이대남의 결집을 이끈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그를 비교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선거 초반부터 남성들의 표심을 자극해 대선 구도를 형성했다. ‘여가부 폐지’나 ‘무고죄 강화’ 등의 공약은 여심을 버리고 이른바 이대남의 결집을 이끈 대표적인 선거 전략이었다.

이재명 대선 캠프의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에 추대된 박 전 위원장은 곧바로 언론 인터뷰에 등장해 당시 윤석열 대통령 후보의 여가부 폐지 공약을 비판하며 이 대표의 전략에 맞불을 놨다.

그는 “여가부로부터 지원받는 많은 피해자에게 들어보면 ‘여가부 폐지’가 곧 지원을 끊어버리겠다는 말로 들린다”며 “여가부의 미혼모 시설에서 지원받고 있는 언니를 제발 살려달라는 분도 있다. 결국 생존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무고죄에 대해서도 “피해자가 신고조차 어렵게 하는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란 공약을 낸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 두렵고 끔찍하다”며 여성들의 표심을 자극했다.

역할론 
급부상

여성들이 듣기에 ‘사이다’ 같은 발언들이었다. 그의 발언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곧 ‘박지현’이라는 인물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여기서는 그의 이력이 빛을 바랬다.

박 전 위원장은 본래 디지털 성착취 범죄 ‘N번방 사건’을 세상에 처음 알린 ‘추적단 불꽃’ 출신 활동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본명보다 불꽃이라는 활동명으로 더 유명한 그의 이력이 알려지며 이대녀들은 더욱 열광했다.

대선 당시 이대녀들은 “절대 지켜 박지현” “박지현 VS 이준석 누구 찍을래?” 등의 구호를 유행시키며 본격적인 이 대표와의 대결 구도를 유도했다.

최종 대선 투표 결과는 무승부였다. 윤 대통령은 20대 남성에게 58.7%의 지지를, 여성에게 33.8%의 지지를 받았고, 이 의원은 최종 투표율에서 20대 여성에게 58%의 지지를, 남성에게는 36%의 지지를 받았다.


근소한 차이지만 20대 지지율에서 민주당이 국민의힘에게 밀리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여의도 선거 전문가들은 박 전 위원장의 존재 덕분에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을 20대 투표에서 이길 수 있었다고 해석했다.

이 지점에서 민주당 지도부의 고심은 깊어진다.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평가받는 그의 당권 도전을 끝까지 만류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민주당은 민주당을 지지했던 20대 여성들의 표심을 배반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에서 최근 이 대표에 대한 중징계를 내리며 젊은 지지층에게 많은 비판을 듣는 중인 만큼, 상황은 더 안 좋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중징계 결정 후, 지지율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의힘(40.9%)은 처음으로 민주당(41.8%)에게 정당 지지도에서 역전을 허용했다.

리얼미터는 “이는 3월 5주차 조사 이후 14주 만에 처음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이긴 지표”라는 해석을 덧붙였다.

“선거에서 두 번이나 이겨줬더니 ‘토사구팽’이냐”라는 젊은 국민의힘 당원들의 목소리와 “역시 청년은 들러리였다”는 일반 국민들의 목소리가 합쳐진 결과였다. 해당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민주당 지도부는 긴장하는 모양새다.

친명?
반명?

지난 대선에서 이 대표와 박 전 위원장이 꾸준히 비교됐기 때문이다. 박 전 위원장을 내친다면 지금의 국민의힘이 듣는 비판을 똑같이 들을 요소가 다분하다. 그렇다고 민주당 지도부가 그의 출마를 전격적으로 인정할 수도 없다.

대부분의 민주당 인사들은 그의 출마를 인정하자는 주장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이 지금은 주류가 된 ‘친명(친 이재명)’ 의원들과의 극심한 대립을 보이고, 기득권을 쥐고 있는 기성 정치인들을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대로, 박 전 위원장은 애초 이 의원이 직접 영입한 ‘친명’계 인사였다. 대통령선거 당시 박 전 위원장은 현장에서 “나는 이재명 한 사람만 보고 민주당에 들어왔다”며 “이재명은 차악이 아닌 최선의 후보”라고 그에 대한 충성심을 드러낸 바 있다.

좋았던 둘의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한 것은 박 전 위원장이 ‘586 용퇴론’과 ‘최강욱 의원에 대한 징계’를 주장하면서부터다.

현재 친명에 속해있는 의원은 그 세가 불어나 약 6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그 60명 중 대부분이 박 전 위원장이 용퇴를 주장하는 586세대라는 점이다. 하물며 이 의원 본인도 586세대에 속한다.

즉, 박 전 위원장의 주장은 ‘친명’계의 해산을 주장한 것과 다름없다. 그는 민주당의 끝없는 추락이 쇄신을 단행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친명계 의원 중 상당수가 쇄신을 방해한다고 보고 있다.

그는 또한 “XXX 치러 갔나”라는 성희롱성 발언을 한 친명계 핵심인 최 의원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징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준석과 평행이론? “아직 이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계륵 신세

당시 민주당은 성비위 혐의를 받은 박완주 의원에 대한 징계 논란으로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중진 의원과 실세의 잇따른 성비위 사건에 누구 하나 강한 메시지를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박 전 위원장이 나섰다.

그는 본인의 SNS에 “민주당이 민심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기 전에 최 의원은 재심 청구를 철회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라”며 “최 의원의 거짓 발언, 은폐 시도, 2차 가해 행위를 종합해봤을 때(6개월 당원권 정지 처분은) 무거운 처벌이라 보기 어렵다”고 압박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박 전 위원장은 친명계 의원들, 나아가 이 의원 본인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여갔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이재명 의원이 변해서”라고 말한다.

박 전 위원장의 주장에 따르면, 이 의원은 다른 사건에서 보인 모습과는 달리 최 의원 사건에서 만큼은 ‘온정주의자’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는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들으며 정권을 내줬던 민주당의 어두운 모습을 이 의원 스스로가 보인 점에 대해 매우 실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비명(비 이재명)계가 박 전 위원장을 두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이재명 저격수’로서 새로운 포지션으로 자리 잡은 박 전 위원장에게 비명계 의원들이 서서히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전당대회에서 이 의원을 끌어내릴 전략만 구상하고 있는 비명계 인사들은 박 전 위원장의 저격이 ‘이재명 힘 빼기’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의 지지층은 이 의원과 상당 부분 겹친다. 주로 젊은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그가 전당대회에서 이 의원의 표를 상당 부분 갉아먹는다면,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이라는 분위기를 뚫고, 극적인 반전도 노려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실제로 지난 15일 국회 정문 앞에서 있었던 박 전 위원장의 당 대표 선언식에 뒤에서 지원하려 한 비명계 의들이 몇몇 있었다고 전해진다.

총 잡는 
직진녀

박 전 위원장의 당 대표 도전은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이 큰 상태지만 ‘비명계의 지지’라는 개인의 소득은 있었다. 그의 앞날은 비명계의 최전방 공격수로 새롭게 열릴 전망이다. 전당대회까지 이제 한 달, 비명계와 박 전 위원장의 공투가 시작되려 한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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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