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삼성가 3세’ 이재관 전 새한그룹 부회장 59년 인생사

버려진 금수저, 외롭게 떠나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이재관 전 새한그룹 부회장이 향년 59세로 세상을 떠났다. 재계 조문행렬이 이어졌고, 특히 범 삼성가에서 이 전 부회장의 마지막 가는 길을 챙겼다. 사촌동생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출장 중 조화를 보냈다. ‘비운의 삼성가 3세’로 알려진 이 전 부회장의 생애는 어땠을까.

지난 11일 별세한 이재관 전 새한그룹 부회장은 미국 LA에서 거주하다 지난해 귀국한 이후 우울증, 고관절 수술, 체중 감소 등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확한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룹 승계 
경쟁서 밀려

재계에서는 잇딴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특히 범 삼성가에서 이 전 부회장의 마지막 가는 길을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범 삼성가 친인척 중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가장 먼저 장례식장을 찾았다. 부인 한지희씨와 장례식장을 찾은 정 부회장은 “재관 형님은 저와 추억이 많은 형이고 존경하는 분”이라며 “갑작스러운 비보를 듣게 돼 참담하고 황망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네덜란드 출장 관계로 빈소에 방문하지 않고 조화를 보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 손경식 CJ 회장,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허영인 SPC그룹 회장 등도 모두 조화를 보내 조의를 표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 등은 직접 빈소를 방문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조문했다. 

이 전 부회장의 조문에 범 삼성가가 집결하면서 2세들의 승계 다툼 봉합 후 본격적인 화해모드로 접어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우울증 시달리다 별세… 정확한 사인은 불명
‘범 삼성가’애도…유럽 출장 간 이재용 조화

이 전 부회장은 삼성가 3세로,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차남인 고 이창희 회장의 장남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는 사촌지간이다. 새한그룹은 창업주 고 이창희 회장이 과거 삼성그룹 승계 경쟁에서 밀려났던 만큼 ‘비운의 삼성가’로 언급된다. 

이창희 회장은 1964년 일본 와세다대 졸업 후 삼성그룹에 입사해 한국비료 이사, 제일모직 이사, 삼성물산 이사 등을 거쳤다. 하지만 1996년 사카린밀수사건으로 수감되면서 아버지이자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눈 밖에 나게 된다. 

삼성가를 떠난 이창희 회장은 1973년 미국 마그네틱미디어(Magnetic Media)와 합작으로 마그네틱미디어코리아를 설립했다. 1977년 새한전자를 인수하고 1979년 마그네틱미디어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기도 했다. 

1980년대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카세트테이프, 비디오테이프, 플로피디스크 등 기록매체 중심의 사업으로 단장하며 새한미디어로 발전시키기도 했다.


회장님 눈 밖에
가까스로 성장

1985년 당시 공기업이었던 한국종합화학으로부터 충주 비료공장을 인수했고 옥사이드공장으로 재구축해 화학사업에 뛰어들었다. 1989년 새한이동통신을 세워 무선호출 사업에, 1994년 황성통운 인수로 물류업까지 사업영역을 넓히며 재계에서 꽤 영향력 있는 사업가로 인정받았다. 

이 전 부회장이 새한그룹의 경영 전면에 나선 것은 1991년부터다. 이창희 회장이 혈액암 판정 4개월 만에 58세 일기로 사망하자 그의 아내인 이영자씨가 회장으로, 이 전 부회장은 새한미디어 부사장직에 올랐다. 

1995년 삼성그룹으로부터 제일합섬을 넘겨받은 새한미디어는 1997년 조사화합 및 새 영문 CI를 선포하며 새한그룹을 출범시켰다. 이듬해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며 재계 서열 20위권까지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1987년 미국 터프츠대를 졸업한 그는 씨티은행에서 3년간 근무하다가 1990년 새한미디어 이사를 맡아 오너 경영인 대열에 합류했다. 모친 이영자씨가 새한그룹 회장을 맡아왔지만 대표이사로서 경영 일선을 지휘한 것은 이 전 부회장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당시 이미 쇠퇴하고 있던 비디오테이프와 섬유산업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며 경영난에 휩싸였다. 새한은 1990년대 중반부터 1조원이 넘는 시설투자에 나섰다가 경기 침체로 금융비용이 크게 늘어나자 1999년 섬유·필름 부문을 분리해 일본 도레이(TORAY)와 합작법인 도레이새한을 세워 다각적인 기업 경영에 나섰다. 

고군분투
결국 부도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채 결국 2000년 계열사 전체가 워크아웃(Workout)에 들어갔다. 이 전 부회장은 작은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의 지원을 기대했으나, 오히려 삼성의 금융 계열사들이 다른 곳보다 먼저 자금 회수를 하는 바람에 최악의 상황에 몰렸다. 

당시 이재관 부회장은 이태원동 자택을 포함해 247억원 상당의 개인 자산을 회사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결국 새한그룹 경영에서 완전 손을 뗐다. 새한이 그룹 형태를 갖추고 아들 형제가 경영을 맡은 지 5년 만이었다.

(주)새한(구 제일합섬)은 웅진그룹에 넘어가면서 웅진케미칼로, 도레이새한은 도레이첨단소재로, 새한미디어는 코스모스신소재로 사명을 바꿨다. 

새한 오너 형제들의 불운은 그룹 해체와 경영권 상실로 끝나지 않았다. 이 전 부회장은 워크아웃 직전 분식회계를 통해 대규모 불법 대출을 받은 혐의로 2003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실형을 받았다. 이재찬 사장은 연예·엔터테인먼트 사업에 관심을 갖고 ‘디지털미디어’라는 계열사를 통해 드라마·음반 제작 사업을 벌였으나 회사 경영권을 잃었다. 

재계서열 20위 등극…잇단 실패 나락으로
모임·대외활동 자제…지금까지 운둔생활


이 전 부회장이 언론에 노출된 것은 2010년 동생 이재찬 사장의 사망 소식 때문이었다. 이 전 부회장의 구속과 동생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며 ‘비운의 삼성가’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재찬 사장 사망 당시 이건희 회장 부부와 이재용 당시 부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 등은 싱가포르 출장으로 국내에 없었다. 

동생 사망 이후 이 전 부회장이 공식적인 목소리를 낸 것은 삼성가의 상속 소송이 불거졌던 2012년이다. 당시 이재찬 사장의 유족이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상속 소송을 냈는데 이 전 부회장 측은 “과거 상속 문제가 전부 정리됐기 때문에 향후 어떤 방식으로든 소송이나 기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법률 대리인을 통해 입장을 표시했다.

해당 사건 후 이 전 부회장은 2015년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별세 당시 빈소를 찾은 것 외엔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워크아웃 뒤 국내·외를 왔다 갔다 했다는 것만 풍문으로 들었다”며 “그 이후 사업이나 대외활동 없이 조용히 지냈던 것으로만 안다”고 말했다.

새한 해체 후
대외활동 접어

이들 형제는 새한그룹이 해체된 뒤 삼성·CJ·신세계·한솔 등 범 삼성가 모임에도 잘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가의 한 관계자는 “이들은 가족모임에도 잘 나오지 않고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고 전했다.



<ktikt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